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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침 11시에 시작하여 자정이나 새벽 1시경까지 어느 한적한 주택가에 위치한 동사무소 앞에서 붕어빵을 구워 팔며 나름대로 열심히 살고 있는 30대 중반의 노총각... 하루 13시간에서 14시간 정도 장사를 하며 참 많은 부류의 사람을 만난다. 다양한 연령대, 다양한 계층, 다양한 성격을 가진 사람들... 많은 사람들을 만나서면서 느끼는건 '아직도 세상은 따듯하고 살만하다' 라는... 하지만, 극소수의 막가는 부류의 사람들에게 상처를 입고 좌절하기도 한다.
아래는 나 같이 가진건 없지만 나름대로 열심히 살고 있는, 땀흘려 일하며 꿋꿋하게 살아 가려 하는 사람들을 좌절하게 만드는 부류의 사람들의 이야기다.
1) 땀 뻘뻘 흘리며 정신 없이 빵을 굽고 있는데, 50대로 보이는 아주머니가 오더니 빵틀에서 빵을 꺼내는걸 보면서도 "난 따듯한게 좋더라. 새로 다시 구워 줘요" 한다. "손님, 이 빵 금방 구워 꺼낸건데요. 그래도 다시 구워 드려요?" 했더니 "난 뜨거운게 좋아 다시 구워줘" 하길래, 비록 작고 초라한 노점장사지만 손님은 왕이라는 생각에 다시 반죽을 넣고 빵을 구웠다. 2, 3분 가량 지났을까... 아주머니의 얼굴이 점점 굳어지더니 "빨리 좀 해주세요" 한다. 조금 짜증이 나려 했지만, 상냥하고 친절한 얼굴로 "급하게 구우면 빵이 맛이 없어요. 조금만 기다리세요" 하며 정성스레 빵을 구웠다" 하지만, 아주머니는 더욱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뭐가 이렇게 오래 걸려? 됐어 그냥 갈래" 하며 사라진다.
2) 어느 날 오후... 초등학교 5, 6학년 정도로 보이는 어린 여자 아이가 지나가며 구워 놓은 붕어빵과 내 얼굴을 한번씩 보더니 "돈 없는 인간들이 먹기 딱이네" 하며 가던 길을 채촉한다. 대체 저건 아이의 생각인가? 분명 아니다. 어린이는 어른들의 말과 행동을 보고 배우며 자란다.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대체 저 아이의 부모가 붕어빵을 보고 아이에게 어떤 말을 했길래...'
3)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통통하고 키가 제법 큰 아가씨가 친구로 보이는 아가씨와 함께 다가 오더니, 대뜸 따지는 투로 "아저씨, 멀쩡하게 보이는 사람이 왜 이런걸 하세요?" 한다. 순간, 머리털이 서고 대뇌에 스파크가 일었다. 마침 난 그날 판 붕어빵 값을 셈하고 있었는데 돈뭉치가 꽤 두툼했다. 돈을 세며 아가씨의 얼굴을 쳐다 보자 이 아가씨, 친구를 한번 쳐다 보고 내게 하는 말... "야, 이거해서 돈 많이 버나보다. 가자" 내가 꽤나 참을성 많고 화를 잘 내지 않는 사람이긴 하지만, 그 순간은 붕어빵을 그 아가씨 얼굴에 집어 던지고 싶었다.
4) 하루는 9세나 10세 정도 되어 보이는 꼬마 손님이 붕어빵을 사러 왔다. "아저씨, 붕어빵 천원어치만 주세요" 한다. 난 아이나 어른이나 나이에 상관 없이 손님들을 공평하게 대한다. 마침 구워진 빵이 없어 꼬마 손님에게 "잠깐만 기다리세요. 아저씨가 금방 맛있게 만들어 줄께요" 하고는 빵을 구웠더. 내가 빵을 굽던 모습을 구경하던 아이는 내게 대뜸 "아저씨, 장사는 잘 되세요? 먹고 살만 하세요? 밥은 먹고 사세요?" 한다. 꼬마 아이가 하도 맹랑하고 귀엽기도 하고 한편으론 어처구니 없는 말인 것 같기도 하다. 아이에게 돈도 안 받고 그냥 한봉지 붕어빵을 건네 주었다.
5) 술에 잔뜩 취한 중년의 남자가 다가왔다. 내가 나이가 훨씬 어리지만 그래도 내 나이가 35살인데 처음부터 반말(거 왜 사람 깔 보듯 하는 그런 반말 있다)로 "이거 얼마야?" 한다. "네, 4마리에 천원이예요" 했더니 날 위 아래로 훑어 보고 내 얼굴 가까이에 대고 손가락질을 하며 "에라 너 그러면 못 쓴다" 하며 사라진다. 내 붕어빵 가격이 100원 짜리 붕어빵 보다 비싸긴 하지만, 좋은 재료를 쓰고 빵도 최대한 맛있게 구워 팔고 있다. 오죽하면 밤늦은 시간에 일부러 내 빵을 먹기 위해10분 가량 차를 몰고 와서 사 가는 분들도 있을까... 그 아저씨 붙잡고 따지고 싶었지만 장사 시작한지 한달이 채 되지 않았을때인 터라 단골 손님 잡는데 지장 있을까 싶어 꾹꾹 참았다.
6) 동사무소 옆 놀이터에 있는 장애인 화장실을 방으로 꾸며 놓고 사는 노숙자가 와서는 붕어빵 천원어치를 달라며 동전을 쥔듯 손을 내밀며 내게 보인다. 노숙자의 손에 놓인 건 단추와 10원짜리 3개였다. 자신보다 큰 손수레에 폐품을 모아 다니는 어르신이나 어린 아이들이 와서 빵을 먹고 싶어 하면 난 마음이 약한 나머지 돈 안 받고 그냥 준다. 물론 추위에 고생하는 노숙자들이 찾아와도 마찬가지다. 근데, 위의 노숙자들은 대 낮에 놀이터에서 동전 던지기 하며 논다. 정말 주기 싫다...
7) 오늘 낮에 아주머니 한분이 오더니 빵을 굽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도 "이거 오래 된 빵 아니야?" "아유, 무슨 냄새가 이렇게 많이 나?" "아휴~ 이거 기름 썩은 냄새 아냐?" "기름 쪄든 냄새가 많이 나네" 하며 사라진다. 참고로 난 일반 포장마차 장사꾼들 보다 위생에 철저하다. 빵틀 하나를 채우고 나면 닦고 매일 청소를 하고 조금이라도 타거나 안 좋은 것이 묻은 빵은 내가 먹던지 버리던지 하며 절대 손님들에게 팔지 않는다.
8) 하루는 일요일에 장사를 하고 있을때였다. 어느 중년 신사가 승용차를 몰고 지나다 차를 세우고 조수석 창문을 열고 내게 말 해온다. "교회 갔다 왔어요?" 하고 물어 온다. "아뇨, 수요예배에나 가야죠. 지금은 장사 해야 해서요..." 라고 대답했더니 주일예배에 가지 않는다며 내게 화를 낸다. 나도 크리스챤이긴 하지만, 당장 하루 장사를 못하면 하루를 굶어야 하는 도시 빈민층이기에 먹고 사는 문제도 교회 가는 것 못지 않게 중요하다.
9) 어느 만취한 중년의 한 남자는... "야 내가 빵좀 사주께" "네, 몇개 담아 드릴까요" "야, 너 고생하는거 같아서 내가 팔아 주는거야 고맙다고 해라" "..." "야, 젊은 놈이 뭐하러 이렇게 사냐? 버스 운전 배워서 버스 해라 그거 돈 많이 준단다" "..." "야, 너 하루 밥 값은 이걸로 버냐?" "..." "얌마, 이딴거 하지 말고 여자 밑으로 들어가 요새 여자 사장이 돈 더 잘 벌어. 때려 치고 여자 밑으로 들어가" "..." "야 이자식아 어른이 말을 하면 대꾸를 해야지 그 따위로 말이 없어서 어떻게 장사 해 먹을래?" "..." 슬슬 속에서 불이 나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 사람도 손님이니 어쩔수 없다. 그냥 가만히 들어야지... "아 거 자식 내 말이 아니꼽나? 이딴짓 하지 말고 열심히 살아라 응" 내 딴엔 무쟈게 열심히 사는건데 어쩌라고... 이 아저씨 30분 가량 떠들며 나이 어린 아가씨들이 빵 먹으러 오는 것 까지 방해 하며 "내가 너 불쌍해 보여서 팔아주께" 하는 생색만 하더니 결국 500원 어치 달라며 붕어빵 2개 들고 갔다.
10) 자리 잡고 장사 시작한지 두어달 됐다. 동네 분들 인심도 좋고 동사무소 직원들의 따듯한 배려에 자리 잘 잡고 장사 하고 있다. 그런데 100여미터 떨어진 분식집 주인 아주머니... 내가 장사를 처음 시작 했을때 모든게 어설픈 나머지 손님이 없었다. 하지만, 일주일 가량 지나자 제법 빵도 모양새가 좋아지고 나름대로 친절하고 깨끗하고 맛있는 빵을 팔았더니 단골손님이 짧은 시일내에 많아 졌다. 일주일 가량 후에 갑자기 손님이 많아지자, 분식집 주인 아주머니가 오더니 치우고 다른 곳으로 가라고 한다. 흠냐... 아예 첫날 부터 그 곳에서 장사를 하지 말라고 하던가... 물론, 가계세 내고 영업을 하는 분식집이나 다른 여타 업종의 사장님들께는 죄송한 마음이 항상 있다. 하지만, 수시로 감시하듯 하다가 장사가 막 되려고 하니 짐 싸고 가라고 하는건... 근처의 다른 붕어빵 아저씨에게 들은 얘기로 그 아저씨는 그 곳에서 장사를 시작한지 5년여가 됐는데 분식집 아줌마의 민원으로 몇차례 구청에 마차를 압수 당했다고 한다. 하루는 내 마차에 놓아 둔 빵 거치대(빵을 구워 올려 놓는 판)가 없어졌었다. 근처 노숙자나 불량한 사람의 소행으로 생각했는데 며칠후 알게 됐는데 그 붕어빵 아저씨의 거치대도 같은날 같은 시간대에 없어졌다고 한다. 마차안에 놓아둔 다른 값나가는 것들은 그대로 있고 마차의 덮개도 그대로 덮혀져 있었다. 그건 분명히 우리가 장사 하는 것에 대해 불만이 많은 사람의 소행으로 밖에 볼수 없었다. 첫날 부터 나를 이쁘게 보시고 많은 도움을 주시는 근처 지구수비대 경찰분들도 "그거 팔아 먹으려고 가져간건 아닌거 같다. 누군가 아저씨 장사하는거에 불만 있는 사람이 한 짓 같다" 한다. 그러면서 "짐작은 가는데 증거도 없고 본 사람도 없고..." 한다.
아무리 빡빡하고 정신 없고 혼란스러운 세상이지만 작은 것 하나라도 나누며 살았으면 싶다...
- 더 나열하고 싶지만 졸린관계로 그만 자야겠다 -_-;; |
첫댓글 이런 글을 보면 관악산 등산객들이 잘 이용하는 콩나물국밥집이 생각납니다. 정말 초라한 2층집에 지저분하고 불편하고 협소한 곳인데.. 저를 놀라게 만든 건 하루 매출이 1천만원이 넘었었고 1시간정도 기다리는 것은 보통이라고 했던 것입니다. 지금 저희 한의원 옆 TGIF나 예원이라는 중식당보다도 하루매출이 2배가까이 나는 그 곳을 떠올리면 많은 생각이 교차합니다. 그 곳 손님들의 만족도는 TGIF나 예원보다도 훨씬 높았을 것입니다. 직업으로 사람을 평가하고 없는 사람 무시하고 이러면 안되는데.. 옛날에는 붕어빵장사해도 판사아들 둘 수 있었고 꿈을 갖고 살 수 있었는데.. 슬픈현실이지만 세상 많이 변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