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요(逍遙)
집 앞 남매 못 둘레길에 산책하는 사람이 많다. 또한 거기는 맨발 걷기 코스도 만들어 놓았다. 걷기는 특별한 방법이 없으며 자기 나름의 일정한 리듬으로 걸으면 그만이다. 그러면서 여유가 생기면 일상의 일들을 떠올려 곰곰이 생각하고 정리하면 마음속 응어리가 풀리기도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제자들과 거리를 거닐면서 대화를 즐기었고 학문을 논했기에 그들을 소요학파라고도 불렸다. 옛날 유생들은 영남지방에서 과거 보러 한양길을 걸어서 오갔다고 한다. 문경 주막촌에서 쉬며 술과 주변 경관을 즐기며 소요하다 과거를 놓치는 이도 더러 있었다. 그러나 현대는 기기 문명의 발달로 걷기를 싫어하며 대중교통이나 자가용을 이용하여 빠르게 오간다.
천천히 느리게 걸어야 여유로워 사색에 잠기기도 하고 생각을 정리하기도 한다. 나는 가끔 산에 오르내리며 산책한다. 오르고 내리면서 건강도 되지만 여러 생각을 모으기도 한다. 또 꼬였던 일의 실마리가 풀리기도 한다. 어떤 주제에 대한 글을 착상하며 슬금슬금 걷기를 즐긴다. 운동도 하고 정신 건강도 도모하는 일석이조(一石二鳥)의 효과이기도 하다.
나는 산을 오르내리며 쉬엄쉬엄 소요를 즐기는 것은 경전의 말씀에서 비롯되었다. 경전에 예수께서 기도하러 산에 자주 오르셨다고 한다. 기도를 방이나 조용한 곳에서 하면 되지 ‘왜 산에 가서 할까’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그 의문은 이스라엘을 순례하고서야 풀렸다. 당시 예루살렘 성에는 네 종파의 종족으로 시끌벅적하여 조용할 날이 없었다.
그래서 성 밖 키드론 계곡 너머가 올리브 산의 겟세마니 동산이다. 우리나라처럼 산이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걸어서 쉽게 갈 수 있는 곳이기에 그곳에 가서 기도를 올린 것이다. 그 뒤로 나도 인근의 백자산에 자주 오르며 글감의 실마리를 풀기도 하고 묵주기도를 바치며 쉬엄쉬엄 걷는 소요의 시간을 보냈다.
산속을 걸으면 호흡의 단련은 물론 눈에 들어오는 풍경으로 마음이 안정되기도 한다. 또 잡념을 지우고 생각을 모으기에 아주 좋다. 떨쳐버리고 싶은 마음의 상처나 걱정은 걸음마다 조금씩 밖으로 내보내면 몸과 마음이 개운해진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제비 한 마리가 왔다고 봄이 온 것이 아닌 것처럼 무엇이든 한 번에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꾸준한 노력으로 습관화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한술 밥에 배부르랴. 무엇이든 반복하여 몸에 익혀 습관화해야 내 몸은 그것을 기억하게 된다. 처음에 산에 오르거나 걷기를 하면 힘들기도 하고 싫증도 난다. 그러나 꾸준히 하면 즐겁기도 하며 오히려 하지 않으면 더 견디기 어려워진다. 무엇이든 반복하여 익혀 내 몸이 기억하도록 할 때 놀라운 성취감에 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