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게 온 소포
-고두현
밤에 온 소포를 받고 문 닫지 못한다 서투른 글씨로 동여맨 겹겹의 매듭마다 주름진 손마디 한데 묶여 도착한 어머님 겨울 안부, 남쪽 섬 먼 길을 해풍도 마르지 않고 바삐 왔구나 울타리 없는 곳에 혼자 남아 빈 지붕만 지키는 쓸쓸함 두터운 마분지에 싸고 또 싸서 속엣것보다 포장 더 무겁게 담아 보낸 소포 끈 찬찬히 풀다 보면 낯선 서울살이 찌든 생활의 겉껍질들도 하나씩 벗겨지고 오래된 장갑 버선 한 짝 해진 내의까지 감기고 얽힌 무명실 줄 따라 펼쳐지더니 드디어 한지더미 속에서 놀란 듯 얼굴 내미는 남해산 유자 아홉 개 「큰 집 뒤따메 올 유자가 잘 댔다고 몃 개 따서 너어 보내니 춥울 때 다려 먹거라. 고생 만앗지야 봄 볕치 풀리믄 또 조흔 일도 안 잇것나. 사람이 다 지 아래를 보고 사는 거라 어렵더라도 참고 반다시 몸만 성키 추스르라」 헤쳐놓았던 몇 겹의 종이 다시 접었다 펼쳤다 밤새 남향의 문 닫지 못하고 우연히 콧등 시큰거려 내다본 밖으로 새벽 눈발이 하얗게 손 흔들며 글썽글썽 녹고 있다.
------------------------------------------------------------------------------------
밥에 넣어먹으라고 콩도 완두콩, 강낟콩 종류별로 담고, 옥수수알 박힌 것 마냥 손만두 가지런히 꼭꼭 눌러담아 서울-대전 아무리 막혀야 서너시간인데,그새 녹아서 상하면 어쩌냐고 며칠씩 냉동실에 꽝꽝 얼려 비닐봉지로 두겹 세겹씩 싸고 또 싸서 올려보내시는 어머니.. 터미널에서 차를 기다리는데 어머니가 전화를 하셨다. "아까 껌뻑 잊고 말 안했는디, 보리차 얼린 것도 넣어 놨응께 사먹지 말고 그거 먹어라. 차 많이 막힐텐데 목도 많이 마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