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가 잎을 키웠다
유지인
“모나리자의 눈썹은 우리가 보지 못하는 그 무엇이다”
청맹靑盲과니를 위해 안개가 출사표를 던졌다
주파수가 없는 안개 속에선
감각의 촉수를 긴 안테나처럼 뽑고
경계선이 모호한 천을 박음질하는
재봉틀 바늘마냥 무작정 달려 나가야 한다
말의 애드리브나 즉흥 연주의 베리에이션처럼
시를 쓰다 불쑥 튀어나오는 의미도 기억도 생소한
단어를 만날 때 있다 노파심에 사전을 뒤적이면
쓰던 시에 영락없는 퍼즐의 한 조각이다
신명이 오른 문장이 문장을 불러오는 순간이다
안개 속에서 무수히 타종되었던 바람의 문장은
궂은날 눈만 홀리다 금세 사라지는 여우별이거나
의식의 창을 가린 검은 조각의 매지구름이거나
깨어나 메모장 찾다 다시 든 그루잠 속에서
번개처럼 잡아챈 시의 나비 날개다
안개 장마당에서도 시의 눈속임을 하는
야바위꾼을 만날 수 있다 절벽은 어디에나 있다
그럴 땐 감각의 집어등을 밝히고 허밍,
몰입으로 숨죽인 뱃고동 소리가 더 멀리 간다
아사시한 안개 스토리가 이어지는 곳에서
안개를 먹고 자라난 사물 아이의 눈은
웅숭그레 깊어져 있다
유지인
전북 정읍 출생. 2011년 계간 《시안》 신인상으로 등단.
시집 『안개가 잎을 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