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공부에 매진했던 것이 많은 도움이 됐나?
선수들이 훈련을 하지 않고는 결과가 없는 것처럼 지도자도 마찬가지다. 공부를 하지 않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물론 경험도 중요하지만 기본적인 이론이나 실기, 현대 축구의 흐름, 시스템, 전술, 전략, 기술이나 심리 등 모든 면에서 기본적인 소양을 갖추지 않으면 불안하고 가르치는 것에 자신이 없다. 그러나 공부를 많이 해 놓으면 자신감이 있다. 기본적인 것이 되어 있으면 어떤 팀을 맡고, 어떤 상황이 와도 대처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 사우스차이나에서 무엇을 바꾸었나?
홍콩은 압박을 해서 공을 뺏는다든지, 빨리 역습으로 가서 결정을 한다든지, 공을 뺏겼을 때 수비로 전환하는 속도 등이 많이 떨어졌다. 이것은 문화에서 오는 국민성이기도 했다. 힘든 것을 싫어하는 성향이 깔려있기 때문에 힘든 훈련을 피했고 현대 축구에서 기본적으로 요구하는 것들을 도외시했다. 이런 것들을 세계적인 흐름에 맞추고 싶었다. 체력, 전술, 정신, 팀의 기강, 시스템 등 프로 팀이 요구하는 모든 것을 바꾸려고 노력했다.
- 사우스차이나를 맡으면서 가장 힘들었던 일은 무엇이었나?
문화가 다르다는 것이었다. 훈련이나 경기에 임하는 자세, 결과를 받아들이는 태도 등이 한국과는 확연히 다르다. 처음에는 받아들이기 굉장히 힘들었다. 그런데 나는 국제무대로 나선 것이고, 그곳에 적응을 하려면 내가 그 수준에 올라서야 한다. 그래서 내 것을 버리고 그 수준에 맞춰서 선수들을 이해하려고 했다. 그리고 한국 감독을 데려온 것은 한국 축구의 기강을 배우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잘 배워두라고 말하면서 이끌어 나갔다.
- 팀의 문화를 바꾸기 쉽지 않았을 텐데.
상당히 힘들었다. 먼저 선수와의 관계를 형성해야 했다. 관계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는 선수들에게 강하게 요구할 수도 없고 꾸지람을 할 수도 없다. 선수들과 좋은 관계를 형성하기 위해서 내가 돕는 사람이라는 것을 인식시켰다. 그런 다음 프로선수들에게 요구되는 기본적인 소양, 현대 축구의 흐름, 체력 훈련의 필요성, 압박과 빠른 공수전환 등에 대해 동영상이나 과학적인 통계 같은 것을 보여줬다. 구단주도 힘을 많이 실어줬다. 홍콩 사람들은 남이 자기를 가르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계속 요구하고 다독거리니까 많이 바뀌었다.
- 언어의 장벽이나 문화적인 차이점도 있었을 것 같은데 이런 것들은 어떻게 넘어섰나?
나는 영어로 선수들을 가르쳤다. 그리고 코치 중에 통역을 하는 친구가 있어서 큰 문제는 없었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자국어가 아니기 때문에 의사소통이 완벽하지는 않았다. 내가 알고 있는 축구와 선수들의 차이가 있었고, 통역하는 코치의 수준도 있었기 때문에 내가 원하는 부분들이 모두 전달되지 못했다. 이런 점은 많이 안타까웠다. |
|
|
- 2009년 8월에는 홍콩 국가대표팀의 제안을 받았다. 기분이 어땠나?
영광스러운 것 아니겠나. 홍콩에 가면서 반드시 좋은 결과를 얻어서 국가대표 감독이 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그 목표가 그렇게 빨리 이뤄질 줄은 몰랐다. 상당히 운이 좋았고 결과까지 좋았기 때문에 감사하고 있다.
- 홍콩 대표팀과 U-23 대표팀을 모두 맡았는데, 어떤 점을 목표로 삼았나?
홍콩 대표팀의 전통적인 ‘선수비 후역습’과 세트피스에 의존하는 스타일을 완전히 바꿔 놓고 싶었다. 빌드업, 공을 뺏긴 후 곧바로 압박하는 것, 역습, 역습이 안 됐을 때 공을 지배하는 것 등 지배 당하는 경기가 아닌 지배하는 스타일로 바꾸고 싶었다.
- 프로팀과 대표팀은 다른 점이 많았을 텐데, 적응하는데 어려움은 없었나?
유리했던 것은 사우스차이나 선수들이 대표팀의 80%를 차지한다는 것이었다. 팀에서 강조하고 훈련하던 것들이 있었기 때문에 짧은 시간이었지만 조직력을 금방 올릴 수 있었다. 다른 팀 선수들도 내가 어떤 기강과 훈련 시 어떤 집중력을 요구하는지 알고 왔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 2009년 동아시안게임에서는 홍콩 U-23 대표팀을 이끌고 한국을 상대했다. 적장으로 조국을 상대한 기분은 어땠나?
한국이 너무 강하기 때문에 상당히 부담스러웠다. 그렇지만 한국 대표팀과 경기를 할 때는 자랑스러운 부분도 있었다. 다른 나라 대표팀을 이끌고 우리나라와 경기를 한다는 것에 개인적으로 성취감 같은 것을 느꼈다.
- 이겨도 부담이지만 지는 것도 문제였을 것 같다. 자신의 한계가 드러나는 것이지 않나?
결과가 안 좋았을 때 ‘너의 한계가 이것이구나’라는 말들이 있겠지만 남을 의식하지는 않았다. ‘내가 어느 팀의 지도자가 돼 있는가’ 보다 ‘어떤 수준의 지도를 할 수 있는가’가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홍콩 대표팀을 맡았다고 해서 내가 홍콩 수준의 지도자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홍콩에 약한 팀이기는 하지만 나름대로 상당히 높은 수준의 지도를 추구했다.
홍콩에서는 한국이 강팀이라 이긴다는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겨서 난리가 났었다. 아무리 실업대표라고 해도 한국이 보낸 팀을 이겼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 U-23 선수들도 프로팀에서는 벤치에 앉는 아이들이었다. 한국, 북한, 일본을 차례로 이기니까 상당히 놀랐었다.
- 홍콩의 히딩크라는 별명이 나온 것이 이때인가?
그때인 것 같다. 그 직후에 사우스차이나를 이끌고 ‘AFC 컵대회’에서 4강에 들어갔다. 홍콩 축구 역사상 처음으로 홍콩 스타디움이 가득 찬 날이었다.
- 언론의 관심도 대단했을 텐데 부담은 없었나?
대표팀, 프로팀 감독이 된다는 것은 그 나라의 축구 문화나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수준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 말 한 마디가 모든 지도자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에 부담은 있었다. 그래서 더 공부를 했고 더 정확한 정보와 지식을 갖춰야 된다는 동기부여가 됐다. 기본적인 것들이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프로팀, 대표팀 감독을 맡는다는 것은 자신에게 부끄러운 일이다.
- 언론은 어떤 식으로 활용했나?
정신력과 국가관이 기본으로 깔려 있어야 한다고 말을 많이 했다. 나라를 위해서 죽을 수 있는 태도로 경기에 임해야 한다고 계속 이야기를 했다. 이것이 상당한 이슈가 됐다. 홍콩은 중국이면서 중국이 아니고, 영국의 지배를 받기도 해서 국가관이라는 것이 굉장히 약하다. 대표팀에 선발되는 것을 상당한 영광으로 생각하는 한국 선수들의 애국심을 배웠으면 좋겠다고 말했고 이것이 대서특필됐다.
이 때 ‘홍콩을 위해 몸을 던지자(Die for Hongkong)’, ‘우리는 홍콩이다(We are Hongkong)’라는 말이 인터뷰를 통해 나왔다. 상당한 이슈가 됐다. 행정장관도 결승전에 와서 시민들의 반응을 보고 울기도 했다. ‘축구가 이런 감동을 주는구나’ 싶어서 5개년 계획도 세웠다. |
|
|
- 당시 동아시안게임 우승은 홍콩 축구에 전환기를 가져다 준 성과였다. 당시 홍콩에서의 인기는 어느 정도였나?
팬들이 상당히 좋아했고 이번에 한국으로 돌아올 때도 여러 사람들이 한국에 가지 않길 원한다는 글을 인터넷에 많이 올려주셨다. 그러나 한국과는 다르다. 순간적인 현상일 뿐이다. 홍콩은 지도자를 많이 평가하는 문화가 아니다. 한국 같이 지도자를 존중해주고 힘을 실어주는 곳은 거의 없다. 지도자들에게 한국은 정말 좋은 나라다.
- 2010년 동아시아축구 선수권대회에서도 한국을 상대했다. 국가대표팀끼리의 경기에서는 0-5로 패했는데, U-23 대표팀이 아닌 국가대표팀을 이끌고 한국과 맞선 느낌은 어땠나?
좋은 경험이었다고 생각한다. 확실히 아시아에서는 한국이 톱 레벨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경험했다. 한국이 좋은 경기력을 보인 것이 오히려 나에게는 이점이었다. ‘역시 한국이 강하구나’라고 느끼면 한국 지도자의 위상도 올라가는 것이다.
우리가 수비조직을 잘 갖추면 이기지는 못하더라도 비길 수는 있을 것이라고 기대를 했었다. 그러나 초반에 세트피스에서 3실점을 했는데 그것이 상당히 부담스러웠다. 강팀을 상대로는 첫 실점을 주지 않는 것에 집중하는데, 프리킥에서 골을 내줘 아쉬웠다. 기본적인 조직력은 좋았다고 생각했다.
- 한국, 일본, 중국에는 모두 패했지만 북한을 밀어내고 4위를 차지했다. 약체로 평가되는 홍콩으로서는 분명한 성과였는데.
상당한 성과였다고 생각한다. 홍콩 역사상 자력으로 4위를 차지한 것은 처음이다. 당시 북한은 월드컵 대표 선수들이 90% 이상 나왔다. 그런 팀을 상대로 페널티킥도 얻었고 0-0으로 비겼다는 것은 기대 이상의 성과였다. 이것을 더 발전하는 계기로 삼았어야 했는데 정치적인 부분으로 인해 그것을 이어가지 못한 점은 안타깝다.
- 홍콩 축구에 여전히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신체조건이나 기본적인 습관 같은 것들이 좋지 않아 한계를 많이 느꼈다. 확실히 어린 선수들은 받아들이는 것이 빠르다. 그래서 오히려 U-23 대표팀에서 좋은 결과가 나온 것 같다. 작은 연령에서 기본적인 체력과 기술 등을 잘 만들어서 발전시켜가는 시스템을 구축했으면 한다.
- 지금 돌아 봤을 때 홍콩에서 감독 생활하면서 가장 자부심을 느끼는 부분은 무엇인가?
사우스차이나에 2년 동안 있었는데 최근 가장 롱런한 감독이었다. 대표팀을 맡으면서도 결과가 좋았을 뿐만 아니라 홍콩에 새로운 축구 문화를 심어줬고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한다. 한 국가의 축구를 발전시킨 부분에 대해서 상당히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한국 지도자에 대해 좋은 이미지를 구축하고 한국 교민들에 자긍심을 심어준 부분은 자부심을 느낀다.
- A대표팀까지 지휘하며 최고 수준의 축구를 경험했다. 부족하다고 느꼈던 부분이 있다면?
첫 경험이다 보니까 대회를 치르고 난 후 ‘조금 더 준비를 했어야 하는구나’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경험이 부족했다는 생각도 들었고 조금 더 강한 정신력을 요구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조금 더 세밀한 공격전술을 발전시켜야 된다는 것을 느꼈다. 그 이후로 공격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다. 그리고 국제무대다 보니까 언론 인터뷰나 감독으로서 수행해야 하는 것들을 많이 느꼈다. |
|
|
- 홍콩의 스타 감독이었지만 이제는 경남의 수석코치다. 어떤 목표로 한국으로 돌아왔나?
좋은 이미지로 있을 때 다음 도전할 곳으로 가는 것이 좋지 않나 생각을 했다. 팬들이 좋아하고 팀도 리그 1위를 달리고 있었다. 대표팀에서도 좋은 이미지로 있기 때문에 적기라고 생각을 했다. 경남에서는 최진한 감독님의 축구 철학도 경험할 수 있다. 내가 경남에서 태어났지만 한번도 경남에 헌신하지 못했는데 고향에 헌신할 수 있는 기회가 온 것 같다.
- 해외 진출을 경험한 선배로서 아시아로의 진출을 노리는 지도자 후배들에게 조언할 점이 있다면?
일단 영어가 기본이 돼야 한다. 가서 축구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미팅도 많이 해야 한다. 매일 통역을 데리고 다닐 수도 없거니와 해당 축구협회에서 통역을 붙여주는 것이 여의치 않을 경우도 많을 것이다.
그리고 축구지식에 대한 기본적인 철학을 확실히 가져야 한다. 클럽팀과 대표팀은 다른 축구 철학을 가져야 한다. 리그를 준비하는 것과 짧은 시간에 팀을 꾸려 토너먼트를 치르는 것은 굉장히 다르다. 확실한 축구 철학과 경험을 쌓은 상태에서 도전해야 될 것 같다.
- 앞으로 지도자로서의 목표는 무엇인가?
사실 지도자의 90% 이상이 대표팀과 프로팀을 경험하기 힘들다. 그런 지도자들에게 항상 격려의 말을 듣는다. 내가 열심히 잘 성장해줘야 그들에게 롤 모델이 될 수 있다. ‘김판곤도 하는데 나라고 못할까?’라는 희망을 주고 싶다. 훌륭한 선수 경험이나 뒷 배경이 없어도 열심히 공부하면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모든 지도자들의 꿈인 프로팀 감독과 대표팀 감독에도 도전할 생각이다. 한국 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의 대표팀 지도자도 될 수 있도록 도전할 것이다.
- 솔직한 인터뷰 감사하다. 경남에서도 건승하시길 바라겠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