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예전부터 내가 공리주의자라고 믿어왔다. 가장 많은 사람이 행복하고, 불행한 사람이 적은 것이 좋다는 생각이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의무론보다 결과론에 가까운 사람이라고 느꼈는데, 정작 내가 살아가는 방식에 있어서는 결과를 생각하기보다 내 선택이 올바른가에 대한 고민을 우선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법을 따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법의 테두리 안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염증을 느끼는 사람을 봐왔다. 예를 들어 극악무도한 범죄자에게 내려진 솜방망이 처벌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은 분노한다. 그것이 사회 통념상 적절하지 않은 판결이었다면, 그래서 다수의 사람들에게 불편한 감정을 느끼게 했다면 이것은 결과적으로 우리 사회에 공리를 가져다주지 못한 것이다. 그런데 나는 이 판결 자체에 화가 나지 않았다. 그보다 이러한 판결의 근거가 된 법, 그러니까 그 절차에서 문제를 찾고 고쳐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보니 내 생각은 의무론자에 가까운 것 같았다.
나는 왜 판결이라는 결과가 아니라 법이라는 규칙에서 문제를 찾았을까? 그러는 와중에도 나는 가장 많은 사람에게 행복이 돌아가는 것이 옳다는 생각을 버리지 못해 의무와 결과 사이에서 혼란스러움을 느꼈다. 가장 익숙하던 내 신념이 낯설게 느껴진 것이다. 나는 내가 공리주의자라는 믿음이 틀렸다고 결론 내리기보다, 공리주의를 너무 단순하게 이해하고 있었을 가능성을 먼저 생각해보았다. 그래서 의무론을 찾아보기보다 공리주의를 더 깊게 들여다보기로 했다. 제러미 벤담의 공리주의는 존 스튜어트 밀의 공리주의에 비해 원시적이고 허점이 있다고 느껴 크게 주목하진 않았었다. 그런데 나는 답을 벤담의 이론에서 찾았다.
벤담의 쾌락 측정은 양을 기준으로 하며, 그 기준에는 강도, 지속성, 확실성, 근접성, 생산성, 순수성, 범위 이 7가지가 포함되어 있다. 나는 첫 번째로 지속성에 주목했다. 법은 판결이라는 단편적인 사건보다 길게 유지되는 것이므로 판결을 나무라기보단 법을 고치는 것이 더 지속적인 공리를 창출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다. 두 번째로는 확실성에 주목했다. 판사의 판단에는 어쩔 수 없이 주관성이 들어가기 때문에 판사를 갈아치운다고 해도 이것이 확실하게 좋은 결과를 보장하지는 못한다. 그러므로 그 판단의 근거가 되는 법을 개선하는 것이 좋은 결과를 불러오는 것에 있어 더 확실할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범위에 주목했다. 하나의 판결이 영향을 미치는 범위는 당사자, 넓어도 그 소식을 접한 사람들에 그친다. 사건의 영향력은 한정적이지만 법을 개정한다면 그 법치 아래 놓여있는 모든 국민에게 더 나은 법적인 절차를 제공할 수 있다. 이 생각을 정리해서 나는 어떤 판결이나 판사에 대한 질책보다는 법을 좋은 방향으로 바꾸어 나가는 것이 더 지속적이고, 확실하며, 넓은 공리를 가져올 것이라고 보게 되었다.
나는 의무론으로 넘어가고 싶지 않으면서도, 왜 법만큼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생각할까. 법이 그 자체로 도덕적인 의무라서가 아니다. 결과를 놓고 따져 봐도 법을 지키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장 큰 공리를 불러온다. 오직 결과만을 보는 입장으로 법을 포기한다면 우리 사회는 사적 제재와 고통이 만연한 무법 지대가 될 것이다. 그러나 현재 우리에게 부조리하다고 느껴지는 법을 유지하는 것도 고통의 근원이 될 수 있다. 그러니 법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법을 꾸준히 개선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우리에게 가장 큰 공리를 안겨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여기서 법에 대한 개정은 법에 대한 부정과 다른 것임을 명확히 하고 싶다. 당장의 공리적 결과를 가장 우선하는 것이 아니라, 법을 공리의 방향으로 이끌어 나가는 과정의 중요성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공리의 결과론과 절차의 의무론 사이에서 내가 내린 결론은, 절차를 지키며 나오는 공리가 가장 크다는 것이다. 나는 결과를 중시하면서도 왜 규칙 앞에서 멈춰 서는지 혼란스러웠지만, 이제 그것이 모순이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결과를 길게, 확실하게, 넓게 바라볼수록 그 결과를 만들어 내는 것은 결국 절차였기 때문이다. 내가 아무런 의심도 없이 분리해서 생각하던 결과론과 의무론은 물과 기름이 아니었다. 나는 의무론자가 아니라 멀리서 보는 결과론자였던 셈이다. 가장 익숙하던 신념을 낯설게 들여다본 끝에, 나는 두 이론이 공존할 수 있다는 답에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