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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년 나해 10월7일 수요일 [(백) 묵주 기도의 동정 마리아 기념일]
[수도회] 땅이 하늘이 되도록 -
기경호 프란치스코 작은 형제회(프란치스코회) 신부 -
○ 제1독서 요나 4,1-11
+ 복음 루카 11,1-4
16세기 중엽 오스만 제국(현재의 터키를 중심으로 한 이슬람 제국)은
세력 확장을 위하여 유럽을 침공하였다. 1571년 10월 7일 그리스도교
연합군은 그리스의 레판토 항구 앞바다에서 벌인 ‘레판토 해전’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이 전투의 대승은 묵주 기도를 통한 성모님의 간구로
하느님께서 함께하신 덕분이라 여기고, 이를 기억하고자 비오 5세 교황은 ‘
승리의 성모 축일’을 제정하였다. 훗날 ‘묵주 기도의 동정 마리아 기념일’
로 이름이 바뀌었다.
◈ 오늘의 묵상
하느님의 말씀을 피하여 요나가 줄행랑을 친 이유가 오늘 독서에서
밝혀집니다. “아, 주님! 저는 당신께서 자비하시고 너그러우신
하느님이시며, 분노에 더디시고 자애가 크시며, 벌하시다가도 쉬이 마음을
돌리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느님께서 ‘자비하시고
너그러우신 분’이시라는 사실은 탈출 34,6-7에서 이미 선포된 그분의
이름이며 속성이기도 합니다.
니네베는 아시리아의 수도이고 아시리아는 이스라엘을 괴롭힌 나라인데,
원수인 니네베에게 하느님께서 자비를 베푸시는 것이 싫어서 요나는
그분께 화를 냅니다.
이런 배경 때문에 요나서는 에즈라 시대에 유배에서 돌아와 너무
자신들에게만 갇혀 살던 유다교의 경향을 비판하는 예언서로 평가됩니다.
예언자는 우선적으로 인간을 구원하시려는 하느님의 의지를 확신한
사람으로서, 통상적으로 악을 고발하는 것으로 자신의 사명을 시작합니다.
그러나 그 당시 이방인들에 대하여 모두 배타적인 분위기였기에, 예언자
혼자서 이방인들에 대한 하느님의 구원을 역설하게 되면 시대를 역행할
뿐 아니라, 주위 사람들로부터 왕따를 당할 수도 있어 이것 또한
고통스러운 일이었겠죠.
아주까리가 요나 머리 위로 그늘을 드리워 그를 고통스러운 더위에서
구해 주었지만, 벌레 하나가 아주까리를 쏠아 먹어 시들어 버립니다.
게다가 해가 떠오르고 뜨거운 동풍이 불어오자, 요나는 기절할 지경이
되어 죽기를 자청합니다. 물론 익살스러운 표현입니다만, 아주까리
때문에 투덜거리는 요나와, 앞뒤를 가리지 못하는 어린이만 해도
십이만이나 되고 가축도 많이 살고 있는 니네베의 회개와 구원을 위하여
측은히 여기시는 주님의 모습이 매우 대조적이며 훌륭한 묵상 내용이지요.
주님의 기도에서도, 우리에 대한 하느님의 용서와 우리에게 잘못한
이들에 대한 우리의 용서는 서로 닮아서 나란히 갑니다. 악인의 죽음을
기뻐하지 않으시고 그가 돌아서서 사는 것을 바라시는(에제 33,11 참조)
‘자비하시고 너그러우신’ 하느님의 마음을 깨달을 때, 우리도 그 하느님께
배운 자비와 용서를 실천할 수 있을 것입니다.
- 매일 미사 -
◈ [서울] 묵주 기도의 동정 마리아 기념일
2015년 나해 10월7일 수요일 [(백) 묵주 기도의 동정 마리아 기념일]
제1독서
<네가 이 아주까리를 그토록 동정하는구나! 이 커다란 성읍 니네베를
내가 어찌 동정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 요나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4,1-11
복음
<주님, 저희에게도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 주십시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1-4
신학교에서 지낼 때입니다. 매일 저녁 7시 15분이면 묵주기도를
하였습니다. 혼자 할 때도 있지만 함께 할 때도 많았습니다. 본당
신학생들과 함께 하기도 하고, 친구들과 함께 하기도 하고, 교구 모임과
함께 하기도 하였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신학교에는 묵주를 들고, 기도를 하는 신학생들의 기도 소리가
가득했습니다. 그 기도는 신학생들을 지켜주는 힘이 되었습니다.
아이들이 예방 주사를 맞는 것처럼 묵주기도는 신학생들을 악의
유혹으로부터 지켜 주었습니다.
봉성체를 갈 때도 그렇고, 어딜 갈 때면 신자 분들의 차를 타곤
하였습니다. 고마운 마음에 차를 타면 잠시 기도를 하였습니다. 주님의
기도, 성모송을 함께 하였습니다. 짧은 기도이지만 신자 분들은
좋아하셨습니다. 저도 차비를 내지 않는 대신 기도를 함께하니 조금은 덜
미안했습니다. 예전에 어르신들은 밥을 풀 때도 잠시 기도를 하셨습니다.
지금 내가 이루는 모든 일들이 하느님의 도움심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면 겸손해 질 것입니다.
선배 신부님 중에 매일 같은 시간에 기도하는 분이 있습니다. 그 시간에는
본당의 모든 교우들이 함께 기도한다고 하였습니다. 술 한 잔 하다가도
시간이 되면 기도하시는 신부님이 참 좋게 보였습니다. 성소
후원회원들께서도 매일 저녁 10시면 고리기도를 하고 계십니다.
신학생들과 사제들을 위해서 기도를 하십니다. 그분들의 기도는
신학생들과 사제들에게 커다란 힘이 되고 있습니다.
소중한 일이 있습니다. 가족들과 함께 지내는 시간입니다. 기도하는
시간입니다. 하루의 삶을 성찰하는 시간입니다. 공동선을 위해서 함께
연대하는 시간입니다. 책을 읽는 시간입니다. 이웃을 사랑하는
시간입니다. 나의 것을 나누는 시간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시간입니다.
감사하는 시간입니다.
도시에는 많은 차들이 있습니다. 차들은 각자의 목적지를 향해서 분주하게
움직입니다. 오래된 차도, 이제 막 나온 새 차도, 서민들이 타는 경차도,
고급차도 차의 목적은 정해진 장소를 향해서 달려가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길에도 원칙과 규칙이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차라고 해도, 아무리
급한 차라고 해도 꼭 지켜야 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신호등’입니다.
파란 불에서는 가도 되지만, 황색 불에서는 속도를 줄이고 빨간 불에서는
무조건 서야합니다. 앞만 보고 달리는 차가, 빨간 불에 그냥 달려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물론 다행히 별일이 없을 수도 있지만, 빨간 불에서
달리면 엄청난 사고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본인은 물론 다른
사람들에게도 피해를 줄 수도 있습니다.
사제들이 1년에 한 번씩 피정을 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입니다. 지금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어디까지 왔는지, 어디로 가야하는지를 생각하게
하는 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아무리 급해도 빨간 불에서는 서야 하듯이
아무리 급해도 신앙인에게 기도의 시간은 필요한 것입니다.
파란 불이 길고, 빨간 불은 짧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짧아도 빨간 불은
소중한 규칙입니다. 우리가 하루 중에 대부분은 파란 불처럼 움직이고
행동하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짧은 시간이라도 기도의 시간을 잊어
먹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방향을 잃어버린 차는, 목적지를 알지 못하는
차는 아무리 달려도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소중한 일을 먼저 하십시오. 그리고 중요한
일을 하십시오. 이기적으로 살기에 우리의 하루는 너무나 짧기
때문입니다.’
- 서울 대교구 성소국장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
◈ [서울] 하느님 힘내세요.
‘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라는 노래가사 참 좋다고 봅니다.
어린 자식들이 하는 이 노래에 부모는 정말 힘 솟아 일할 맛나지요.
부모는 자녀들에게 일생을 몽땅 내어줄 힘까지 생기며 신날 테고요.
피조물도 창조주께 마찬가집니다.‘하느님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
신앙인들의 기도는 ‘거룩하신 하느님 이제와 영원히 저희와 함께 살아요.
저희 인류가 형제처럼 서로 평화롭게 잘 살 테니까요.’라야 한다잖아요.
“너희는 기도할 때 이렇게 하여라.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소서. 날마다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저희에게 잘못한 모든 이를 저희도 용서하오니,
저희의 죄를 용서하시고,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소서.
(루카 11,2~4)”
- 서울 대교구 이기정 사도요한 신부 -
◈ [인천] 주님의 창으로 바라보는 우리가 바쳐야 할 기도
2015년 나해 10월7일 수요일 [(백) 묵주 기도의 동정 마리아 기념일]
제1독서
<네가 이 아주까리를 그토록 동정하는구나! 이 커다란 성읍 니네베를
내가 어찌 동정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 요나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4,1-11
복음
<주님, 저희에게도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 주십시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1-4
소통과 공감에 대한 말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소통과 공감이 이루어질
때, 이 사회는 더욱 더 함께 할 수 있으며 이로써 살기 좋은 세상이 될 수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이 소통과 공감이 정말로 힘든 것 같습니다.
부부 사이에서도, 가정 안에서도, 직장 안에서도, 교회 안에서도, 내가
만나는 이웃들과의 관계 안에서도 이 소통과 공감이 이루어지지 않아서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미국의 심리학자 어빈 얄롬은 개인 간의 소통과 공감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창으로 바라보기’가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내 편의 창으로 바라보는 데만 골몰할 때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말도 있듯이, 나의 행동에
대해서는 늘 정당화를 시킵니다. 그러나 남의 행동에 대해서는 엄격한
잣대를 댈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래서 어떤 옳은 일, 칭찬 받을 일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판단을 내리지 못하곤 합니다. 이렇게 내 편의
창으로만 바라보고 있기에 나 외의 것에 대해서는 절대로 공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어떤 친구가 연필을 빌려달라고 청합니다. 만약 내 편의 창으로 바라보면
내 연필 닳는 것이 너무 아까워서 빌려주는 것이 아까워 망설이게 됩니다.
하지만 상대방의 창으로 바라볼 때면 어떨까요? ‘얼마나 급하면 내게
연필을 빌려달라고 했을까? 급하게 쓰면 틀릴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지우개도 함께 빌려주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마음을 써 주는 친구가 있다면 어떻겠습니까? 특별히 내 마음이
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 친구를 유심히 보게 될 것이고,
어려움에 처하게 되면 적극적으로 도와줄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아까워서 빌려주지 않으려는 모습이 보이게 되면, 그 친구에 대한 관심을
접게 될 것이고 결국 어렵고 힘들 때에도 아무런 태도도 보이지 않을
것입니다.
소통과 공감은 바로 이렇게 내 편의 창이 아닌, 상대방의 창으로 바라보는
것이 우선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생각하다보니, 주님과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님과 하나 되어야 한다고 하지요.
즉, 주님과의 진정한 소통이 이루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관계가
어떤가요? 주님의 창으로 바라보기 보다는, 내 창으로 바라보는 것만을
끊임없이 이야기하면서 결국 불평불만의 기도를 했던 것은 아닐까요?
묵주 기도의 동정 마리아 기념일인 오늘, 복음은 기도에 대한 말씀을
전해줍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소서. 날마다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저희에게 잘못한 모든
이를 저희도 용서하오니, 저희의 죄를 용서하시고,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소서.”
이 기도가 바로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이며, 주님의 창으로 바라보는
우리가 바쳐야 할 기도였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내 창으로만 보이는
기도를 하는 것이 아닐까요?
듣는 사람이 되려면 먼저 기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성모님, 우리의 어머니.
보통의 삶
제 부모님께서는 그냥 보통의 다른 부모님과 똑같다고 생각했습니다.
평생을 아이들을 가르치는데 쓰신 아버지, 그리고 집에서 내조를 하면서
평생을 보내신 어머니. 이 모습이 그냥 보통의 모습이라고 어렸을 때부터
쭉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중년의 나이를 먹고 보니 보통으로 산다는
것이 쉽지 않음을 비로소 깨닫게 됩니다. 그 보통이 바로 가장 최선의
모습이었고, 가장 아름다운 모습인데 말입니다.
보통의 모습이라는 것은 이쪽도 저쪽도 치우치지 않는 모습입니다.
남에게 상처 주는 것을 못하고 남을 누르고 올라서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적도 없습니다. 그래서 많은 재산과 높은 직위를 갖는 것은 아니지만,
사소한 일상 안에서 기쁨과 행복을 찾을 수 있는 자리인 것입니다.
대충 산다고 해서 이 보통의 삶을 보낼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보통의 삶을 살기 위해서도 엄청난 노력이 필요함을 깨닫게 되네요.
그리고 자신의 힘만으로도 되는 것이 아님 역시 깨닫습니다. 바로 주님의
보살핌 없이는 이 보통의 삶 역시 불가능한 것입니다.
보통의 삶. 정말로 닮고 싶고 따르고 싶은 길임을 이 새벽에 묵상하며
주님께 기도합니다.
제 그림자입니다. ㅋㅋㅋ
◈ [수도회] 알타반의 말씀사랑
2015년 나해 10월7일 묵주기도의 동정마리아 기념일
<너희는 기도할 때 이렇게 하여라.> (루카 11,2)
여러분은 기도를 잘 하십니까? 잘 안되시나요?
어떻게 하면 기도를 잘 할 수 있는지 누가 좀 가르쳐 주면 좋겠지요?
당연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그랬으니까요.
사실 가장 훌륭한 기도는 가장 쉽고 단순한 기도입니다.
출출문장으로 미사여구를 섞어가며
눈물과 아멘으로 기도하는 것이 최상의 기도는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직접 가르쳐 주신 "주님의 기도"(Pater Noster)가
최상의 기도이고 천년의 역사 안에서 수많은 기적과 은총을 가져다 준
"성모송"(Ave Maria)이 가장 아름다운 기도이며
"영광송"(Gloria)은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
바쳐드리는 최상의 흠숭입니다.
그러니 기도가 어렵다 하지 말고 "주모경"만 정성스럽게 바치면 됩니다.
오늘 묵주기도의 성모 마리아 축일에
주모경으로 이루어진 묵주기도 5단을 정성스럽게 바쳐 봅시다.
나의 간절한 염원과 올바른 지향을 담아서...
- 구속주회 오상선 바오로 신부 -
◈ [수도회] "저희에게도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 주십시오."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강론 묵상
2015년 나해 10월7일 수요일 묵주 기도의 동정 마리아 기념일.
"저희에게도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 주십시오."(루카 11,1-4)
날마다 기도할 힘을 주시는 분은 우리의 주님이십니다.
주님의 힘을 믿기에 모든 기도는 은총이 됩니다.
우리의 일용할 양식은 분명 기도입니다.
기도는 나눔입니다.
주님과 함께 나누는 사이가 되는 것입니다.
기도를 모른다는 것은 하느님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기도를 통해 우리는 환희와 빛 고통과 영광의 신비를 체험하게 됩니다.
일상의 모든 것 안에서 하느님이 중심이 되는
새로운 길을 만나게 됩니다.
기도는 손님이 되는 것이 아니라 주님과 이제 하나되어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참된 기도는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과 하나되어
모든 것과 사랑을 나누는 것입니다.
환희, 고통 빛, 영광의 주체는 오직 주님이십니다.
사랑의 주님은 모든 것을 나누십니다.
그것이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 구속주회 한상우 바오로 신부 -
◈ [수도회] 땅이 하늘이 되도록 - 기 프란치스코 신부
2015년 나해 10월7일 수요일 묵주 기도의 동정 마리아 기념
루카 11,1-4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시며...”(루카 11,2)
땅이 하늘이 되도록
오늘은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주님의 기도’ 2절을 묵상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먼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게
해달라고 청하라고 가르치십니다. 그 누구도 스스로 거룩하게 될 수
없으며 하느님의 거룩함이 드러날 때 그 거룩함으로 인하여 거룩하게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무엇보다도 먼저 성 프란치스코처럼 그분의 비추심으로 주님의
은혜가 얼마나 넓고 당신의 약속이 얼마나 길며, 위엄은 얼마나 높고
판단은 얼마나 깊은지 깨닫게 해달라고 청해야겠습니다(‘주님의 기도’
묵상).
하느님께서는 인간적이고 지상적인 모든 것을 비추어주십니다. “영원한
분이 일시적인 것을, 불멸이 변천해가는 것을, 천상의 분이 지상적인
것을, 자비로우신 분이 인색한 자를,창조주가 피조물을, 공고하시고
안전하신 분이 흔들리고 불안한 자를, 평화로우신 분이 산만한 자를
비추어주십니다.”
우리는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자신을 거룩하게 하여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레위 11,44; 19,2)는 부르심에 따라 세례로 거룩해진 그
거룩함을 매일 이어가야 합니다. 내 힘과 뜻이 아니라 그분의 거룩함이
내 안에서 드러나도록 영혼을 깨끗하게 하며 주님의 말씀을 경청함으로써
그분의 영이 내 안에서 살아 숨 쉬게 해야 합니다. 이것이야말로 참다운
나 됨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다음으로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소서.”(11,2) 하고 기도하라고
가르치십니다. 여기서 ‘나라’는 공간이나 영토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통치’나 ‘지배’를 의미합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통치해주시는 “그곳에는
주님께 대한 또렷한 바라봄이 있고, 주님께 대한 완전한 사랑이 있고,
주님과의 복된 사귐이 있으며 주님의 영원한 누림이 있습니다.”
(‘주님의 기도’ 묵상)
예수님께서는 “내 아버지께 복을 받은 이들아, 와서, 세상 창조 때부터
너희를 위하여 준비된 나라를 차지하여라.”(마태 25,34) 하고
초대하십니다. 아버지의 나라를 차지하려면 무엇보다도 아버지의 뜻을
실행해야 할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질 때 모든 것은 지혜롭고
질서를 잡고 사랑의 나라가 도래할 것입니다.
아버지의 뜻을 온 마음과 정성과 혼을 다해 실행할 때 땅이 하늘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아버지의 이름이 드러나게 해달라고 청하는 것도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도 그저 내면의 평화를 찾고
다른 사람보다 더 거룩하게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님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이 기도는 개인차원의 청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차원을 지닙니다.
아버지의 나라는 나 홀로 문제없이 잘 먹고 잘 살면 되는 나라가 결코
아닙니다. 그 나라는 모두가 연대하여 함께 하며 서로의 아픔과 고통, 말
못하는 한숨소리, 인간 존엄성의 침해, 경제적 사회적 불의, 온갖 차별과
박해가 없는 살맛나는 세상이 되어야 합니다.
자본의 우상화, 인간을 도구화하는 노동, 가진 자와 힘 있는 자들 중심의
사회, 국민의 인간다운 삶보다는 경제논리를 앞세우는 정치, 생명이
경시되고 최소한의 인간성마저 존중받지 못하는 사회, 생태환경의
심각한 파괴, 교회마저도 상업화의 길로 치닫는 모습은 우리를 슬프게
합니다. 이런 삶의 자리에서 과연 주님의 이름이 거룩히 드러날 수
있을지, 아버지의 나라가 왔다고 할 수 있을지... 하느님을 반사하는
거울이 되지 못한 채 흉내만 내며 사는 자신을 보며 가슴을 치는
오늘입니다.
-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
◈ [청주] 기도하는 법|반신부의 복음 묵상
2015년 나해 10월7일 수요일 [(백) 묵주 기도의 동정 마리아 기념일]
<주님, 저희에게도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 주십시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1-4
기도하는 법
기도는 하느님께 대한 열망이고 형언할 수 없는 사랑이며 하느님의
선물입니다(성 이냐시오). 그리고 “기도는 하면 할수록 더 잘하게 됩니다.
기도를 자주 함으로써 기도를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를 하지 않는
사람은 어느 누구도 기도의 참 맛을 느낄 수가 없습니다”(알베리오네).
“기도의 본질적 요소는 많이 생각하는 데에 있지 않고, 많이 사랑하는
데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을 일깨워 주는 것들을 즉시 생활 실천으로
옮겨야 합니다”(예수의 성녀 데레사).
오늘 복음을 보면 다섯 가지 청원을 볼 수 있는데 앞의 두 청원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소서’하며
하느님 나라의 도래를 고대하는 청원이요, 뒤의 세 가지는 ‘날마다 필요한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도 용서 하오니 저희의
죄를 용서 하시고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소서’ 하며 하느님 나라를
고대하며 살아가는 동안에 꼭 필요한 것을 구하는 기도입니다.
결국 아버지의 나라가 이 땅에 실현되고, 하느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의
화해가 이루어지는 것, 이것을 위해서 예수님께서 오셨고 또 이것을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기도는 사랑으로 가득 차 있을수록 그만큼 더 가치가
있습니다”(샤를 드 푸코) “기도란? 사랑의 행위 외에 다른 아무것도
아닙니다.”(예수의 성녀 데레사).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도
주님을 사랑합니다. 사랑과 사랑이 통하는 관계를 이루는 것이 기도의
본질입니다.
주님의 기도를 너무 자주 흔하게 바치는 기도이기에 고루하고 낡은
기도로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단순하고 간결하면서도 완전한 기도임에도
불구하고 화려한 미사여구와 성경말씀을 덧붙여 길게 늘어놓아야 기도를
잘하는 것으로 인식합니다. 그래서 주님의 기도는 그저 입으로 외우는
것으로 만족하기 일쑤입니다. 그러나 분명 주님의 기도는 주님께서 친히
가르쳐 주신 가장 완전한 기도이면서도 깊이 있는 기도이니 입술로가
아니라 마음으로 사랑을 담아 기도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기도시간을 마련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종종 텔레비전을 보다가는
기도도 하지 않고 잠을 자기도 합니다. 남들에게는 기도 시간을 꼭
챙기라고 하면서도 말입니다. 사람이 숨을 쉬지 않으면 죽습니다.
마찬가지로 신앙인이 기도를 멈춘다는 것은 곧 죽는 것입니다. 따라서 늘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나 “기도할 때 특별한 방법을 찾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저 단순한 말로 청하십시오. 무엇인가 다른 것을 청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며 그것을 찾느라고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단순하게 바라는 것을
청하고 ‘다만 내 뜻대로가 아니고 주님 뜻대로’ 라고 말하십시오.”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 청주교구 청주 성모 병원 반영억 라파엘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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