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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과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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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 사진---^^ 스크랩 이태리 여행 ① : 패션의 도시 밀라노에서 만난 ‘두오모’와 ‘라 스칼라’
가을하늘 추천 0 조회 203 16.11.07 08:28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여행지 : 두바이, 스위스, 이탈리아

 

여행일 : ‘16. 3. 12() - 20()

일 정 :

3.13() : 두바이

3.14(월) : 스위스(루체른)

3.15(화)-19() : 이탈리아(밀라노, 피렌체, 로마, 나폴리, 폼페이, 소렌토, 베니스, 볼로냐)

 

여행 둘째 날 오후 : 이탈리아의 밀라노(Milano)

 

특징 : 밀라노(이탈리아어: Milano, 롬바르드어: Milan, 독일어: Mailand, 라틴어: Mediolanum)는 이탈리아의 북부에 있는 도시로, 롬바르디아 주의 주도이다. 이탈리아 북부의 최대 도시로, 롬바르디아 평원에 위치하고 있으며, 포강()이 이 도시를 흐르고 있다. 시내 인구는 수도 로마 다음으로 많으며, 광역 도시권 인구는 로마를 훨씬 초과하여 이탈리아 최대의 대도시권을 형성하고 있다. 또한 국제, 다국적 도시로도 불리는데, 인구의 13.9%가 외국인으로 이루어져 있는 게 특징이다. 또한 로마가 이탈리아의 행정적 수도라면 밀라노는 이탈리아의 경제적 수도라 할 정도로 이탈리아 최대의 경제 중심지이다. 이탈리아의 중앙 주식시장, 주요 은행의 본점, 여러 대기업의 본사가 집중되어 있으며, 시 외곽에서 시작되어 북쪽 알프스 산맥을 따라 기계, 섬유, 의약, 자동차 등 분야의 수많은 공장이 분포되어 있다. 유럽에서 독일 다음으로 큰 제조업 산업 단지이며 이탈리아 제조 산업의 근간을 이룬다. 또한 매우 유서 깊은 도시로 많은 문화재와 문화 시설을 갖춘 관광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밀라노 대성당, 라스칼라 극장이 특히 유명하며, 많은 박물관과 미술관이 있다. 밀라노의 역사를 살펴보면, 374년에 성() 암브로시우스가 밀라노의 대주교가 되면서부터 밀라노는 북부 이탈리아에서 종교의 중심지가 되었다. 밀라노는 대주교의 영향력 아래 발전하기 시작했는데 대주교는 밀라노를 아름다운 건물들로 장식했다. 5~6세기에는 훈족 · 고트족의 침입으로 시가지가 파괴되고, 다시 랑고바르드족의 점령 아래에 들기도 했다. 샤를마뉴의 치하에 들게 된 무렵부터 밀라노 대주교의 권력이 강대해지고, 전란을 피해 성벽으로 둘러싸인 밀라노로 몰려드는 인구도 증대하여, 11세기에는 롬바르디아에서 가장 큰 도시가 되었다. 1277년 귀족 세력의 지지를 받은 비스콘티 가()가 밀라노의 영주가 되었고, 오랜 시간 밀라노에 군림하였다. 이후 비스콘티 가의 장군인 프란체스코 스포르차가 영주가 되어, 1535년에 에스파냐의 지배하에 들어가기까지, 스포르차 가의 지배가 지속되었다. 그동안 대성당의 건축이 진척되고, 운하가 개통되는 한편, 브라만테, 레오나르도 다 빈치 등을 비롯한 문인 · 예술가들이 이 도시에 모여들어 밀라노의 황금시대를 이루었다.

 

루체른을 모두 둘러봤다면 이젠 이탈리아로 이동해야 할 차례이다. 다음 여행지가 이탈리아의 북부에 위치한 밀라노이기 때문이다. 스위스에서 이탈리아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우선 알프스 산맥을 넘어야만 한다. 사시사철 만년설을 머리에 이고 있는 알프스 말이다. 옛날 같으면 상상도 못했을 얘기이다. 하지만 요즘은 눈 깜짝할 사이에 알프스를 넘을 수가 있다. 널찍하게 터널을 뚫어 차량들이 지나다닐 수 있도록 해놓았기 때문이다. 도로 옆에 선로(線路)까지 보이는 걸로 보아 기차로도 수월하게 넘나드는 모양이다. 길을 달리다보면 만년설을 뒤집어 쓴 수많은 산들이 나타났다 사라진다. 그리고 산들 사이에는 어김없이 호수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그 사이사이로 길이 나있다. 그러다가 산이 막기라도 할라치면 어김없이 뚫고 지나가 버린다. 우리를 인솔하고 있는 인솔자가 하던 얘기가 실감나는 순간이다. 그녀는 스위스에서 가장 많은 것 세 가지를 산과 호수, 그리고 동굴을 꼽았었다. 그녀가 말한 세 가지를 실컷 즐기며 여행을 하고 있는 셈이다. 하여간 아름답기 그지없는 길이다. 만년설을 뒤집어 쓴 바위산만 해도 아름답기 짝이 없는데 심심하면 호수들까지 고개를 내민다. 잠시도 눈을 돌릴 수 없는 시간들이 계속된다. 이런 걸 두고 눈이 호사를 누린다라는 표현을 쓰나보다.



밀라노에 도착한 버스는 우릴 낯선 거리에다 내려놓는다. 우리가 가려고 하는 두오모(Duomo di Milano)까지는 한참이나 떨어져있는데도 이곳에다 내려놓는 것을 보면, 이곳 밀라노 역시 구시가지는 대형버스의 진입을 막고 있는 모양이다.




낯선 거리를 잠시 걸으면 널따란 광장이 나타난다. 광장의 한가운데에는 동상 하나가 세워져 있다. ‘Cesare Beccaria’라는 이름표를 달고 있는 동상이다. 이탈리아의 계몽주의 형법학자인 체사레 베카리아(Cesare Beccaria, 1738~1794)를 말하는가 보다. 'Dei delitti e delle pene(범죄와 형벌에 관하여, 1764)'라는 저서에서 사형제도 자체를 부정했던 그 학자 말이다. 그는 근대적인 형벌론을 전개하면서 사법에 관한 세 가지 자연법을 제시하였다. , 첫째, 형벌의 목적은 재범을 방지하면서, 타인에게 경고를 주기 위한 것이며, 둘째, 재판은 신속하게 해야 하며, 셋째, 범죄의 예방은 형벌의 가혹성이 아니라 확실성이라는 것을 명확히 했다. 특히 그는 고문과 사형을 옹호하는 사람들을 공격하면서 범죄의 예방을 위한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밀라노의 귀족 집안에서 출생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모양이다.




밀라노는 역시 오래된 도시이다. 어디를 가나 고색창연한 옛 건물들이 즐비하다. 어느 것 하나 허투루 지나칠 수가 없을 정도로 매력적인 건물들이다. 밀라노에 가면 르네상스시대의 고풍스러운 중세문화를 엿볼 수 있다고 하더니 그게 사실이었던 모양이다.



길가에 자전거보관대가 보인다. 밀라노는 자전거의 천국으로 알려져 있다. 밀라노 교통국에서 운영하고 있는 바이크미(BikeMi)’라는 자전거 공영제가 그 증거란다, 2008년부터 운영되고 있는 ‘BikeMi 시스템에 의해 152곳의 보관소에 2,350여 대의 자전거가 운영되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 이곳도 역시 그중의 하나인 모양이다. 이런 자전거의 활성화 정책은 세계적인 박람회와 그 맥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1914년 이래 매년 개최되고 있는 자전거 및 모터사이클 관련 전문 박람회인 자전거 및 모터사이클 박람회(International Cycles and Motorcycles Exhibition)’가 바로 그것이다.



얼마쯤 걸었을까 골목 끝 저만큼에 고딕양식으로 지어진 거대한 건물이 나타난다. 보이는 것마다 하늘을 향해 뾰쪽하니 솟아오르게 지어진 건축양식 말이다. 밀라노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밀라노 두오모(Duomo di Milano)’라는데 아이들의 동화책에서나 볼 법한 아름다운 건축물이다. 두오모는 이탈리아어로 성당이다. 라틴어로 집을 뜻하는 domus에서 유래됐다고 하니 참조한다.




두오모(Duomo di Milano)는 수없이 많은 화려한 조각(彫刻)들과 첨탑(尖塔), 그리고 기둥으로 된 바로크, 신고딕, 네오클래식 양식의 집합체이다. 측면에는 화려한 장식물들이 수없이 많이 붙어 있다. 프랑스의 영향을 받은 작품들이란다. 그중에서도 눈길을 끄는 건 단연 인물상들이다. 사도와 성자들을 새긴 것이란다. 그 수가 무려 3,100개나 된다는데 맞는지는 모르겠다.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하지만 시간은 충분하지가 않다. 집사람을 광장에 남겨 놓은 채로 부리나케 성당으로 뛰어간다. 내부를 둘러보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이내 발길을 돌리고 만다. 매표소 앞에 늘어선 줄이 너무 길었기 때문이다. 자칫 줄을 서다가 주어진 시간이 다 지나가버릴 수도 있겠고, 어쩌다 운이 좋아 안으로 들어갔다 해도 구경보다는 달리시피 한 바퀴 돌아 나와야 하겠기에 말이다. 그러다간 다른 눈요깃거리까지도 다 놓쳐버리게 되니 어찌 발길을 돌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 먼저 성당의 앞에 있는 두오모광장으로 향한다. 성당의 전경(全景)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서이다. 건물 전체를 모두 담기 위해서는 꽤나 뒤로 물러서야만 했기 때문이다. 그만큼 성당의 규모가 크다는 얘기이다. 1865년에 만들어진 이 광장은 건축가 주세페 멘고니(Giuseppe Mengoni, 1829~1877)’가 디자인한 사각형의 널따란 광장이다. 광장에는 수많은 사람들로 넘친다. 이탈리아 어디가 안 그렇겠나만, 밀라노 역시 관광으로 잘 알려진 도시다. 매년 200만 명 이상이 찾는다고 하니 관광도시로 치부해도 될 일이다. 그게 비록 행사나 전시회에 참석하러 온 사람들이 대부분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사실 밀라노는 도시의 규모에 비해 눈여겨 볼 것은 많지가 않다. 두오모와 엠마누엘레 2세의 갤러리아, 스칼라 극장 등이 모여 있는 일대와 스포르체스코 카스텔로가 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에 비해 물가는 비싼 편이란다. 그래서 일반 여행자들은 밀라노에 들르지 않고 그냥 통과해버리기도 한다니 참조할 일이다.



광장의 중앙에는 비토리오 에마누엘레(Vittorio Emanuele)’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에르콜레 로사(Ercole Rosa)’의 작품(1896)이란다. 이 기마상은 산 마르티노 전투에서의 왕의 모습을 묘사한 것이고 반면에 하단의 부조는 피에몬체의 입성과 마젠타 전투후에 밀라노로 들어오는 프랑스 보병을 묘사한 것이란다.



광장은 중세풍의 건물들로 둘러싸여 있다. 건물들을 너나할 것 없이 로지아(loggia)를 통해 광장과 연결된다. 로지아는 건물의 1면 이상의 면이 벽이 없이 트인 방이나 홀 또는 회랑을 말한다. 지중해 연안 지역에서 발달했으며, 탁 트였으면서도 햇빛을 가릴 수 있는 방을 만들려는 의도에서 비롯되었다. 중세와 르네상스 이탈리아에서는 흔히 공공 광장과 연결되게 지어졌다.




광장에 서면 세계에서 네 번째로 크다는 고딕양식 성당(Duomo di Milano)의 전모(全貌)가 한눈에 들어온다. 예스러운 풍치가 그대로 드러나 보이는 웅장한 건축물로 화려함과 장엄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1386년 착공되어 완벽한 모습을 갖추기까지는 약 500년의 세월이 필요했단다. 하지만 그 기나긴 인고의 세월만큼 깊은 아름다움과 예술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참고로 두오모는 성당으로서의 기능만 갖고 있는 게 아니다. 근처에는 시청을 비롯한 주요 관청, 시민광장, 공공시설 등이 들어서 있어 단순한 종교적 장소를 넘어 도시를 대표하는 상징적인 명소이다. 때문에 많은 여행객들의 발길이 이곳으로 모여든다.



수십, 아니 수백은 되겠다. 하여튼 수를 헤아릴 수도 없을 만큼 많은 뾰쪽탑들이 하늘을 향하고 있다. 첨탑들인데 고딕양식의 전형적인 특징이 아닐까 싶다. 저런 첨탑들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두오모 테라스로 올라가야만 한다. 158개의 계단이 있는 성당의 먼 끝에 위치한 두 개의 문들을 통해 갈 수 있단다.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쉽게 올라갈 수도 있다니 참조한다. 물론 돈을 내야만 할 게다. 하여튼 데라스에 오르면 금 세공업자인 비니가 만든 13피트 높이의 금도금된 마돈나상이 있는 가장 높은 첨탑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입구의 청동문은 루도비코 폴리가기(Ludovico Poligaghi)’의 작품이다. ‘예수 태형부조가 새겨져 있는데 이를 만지면서 소원을 빌 경우 행운을 가져다준다고 알려져 있다.



흰 대리석으로 지어진 밀라노의 두오모는 높이 157미터, 너비 92미터의 거대한 규모를 자랑한다. 135개의 첨탑이 하늘 가득 숲을 이루고 있으며, 정교한 조각이 새겨진 청동문이 우아한 기품을 더한다. 안으로 들어가 보지는 못했지만 성당 내부도 볼거리로 넘친단다. 아름답게 조각된 52개의 기둥으로 이루어져 있고, 146개의 스테인드글라스가 고요한 어둠 속에서 화려한 빛을 발한다고 알려져 있다. 참고로 밀라노 두오모(Duomo di Milano)’는 밀라노에 있는 커다란 성당쯤으로 여기면 된다. 그중에서도 주교신부가 미사를 집전하는 성당, 즉 대성당이다. 밀라노에는 주교가 한 명 뿐이다. 당연히 대성당도 하나뿐이게 된다. 이로 인해 밀라노 두오모는 인칭대명사가 된다. 이태리에 있는 여러 개의 두오모 중에 밀라노에 위치한 두오모, 밀라노 두오모(밀라노대성당)’가 되는 것이다. 참고로 주교는 강림절, 사순절, 성탄절, 부활절, 오순절 등의 축일에는 대성당에 있어야 하며, 이곳에서 서품식을 집행해야 한다.


성당은 14세기 갈레아초 비스콘티가 착공했으나 그 완성은 19세기 나폴레옹에 의해서 이루어졌다고 한다. 지금 보고 있는 성당 전면부를 나폴레옹의 지시로 프랑스 건축가 보나빵테르가 1809년에 다시 지었다는 것이다. 이태리에 웬 나폴레옹이냐고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1535~1713년까지는 스페인의 영토였고, 이후 1815년까지는 프랑스의 지배를 받았었음을 기억해낸다면 그리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두오모 광장을 샅샅이 뒤져봤다면 이젠 자유로운 르네상스양식으로 지어졌다는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갤러리아(Galleria Vittorio Emanuele II)’로 들어가 볼 차례이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쇼핑거리로 알려진 이 갤러리아((galleria : 유리 지붕으로 된 넓은 통로나 안뜰 또는 상점가)는 성당을 뒤에 두었을 때 광장의 오른편에 위치하고 있다.





19세기 중반 유명 건축가 주세페 멘고니(Giuseppe Mengoni : 건물이 완공될 무렵 지붕에서 떨어져 죽었다고 한다)’에 의해 건립된 이곳은 두오모 광장에서 스칼라 광장까지 이어진 200미터 길이의 대형 아케이드(arcade :열주列柱에 의해 지탱되는 아치군과 그것이 조성하는 개방된 통로) 쇼핑공간이다. 글라스로 이루어진 드높은 천장 사이로 들어오는 빛은 이곳 거리를 더욱 아름답고 우아하게 만들어 준다.




갤러리아는 십자형태로 되어있는데 하나는 637피트길이, 나머지는 341피트이다. 둥근 천장은 철제와 유리로 되어있고 정상의 높이는 152피트이다. 팔각형 마당 위 루네트(lunette : 둥근 지붕이 벽과 접촉되는 곳에 생긴 반원 공간)에는 네 개의 모자이크가 있는데 유럽과 아프리카, 아시아, 아메리카를 나타내고, 개개의 팔 끝에 있는 루네트는 농업과 예술, 과학, 산업 등을 묘사한다고 한다.



둥근 천장의 프레스코화도 갤러리를 연상케 할 만큼 예술적 감각을 드러낸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쇼핑몰 중 하나인 아케이드는 화려한 카페와 우아한 상점들, 그리고 중요한 서점들이 줄지어 있다고 해서 밀라노의 응접실로도 불린다. 현지 트렌드(trend)를 보여주는 멋진 사람들과 관광객들로 늘 북적인다. 이곳에서는 굳이 물건을 구입하지 않아도 쇼핑거리를 거닐며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눈이 즐겁고, 기분이 한껏 들뜬다. 하지만 그 비싼 밀라노 물가(物價) 중에서도 호되게 비싼 편이라니 참조한다.




밀라노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 중의 하나가 패션(fashion)이다. 그래선지 이곳에도 명품 옷가게들이 꽤나 많이 보인다. 시간이 많지 않은 우리 같은 여행자들에게는 소중한 눈요깃거리가 아닐 수 없다. 뭔가 꼭 사야할 것이 있지 않은 이상 취침시간까지 줄여가며 패션거리까지 찾아갈 필요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참고로 밀라노에는 몬테 나폴레오네(Monte Napoleone)와 보르고스페소(Borgospesso), 델라 스피가(Della Spiga) 등의 이름난 패션 거리가 있다. 쇼핑이나 명품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까지도 밀라노에 온 이상은 한 번쯤은 꼭 찾게 되는 명소들이다. 세계 최고의 브랜드숍들이 늘어서 있고, 유명 디자이너들이 운영하는 매장의 본점 또한 즐비하기 때문이다. 굳이 그런 매장들을 둘러보지 않더라도 이곳을 거니는 사람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밀라노가 세계 패션의 중심지임을 오롯이 느낄 수 있다고 한다.




동서남북으로 펼쳐진 네 개의 패시지(passage : 통로)가 만나는 팔각형 중앙 돔의 아래 옛 이탈리아 왕국의 수도였던 피렌체, 로마, 토리노, 그리고 밀라노의 문장이 모자이크로 새겨져 있다. 네 개의 문장 중 가장 인기 있는 것은 토리노(Torino)의 문장이다. 황소의 생식기 부분에 오른쪽 발뒤꿈치를 대고 세 바퀴를 돌면 행운이 찾아온다는 속설 때문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돌았던지 가운데 부분이 움푹 파여 있을 정도다.



바닥에 그려진 로마의 문장. 로물루스와 레무스가 늑대의 젖을 먹고 자란다는 로마의 건국신화가 그려져 있다.



갤러리아를 통과하면 스칼라광장(Piazza della Scala)’이 나온다. 세계 최고의 오페라극장 중의 하나인 라 스칼라(Teatro alla Scala)’가 있는 곳,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세상을 내려다보고 있는 곳이다. 밀라노 시청사로 쓰고 있는 팔라초 마리노(Palazzo Marino)’의 예술성 또한 빼놓을 수 없다.



광장의 중앙에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동상(1872)이 있다. ‘피에트로 마니 (Pietro Magni)’1872년 작품이란다. 4명의 밀라노출신의 제자인 마르코 오지오노‘G. 안토니오 볼트라휘오’, ‘안드레아 살라이오’, 그리고 체사레 다 세스토가 단의 네 구석에 서있다.



연한 미색(米色)의 건물이 보인다. 매우 고풍스러우면서도 아름답다. ‘테트로 라 스칼라(Teatro alla Scala), 즉 스칼라극장이란다. 세계 3대 오페라하우스 중 하나인 스칼라극장은 177883일에 ’Nuovo Regio Ducal Teatro alla Scala‘라는 이름으로 살리에리의 L'Europa riconosciuta 공연과 함께 개장되었다. 건물의 이름은 산타마리아 델 라 스칼라 교회터에다 지은 데서 유래한다. 2차 대전(1943) 중에 폭격으로 부서졌다가 전쟁이 끝난 직후(19464) 3천석 규모의 대극장으로 재개관했다. 베르디, 푸치니, 로시니, 벨리니, 도니체티, 폰키엘리, 보이토, 칠레아, 마스카니 등 주요 이탈리아 작곡가의 오페라 작품들이 초연되어 오페라 역사상 대단히 큰 비중을 지닌 극장이며 무엇보다도 세계 최고의 성악가들이 서는 무대이기도 하다. 또한 이 극장은 실내 오페라를 상연하는 소극장이나 오페라 박물관(Museo della Scala), 발레학교 등의 시설도 있다.



극장의 오른쪽에는 팔라초 마리노(Palazzo Marino)가 있다. 밀라노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물 중의 하나로 1553년에 제노바의 은행가 토마소 마리노(Tommaso Marino)’가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지은 궁전이란다. 현재는 시청사로 쓰이고 있다. 건축사적으로는 그다지 비중 있는 건물은 아니지만 팔라초 마리노는 밀라노는 물론 이탈리아 통일사와 관련해 매우 의미 있는 장소 중 하나다. 1848318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지배하에 있던 밀라노에서 시민들이 언론 자유를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시위는 곧 외세 추방과 독립을 주장하는 무장봉기로 이어졌고 이후 4일간 밀라노 시내 곳곳에서 바리케이드를 친 시민군과 라데츠키 장군이 지휘하는 오스트리아 주둔군 간에 전투가 벌어진다. 우여곡절 끝에 실패로 끝나긴 했지만 5일 혁명은 리소르지멘토(이탈리아의 통일-독립 운동) 기간 중 외세의 지배에 대항해 일어난 최초의 독립전쟁으로 기록되고 있다. 이 때문에 밀라노 시민들은 지금도 정치적, 영토적 이탈리아 통일의 시발점이 된 사건으로서 5일 혁명에 대해 강한 역사적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혁명 기간 중 임시정부의 공식 신문<322>이 편집, 발행되던 장소가 바로 이 팔라초 마리노인 것이다.



광장의 한쪽은 도로이다. 공중은 전력선(電力線)들이 어지럽다. 이곳 밀라노 또한 트램(tram : 레일 위를 달리는 노면 전차)이 운행되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마침 트램 한 대가 지나간다. 예스러움이 물씬 풍기는 올드패션이다.



스칼라광장을 둘러보고 다시 두오모광장으로 되돌아 나가는 길(아래사진은 갤러리아의 스칼라광장쪽 입구이다), 갤러리아로 들어가려는데 아까 올 때는 무심코 지나쳤던 행사장이 하나 눈에 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전시회란다. 입구에서 망설이다가 그냥 발길을 돌리고 만다. 12유로라는 입장료가 부담스러워서는 아니다. 예술에 문외한인 내가 들어가 본다고 해봤자 그게 그거일 것 같아서이다. 거기다 주어진 시간까지 빠듯하고 말이다.




다시 돌아온 두오모광장, 성당 옆에 세워진 전광판이 눈에 확 들어온다. 삼성의 광고가 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누군가 그랬다. 외국에 나오면 모두가 애국자가 된다고. 가슴 뿌듯한 이 감정이 애국심인지는 몰라도, 마냥 즐겁고 행복한 순간이라는 것만은 주지의 사실이다.



밀라노에서의 하룻밤을 머물렀던 그린 모텔 밀란(Green Motel Milan)’

티치노 공원의 푸르름 한 가운데 자리하고 있으며, 마조레 호수까지 쉽게 걸어서 이동할 수 있다고 하지만 직접 체험해 볼 수는 없었다. 늦은 저녁에 들어가서 이른 아침에 나오다보니 그럴 틈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여간 한국의 모텔을 연상시키는 곳이다. 하지만 시설만큼은 괜찮은 편이다. 다만 아침 식사 때 계란요리를 볼 수 없다는 것만 뺀다면 말이다.


에필로그(epilogue), 언젠가 모 여행사에서 밀라노에 가면 꼭 해야 할 3가지를 발표한 일이 있었다. ‘스칼라 극장(Teatro Alla Scala)에서의 오페라(opera) 관람패션쇼 & 축구경기 관람’, 그리고 메르카토(Mercato, 노천시장)의 방문이다. 밀라노를 이해하는 첫 번째 키워드(key word)는 바로 오페라이다. 그리고 밀라노문화 예술의 중심에는 오페라와 스칼라극장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페라 관람을 첫 번째에다 놓아둔 이유일 것이다. 또한 밀라노는 프랑스 파리와 더불어 세계 최고의 패션도시다. 밀라노가 본산인 대표적인 명품들은 아르마니, 돌체앤가바나, 구찌, 미소니, 펜디, 에트로, 지안프랑코페레, 프라다 등이 있다. 세계적인 패션쇼와 전시회들도 밀라노에서 자주 개최된다. 그리고 축구도 역시 밀라노가 자랑하는 브랜드 중 하나이다. 세계적인 축구명문 AC 밀란과 인터밀란이 맞붙는 '밀라노 더비'는 이탈리아뿐만 아니라 전 세계 축구팬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니 둘 모두 보아두어야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맨 마지막은 메르카토(Mercato) 즉 노천시장 방문을 들었다. 화려한 매장에서는 느낄 수 없는 소박한 밀라노의 모습을 즐겨보라는 의미일 것이다. 더불어 밀라노 시민들의 생활상까지 엿보면서 말이다. 하지만 난 이 3가지 중 하나도 구경하지 못했다. 오후 늦게 밀라노에 도착했다가 이른 아침에 다음 행선지로 출발하는 타이트한 일정 때문이다. 미리 알았고 또한 그걸 원했으면서도 실행하지 못한 이유이다. 인간은 보통 원하면서도 하지 못할 때‘를 두고 가장 억울하다고들 한다. 이번 밀라노 여행이 바로 그랬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패키지여행에서 너무 많을 것을 바랄 수는 없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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