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통계학의 눈으로 보면 야구가 더 재밌어집니다
서울대 총동창신문 제480호(2018. 3.15)
임선남(미학99-06, 38세), NC다이노스 데이터팀장
야구통계 독학 후 프로구단 입사 - 외국인 선수 영입·선수 평가에 활용
프로야구 정규시즌 개막이 코앞에 다가왔다. 수많은 야구팬들이 가슴 설레며 올해의 야구 운세를 점쳐 보는 시간. 경험 많은 전문가들이 다양한 관전 포인트를 내놓는 한편, 오로지 데이터와 통계에 기반해 객관적으로 경기를 예측하는 관점 또한 야구 관람의 색다른 재미를 선사하고 있다. 바로 ‘세이버메트릭스’다.
‘세이버메트릭스’는 수리적이고 통계적인 관점에서 야구를 분석하는 ‘야구 통계학’이다. 메이저 리그에선 1990년대 후반부터 널리 활용됐지만 국내에선 근래에 몇몇 구단이 데이터팀을 꾸리고 본격적으로 야구 통계학을 활용하기 시작했다. 이 중 한 곳인 NC다이노스에서 데이터팀을 이끄는 임선남(미학99-06) 동문이 지난 2월 21일 모교를 찾아 ‘데이터와 야구’를 주제로 특강을 펼쳤다.
NC다이노스 팀 야구 점퍼를 입고 강단에 선 임 동문은 이력부터 눈길을 끌었다.
“공대에 입학해서 미학으로 전공을 바꾸고 경제학을 복수 전공했습니다. 졸업 후 야구와 무관한 대기업에서 6년 정도 신규사업 개발, 재무예측 등의 일을 했죠. 2011년 엔씨소프트로 이직해 데이터정보센터에서 근무하다 2012년부터 야구단에서 데이터와 관련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세상엔 재밌는 것들이 너무 많았다”는 그다. 박찬호의 미국 진출 무렵 메이저 리그를 즐겨 보던 그는 야구의 드라마틱한 속성 이면에서 통계를 가지고 합리적으로 결과를 예측해보는 재미를 발견했다. 국내엔 생소했던 야구 통계 분야의 원서를 구해 독학하며 관련 글을 쓰기 시작했다. 엔씨소프트가 야구단 창단과 함께 데이터팀을 신설하면서 취미는 업이 됐다.
“세이버메트릭스는 ‘야구를 합리적, 객관적으로 잘 이해하기 위한 노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과거에 가난한 구단들이 선수를 사기 어려운 대신 야구 데이터 분석에 투자해서 경쟁력을 확보하려 한 게 시작이었죠. 지금은 LA다저스에 고용된 데이터 전문가가 20명이 넘습니다. 현대 야구는 야구장에서 몸으로 야구 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이렇게 뒤에서 노력하는 사람들도 같이 늘어나고 있어요.”
세이버메트릭스는 타율과 홈런, 타점 등 전통적인 지표가 설명 못 하는 다양한 요소를 보여준다. 선수들의 승리 기여도를 보여주는 ‘WAR’, 인플레이가 됐을 때 안타로 이어질 확률인 ‘BABIP’ 등이 그 예다. 이러한 지표들은 작전을 짜거나 선수를 평가할 때 감독과
스카우트 등의 직관 외에도 풍부한 판단 근거를 제시해준다. 최근 NC가 탁월한 외국인 스카우트 능력으로 화제가 된 데도 데이터팀의 공이 컸다는 업계의 평이다.
“현장에 데이터를 제시하는 입장에서 두 가지 회의적인 시선을 만날 수 있습니다. ‘야구는 해봤나’, ‘그래서 도대체 답이 뭐냐, 휘두르라는 거냐 말라는 거냐’(웃음). 어느 분야든 데이터를 다루는 사람이라면 겪게 될 문제죠. 필드에 수십 년간 몸담은 입장에선 당연한 반응이기도 해요. 핵심은 커뮤니케이션입니다.”
그가 경험에서 체득한 커뮤니케이션 스킬은 이렇다. “듣는 사람의 눈높이에 맞춰서 상대방의 언어를 사용할 것, 짧고 간결하게 두괄식으로 전달할 것, 명확한 결론을 제시할 것, 가령 미국 야구뿐만 아니라 한국 야구와 연관지어 얘기하는 등 현실과 연결되게 말할 것”. 동종 분야 진출을 꿈꾸는 후배들을 위한 조언이기도 하다.
임 동문의 팀은 스카우트와 투구추적 전문 매니저, 외국인 선수 전담 코디네이터 등 네 명이다. 외국인 선발을 전담할 뿐만 아니라 연봉 책정의 베이스가 되는 선수 평가 데이터와 전력분석 데이터를 만드는 일을 한다. 구단의 전력분석팀이 영상을 보면서 타팀 선수의 컨디션과 습관 등을 분석한다면 데이터팀은 오로지 숫자 데이터로 투구 패턴 등을 가시화해 현장에 제공하는 식이다. 당연히 이들의 하루는 야구로 시작해서 야구로 끝난다.
“하루 종일 야구 경기를 봅니다. 요즘엔 PC와 모바일을 통해 어디에서든 볼 수 있으니까요. 아침에는 메이저 리그, 오후에는 마이너 리그 트리플에이 경기를 주로 보죠. 스카우트가 미국에 나가 있으면 현지 경기 시간에 맞춰 같이 경기를 보면서 메신저로 대화하곤 해요. 필드에 나가지 않아도 경기를 하는 동안엔 항상 근무의 연장선상이라고 볼 수 있죠.”
그라운드 뒤 ‘보이지 않는 손’과 같은 역할이지만 임 동문을 만나볼 수 있는 곳이 있다. 엔씨소프트 블로그(http://blog.ncsoft.com/)에 야구 데이터에 대한 글을 연재 중이다. 세이버메트릭스의 시초인 빌 제임스 역시 취미로 야구 데이터를 분석해 내놓은 글들이 주목을 끌면서 메이저 리그에 통계의 야구를 ‘등판’시켰다.
올 시즌 임 동문의 안내에 따라 새롭게 야구를 즐겨보는 것은 어떨까. 박수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