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 산책
추성은
누군가 신경 써 촘촘하게 뜨개질한 것 같은
너는 분명 외계에서 온 생명
네가 태어나기 직전 Lo-fi 음악이 송출되는 라디오에서
오늘 밤에는 창문을 열어 둔 채 잠들지 말라고 했다
그러지 않았어
너는 아마 유령도 영혼도 아닐 테고
갑자기 생긴 온몸을 끌고 창문을 넘어야 했을 테니까
아직 작은 너는 차선 안으로 걷는 내내
아이스크림 하나를 손에 쥐고 있다
투명에서 불투명이 되어가는 모습을 감추기 위해
거듭 끈적한 손바닥을 옷에 비비는
너는 아마도 애를 썼겠지
외계인과 나를
미래와 과거를 분별하려고
어린 네가 자글자글한 나뭇잎 표면을 이로 깨물어보고
쓴 피라칸다 열매를 툭툭 따서 바닥에 버리다가
웅크린 몸을 일으킨다
우주의 모습은 크게 보면 실뜨기 모양이래
언젠간 시간과 공간이라는 실이 스웨터처럼 엉켜서
어느 영화 속 팽이처럼 끝없이 돌아가기만 한다면
네가 태어나던 날의 라디오
주파수를 읽을 수 없을 정도로 아주 복잡하겠지
기지개를 켜고
집에 도착하면 작고 보드랍던 네 손은 어느새 더 커져 있고
나는 그런 순간이
무섭기도 하다
—계간 《아토포스》 2024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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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성은 / 1999년 대구 출생. 중앙대 문예창작과 졸업. 2024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