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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830주일설교 영생, 삶의 실제(요한복음17:3,
에베소서5:22-33)
제목: 영생, 삶의 실제
본문: 요한복음17:3, 에베소서5:22-33
오늘은 요한복음17:3과 에베소서5:22-33의 말씀을 가지고
“영생, 삶의 실제”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오늘 말씀 제목이 무엇입니까?
“영생, 삶의 실제”
우리는 지난 주에 요한복음17;1-5의 말씀을 가지고
“영생을 있게 하러 오신 예수님”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영생은 죽어서 가는 먼 지래의 관념이 아니라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경험하여 알아가는
‘현재의 친밀한 관계’임을 나누었습니다.
여러분은 그 말씀을 통해서 영생이 무엇이고
그 영생의 삶이 얼마나 삶 속에 실제적 이었습니까?
우리의 신앙은 종종 뜬 구름 잡기 식일 때가 많습니다.
뭔가 말하고 설명하기는 하지만
좀 막연하고 실제적이지 않습니다.
구원도, 은혜도, 영생도 그렇습니다.
말로는 설명을 잘하는데
내 일상과는 아무 상관없는
아득한 관념처럼 느껴집니다.
예수님께서 무슨 철학 강의하러 오신 것이 아닙니다.
성경이 말하는 신앙이라고 하는 것은
철저히 실제적이어야 합니다.
영생이 무엇일까요?
영생을 누리는 삶의 모습은 어떠할까요?
사도바울은 그 영생의 실제를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그 어떤 것으로 설명하여 보여주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우리가 읽은
에베소서 본문입니다.
종종 우리는 이 본문을 가정 주간에
부부생활의 지침으로 설교 되곤 합니다.
그래서 남편은 아내에게 어떻게 해야 하고
아내는 남편에게 어떻게 해야 한다는 식의
말씀으로 받기도 합니다.
그래야 사랑받는 아내가 되고
존경받는 남편이 될 수 있다고 합니다.
우리가 사랑받는 아내가 되고
존경받는 남편이 되려면 처세의 기술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단순한 처세나
인간적 요령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 부부라는 삶을 통해 영생의 비밀을 선포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32절에
놀라운 반전을 선포합니다.
“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바울은 남편과 아내가 한 몸을 이루어 사는
부부의 가장 실제적인 일상을 통해,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해서
곧 예수님이 요한복음17:3의
“영생은 인격적으로 하나님을 아는 삶”이라는 것을
눈으로 볼 수 있도록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의 말씀을 통해 영생의 실제를 깨닫고
일상의 삶에서 영생의 삶을 사시는
성도님이 되기를 바랍니다.
1.예수님과 나의 관계
여러분은 예수님과 어떤 관계 속에 있습니까?
우리는 지난달 나눈 말씀에서 예수님께서
우리의 친구가 되어 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를 위해 하나밖에 없는 목숨까지
내어 줄 정도로 우리를 사랑하는
친구가 되어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예수님과 우리의 관계를
선생과 주요 우리는 그의 제자와 종으로도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목자와 양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친구와의 관계는 구원사적 관계라고 한다면
선생과 주나 목자와 양은 우리가 따라야 하고
섬겨야 하는 관계를 말합니다.
하지만 요한계시록에서는 천국에서
예수님과 우리의 관계는
신랑과 신부 곧 부부관계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가서에서도, 호세아에서도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신랑과 신부 곧 부부관계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부부라고 하는 것은 인간 사회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관계입니다.
부부를 통해서 가정이 생기고
그 가정들이 모여서 사회가 되고
그 사회가 모여서 나라가 됩니다.
바울은 영생의 모습을 부부관계로서
에베소서에서 말씀하시면서
“이 비밀이 크도다”라고 큰 소리로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천국을 죽어서 가는 곳이 아니라
지금 이 자리 이 땅에서 누려야 할 모습입니다.
그렇기에 예수님과 우리의 관계를
부부관계로 설명하는 것
그것이 실제적이고 우리 삶에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부부인 부모를 통해서 태어났으며
우리 중 대부분은 부부로서 살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가장 가까이에 있고
가장 잘 알고 있는 관계를 통해서
우리는 영생이 무엇인지를 살피고
그런 영생을 삶을 살아야 합니다.
2.예수님과 나의 관계
오늘 말씀은 22절에서 다짜고짜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고 합니다.
아내 된 분들은 참 거슬리는 말씀입니다.
옛날에는 좀 통하는 말씀이었지만
요즘에는 전혀 통하지 않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이 말씀을 우리가 아내가 되고
예수님이 신랑이 된다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그러면서 복종해야 되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왜 예수님께 복종해야 합니까?
예수님께서 교회의 머리 됨이라고 합니다.
교회는 우리입니다.
예수님이 머리이기에 우리는 그의 지체가 됩니다.
우리의 지체인 단순히 손과 발만 가지고 말해 봅시다.
우리의 손과 발은 어떻게 해서 움직입니까?
스스로 움직일 수 있습니까?
스스로 움직인다면 큰일이 날 것입니다.
손 따로 발 따로 움직여도 큰일이 날 것입니다.
그런 사람을 가르쳐 병이 들었다고 합니다.
문제가 생겼고 탈이 났다고 합니다.
우리의 지체는 정확히 머리가 시키는 대로
움직여야 합니다.
가라 하면 가고 집으라 하면 집어야 합니다.
머리가 하라는 대로 행하였는데
행하지 않거나, 행할 수 없으면
그런 사람을 불구라고 하고
더 나가 식물인간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교회 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말씀을 순종해야 신앙적으로
정상적인 삶을 사는 것이고
그것이 영생의 삶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자신의 몸을 주어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셨고 영생을 살게 하셨습니다.
그 모든 것은 우리를 사랑한 증거이요
그 사랑 때문에 그렇게 행하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그러한 사랑을 주셨습니까?
왜 자신의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내어 주시면서까지
우리를 사랑하셨나요?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거룩하게 하려고
십자가의 죽으심과 말씀으로 씻어 살려 주셨습니다.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이 주신 영생의 삶을 살게 하려고
물과 말씀으로 거룩하게 씻겨주셨습니다.
영생의 삶은 오래 사는 것이 아니라
거룩하게 하나님 앞에 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는 자들이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서면 죽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우리를 자신의 목숨을 내어 주셨고
그의 말씀으로 우리를 거룩하게 하셔서
하나님 앞에 거룩한 자로 살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에베소서 5:29절에 이러한 말씀이 있습니다.
“누구든지 언제나 자기 육체를 미워하지 않고
오직 양육하여 보호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에 함과 같이 하나니”
우리가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삽니다.
하지만 날마다 거룩하여
하나님이 주신 영생을 누리며 살 수 있습니까?
그렇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아이들이 건강하게 잘 자라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은 늘 겪고 있습니다.
감기에 걸리기도 하고 수족구에 걸리기도 하고
넘어져 다치기도 하고 말썽을 피우기도 합니다.
그때 부모는 어떻게 합니까?
하자가 생겼으니 넌 내 자녀가 아니라고
하는 부모가 있을까요?
운다고 아기를 버리는 부모가 있을까요?
그런 부모는 절대 없을 것입니다.
그때부터 부모들은 비상이 걸립니다.
열을 체크하고 어떻게 하면 그 병에서 낫게 할까
온갖 신경을 그 아이에게 집중하며 밤새 간호 합니다.
그렇게 며칠 앓고 나면 아이는
안 하던 재롱이 늘어나고 키도 크고
성숙한 모습으로 성장합니다.
부모도 그러한데 우리의 신랑 되신 예수님은
우리에게 어떻게 할까요?
우리도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문제가 생깁니다.
상처를 입습니다.
넘어지기도 하고 낙심하기도 합니다.
그때 예수님은 우리를 양육하여 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보호하여 안전하게 평안하게 해 주신다고 하십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사랑입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다가
넘어졌거나 상처를 입었다고 시험을 만났다고
낙심하거나 염려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우리를 버리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말씀으로 양육하셔서 영적능력을 공급 하시고
따뜻한 은혜의 체온으로 보살펴 품어 주십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삶의 시험이나 상처 앞에서
낙심하거나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그때는 내가 신랑되신 예수님께
가장 큰 관심과 따듯한 사랑을 받는 때입니다.
그렇다고 시험이나 아픈 그 자체를 즐기는 것이 아니라,
그 시험을 통해 나를 더욱 따뜻하게 감싸 안으시고
자라나게 하신 신랑 예수님의 보살핌의 은혜를 기대하기에
우리는 기뻐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아팠던 아이가 나았을 때
성숙한 것처럼 우리도 그런 시험을 통해서
그런 환난을 통해서 쑥 자란
신앙으로 나가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예수님의 지체입니다.
그렇기에 우리의 모든 것이 그에게 붙어 있을 뿐 아니라
우리의 고통이나 실패나 시험을 예수님이 아시고
예수님께서 우리를 보호하시고 양육하여 주어
영생의 삶으로 세워 주실 것입니다.
3.영생의 관계를 참되게 누리려면
부부 생활에서 문제가 되는 것이 무엇일까요?
대개는 부부관계에서 문제라기 보다는
밖에서 들어온 것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떤 문제들이 있습니까?
신랑 예수님과 신부 된 우리 사이에
세상의 헛된 우상이나 딴 사람이
끼어들면 관계가 병이 듭니다.
부부가 둘의 관계로 이어지지 않고
다른 것에 의해서 흔들리기 시작하면
그 부부의 관계는 깨지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그렇기에 부부관계를 정상화하기 위해서는
외부의 문제가 들어오지 않도록
차단할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31절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이 말씀은 인류 첫 부부였던 아담과 하와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창세기2:24에 나온
첫 결혼 주례사입니다.
하나님은 결혼하여 부부가 된 자들에게
처음 주신 말씀이 무엇이었습니까?
가장 친밀했던 거의 전부라고 했던
부모를 떠나라 했고
그 둘이 한 몸이 되라고 했습니다.
부부의 핵심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부모를 떠나는 것이고
두 번째는 한 몸이 되는 것입니다.
첫째 부모를 떠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부모는 부부가 되기 전의 세상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과 만나기 전에는 세상에 있었습니다.
세상에서 우리는 돈이 최고였고 권력이 최고였고
명예가 최고였습니다.
그것을 위해서 우리는 애쓰며 살았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만나 살아가는 영생의 삶이란
그러한 것에서 떠나 있어야 합니다.
그러한 것에서 떠나지 못할 때
우리는 넘어지는 것이고 그것에 매여
영생의 삶을 누릴 수 없게 됩니다.
부부가 되기 위해 이전의 삶을 떠나 새 살림을 차리듯,
우리 역시 세상의 조종과 죄 된 옛 습관을 떠나
오직 신랑 되신 예수 그리스도와 합하여
살아가는 거룩한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둘째로 한 몸이 된다고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한 몸은 하나로 움직이는 것입니다.
한 몸은 나누어져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부부가 한 집에서 24시간 생활하며 마음을 나누듯,
영생은 매 순간 주님과 함께 살아가는 것입니다.
힘들고 아플 때 혼자 끙끙 앓지 않습니다.
정상적인 부부라면 힘들면 가장 먼저
아내나 남편에게 이야기 합니다.
좋은 일도 힘든 일도 나쁜 일까지도
부부는 함께 나누어야 합니다.
분명 주님은 모든 것을 구하라고 하셨고
구하면 다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신랑 되신 주님으로부터
모든 것을 공급받고
모든 문제를 나누어
주님의 보살핌 속에 해결 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과 우리와의 관계가
정상화될 수 있습니다.
그것이 틀어지게 될 때 영생이 아니라
죽음의 고통이 우리의 삶에 있게 됩니다.
지금 우리의 삶은 어떠합니까?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이
정상적인 영생의 삶이라고 생각합니까?
아멘이라고 곧바로 대답하지 못한다면
무엇이 문제인지 우리는
우리와 주님과의 관계를 살펴야 합니다.
주님과 우리 속에 무엇이 끼어들어와 있는지
그래서 하나 되지 못하여 갈등 속에 있지는 않습니까?
주님께로부터 받아야 할 풍성한 은혜를 받지 못하고
그래서 우리의 삶이 피폐한 상태는 아닙니까?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정상적인 부부가 되려면
과거의 맺었던 관계를 벗어 버리고
오직 부부가 하나 되어 살라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역시
과거의 삶에 의지했던 것들을 다 벗어 버리고
오직 주님과 하나 되어 살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영생은 죽어서 가는 아득한 미래의 관념이 아닙니다.
오늘 나를 위해 목숨 바치신
신랑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되어,
매일의 일상에서 주님과 인격적으로 동행하는
'가장 실제적인 현실의 삶'입니다.
이번 한 주간, 영생을 실제적 일상으로 살아내기 위해
다음 세 가지를 꼭 실천하시기를 바랍니다.
[떠나십시오]
신랑 되신 주님보다 더 의지했던
세상의 옛 습관과 자랑을 잘라내십시오.
세상의 계산법을 내려놓고
오직 신랑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만
내 삶의 시선을 고정하시길 바랍니다.
[나누십시오]
힘들고 아플 때 혼자 끙끙 앓지 말고
신랑 되신 주님께 기도로 아뢰십시오.
부부가 모든 것을 나누듯
일상의 기쁨과 슬픔을 주님께 고백하여,
주님이 매일 공급하시는
말씀의 양식과 따뜻한 보살핌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확신하십시오]
넘어지고 아플 때도
주님은 자기 몸인 나를
결코 미워하거나 버리지 않으심을 믿으십시오.
주님은 아픈 자녀에게 온 신경을 쏟는 부모처럼,
우리를 말씀으로 양육하시고 은혜의 체온으로
감싸 안아 강건하게 세워주십니다.
참된 영생의 기쁨 속에서
신랑 예수님의 따뜻한 손을 잡고,
매일의 삶을 은혜와 승리로 채워가는
율리교회의 모든 복된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