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 아양동 석불입상
아양동 석불입상
향토유적 제15호
아양동 보살입상(菩薩佛立像)과 하나의 배우(配偶)를 이루어 마을 사람들로부터 미륵부처로 신앙되어 오고 있다. 화강암 1석으로 조성되었으며, 조법에 고졸(古拙)한 풍이 있는 토속화의 경향을 지닌 석불이다.
전체적인 규모는 보살입상보다 작은 느낌을 주는데, 얼굴 인상도 엄숙한 위엄이 깃들어 있다. 머리 부위에는 관모처럼 두정에 표식이 있고, 양미안(兩眉眼)·비량(鼻梁)·구진(口唇)이 정제되었다. 귀는 짧으며 목에는 3도가 없다. 법의는 통견으로 양팔에 걸쳤는데, 좌우의 늘어진 소매자락에는 각각 3개의 의문이 뚜렷하게 나타나있다. 무릎 부위 하단부(下端部)부터 매몰되어 있다.
아양동 석불입상
향토유적 제15호
아양동 보살입상(菩薩佛立像)과 하나의 배우(配偶)를 이루어 마을 사람들로부터 미륵부처로 신앙되어 오고 있다. 화강암 1석으로 조성되었으며, 조법에 고졸(古拙)한 풍이 있는 토속화의 경향을 지닌 석불이다.
전체적인 규모는 보살입상보다 작은 느낌을 주는데, 얼굴 인상도 엄숙한 위엄이 깃들어 있다. 머리 부위에는 관모처럼 두정에 표식이 있고, 양미안(兩眉眼)·비량(鼻梁)·구진(口唇)이 정제되었다. 귀는 짧으며 목에는 3도가 없다. 법의는 통견으로 양팔에 걸쳤는데, 좌우의 늘어진 소매자락에는 각각 3개의 의문이 뚜렷하게 나타나있다. 무릎 부위 하단부(下端部)부터 매몰되어 있다.
안성 대농리 석불입상
경기도 문화제자료 제46호
안성시내에서 용인 방향으로 작은 고갯길을 넘으면 야트막한 산밑 동네 대농리로 들어선다.
대농리 마을회관을 끼고 오른쪽 농로로 진입하면 150m 지점에 작은 소나무 숲이 보인다.
그 옆에 오랜 세월 마을사람의 애환을 달래주는 미륵불 1기가 서 있다. 미륵불은 사시사철
풍화에도 잘 견뎌낸듯 보존상태가 좋다. 사람의 손만 타지 않는다면 돌도 세월의 무게를
곱게 전할 수 있으련만. 대농리 석불입상은 한 마디로 둥그스런 외모에 후덕한 인상이 특징이다. 마치 달관한 노인처럼 푸근하고 넉넉하다. 벙거지형 모자에는 보개가 얹혀 있고, 귀가 어깨에 닿는다. 왼손으로 약병을 잡고 오른손을 아래서 받쳐 든 모습이 가지런하다.
아양동미륵과 태평미륵처럼 이곳 대농리 석불입상도 아랫부분이 완전히 땅속에 묻혀 있다.
그 옆에 문인석이 미륵불의 바지춤을 잡고 있는 것처럼 함께 놓여 있는 것이 익살스럽다.
안성 죽산리 당간지주
시도유형문화재 제89호
당간지주는 사찰 입구에 설치하는 것으로, 절에 행사나 의식이 있을 때면 당이라는 깃발을 걸게 되는데, 이 깃발을 꽂는 길다란 장대를 당간이라 하며, 당간을 양 쪽에서 지탱해주는 두 돌기둥을 당간지주라 일컫는다. 드물게 당간이 있으나 대부분 당간지주만이 남아있다.
이 당간지주는 고려시대 대사찰이었던 봉업사터에 안성죽산리오층석탑(보물 제435호)과 약 30m 거리를 두고 남북으로 마주보고 있다. 원래 이곳에 무너져 있던 것을 1980년에 복원하였는데, 남쪽 돌기둥은 윗부분의 4분의 1정도가 이미 깨진 상태이다. 돌기둥은 표면이 거칠고 아무런 장식이 없으며, 꼭대기의 바깥쪽 모서리를 둥글려 완만하게 다듬었다. 안쪽면에는 당간을 고정시키기 위한 네모난 홈을 파놓았다.
전체적으로 소박하고 간결한 형태로, 안성죽산리오층석탑과 같은 시대인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추측된다.
안성 죽산리 오층석탑
보물 제435호
지금은 주변이 경작지로 변한 봉업사(奉業寺)의 옛터에 위치하고 있는 탑으로, 1단의 기단(基壇) 위에 5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이다.
기단은 하나로 짠 두툼한 널돌 위에 올려 완성하였는데, 이 때의 석재가 두툼한 탓인지 전체적으로 둔중한 느낌을 준다. 기단 위의 탑신은 1층 몸돌만 4장으로 이루어졌고 나머지는 한 돌로 구성하였다. 각 층의 네 모서리에는 폭이 좁은 기둥을 새겼다. 1층 몸돌 남쪽면 중앙에는 작은 감실(龕室:불상을 모시는 방)을 만들어 놓았으나 모양만 새기는 형식에 그치고 말았다. 지붕돌은 얇고 추녀는 거의 수평을 이루었으며 끝에서의 치켜올림도 미미하다. 머리장식은 모두 없어졌다.
탑의 전체적인 체감도 적당하지 못하고, 각 부의 조각도 형식에 그치고 있다. 신라의 양식을 계승하고 있어 석재의 조합 방식은 우수하나, 기단에 새긴 조각이 형식화 되는 점 등에서 약화되고 둔중해진 고려석탑 특유의 모습이 보이고 있다.
첫댓글 죽산쪽의 봉업사와 몇 곳은 들렸는데 다른 곳은 아직도...
합장합니다...().
잘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