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개가 있고 물고기도 조금 있습니다.”(마태 15, 34)
어제는 토지 되찾기 운동을 벌이고 있는 탈리트(인도의 가장 천민 계급) 마을을 방문하였다.
특히 여성운동에 대한 많은 인식을 갖게 되었다.
영국 식민지 시대에 이 천민들의 동료를 의식하여 이들에게 주었던 토지였음에도 불구하고,
가난하고 무식함으로 인해 자신들의 소유를 찾지 못하고 빼앗긴 땅,
권력을 가진 자들은 자신들의 권력을 통해 가난한 이들의 것 마저 자신들의 것으로 만들어 버림으로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는 구조가 되어버린 오늘 모습에서 자신들이 권리를 되찾는 운동을 하는 모습을 통해 80년 대의 우리들의 모습을 다시 볼 수 있었다.
“일곱 개가 있고 물고기도 조금 있습니다.”(마태 15, 34)의 대답을 통해 오늘의 우리 구조를 살펴본다.
“이 광야에서 이렇게 많은 군중을 배불리 먹일 만한 빵으 어디서 구하겠습니까?”(마태 15, 33) 그러니까 배불ㄹ 먹는 사람이 조금이라도 있기 위해서는 나의 것을 내어 놓을 수 없다는 생각과 지금의 나의 모습도 만족하지 못함을 드러내는 말이다.
“빵 일곱 개와 물고기들을 손에 들고 감사를 드릿ㄴ 다음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니, 제자들이 군중에게 나누어 주었다. 사람들은 모두 배불리 먹었다. 그리고 남은 조각을 모았더니 일곱 바구니에 가득 찼다.”(마태 15, 36 – 37)
나 만을 보기에 나는 이웃에 대해 눈이 멀었고, 나의 문제에만 남아 있기에 말못하는 벙어리가 되었고, 자신 만의 일을 하기에 나의 다리는 절고 있다.
나를 내려 놓음으로 이 모든 것을 다시 돌려 놓을 수 있음을 나는 모른다.
아지 나는 만족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은 언제나 배고픈 존재이다. 만족을 갖을 수 없는 존재이기에 그렇다.
“보라, 이분은 우리의 하느님이시다. 우리는 이분께 희망을 걸었고 이분께서는 우리를 구원해 주셨다. 이분이야말로 우리가 희망을 걸었던 주님이시다. 이분의 구원으로 우리 기뻐하고 즐거워하자.”(이사 25, 9)
이제 우리를 통해 이 구원이 모든 사람들에게 전해 질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나를 포기함에서 시작되고, 나를 포기함에서 이웃을 볼 수 있음을 우리는 안다.
이제 그것을 실천하는 모습으로 세상에 하느님 나라 건설이 나를 통해 되어지는 하루살이가 되기를 바라며 오늘을 시작한다.
첫댓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이 넘 예뻐요.
아마도 희망 이겠죠?!
우리나라 70년대 모습인것 같아요.
아이들 눈망울이 참 밝아 보여요~~~
텔레비전에서 보았던 그모습이다.
어려운 환경이지만....아이들은 이쁘다.
" 우리는 이분께 희망을 걸었고 이분께서는 우리를 구원해 주셨다 "
간절히 원하는 것이 있습니다....
하지만 나는 거꾸로....내가 가진것..그래서 감사해야 할 것들을 하나씩 하나씩 떠올려 새깁니다...
계급사회~우리나라도 그러하였지요
천주교가 우리나라에 들어오면서 계급사회가무너지고 이제는 신분의 계급은 없어졌지만
빈부의 격차가 심한 현실~
하느님 우리 모두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