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남쪽의 몇 곳 남지 않은 원시림 지역에 개발 바람이 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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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강원도 고성군 향로봉~지리산 천왕봉) 오지 마을의 개발이 또 다른 개발을 불러 생태계 파괴 우려마저 나오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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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따라 환경 전문가들은 인근 지역의 자연 훼손을 최소화할 방안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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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으로는 설악산국립공원이, 동쪽으로는 백두대간이 울타리처럼 둘러싼 강원도 인제군 기린면 진동리. 신갈나무 숲이 하늘을 가리는 점봉산과 천연기념물인 열목어가 헤어다니는 진동계곡은 국내에서 첫손 꼽히는 생태계의 보고(寶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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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 진동리를 찾은 지난 13일 진동계곡 하류 방태천을 따라 비포장 산길을 폭 10m로 넓히는 공사가 한창이었다. 덤프 트럭.굴착기의 소음이 산 속의 고요를 깨고 있었다. 초록의 숲과 옥색의 물이 어우러진 계곡도 공사로 무너져내린 토석으로 뒤덮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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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도로와 연결된 조침령 아래에선 양양으로 이어지는 터널 공사가 한창이었다. 정부나 시공회사 측도 자연훼손을 막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했다고 주장한다. D종합건설의 박준섭 현장소장은 "진동과 양양군 서림면 사이 9㎞ 도로 확.포장과 터널공사는 환경영향 검토를 거쳤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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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공사 과정뿐만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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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터널이 완공되면 생태적으로 민감한 이곳은 큰 길에 나앉는 꼴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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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식물연구소 현진오 소장은 "주민 편의는 생각해야 하지만 점봉산.진동계곡을 무방비 상태로 노출시키면 안된다. 도로 완공전까지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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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해 원주지방환경관리청 관계자는 "보전지역 지정을 검토한 적은 있으나 각종 규제를 의식한 주민 반대로 쉽지는 않다. 사유지가 아닌 곳에 대해서는 지정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진동리가 이처럼 개발에 휩싸이게 된 것은 진동계곡 바로 옆 양양 양수발전소의 상부(上部)댐이 건설되면서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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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부터 백두대간을 파헤치면서 들어서기 시작한 양수발전소는 지금도 공사가 계속돼 맑은 진동계곡에 흙탕물을 쏟아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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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한국전력은 발전소 건설에 반대하는 주민을 달래고 공사 편의를 위해 공사장 입구 3㎞ 도로를 포장했다. 여기에 주민 요구를 핑계로 상.하부댐 관리용 도로를 닦고 터널을 뚫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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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전 민영화 후 공사를 이어받은 중부발전㈜ 측은 "전체 비용의 절반 이상을 부담하고 있으나 우리에게는 도로.터널이 반드시 필요하지는 않다. 강원도가 지역 주민을 위해 하는 사업"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가운데 서울~춘천~양양 고속도로도 이곳을 통과하고 주변에 인터체인지가 생길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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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손호정 환경정책과장은 "점봉산 지역에 대한 보호대책은 아직 검토한 바 없다"면서 "그러나 환경부가 수립 중인 백두대간 보존 대책에 협조는 하겠으나 강원도 주민에 대한 지나친 규제는 곤란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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