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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가리봉, 귀때기청봉, 중청봉, 대청봉, 그 앞은 점봉산
산을 넘어도 산
고개를 넘어도 고개
개울을 넘어도 개울
길은 그저 묵묵히 간다.
어디로 가고 있는 건가
사방 텅 비어 있는 우주
끝이 보이지 않는 길
길은 그저 묵묵히 이어진다.
길을 따라 나선 마음
기다리는 사람은 없어도
그저 길을 따라 가고픈 마음.
산을 넘어도 고개를 넘어도
개울을 넘어도 산을 넘어도
그저 묵묵한 길.
―― 조병화(趙炳華, 1921~2003), 「길」
▶ 산행일시 : 2019. 5. 4.(토), 맑음, 미세먼지 나쁨
▶ 산행인원 : 15명(1진 : 악수, 대간거사, 소백, 산정무한, 사계, 새들, 향상, 해마, 제리,
해피, 오모, 대포, 2진 : 스틸영, 신가이버, 메아리)
▶ 산행시간 : 14시간 42분
▶ 산행거리 : GPS 도상 27.7㎞
▶ 교 통 편 : 두메 님 25인승 버스
▶ 구간별 시간
00 : 24 - 동서울터미널 출발
01 : 36 - 서울양양고속도로 홍천휴게소
02 : 12 ~ 02 : 30 - 인제군 기린면 현리 내린천요양원, 산행준비, 산행시작
03 : 28 - 능선 진입
04 : 00 - 830.2m봉
04 : 55 - 폐막사, △1,022.6m봉
06 : 08 - 1,257.8m봉, 아침요기
07 : 12 - 방태산 깃대봉 옆 1,420m봉
07 : 40 - 배달은산(1,415.0m)
08 : 08 - 1,410.1m봉
08 : 55 - 방태산 주억봉(芳台山 主億峰, △1,445.7m)
09 : 34 - 구룡덕봉(九龍德峰, △1,389.0m)
11 : 00 ~ 11 : 27 - 달둔고개, 점심
12 : 02 - △1,155.5m봉
12 : 28 - 1,096.5m봉
12 : 44 - 안부
13 : 36 - 가칠봉(柯七峰, △1,241.1m)
14 : 20 - 안부
15 : 09 ~ 15 : 40 - 갈전곡봉(葛田谷峰, 1,196.3m), 휴식
16 : 25 - 1,122.0m봉
16 : 55 - 1,101.4m봉
17 : 12 - 구룡령(1,006.9m)
18 : 45 ~ 20 : 35 - 홍천, 목욕, 저녁
21 : 40 - 삼패사거리, 일부 해산
1-1. 산행지도(영진지도, 1/50,000)
1-2. 산행지도(영진지도, 1/50,000)
1-3. 산행지도(영진지도, 1/50,000)
2. 산행 고도표
▶ 방태산 깃대봉 옆 1,420m봉
산행들머리에 다 왔다며 산에 가자고 차내 불을 밝히고 전광시계는 새벽 02시 12분을 가리
키고 있다. 자다 말고 산에 간다. 비몽사몽 중에 더듬더듬 채비하고 차문 열고 나서니 싸늘한
밤공기가 죽비마냥 졸음을 쫓아낸다. 이 근처에 일반 등산로가 있을 턱이 없고 지도 보며 어
디를 치고 오를까 궁리한다. 위쪽은 현인병원(내린천요양원)이다. 심야에 무리 지어 병원구
내를 통과하기는 좀 그렇다.
왼쪽 사면을 함부로 치고 오르다 가는 서울양양고속도로에 막힌다. 오른쪽 사면을 겨냥한다.
내린천요양원 입구를 지나고 농로를 따라 가다 마치 건수 하나 잡았다는 듯 앙칼지게 짖어대
는 어둠 속 개소리에 주춤하고, 왼쪽으로 방향 틀어 산기슭의 비닐 멀칭한 밭고랑을 길게 오
른다. 그 위는 가시덤불과 잡목 숲이다. 대간거사 님이 향도한다.
가도 가도 도드라진 능선이 잡히지 않는 펑퍼짐한 사면이다. 이끼 낀 너덜지대를 미끄러져
엎어지며 이슥히 지나고 가파른 오르막이 이어진다. 이곳은 가물었다. 발밑의 바싹 마른 낙
엽을 헤치자 헤드램프 불빛에는 먼지가 자욱하게 이는 안개로 보인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리 있을까 양봉래 태산 오르듯 한다. 소백 님 학문정진을 핑계로 거목인 소나무 아래에
서 단체로 잠깐 휴식한다. 이곳 소나무도 일제강점기 송진채취의 깊은 상흔을 안고 있다.
작명이 썩 어울리는, 날밤 지새는 하얀 수상화서 홀아비꽃대가 자주 보인다. 다른 꽃은 다 잔
다. 서울양양고속도로 현리1터널 위를 지난다. 저 아래 기린 현리가 불빛으로는 대처다. 한
편, 거대한 은하성단이다. 고지인 산허리를 뚫고 지나가는 고속도로가 은하철도로 보인다.
우리는 꼬리가 긴 혜성이다. 허벅지가 뻐근하여 능선에 올라선다. 능선은 인제군과 홍천군의
군계다. 우리는 구룡령까지 이 군계를 갈 것이다. 모처럼 A3 용지 앞뒷면을 꽉 채운 축소 복
사 영진지도 1/50,000의 산행로가 뿌듯하다.
능선마루도 인적이 드물고 잡목의 저항은 더욱 거세다. 오모 님의 대낮 같이 밝은 헤드램프
를 앞세우고 간다. 불빛이 가는 데는 길처럼 보이기 마련이라 번번이 잡목 숲에 갇힌다. 산허
리를 돌아 넘을 듯하다가 진달래꽃 흐드러지게 핀 암릉 같은 너덜을 기어오른다. 첨봉이다.
직등이긴 해도 보이는 게 없어 막 가는 것이 아닌가 싶다. 830.2m봉이 그렇다.
830.2m봉 내림 길의 굵은 너덜을 잠시 지나면 완만한 초원의 길이다. 안부부터는 길이 풀렸
다. 멀리 보이는 검은 △1,022.6m봉이 장릉의 준봉이다. 주눅 들라 얼른 고개 숙이고 간다.
거세게 솟았다 곧장 수그러드는 건 산의 일. 우리는 그저 쫓을 따름이다. 산에 눈 밝음이 한
몫 한다. 940m봉을 오르다 말고 오른쪽 사면 도는 길을 읽어 돌아 넘는다.
선두 일행들이 등로 옆에 더덕 줄기를 발견하여 그 근원을 찾느라 지체하고 내가 잠시 단독
선두를 맡는다. 등로는 겨우내 눈에 억눌렸다가 풀려난 낙엽이 한껏 부풀었다. 오르막에서
이런 깊은 낙엽을 헤치는 건 된 고역이다. 수차례 발길질이 제자리걸음이기 일쑤다. 예전에
군 초소이었을 폐막사를 지난다. 계단 오르면 △1,022.6m봉 정상이다. 너른 공터다. 삼각점
은 ‘현리 305, 2005 재설’이다. 휴식한다.
일출시각이 산속이라 약간 더디겠지만 05시 30분경이다. 05시이면 이미 훤하다. 헤드램프
소등한다. 확실히 예전과 다르게 총기가 흐려졌다. 방금 전에 폐막사 지날 때 왼쪽으로
△1,022.6m봉을 돌아 넘는 산행표지기와 길을 보았는데도 그만 까맣게 잊어버리고 떼로 길
을 잘못 간다. △1,022.6m봉에서 동진해야 할 것을 무심코 남진하였으니 다행히 뚝뚝 떨어
지기 직전에 알아채고 사면을 대 트래버스 하여 주릉에 든다.
아직도 등로는 인적이 뜸하다. 눈에 풀려난 낙엽이 그대로다. 봉봉을 넘는다. 일출이 어떨까
잰걸음 한다. 05시 30분이 가까워지고 해는 보름달처럼 뜨더니 이내 반공에 눈부시다. 미세
먼지가 나쁨이다. 장려해야 할 아침이 침침하다. 다만 고원의 등로는 서늘한 기운이 감돌고
푸른빛이 미만한 초원이다. 피나물과 바람꽃, 얼레지는 잠꾸러기다. 날이 훤히 밝았는데도
고개 푹 꺾고 잔다.
고도 200m 도리로 오른다. 이번에는 1,257.8m봉이다. 그 다음에는 1,435.6m 깃대봉일 터
이다. 곧추 선 사면을 갈지자 어지럽게 그리며 오른다. 산상화원을 지나는 발걸음이 조심스
럽다. 1,257.8m봉 정상은 평평하고 너른 초원이다. 둘러앉아 아침요기 한다. 오늘은 입산주
탁주가 늦었다. 소백 님이 가져온 통통하고 뒤끝 매콤한 부침개 안주발이 여러 잔을 비우게
한다.
미세먼지 낀 조망이 그나마 수렴에 가렸다. 여태 오는 중 조망처는 없다. 지난겨울에 상고대
님이 건너편 능선에서 포획한 대물의 잔영이 남아 있어 사면을 누비자 해도 잡목이 울창한
너덜이어서 엄두를 내지 못한다. 긴 오르막길 이제 막 기침한 바람꽃과 눈 맞춤이나 하며 간
다. 학명에서 보듯 우리나라에서만 자생하는 특산식물인 홀아비바람꽃(Anemone koraiensis
Nakai)이다.
하늘 가린 숲 터널을 마침내 벗어나고 깃대봉 턱밑인 1,420m봉이다. 너른 공터로 조망이 아
주 좋다. 깃대봉 정상은 230m쯤 더 가야 한다. 여기가 깃대봉 정상보다 조망이 더 낫다. 깃
대봉이 처음이라는 오모 님이 우리 대표로 다녀오기로 한다. 정상주 분음하며 주변 조망을
살핀다. 귀때기청봉, 중청봉, 대청봉, 그 앞줄 가리봉, 망대암산, 점봉산이 흐릿하다. 개인산
연릉 너머 오대산과 계방산도 그렇다. 일대 가경일 만학천봉이 미세먼지에 묻히고 말았다.
아쉽다.
3. 방태산 오름 길
4. 방태산 주릉
5. 멀리 왼쪽은 오대산 연릉, 오른쪽은 계방산, 그 앞은 개인산 연릉
6. 오른쪽 뾰쪽한 산이 주억봉
7. 앞 안부는 대골재, 건너는 배달은산(배달은석)
8. 멀리 왼쪽은 귀때기청봉, 오른쪽은 대청봉
▶ 배달은산(1,415.0m), 주억봉(主億峰, △1,445.7m), 구룡덕봉(九龍德峰, △1,389.0m)
고원의 방태산 주릉을 간다. 봉봉 오르내리는 굴곡이 그다지 심하지 않다. 봉마다 빼어난 경
점이어서 발걸음을 재촉하거니와 등로 또한 잘 나서 속도전하기 좋다. 자갈 섞인 돌길을 급
하게 내렸다가 안부인 대골재를 지나 암릉 같은 굵은 너덜을 오른다. 등로 벗어나 조망이 좋
은지 인적이 있으면 나도 들른다. 암봉인 배달은산에 올라 사방 한 번 둘러보고 내린다. 암릉
이 출몰한다.
1,410.1m봉을 넘기가 약간 까다롭다. 직등하는 암릉이 나이프 릿지로 보여 왼쪽 우회로로
돌아간다. 낭떠러지가 나오고 가느다란 줄이 달린 바위 턱을 긴장하며 오른다. 직등하는 편
이 나았다. 어려운 데는 다 지났다. 꽃길을 간다. 길이 좋아서 꽃길이 아니라 얼레지가 줄줄
이 무리지어 응원하는 꽃길이다. 주억봉이 눈에 잡힌다. 멀리서는 대단한 첨봉이었는데 꾸준
히 저축해 놓은 고도가 있어 느긋하다.
1진 12명이 다시 6명씩 나뉘었다. 선두그룹은 곧장 내달았다. 후미그룹은 봉을 오르면 그 경
건한 의식으로 정상주 탁주 마시며 쉬어 주고 간다. 얼려서 가져온 탁주가 마시기 알맞게 녹
았다. 이 시원한 맛이란 산을 가는 하나의 이유가 된다. 둥그스름한 1,385m봉을 올랐다가 약
간 내리고 그 반동을 살려 한 피치 오르면 주억봉이다. 아담한 정상 표지석 옆의 삼각점은
‘현리 434, 2005 재설’이다.
혹자는 이곳 주민의 입을 빌려 주억봉을 주걱처럼 생겼다고 하여 ‘주걱봉’이라 하고, 방태산
은 우리가 지나온 깃대봉(또는 푯대봉)을 말한다. 그렇지만 대개는 주억봉이 방태산의 주봉
이고 다른 봉들은 그 위성봉이라고 여긴다. 주억봉이 무슨 뜻인지-수많은 봉우리 중 주된
봉우리라는 뜻인지-다른 봉들과는 달리 그 의미가 와 닿지 않는다. 주억봉에서는 북쪽 사면
아래 장릉으로 둘러싸인 분지형태의 자연휴양림 주변을 내려다보는 것이 사시사철 한 경치
이다.
주억봉에서 바라보는 가칠봉, 사삼봉, 응복산, 개인산, 침석봉, 솟돌봉, 맹현봉 등 뭇 산들이
다 발아래로 나지막하다. 구룡덕봉이 눈으로는 한달음 거리다. 돌길 우르르 쏟아져 내리다
┫자 갈림길이 나 있는 1,340m봉에서 잠깐 멈칫하고 진득하게 오르면 구룡덕봉이다. 주억봉
내리는 중에 제리 님이 블레이크를 잘못 밟아 구르고 말았다. 왼쪽 무릎이 멍들도록 바위에
된통 부딪쳐 걷기에 불편했는데 이게 결과적으로 오후 산행의 효자뻑이 되었다.
2진은 개인산을 오르는 것으로 산행을 시작했는데 메아리 대장님과 신가이버 님은 구룡덕봉
아래에서 기다리고 있고 맹장인 스틸영 님은 구룡덕봉을 올랐다. 함께 우리의 지정 포토 존
에서 기념사진 찍는다. 구룡덕봉 북쪽, 남동쪽, 남서쪽에 전망대를 만들어 놓았다. 차례차례
들러 설악산, 오대산, 계방산, 맹현봉을 다시 들여다본다.
9. 주억봉 북쪽 사면 아래
10. 앞은 주억봉 북릉
11. 멀리는 오대산 연봉, 왼쪽부터 두로봉, 동대산, 상왕봉, 비로봉
12. 주억봉에서
13. 구룡덕봉 동릉
14. 앞은 삼봉(가칠봉, 응복산, 사삼봉)의 하나인 응복산, 멀리는 오대산
15. 왼쪽은 개인산, 오른쪽은 침석봉
16. 구룡덕봉 동릉
17. 구룡덕봉 정상에서
▶ 가칠봉(柯七峰, △1,241.1m)
구룡덕봉 정상 아래 헬기장까지 임도가 올라온다. 이 임도로 인해 방태산은 철저히 망가졌
다. 방태산(芳太山)이란 이름은 ‘향기로운 산나물이 지천인 큰 산’이라는 의미로 알기에 충
분했다. 그런데 임도를 내자 차를 몰고 와서 방태산을 껍질 벗기듯이 곰취를 비롯한 산나물
을 뜯고 뽑아냈으니 온전한 구석이 한 군데라도 있겠는가 말이다. 물론 우리도 그 책임에서
는 자유롭지 않다. 한때는 우리가 지나는 임도 주변도 자생하는 곰취 밭이었다.
임도를 내린다. 월둔고개까지 임도를 간다. 정작 오지산행의 험로는 여기다. 오뉴월 땡볕을
고스란히 쬐며 내린다. 장장 3.6km나 된다. 산굽이굽이 돌고 돌다가 막판에는 너무 무료하여
일부러 능선의 산죽지대를 누비기도 한다. 안부인 월둔고개. 점심자리 편다. 이때는 한가하
여 봄날 소풍을 나온 것 같다. 소백 님이 준비한 대자 낙지라면이 여러 입맛 돋운다.
2부 산행. 메아리 대장님을 비롯한 소백, 스틸영, 산정무한, 제리 님은 임도 따라 월둔골로 탈
출하겠단다. 나로서는 날벼락을 맞은 셈이다. 내 뒤가 갑자기 비게 되어 허전하다. 나더러도
탈출하라고 권고하는 것 같다. 불안하다. 점심 낙지 안주한 양주 반주가 확 깬다. 해마 님에
게 후미를 맡아줄 것을 재삼 당부한다. 가자! 가는 자들은 탈출하는 다섯 사람의 물은 보충
받는다.
가칠봉 가는 길. 4.5km이다. 고도 250m를 높여 △1,155.5m봉을 올랐다가 내리고 다시 고도
350m를 올라야 한다. △1,155.5m봉 오름길은 초원이자 산상화원이다. 키 작은 산죽이 잔디
처럼 깔렸고 주변은 현호색과 홀아비바람꽃이 한철이다. 그 화려한 원로를 간다. 아무쪼록
내 호흡 내 걸음으로 간다. △1,155.5m봉 정상은 헬기장 너른 초원이다. 삼각점은 ‘현리
428, 2005 재설’이다.
당분간 평탄한 원로를 가다가 1,095.5m봉을 내릴 때는 눈 밝음이 오히려 탈이다. 오른쪽 바
윗길 아래로 샛노란 산괴불주머니 무리가 보이고 다가가지 않을 수 없다. 일행들은 왼쪽 잘
난 길을 질주하여 내리는데 나는 주춤주춤 바윗길을 내린다. 그러나 카메라 파인더를 통해
그 정령이 내 안에 스며들 것. 저 아래에서 휴식! 하고 외치는 해피 님의 구호가 반갑게 들린다.
안부. 키 작은 산죽 숲이다. 물이 달랑달랑하여 더 갈증이 난다. 물이 말해 주는 계절이 돌아
왔다. 그날 산행의 난이도나 산행의 계속 여부는 물이 결정한다. 물이 산을 간다고 해도 조금
도 틀린 말이 아니다. 이론이 아니라 지금 당장 우리들에게 닥친 일이다. 인적 없는 산죽지대
오르고 오른쪽 삼봉자연휴양림에서 오는 잘난 길과 만난다. 가파를만하면 계단을 놓고 가이
드레일 밧줄을 달았다.
무척 더운 날이다. 코 박은 땅에 내뿜는 지열이 화톳불처럼 화끈하다. 숲속이라지만 새잎이
나지 않아 그늘이 없다. 그러니 거목인 소나무가 나오면 그 주간이 드리운 그늘에 들어 가쁜
숨을 고르곤 한다. 이정표 가칠봉 0.7km. 아득하다. 오른쪽으로 삼봉자연휴양림을 오가는 ┣
자 길이 나오고 가칠봉은 0.2km 남았다. 한 걸음 한 걸음을 오르는데 오만신경이 곤두선다.
족히 2km를 감직하여 가칠봉 정상이다.
가칠봉 정상. 키 큰 나무들이 사방 둘러 있어 아무 조망이 없다. 그래도 정상 표지석 옆에 있
는 삼각점은 2등 삼각점이다. 현리 23, 1990 재설. 가칠봉에 오르면 갈전곡봉이 가까울 알고
정신을 한껏 풀었는데 그러기에는 일렀다. 갈전곡봉 가는 길이 도상 3.0km이다. 목측도 하고
지도를 예의 들여다보지만 선두는 늘 불안하다. 후미가 안전하다. 다른 데서는 몰라도 여기
서 길을 잘못 들어 뒤돌아오는 수가 있다면 데미지가 큰 낭패가 아닐 수 없다. 대간거사 님이
그 걱정하면서 앞서 내린다.
18. 월둔고개에서 2부 산행시작
19. 산괴불주머니
20. 얼레지, 갈전곡봉에서
21. 얼레지
22. 얼레지
23. 개별꽃
24. 노랑제비꽃
25. 노루귀
▶ 갈전곡봉(葛田谷峰, 1,196.3m), 구룡령(1,006.9m)
가칠봉 내리막길은 급전직하로 떨어진다. 쏟아지는 발걸음을 제동하느라 땀난다. 탈출로는
없다. 바닥 친 안부가 조용하다. 나지막한 봉우리들을 오르고 내린다. 금방 혼자 가는 산행이
되고 만다. 마지막인 오르막을 남겨둔 안부가 꽤 깊다. 해피 님의 휴식! 하는 구호가 들리지
않는다. 아마 멀리 갔을 것. 순전히 노루귀와 노랑제비꽃, 얼레지의 응원으로 간다.
두 피치 오르면 1,160m봉이다. 방향 틀어 북동진한다. 봉봉 오르고 내림이 잔잔하다. 1,175
m봉에 선두 일행이 모여 있다. 맨 후미로 뒤쳐진 새들 님이 오기를 기다린다고 한다. 새들 님
은 탈수증세로 퍼졌다고 한다. 마냥 기다릴 수는 없고 대간거사 님이 여러 일행들의 남은 물
을 긁어 500ml를 모은다. 그 물병을 들고 새들 님을 데리러 간다. 새들 님은 마지막 오르막
을 남겨둔 깊은 안부에 있다. 여기서 0.8km 거리다.
종종 한 사람의 솔선한 용기는 여러 사람의 기운을 북돋운다. 더운 날이 갑자기 시원해진다.
대간거사 님의 흉내 내기 어려운 용기가 그러하다. 그럴진대 타는 목마름일지언정 갈전곡봉
을 단박에 오른다. 갈전곡봉 그늘에서 새들 님이 오기를 기다린다. 한가한 휴식시간이다. 갈
전곡봉 주변은 천상화원이다. 얼레지, 홀아비바람꽃, 노랑제비꽃, 개별꽃 등의 경염장이다.
그중 가장 빛나는 스타는 흰얼레지이다. 무리에 섞이지 않고 저만치 홀로 떨어져 거목 아래
에서 우아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대간거사 님이 가져간 500ml 물로 살아났다는 새들 님이 도착하고 구룡령을 향한다. 새들
님의 투지도 알아줄만 하다. 탈진했으면서 자기 배낭 그대로 지고서 흐트러짐이 없이 간다.
구룡령 가는 길이 만만치 않다. 갈전곡봉에서 구룡령이 영이니 내리막의 연속이겠고 그 길
또한 백두대간이라 부드러울 것이라는 생각이 큰 착오였다. 구룡령까지 4.4km. 이름이 없다
뿐이지 샛령 지나고도 1,000m가 훌쩍 넘는 준봉을 4좌나 넘어야 한다.
안부인 샛령까지는 완만한 내리막이라 수월했으나 샛령 지나고 1,133.7m봉 북릉을 돌아
1,122.0m봉을 오르기부터 새로이 산을 간다. 모두들 아무 말이 없다. 봄날은 간다는 노래도
없고 우스갯소리도 없다. 그럴 힘이 없이 지쳤다. 입안의 침은 진작 밭았고 목은 타는 듯 숫
제 따갑다. 1,122.0m봉을 넘자 골 건너편으로 구룡령을 오르는 도로가 보이고 고갯마루 구
룡령에 우리 노란 버스가 보이지만 발로는 멀다.
△1,101.4m봉 삼각점은 ╋자 방위표시만 남고 마멸되었다. 막판 스퍼트 낸다. 힘내라 산괭
이눈 무리도 거든다. 1,092.2m봉을 넘고 쭈욱 내린 안부께에 구룡령으로 내리는 왼쪽의 가
파른 사면을 데크로드로 간다. 이윽고 구룡령이다. 좌판의 오미자차, 칡차, 얼음물을 차례로
들이켜 목을 적신 다음 힘차게 하이파이브 나눈다.
26. 얼레지
27. 얼레지
얼레지(Erythronium japonicum Decne.)는 백합과 여러해살이풀이다. 속명 에리트로니움
(erythronium)은 붉은색을 의미하는 에리트로스(erythros)에서 유래하는 것으로 유럽에서
자생하는 얼레지가 대개 붉은 홍자색이다. 프랑스의 식물학자인 Joseph Decaisne(1807~
1882)이 일본에서 처음 발견하여 명명하였다.
28. 흰얼레지(Erythronium japonicum f. album T.B.Lee)
간혹 얼레지의 변이종으로 흰색 얼레지를 발견할 수 있는데 흰얼레지라 하여 구분한다. 흰얼
레지 명명자는 반갑게도 우리나라 식물학자인 수우 이창복(樹友, 李昌福, 1919~2003) 박
사이다. 그는 서울대 농대 교수로 우리나라 식물분류학의 권위자였다. ‘千草萬樹無不眞友(천
만가지 나무와 풀 가운데 진정한 친구 아닌 것이 없다)’라고 하며 자신의 호를 수우(樹友, 나
무의 벗)라고 지었다.
학명 중 f. album에 대하여 설명하면 ‘f.’는 ‘forma’의 약자로 식물의 종, 아종(subsp.), 변종
(var.), 품종(f.), 재배종(cv.)의 구분에 따른 것이며, 품종은 변이종이기는 하나 식물분류학
에서 가장 낮은 수준의 분류계급으로 개체 유전적 안정성이 매우 낮다고 한다.
또한 ‘album’은 희다는 뜻의 ‘albi’와 꽃을 뜻하는 ‘florum’의 합성어인 ‘albiflorum(흰꽃)’의
약자이다.
29. 흰얼레지
30. 우리나라 특산식물인 홀아비바람꽃(Anemone koraiensis Nakai)
31. 갈전곡봉 넘어 북쪽을 향하는 백두대간
32. 산괭이눈
33. 구룡령에서 바라본 오대산 연봉
34. 산자락 춘색
첫댓글 물이 없으니 올스톱였어유. 간식도 목이 메어 못 먹겠고 정신도 혼미하고~ 평소 2 L 보다 많은 3.5L 가져갔는데도 더운 날씨에는 소용없었네요. 마지막 5K는 비몽사몽. ㅋ.
모두 다 얼굴이 말이 아니었어요 ㅠㅠ
오모님은 감기에 컨디션이 안좋았음에도, 대포님은 3Kg이나 빠졌다고 툴툴~
덕분에 새들님 아스크림 잘 먹었음돠~~^^
더운날 모두 고생했슈~~ (사서 고생이라 누굴 탓하겠나요~^^)
저는 왠만하면 몸무게 변화가 거의 없는데. 그 날은 2kg이 빠졌습니다. 물도 물이지만 저는 소금이나 전해질이 비상시에 꼭 필요하다는걸 알게되었네요. 그 와중에도 산괴불주머니 군락 사진을 찍으러 가시는 악수형님을 보고 두 손들었습니다.
고생들 하셨네요
나뭇잎이 없어 이른 더위가ㅠ
물준비 잘해야겠네요
새로운 자기가 모르는 식물 가져오믄 무조건 A+주신다던 이창복교수님 생각나네여
제가 D받고 유일하게 재수강한 수목학두 생각나구요
재수강후 최고점인 B받았어요 ㅎ
그 교수님 학점 되게 짜네요.
무조건 A+ 받은 학생이 있던가요?
혹시 신구대학교 총장.
@악수 지금 신구대 이사장은 농학과 출신 제 동기입니다
전 그때 학명을 외워야 되는데 안외우구 시험을 봤드니만 ㅎ
전부 주관식 서술형시험 이었거든요
그리 힘들었다 하니~ 상상이 안됩니다.
물은 생명이다라는 어느 프로그램 제목이 떠오릅니다.
힘들었지만 고통의 기쁨을 얻은 것에 축하드립니다
!!!
이대로 가는건가?
싶었읍니다.
몇년전 산행갔다가 유명을 달리한 친구생각이 났지요.
대간거사님을 비롯한 산우님들 덕분에 살아돌아 왔네요
감사합니다
당시에는 고생거리였지만 고생했던것이 특별히 기억에 남는 듯합니다.
산길 중간에 작업자들이 버리고 간듯한 물통의 물에 얼마나 눈이 가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