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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소개
프리랜서 번역가의 삶이 담긴 『혼자여서 좋은 직업』. 믿고 읽는 번역가를 넘어 믿고 읽는 에세이 작가가 된 권남희의 유쾌하면서 따스한 삶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할 줄 아는 게 없어서 유일한 재주를 30년째 붙잡았다’고 말하는 권남희 번역가. 연중무휴로 긴 세월 일하면서 직업이 취미 생활이 되었고, 번역하는 일은 행복하고 글 쓰는 일은 즐겁다고 토로할 만큼 직업을 향한 진심을 드러낸다. 자칭 ‘유명한 집순이’로, ‘엉덩이가 무거워야 하는’ 번역이 천직인 그는 번역하며 있었던 일들을 들려주면서 번역가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따뜻하고 현실적인 조언을 전한다. 이를테면 출판사에 번역료를 올려달라고 메일을 썼던 경험과 인세와 매절 계약의 차이를 통해 번역가의 속사정이 어떤지 보여주고, 번역가 지망생들이 출판사에 어떻게 자기 존재를 어필할지 비법을 알려준다.
👩🏫 저자 소개
권남희
항상 이름 앞에 무라카미 하루키, 무라카미 류, 히가시노 게이고, 오가와 이토, 미우라 시온, 마스다 미리 등 일본 현대 작가 이름이 먼저 나오는 30년 차 일본 문학 번역가. 주로 번역을 하고 가끔 에세이도 쓴다. 집순이로 유명하지만 의외로 여행을 좋아하고, 6년 전부터 서울에서 열리는 국카스텐 콘서트에 한 번도 빠짐없이 갔다. 반주(飯酒)를 좋아하고, 딸과 함께하는 시간을 좋아하고, 세상의 모든 강아지와 고양이를 좋아한다.
지은 책으로 『번역에 살고 죽고』 『귀찮지만 행복해 볼까』가 있으며, 옮긴 책으로 『무라카미 T』 『달팽이 식당』 『카모메 식당』 『시드니!』 『애도하는 사람』 『빵가게 재습격』 『반딧불이』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 『저녁 무렵에 면도하기』 『평범한 나의 느긋한 작가생활』 『종이달』 『배를 엮다』 『누구』 『후와후와』 『츠바키 문구점』 『반짝반짝 공화국』 『숙명』 등이 있다.
📜 목차
프롤로그: 할머니가 되어서도 번역하고 싶다
1 오늘은 열심히 일하려고 했는데
오늘은 열심히 일하려고 했는데
비싼 옷
여권과 지문
TV 속의 번역가
500부 사인 도전
내 책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87세 엄마도 운동하는데
일본 소설 붐이었던 시절
정하는 번역 안 해요?
번역료가 오른 이유
인세를 받는 게 좋을까
신춘문예로 만난 인연
2 목욕탕집 딸이었던 역자
사전 편집자
호텔집 딸이었던 작가, 목욕탕집 딸이었던 역자
제목 바꾸기
40대의 사노 요코
술도둑
역주 달기
출판사에 어필하기
기노쿠니야 서점
논란의 책
최고령 아쿠타가와상 수상자
어느 작가의 생
고등학생 독자의 이메일
오가와 이토 씨 만난 날
3 저자가 되고 보니
하현우 씨 추천사를 받고 싶어서
배철수의 음악캠프
엄마, 나 대단하지?
책을 써요, 남희 씨
NO라고 말하기
독자의 건강 조언
궁금증은 언젠가 풀린다
중고 도서를 샀더니
자기소개
『마감일기』 이야기
4 수고했어, 너도 나도
하고 싶지 않은 것은 하지 않게 된 나이
집순이의 친구
블로그 낙서장
시, 시 시 자로 시작하는 말
2등이 편하다
에쉬레 버터
그때 그 남학생은
낙천적이고 긍정적인 아이
카피라이터가 되고 싶었지만
사주를 믿으세요?
엄마의 기준
정하의 취업
나무가 떠났다
만 원의 행운
에필로그: 다시 둘이서
📖 책 속으로
예전에는 ‘오늘은 열심히 일해야지’ 하는 다짐 같은 것 하지 않았다. 그런 다짐 하지 않아도 과로사할 정도로 열심히 했다. 그러나 그때보다 이렇게 농땡이 부리며 설렁설렁 사는 지금의 내가 좋다. 죽기 전까지 일을 하고 싶지만, 일만 하다 죽고 싶진 않다. 그렇게 살다 돌아가신 아버지를 본 뒤로, 적게 벌고 적게 쓰더라도 숨 좀 돌리고 여유 좀 갖고 살자는 생각을 하게 됐다. 아, 그렇긴 하지만, 그래도 오늘은 열심히 일하려고 했는데 또 열심히 하지 못하고 말았다. 내일은 열심히 해야지…….
-p. 19
드디어 당일. 모처럼 산 거액(?)의 옷을 입고 드라이를 하러 단골 미용실에 갔다. 착한 원장님이 메이크업도 무료로 해주었다. 고맙다고 인사하고 나오는데 원장님이 이렇게 말했다.
“이제 집에 가서 옷만 갈아입고 가면 되겠네요?”
헉.
“이거…… 입고 갈 건데요.”
“네에?”
-p. 21~22
여권을 신청하고 돌아오는 길에 묘한 느낌이 들었다. 이미 사진은 관심 밖이었다. 지문 인식기가 인식하지 못하는 내 지문을 계속 들여다보았다. 그렇게 생각해서인지 닳아서 반질거리는 것 같기도 하다. 서글프네. 이제 골무라도 끼고 일해야 할까. 남은 지문이라도 보존하게.
모처럼 나갔다가 쭈글한 기분으로 돌아와서 지문 얘기를 했더니 정하가 이렇게 말했다.
“우와, 지문이 닳을 정도로 번역을 했다니 엄마 번역 장인 같네. 간지 난다.”
-p. 25
큰마음 먹고 산 러닝머신은 열 번도 쓰지 않고 관상용 철조물로 있다가 구청에 무료 수거를 신청해서 처치했다. 인터넷에서 반짐볼로 다이어트 성공했다는 글을 보고 바로 구매한 반짐볼은 다이어트는 되지 않고 반짐만 되었다.
-p. 40~41
하루도 이 일을 사랑하지 않은 날은 없지만, 자식에게 시키고 싶은가? 하면 글쎄다. 엄마 찬스로 쉽게 시작할 수는 있겠지만, 살아남으려면 실력과 근성이 있어야 한다.
-p. 46
정부에서, 혹은 협회에서 때 되면 돈 올려주는 업계는 정말 행복한 것이다. 번역하는 사람은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 본인이 알아서 소심하게 몇 년에 한 번쯤 500원(원고지 장당) 올려달라고 말을 꺼내서 올려주면 올라가는 것이고, “단군 이래 최대 불황이어서요” 하고 출판사에서 죽는 소리하면 “아, 그렇죠” 하고 물러서는 것이다.
-p. 50
목욕탕집 딸이었던 경험은 아무짝에도 쓸모없었던 것 같지만, 그래도 때(?)돈 버는 집이어서 책을 마음껏 사본 덕분에 책과 관련된 직업을 얻게 됐다고 애써 미화해본다.
-p. 76
보통은 원서 제목이 그대로 번역되어 나오지만, 더러 출판사에서 책 제목을 확 바꾸어서 낼 때도 있다. “번역가는 제목을 왜 이따위로 번역했을까” 하는 서평을 가끔 보지만, 제목은 100퍼센트 출판사에서 정하는 것입니다. 솔직히 나도 ‘제목을 왜 이따위로 정했을까’라고 속으로 욕할 때가 있긴 하다. 그러나 제목을 정할 때 역자의 의견은 그리 반영되지 않는다. 역자가 “제목 너무 별로예요”라고 말해봐야 1그램의 무게도 더해지지 않는다.
-p. 77
꽃은 누군가가 이름을 불러주어야 꽃이 된다면, 오역은 누군가가 까발려주어야 오역이 된다. 알고 오역을 하는 사람은 없으니 지적받기 전까지는 바른 번역의 탈을 쓰고 있다. 오욕의 오역은 번역하는 사람에게는 가장 두려운 것. 늘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지만, 어디선가 좀비처럼 튀어나온다. 생각만 해도 살 떨리네.
-p. 89
구로다 씨는 자유로운 문학 생활을 위해 20대에 교직을 버리고 교정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소설 쓰기만 했다고 한다. “수상의 기쁨을 누구에게?”라는 질문에 가족이 없어서 아무하고도 나눌 사람이 없다고 하는데, 외롭겠다는 생각보다 문학에 대한 지독한 혹은 고집스런 사랑이 느껴졌다. 그 세대 사람이 결혼도 하지 않고 소설만 쓰며 사는 게 쉬운 선택은 아니었을 텐데.
-p. 110
가장 기쁠 때는 좋은 작품 의뢰가 들어올 때고, 보람을 느낄 때는 딸이 엄마가 번역가인 걸 자랑스럽게 생각할 때다. 번역가가 되려면 원서 한 권 뚝딱 읽을 정도의 외국어 실력이 필요하다. 번역가가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많이 읽고 많이 쓰기. 번역가가 꿈인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 돈을 많이 벌긴 어렵지만, 경력이 책이 되어 쌓이는 좋은 직업이랍니다.
-p. 117~118
평소에도 사람들이 “그 나이로 안 보이세요”라고 하면 “그죠”라고 대답하는 재수 없는 화법의 나. 앞으로는 누가 빈말을 해주면 “감사합니다” 혹은 “아이, 아닙니다. 별말씀을요” 하고 겸손하게 대답해야지, 굳게 다짐했다. 어렸을 때 깨달아야 할 것을 너무 늦게 깨닫긴 했지만, 더 늦으면 치매로 보일지 모르니 지금이라도 고쳐야 한다. 그러나 원래 사람을 잘 만나지 않았지만, 코로나19 세상이 된 뒤로 더욱 적극적으로 만나지 않고 있어서 안타깝게도 겸손한 대화를 나눌 일이 없네.
-p. 122
오가와 이토 씨는 특이하게 명함이 없다. 휴대폰도 없다. 그리고 동행한 신초샤 편집자가 귀띔하기를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싫어해서 “오가와 씨”라고 불러주는 걸 좋아한다고. 아, 딴 얘기지만, 이 편집자는 엑소 덕후였다. 내가 국카스텐 굿즈인 팔찌를 보여주었더니, 편집자는 엑소 굿즈인 휴대폰 그립톡을 보여주었다. 만찬장에서 뜬금없이 서로의 덕질 이야기를 했다.
-p. 127
『귀찮지만 행복해 볼까』가 나왔을 때, 엄마한테 내 인터뷰가 실린 신문과 책과 사은품인 손거울을 갖고 가서 보여주었다. 10년 전 『번역에 살고 죽고』가 나왔을 때의 무표정과 달리 엄청나게 대대적인 반응이었다. 이유는 딸이 책을 내서가 아니라 신문에 사진이 예쁘게 나와서였다. 탤런트 같다고 좋아했다. 전문가의 메이크업과 보정 덕에 연예인 사진 못잖게 나왔으니 엄마가 좋아할 만도 하다. 딸은 딸인데 딸이 아닌 딸의 사진.
“아이구야, 이걸 누가 쉰다섯 살이라 하겠노.”
보정 혹은 포샵이란 걸 설명하려면 너무 머나먼 길을 가야 하므로 “그치~” 하고 말았다.
-p. 139
어느 때부터인가 하고 싶지 않은 것은 하지 않게 되었다.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은 만나지 않고, 번역하고 싶지 않은 책은 정중히 거절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니 더불어 사는 세상이니 하는 말에서 자유로워지자, 지구의 무게가 훨씬 가벼워졌다. 나이를 먹어서 뻔뻔해진 것인지 해탈한 것인지 모르겠다. 어쨌든 최소한 사람의 도리를 하고 최대한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세상을 왕따시키며 살고 있다.
-p. 169
친구들 만나러 나가는 취준생 정하에게
“가서 신세 한탄하지 말고 술 마시고 울지 말고.”
그랬더니, 피식하며 이렇게 말했다.
“내가 개그 담당이야. 춤도 춰주고.”
오늘도 괜한 걱정을 했습니다…….
-p. 175
예닐곱 살에 한글을 깨친 뒤로 활자에 빠진 나는 주로 옆집인 만화방에서 만화책을 읽었다. 학교에 들어가기 전이라 아직 세상에 그림책, 동화책이란 게 존재한다는 사실을 몰랐다. 부모님이 교육에 관심이 없어서 우리 집에 책이라곤 언니와 오빠의 교과서뿐이었다.
-p. 186
엄마랑 친한 동네 할머니가 허리 수술을 해서 병원에 한 달 넘게 있다가 퇴원했다. 그러나 혼자서는 생활이 불가능하여 아들 집으로 갔다. 과연 아들 집에서 잘 살 수 있을까 염려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며느리가 도우미 하나 붙여서 돌려보냈다……는 얘기를 엄마가 전화로 해주었다.
“그래, 그 할머니 거동하기도 불편하고 연세도 많으니 도우미가 있어야겠지.”
그랬더니 엄마가 발끈했다.
“나이가 뭐가 많아, 나보다 한 살밖에 안 많은데.”
어무이 여든일곱, 적은 나이는 아닙니다만.
-p. 200
우리 개가 아무리 물지 않고 아무리 착해도 누구네 집 개나 언젠가는 떠난다. 어떻게 이 귀여운 것이 죽을 수가 있지, 어떻게 세상에 없을 수가 있지,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지만, 그날은 오고 말았다. 14년 동안 1분 1초도 사랑하지 않은 적 없는 나무가 떠났다. 24시간 고급 인력(나)의 시중을 받으며, 언니의 호들갑스런 사랑을 받으며, 여름에는 시원하게 겨울에는 따뜻하게 잘 살다가 떠났다.
-p. 210
🖋 출판사 서평
30년 차 일본 문학 번역가이자 역자 후기 장인
믿고 읽는 번역가를 넘어 믿고 읽는 작가가 된 권남희의 삶
일본 문학 독자 중 모르는 사람이 없는 이름. “소설을 읽으려다 역자 후기에 빠지게 된다”는 독자들의 후기로 유명한 30년 차 번역가 권남희의 산문집이 출간됐다. 프리랜서 번역가의 삶이 담긴 『혼자여서 좋은 직업』. 믿고 읽는 번역가를 넘어 믿고 읽는 에세이 작가가 된 권남희의 유쾌하면서 따스한 삶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지하철이 4호선까지밖에 없던 시절, 번역료가 지금의 10분의 1이던 시절”부터 번역 일을 시작한 베테랑 번역가 권남희는 직업 관련한 진지한 이야기와 소소한 일상의 에피소드를 재치 있는 글솜씨로 유머러스하게 들려준다. 소설가 오가와 이토와 만난 에피소드부터 미우라 시온 『배를 엮다』의 실제 주인공인 이와나미쇼텐 편집자 이야기, 역주 달기나 오역 등 번역 작업을 하면서 겪는 일까지 다채로운 이야기를 담았다.
자신이 쓴 책과 관련한 에피소드도 웃음을 더한다. 새 책이 나왔을 때 서점 직원에게 자신이 저자임을 알리고 싶어 전전긍긍하고, 덕질하는 연예인에게 추천사를 받으려고 궁리하는 이야기는 작가 권남희의 솔직한 매력을 드러낸다. 또한 운동을 열심히 하는 노모와 달리 운동을 싫어해서 기껏 준비한 ‘반짐볼이 반짐만 되는’ 에피소드, 역자 후기에 등장하던 딸 정하의 취업 등 저자의 일상은 재미와 감동을 함께 전한다. 목욕탕을 하던 집에서 자라면서 소설가를 꿈꾸었던 어린 시절 저자의 모습도 만날 수 있다.
정말 늘 생각하지만, 8할이 운인 가성비 좋은 인생이다. 앞으로 한 30년 더 동아줄 잡은 손에 힘을 빼지 않을 것이다. 80대까지 점점 무르익은 번역을 하고, 나이 먹어가며 달라 보일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를 쭉쭉 쓸 것이다.
-본문 9쪽
“경력이 책이 되어 쌓이는 좋은 직업이랍니다”
혼자여서 좋은 직업 번역가, 그리고 작가
‘할 줄 아는 게 없어서 유일한 재주를 30년째 붙잡았다’고 말하는 권남희 번역가. 연중무휴로 긴 세월 일하면서 직업이 취미 생활이 되었고, 번역하는 일은 행복하고 글 쓰는 일은 즐겁다고 토로할 만큼 직업을 향한 진심을 드러낸다. 자칭 ‘유명한 집순이’로, ‘엉덩이가 무거워야 하는’ 번역이 천직인 그는 번역하며 있었던 일들을 들려주면서 번역가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따뜻하고 현실적인 조언을 전한다. 이를테면 출판사에 번역료를 올려달라고 메일을 썼던 경험과 인세와 매절 계약의 차이를 통해 번역가의 속사정이 어떤지 보여주고, 번역가 지망생들이 출판사에 어떻게 자기 존재를 어필할지 비법을 알려준다.
번역을 하면서 겪은 에피소드, 만난 사람들 이야기도 저자 특유의 소소한 유머가 번뜩인다. 20대부터 번역할 책을 찾아 도쿄의 기노쿠니야 서점을 돌아다녔던 이야기, 오가와 이토 대담회에서 팬을 만나 함께 울었던 에피소드, 번역가가 되고 싶다고 이메일을 보낸 고등학생 독자들에게 쓴 답장은 미소를 머금게 한다. 또한 번역한 책이 나올 때 제목이 원제와 달리 이상하게 바뀌어 실망하고, 출판사에 제목 변경을 건의했던 에피소드도 인상적이다.
일본 문학 전문 번역가인 만큼 일본 문학가들에 대한 이야기도 빠지지 않는다. 자신이 번역한 사노 요코의 첫 산문집 『아침에 눈을 뜨면 바람이 부는 대로』에 나오는 40대의 사노 요코에 대해 알려주고, 어렸을 적 집안이 러브호텔을 했던 경험을 자양분 삼아 러브호텔이 배경인 소설 『호텔 로열』로 나오키상을 받은 사쿠라기 시노, 2013년 최고령 아쿠타가와상 수상자 구로다 나쓰코, 2020년 전미도서상을 받은 재일 작가 유미리에 대한 이야기도 전한다. 직접 쓴 산문집이 나왔을 때의 설레던 마음, 출간을 둘러싼 이야기들도 흥미진진하다. 이를테면 서점에 자신의 책을 보러 갔을 때의 에피소드.
계산해주는 분에게 내 책이라고 자랑하고 싶었다. 그러나 주책이라 하겠지. “그래서요?”라고 하면 민망하겠지. 카드를 천천히 받고, 책을 천천히 가방에 넣고 돌아서려다 결국 용기 내어 표지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거 제가 쓴 책이에요.”
그랬더니 중년의 직원분이 무표정하게 이렇게 말했다.
“아, 그러세요.”
다행이다. “그래서요?”라고 하진 않았어. 오호호.
-본문 36~37쪽
이외에도 책을 노모에게 보여주면서 “엄마 나 대단하지?” 하고 자랑하는데 노모는 책보다는 신문에 사진이 예쁘게 나왔다는 데에 기뻐하고, 자신의 책 중고 도서를 사려다가 판매자가 저자임을 알아봐서 서로 멋쩍어하고, 책을 읽은 법의학자 독자에게 운동 조언을 받았던 이야기는 생생하다.
할머니와 엄마와 딸
세 모녀가 평범한 듯 특별하게 살아가는 이야기
정하는 한동안 경상도 사투리를 배우겠다고 걸핏하면 “밥 문노?” “우야노” “머라카노” 하면서 TV에서 서울 사람들이 경상도 사투리 연기할 때의 이상한 억양으로 근본 없는 사투리를 썼다. 진지하게 배우려는 게 아니라 나름 재롱부린다고 하는 짓 같아서 속으로는 귀여웠지만, “아, 진짜 서울 사람들 경상도 사투리 못 쓰게 법으로 정해야 돼. 억양 너무 듣기 싫어”라며 웃음 섞인 짜증을 냈다.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오리지널 경상도 사람인 할머니(우리 엄마)한테 가서 그동안 갈고닦은 경상도 사투리를 선보였다.
“할매, 내↘ 요새 사↗투↘리 배워↘요.”
그랬더니 엄마 왈,
“아, 전라도 사투리 배우나?”
-본문 201~202쪽
저자의 엄마, 저자, 딸 3대가 함께하는 일상은 소소하며 왁자지껄하고, 평범하면서 특별하다. 노모에게서는 인정받고 싶은 딸이면서, 동시에 딸을 둔 엄마이기도 한 저자는 이들의 관계에서 한 편의 시트콤 같은 즐거운 일상을 펼쳐 보인다.
20대 백수 시절, 엄마와 용하다는 점집을 찾아갔는데 “하나도 못 맞힌다”고 엄마가 투덜대자 나무랐던 이야기, 노모는 78세라는 나이를 젊다고 우기고 저자는 노인이라고 하는 에피소드는 여느 평범한 모녀의 하루를 보는 것 같은 따스함이 느껴진다. 저자의 역자 후기에 등장하던 딸 정하는 어느덧 커서 책의 ‘자기소개’를 쓰는 엄마에게 예리한 피드백을 해주고, 책 말미에서는 취업을 해서 저자를 고급 음식점에 데리고 다니며 “식(食) 효도”를 한다. “책을 쓰고 나서 가장 큰 욕심은 딸에게 인정받는 것”이라는 저자의 딸바보 면모가 웃음과 찡한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목욕탕을 했던 집이 ‘때’돈을 벌어 어렸을 적 책을 마음껏 사 봤다고 너스레를 떠는 저자의 유년 시절도 범상치 않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만화책만 읽다가, 애국 조회 시간에 교내 글짓기 대회에서 수상한 남학생이 단상에 올라가 했던 첫 마디를 들었을 때 마치 베토벤 〈운명〉 교향곡의 첫 소절을 들은 것처럼 감동 받아 ‘글짓기’에 처음 꽂혔던 기억, 대학생 때 카피라이터가 되고 싶어서 카피라이터인 교수님을 찾아갔다가 실망했던 경험 등 번역가 권남희를 만든 경험이 아로새겨져 있다.
“할머니가 되어서도 번역을 하고 싶다”는 권남희 번역가의 『혼자여서 좋은 직업』은 그의 음성이 들리는 듯한 직업과 일상에 대한 이야기 가득한 책으로, 독자는 책을 읽는 내내 훈훈한 웃음이 떠나지 않을 것이다.
반려동물 없이 서로만 보고 사는 인생 2막이 시작됐다. 굳이 촘촘히 나누자면 인생 4막쯤 되겠지만, 어쨌든 새로운 인생의 시작이다. 생후 45일 된 강아지가 노견이 되는 동안 정하도 슬픔을 이겨낼 줄 아는 어른이 됐다. 그리고 어엿한 사회인이 됐다. 이제 각자 자기의 삶을 살면 된다. 정하는 성실하게 직장에 다닐 것이고, 나는 앞으로 더 행복하게 번역하고 더 즐겁게 글을 쓸 것이다. ……라고 하니, 뭔가 비장한 각오라도 하는 것 같지만, 지금까지와 다름없이 살아가겠다는 말이다. 그러나 방학 숙제 다 해놓고 기다리는 개학처럼 남은 인생은 왠지 설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