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행자일기***
새벽 예불…채공…갱두…힘들 때마다 도반 도움으로 극복
사진설명: 갓 출가한 행자들은 고된 일과 속에서도 교리를 익히고
하심(下心)을 배우며 올바른 수행자의 면모를 바꿔간다.
행자들이 텃밭을 일구고 있다. 불교신문 자료사진
#2004년 겨울.해인사 “둥두두둥... 둥두두둥...” 법고소리가 얼음장보다 시린
가야산 새벽하늘을 가른다.
그 육중한 파동은 옅은 졸음마저 밀어내고 보경당 법당 안을 가득 채운다.
혼침(沈)에 살짝 떨구었던 고개를 든다.
소리없이 긴 한숨이 새어나오고 다시금 허리를 곧추세워본다.
불단 앞에 출정을 기다리는 전사들처럼 초발심 하나로 무장한 행자들이 무릎 꿇고
앉아 있다.
엊그제 삭발한 막내 행자서부터 8개월이 지나가는 행자에 이르기까지…
저려오는 무릎과 발목 때문에 연신 몸을 뒤트는 막내행자의 모습 속에서 4개월
전의 나를 본다.
#출가 결심 무상한 삶 속에서 그럭저럭 만족하고 즐기며 살아가기엔 내 인생이
너무도 소중했다.
결단 내리기가 쉽진 않았지만 오랫동안 숙고한 일이기에 더 이상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아침 일찍 부모님께 큰절하고 집을 나섰다.
기쁜 마음으로 보내달라는 간곡한 부탁으로 어머니는 애써 웃음지어 보이셨지만,
이내 손 흔들며 돌아서는 막내 아들을 향해 합장저두로 흘리는 눈물을 감추셨다.
해인사로 가는 길. 홍류동 계곡을 지나 걸어 올라오면서 많은 생각에 잠겼다.
‘예전에 청년 경허스님도 이 길을 걸어올라 갔을 것이고 청년 성철스님도 그러했을
것이다…나는 지금 그 길을 걷고 있다.’
#삼천배ㆍ삭발식 ‘해인사 행자실’이라는 문구가 선명히 박힌 속복을 입고, 해인사
전통에 따라 독성각에서 삼천배를 시작했다.
오직 참회한다는 마음으로 일배일배 정성을 다했다.
많은 추억들, 부모님, 가족들, 친구들..... 조각조각 파편이 되어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그래, 지난날의 집착도, 욕심도, 어두운 기억들도 모두 다 가라’
생애 가장 길었던 7일간의 속복기간이 지나고, 어느 비 내리는 날 오후 삭발을 했다.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모든 행자도반들이 참석한 가운데 참회진언이 염송되기 시작했다.
“옴 살바 못자모지 사다야 사바하…옴 살바 못자모지 사다야 사바하…”
절대 눈물을 흘리지 않겠다고 다짐했건만, 어느새 눈물이 두 볼을 타고 흘러내리고
참회진언 소리는 더 크게 귓전을 맴돌았다.
서른 셋.
깎여 내리는 머리카락과 함께 내 모든 걸 내려놓았다.
내 두 어깨에 짊어져야 했었던 아니 짊어져야 한다고 믿었던 그 모든 걸 내려놓았다.
#하심 또 하심 새벽 2시40분 기상. 새벽이라고 하기에도 너무나 이른 시간이었고
적응하는 데만 한달 이상이 걸렸다.
처음에 주어진 소임은 후원에서 채공보조 일이었다.
여기저기 분주히 뛰어 다녔지만 계속되는 실수에 상행자들로부터 혼나지 않는 날이
없었다.
난생 처음 신어보는 고무신은 발을 전혀 보호해 주지 못했고 발목 통증으로 한 동안
시달려야 했다.
연일 이어지는 소임과 울력 속에서 차츰차츰 지쳐갔고 굳은 결의도 약해져 가기만 했다.
급기야는 포기하려는 생각까지도 들었지만, 고비고비 마다 여러 행자도반들의 따뜻하고
진심어린 조언으로 마음고쳐 먹기를 거듭하면서 적응해 나갔다.
아마도 행자도반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정말 힘들었을 것이다.
묵언 속에 힘들었던 처음 한달도 지나고 어느덧 4개월째로 접어들고 있다.
생활도 소임도 익숙해져가고, 어색하기만 했던 행자복도 삭발한 머리도 이젠 제법
어울리는 것 같다.
#가을.겨울 그리고 봄 아침부터 잔뜩 찌푸린 날씨가 금새 눈이라도 내릴 것 같다.
가을이 가고 이제 겨울이다.
이 겨울이 지나고 꽃 피는 봄이 오면 가사장삼을 수하고, 그렇게도 염원하던
계를 받게 된다.
스님이 되기 위한 사미의 출발인 것이다.
서릿발 같은 기상과 뜨거운 구도 열정으로 평생을 살아가는 그런 스님이 되고 싶다.
부처님께서는 과거에도 미래에도 집착말라 하셨건만, 간절히 다가오는 봄이 기다려지는
건 어쩔 수 없나보다.
글/양성철 해인사 행자실
-불교신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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