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가려고 마음먹었던 공연인데, 별로 보람차지도 못한 무슨 잡문을 마감하는 날이라 눈물 머금고 포기해야 했습니다. 제 생활신조 가운데 하나가 '오늘의 할 일을 내일로 미뤄라'인데, 그날만큼은 그 신조를 바꿔야 하는게 아닌가 고민했지요. 독자 여러분, 저같은 꼴 당하지 말고 가끔은 오늘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마십시오, 하하.
`트리뷰트' 무대인만큼 콘서트에는 들국화의 후배들이 대거 참여했다지요. 근데 콘서트를 다녀온 한 친구의 말을 들으니 언더밴드 크라잉넛이 전인권에 대해 재밌는 말을 했대요.
친구의 기억은 시원찮았습니다만, 크라잉넛은 '(전인권은 우리가) 비틀즈보다 더 존경하는 형님' 혹은 `비틀즈는 자신들이 예수보다 훌륭하다고 했는데, 전인권은 비틀즈보다 더 훌륭하다'라는 말을 했답니다. 뭐, 그 자리에 없었으니 크라잉넛이 했다는 말은 정확히 옮길 수가 없네요.
하여간 그 말을 들은 저는 비틀즈 어록 가운데 하나를 기억해냈고, 그것에 대해 써보기로 작정했습니다. 금년초 이 칼럼을 통해 `대일본애국당의 비틀즈 격퇴작전'이라는 제목으로 비틀즈 얘기를 한번 쓰기는 했습니다만, 또 쓰면 어떻습니다.
제가 기억해낸 비틀즈 어록은 "비틀즈는 예수보다 더 인기가 있다"는 것이지요. 존 레논의 `신성모독' 발언입니다. 1966년 여름의 해프닝이었는데, 당시 국내신문들도 관련 뉴스를 해외토픽 면에 경쟁적으로 싣고 있더군요. 먼저 그중 가장 크게 실렸던 서울신문의 66년 8월9일자 기사를 보여드리겠습니다.
< 미국에서는 요즘 비틀즈 배척운동이 폭발, 그 도도한 기세가 곳곳으로 번지고 있어 세계를 온통 요란하게 휩쓸던 이 더벅머리 4인조가 자못 심각한 수난기를 맞고 있다.
이 비틀즈 배척운동의 화근인즉 얼마전 비틀즈 4인조중 가장 지적이라는 존 레논군이 당돌하게도 "비틀즈는 이제 예수보다도 인기가 있다"고 기염을 토했던 탓. 이것이 전해지자 신앙심 깊은 미국인들의 감정이 그만 폭발하고 만 것이다.
이런 반 비틀즈 성전(성전)의 불길은 앨라바마주에서 시작 마침내 매사추세츠, 미시간, 뉴멕시코, 샌프란시스코, 뉴요크 등지로 번졌는데 사태가 한층 심각한 것은 이 반 비틀즈 운동의 선봉장들이 모두 방송국 음악 담당자들이라는 것.... >
네, 이런 사연이지요. 성전의 불길! 중세 십자군 전쟁을 연상시키는 표현이 눈길을 끌지요?
`반 비틀즈 운동의 선봉장들인 방송국 음악 담당자들'은 보복을 시작합니다. 그들은 앞다퉈 방송에서 비틀즈 음악을 틀지 않겠다고 선언합니다. 방송을 통해 청취자들의 호응을 끌어내려는 노력도 하지요. 그들의 영향력은 예나 지금이나 막강하기 때문에 비틀즈는 큰 타격을 입게 됩니다.
서울신문 기사는 < 플로리다주 스파크방송국 편성차장 제이 셜리반씨는 이미(5일밤) 3백여명의 틴에이저의 호응을 얻어 비틀즈 화형식을 올렸다 >는 내용도 소개하고 있습니다.
자, 사태가 이렇게 걷잡을 수 없게 되자 비틀즈의 매니저 브라이언 에프스틴은 발을 동동 구릅니다. 매니저는 그때 유럽에서 휴가를 즐기고 있었지요. 당황한 매니저는 휴가를 포기하고 급히 뉴욕으로 달려갑니다. 매니저는 레넌의 발언은 와전된 것이라며 사태를 수습해보려고 노력하지만 역부족이죠.
매니저의 고민은 이해가 되고도 남습니다. 비틀즈는 그때 4주간의 일정으로 미국내 14개 도시 순연(巡演) 계획을 짜놓고 있었던 겁니다. 물론 앞으로 비틀즈의 인기관리를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문제도 매니저의 큰 고민이었겠지요.
존 레넌의 발언은 세계적으로 대단한 파장을 불러 일으킵니다. 당시의 국내 신문들도 해외토픽난의 한 귀퉁이를 헐어 짧게는 한두 줄, 길게는 서너줄 짜리 속보를 계속 내보냅니다.
< 비틀즈 존 레논의 비기독교적인 발언에 분개한 미국인들은 일부 필리핀인들과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마닐라타임즈지의 칼럼니스트 호세 게바라씨는 6일 "레논은 그들이 현재 예수보다 인기가 더 있다고 말하고 있는데 어느 누가 그들을 십자가에 못박아야 한다"고 논평했다. >
< 미국 15개주의 35개 방송국과 캐나다 마니토바의 한 방송국은 앞으로 비틀즈의 레코드를 보이콧 하겠다고 선언했다. 앨라배마주 몽고메리 방송국은 비틀즈 일행의 존 군이 "우리의 더벅머리는 예수 크리스트의 그것보다 유명하다"고 자랑한데 대한 분노를 표시하고, 실상 그들의 음악적 재질은 "별것이 아니다"라고 비웃었다. >
< 레코드 도둑은 비틀즈가 싫어 훔쳐온 레코드판 중에서 비틀즈 노래가 취입된 것은 손하나 안대고 주인에게 돌려주었다고. >
이렇게 여론이 악화되자 마침내 비틀즈와 존 레넌은 입장을 바꿔 한발 뒤로 물러섭니다.
< 영국 비틀즈의 일원인 존 레논은 12일 자기가 "비틀즈가 예수보다 더 인기가 있다"고 말한 것을 후회한다고 말했다. >
< 제3회째의 미국공연을 하기 위해 비틀즈 일행들이 시카고에 도착한 후 기자들과 회견하고 있다. 이 회견에서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보다 더 인기가 있다"는 발언이 결코 반종교적인 의미를 갖고 있지는 않다고 사과. >
이상이 "비틀즈가 예수보다 더 인기가 있다"는 존 레넌의 발언을 둘러싼 해프닝 전말입니다. 앞서 얘기한, 수십년 후 크라잉넛의 발언은 이 해프닝을 떠올리고 한 말이었을거구요.
뮤지션들의 신성모독은 사실 그 역사가 유구합니다. 특히 일부 록 뮤지션들은 신성모독과 사탄숭배를 밥먹듯 하지요.
블랙새버스(검은 안식일)의 음반 가운데는 사탄에게 바칠 전라의 사람을 침대 위에 눕히고, 주위에 666이라는 표시와 해골, 그리고 사탄의 상징인 번개 모양의 S자가 묘사되어 있는 것도 있습니다. 싱어인 제임스 디오는 공연중 "사탄을 구세주로 영접하라"고 외쳐 사람들을 놀래키기도 했지요. 멤버 가운데 하나인 빌 와드는 심지어 "사탄은 하나님이다"라고 공언하기도 했습니다. 블랙 새버스를 결성, 광폭한 사운드를 들려주는 오지 오스본에 대해서는 더 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마릴린 맨슨도 신성모독 전문 밴드지요. 특히 96년에 발표한 3집 `안티 크라이스트 수퍼스타'는 마니아들의 열광과 함께 기독교인들의 큰 반발을 샀지요. 이들은 `버닝 플래그'라는 곡에 `신이 살아 있다 해도 당신은 박해받는 존재일 뿐'이라는 독설을 담아내기도 했습니다.
듣기로는 이들이 그동안 몇차례 내한공연을 희망했으나, 신성모독 등의 이유로 성사되지 못했다고 들었어요.
마돈나는 신성모독을 하는 가수로 찍혀 이탈리아 공연이 무산된 적이 있습니다. 요즘은 모르겠는데, 마돈나는 십자가 귀고리를 하고 다니곤 하여 바티칸 당국의 미움을 샀지요.
우리나라 뮤지션들은 어떨까요. 서구의 록 뮤지션들의 신성모독에 비하면 `귀여운' 수준입니다.
보컬이 귀신 곡소리를 연상시킨다고 해서 `귀곡 메탈'이라는 별명을 얻은 부산 출신의 레이니선 정도? (얼마전 타이틀곡이 `유감(遺憾)'인가 하는 이들의 CD 한 장을 샀는데, 정말 좋아요. 취향에 따라 호오가 극명하게 갈릴 터이니 제 말 듣고 산 뒤에 원망하시지는 마시길.)
언젠가 세종문화회관에서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가 공연되고 있을 때 공연장 밖에서 어떤 청년이 `신성모독 공연반대' `하느님은 수퍼스타가 아니다'라는 피켓을 들고 시위했었다는 얘기를 들은 적도 있습니다만, 이거야 뭐 다른 얘기죠.
왜 이렇게 죽자사자 신성모독을 하고 기독교를 모욕할까요. 글쎄요, 아마 도그마가 되어버린 서구 기독교에 대한 반발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