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련을 심어 놓고 / 임보
저 궁남지(宮南池)*나 관곡지(官谷池)* 같은
수만 평의 연밭을 바라보며 살
그런 형편이 못 된 나는
우리 집 뜰에
수십 포기의 토련(土蓮)을 심어 놓고
그놈들을 바라보며 지낸다
내가 즐기는 것은 꽃 대신 잎,
그러니, 토련이 결코 연에 밀릴 것도 없다
연잎은 위성안테나처럼 둥글지만
토련 잎은 방패처럼 갸름할 뿐
비를 받아 물 구슬을 만드는 재주는
그놈이나 이놈이나 다를 바가 없다
물에 젖지 않은 저 오만한 청렬,
결코 타협을 모르는 거부의 기개,
심심하면 그들의 넓은 잎새 위에
물뿌리개로 물을 쏟아대며
물 구슬 굴리는 놀이를 하다가도
그만 내 기가 꺾여 멈추고 만다
그가 얼마나 대단한 기개를 지녔는가는
꽃을 피우는 일을 보면 짐작이 간다
연은 화사한 꽃을 헤프게 피워 보이지만
토련은 소박한 꽃을 쉽게 만들지 않는다
한평생 토란밭을 일구며 사는 농부도
꽃을 못 만나보고 떠나기도 하니까
* 궁남지(宮南池): 충남 부여읍 동남리에 위치한 백제 사비시대의 궁원지(宮苑池).
* 관곡지(官谷池): 경기도 시흥시 하중동에 자리한 연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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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련을 심어 놓고 / 임보
최병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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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9.06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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