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체법이 모두 다 불법이다."라는 말은 널리 알려진 말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맥이 풀리는 것 같기도 하고 또 쉽게
불법(佛法)이 손에 잡힐 것 같기도 합니다.
불법을 뭔가 굉장히 거창하고 뼈를 깎는 듯한 고행을 거쳐야
비로소 도달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 온 사람은
뒷통수를 한대 맞은 듯한 기분이 들 것입니다.
또 이 말을 잘못 이해하여 모든 것이 다 불법이니 온갖 비리와 반도덕적인 행위를
해도 좋다고 여길 수도 있을 것입니다.
불법(佛法)은 어떤 특정한 장소나 처지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불교는 사람이 살아가는 그 일 자체인 것입니다.
우리들의 인생을 떠나 불교가 달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은 모든 것이 다 불법인 것입니다.
넘어져도 불법이고 일어서도 불법인 것입니다.
괴로움이 있으면 괴로운 대로 즐거우면 즐거운 대로
소음이 있으면 있는 대로, 고요하고 맑으면 맑은 그대로가 바로 불법인 것입니다.
봄이 돌아와 새 잎이 돋고 아름다운 꽃이 피는 것,
아니 꼭 봄이 올 것도 없이 겨울이면 겨울 그대로
여름이면 여름 그대로가 그저 불법인 것입니다.
여기에 우리들이 눈을 떠야 하는데 자꾸 먼 곳에 가서 불법을 구합니다.
그래서 선사(禪師)들의 선구(禪句)를 보면 불법을 바로 들어보여 주고 있습니다.
깨달음에 대한 열렬한 동경으로 길을 묻는자에게 때로는 엉뚱하고
논리에 맞지 않는 소리만 하는 것 같습니다.
"무엇이 불법 적적대의입니까." 하는 진지한 물음에
전혀 얼토당토 않게 대답을 합니다.
"뜰 앞의 잣나무니라(庭前柏樹子)." 또, 때로는 법을 구해 헐레벌떡 달려온 사람에게
그냥 "여기 앉게."하며 방석을 권하기도 합니다.
"차나 한 잔 마시고 가게." "아침 먹었어? 그러면 설겆이 해야지."하고
아주 단순하고 일상적인 말로 일러 주십니다.
또 구지 선사(俱지 禪師) 같은 분은 평생 손가락 하나를 들어 보이기도 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선구나 "일체법이 다 불법이다."하는 것은 결국은 같은데 맛이 다를 뿐입니다.
경(經)은 돌아가고 선구(禪句)는 바로 질러간다고 하겠습니다.
부처님께서는 활과 같이 둥글게 말씀하시고 선사는 활줄과 같이 팽팽하게 가로질러
명쾌하게 바로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금강경』은 육조 혜능대사 이래로 선종의 소의경전이 되었기도 하지만
이런 선구들의 바탕이 될 수 있기에
여러 선사(禪師)들이 참으로 금강경을 아끼고 좋아하는 것입니다.
須菩提야 所言一切法者는 卽非一切法일새 是故로 名一切法이니라
수보리 소언일체법자 즉비일체법 시고 명일체법
"수보리야, 말한 바 일체법이란 곧 일체법이 아님일새
그러므로 일체법이라 이름하느니라."
그러나 일체법이 개시불법이라 하니 또 일체법이이라는 법의 실체가 따로
어느 것에 있는 줄로 압니다.
그러니 부처님께서는 우리들 중생이 즉각적으로 빠지게 되는 일체법이라는 상을
즉시로 또 지워주시는 것입니다.
실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헛된 것은 더욱 더 아닌
진공 묘유한 상태를 말로 나타내자니 일체법이라고 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일체법이라는 상에 매일까봐 일체법이 일체법이 아니고 단지
이름 붙이기를 일체법이라 하는 것입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