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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사회와 위험사회의 성찰
김 영 호
<目 次> | ||
I. 문제 제기 II. 정보사회 1. 정보사회의 일상생활 2. 비전의 성찰 III. 위험사회 1. 위험사회의 일상생활 2. 실재의 성찰 IV. 개체화 테제 V . 맺는 말 <참고문헌> |
I. 문제 제기
정보사회에 대한 잔뜩 부풀었던 막연한 기대는 컴퓨터사회의 제반문제들에 대한 지식인들의 우려의 목소리가 일반인들에게 알려지자 조금은 희석되기도 하였지만 그래도 밀레니엄을 맞는 인류에게 정보사회는 회의보다는 기대를 더 갖게 한다. 지나온 천년에는 산업문명을 꽃 피운 바 있는 자신감의 인류가 목전에 둔 밀레니엄에 만개한 정보문명을 그리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하겠다.
미래에 대한 기대는 현재의 상황이 만족스럽지 못하면 더 커지게 마련인데, 현대사회를 흔히 회자되는 세기말 현상으로 인한 최악의 시나리오에 꿰어 맞출 필요까지는 없지만 그래도 현대사회가 안고 있는 산업화의 의도되지 않은 부작용을 간과해서도 안 되는 시점에 와 있다. 위험사회에 대한 논의는 선진산업사회를 구현하고 이미 정보사회에 진입하고 있는 서구의 몇 나라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성숙한 산업화 이전단계에서는 개인은 더 많은 위험에 노출되어 있었다고 해서 하는 말이 아니다. 산업화에 의한 위험의 증폭은 위험에 대한 사회의식을 자동적으로 일으키는 것이 아니다. 위험을 위험으로 제대로 느끼는 높은 수준의 사회의식이 목전에 둔 정보사회를 지혜롭게 맞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산업사회가 왜 위험사회의 유형으로 설명되는지에 대한 성찰은 정보사회에 대한 성찰로 이어질 수 있다.
지구촌의 시대가 이미 정착된 오늘날 지구상의 모든 나라, 모든 민족들은 종전의 국가단위, 민족단위가 아닌 새로운 경제, 정치 그리고 문화단위로 엮여 있는 것이다. 이 엮임의 상태, 바꾸어 말하면 네트워킹된 상황에서는 네 위험, 내 위험이 따로 없고 이 곳에서의 경쟁은 보이지 않는 상품, 즉 정보에 의해 좌우된다. 정보의 생산 그 자체는 그다지 큰 의미가 있지 않다. 오히려 생산된 정보를 얼마나 빨리, 정확하게 소비되어 다시 재생산되는가의 과정이 더 중요하다. 즉 생산된 정보의 유통을 위한 정보기반의 구축여부에 정보사회의 성패가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동차 도로망과 비슷한 체계인 통신망에 의한 정보고속도로 구축을 위한 밀도 있는 정책을 엄청난 비용부담임에도 불구하고 앞서가는 나라들이 앞다투어 추진하고 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미래정보사회에서의 경쟁력확보가 어디에 달려 있는지 명확해 진다.
이 글에서 정보사회와 위험사회를 동시에 다루는 의도는 정보사회도 마땅히 인류에게 많은 혜택을 줄 것이 틀림없지만 이 사회유형에서도 역시 의도되지 않은 부작용이 얼마든지 생길 수 있음을 고려해 보자는 데 있다. 봉건적 질곡으로부터 벗어나게 해 준 산업사회를 위험사회의 유형으로 분석하여 산업사회가 안고 있는 모순과 문제점을 극복하고자 하는 시도는 성찰적 근대화라는 주제어에 의해 풍성하게 행해지고 있다. 우리가 경험하는 근대화는 완성된 근대화가 아닌 ‘돌진적 근대화’에 의한 반쪽 짜리 근대화이고 나머지 반쪽을 옳게 채우는 과정이 성찰적 근대화이고, 이는 위험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대응을 전제로 한다는 식의 학문적 논의이다.
산업화든 정보화든 사회변동에 의한 개인 일상생활의 변화를 개체화 테제로 압축하고 이를 바탕으로 위험에 대한 의식과 냉철한 인식을 갖게 하여 ‘준비된 정보사회’를 맞을 채비, 즉 성찰적 정보화를 위한 인식 지평을 넓혀 보자는 것이 필자의 의도이다.
II. 정보사회
정보사회는 총체적인 변화를 가져온다. 제도적인 변화의 소용돌이에 의식의 세계가 예외일 수 없어 생활세계는 물론 사고방식과 행동양식도 산업사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일 것이다. 정보사회 구성원인 개인은 정보마인드 없이는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없게 됨은 자명하다. 정보사회는 사회적 부가가치의 원천을 종전의 물질자원과 에너지에서 지식․정보에 두고 있어 지식정보사회라고 불려 지기도 한다. 인간의 지적 능력이 아주 중요해 지고 정보관련 기술이 사회경제활동의 중심이 되는 지식정보사회에서 인간의 사고구조나 행동양식은 과거의 life chance, 즉 얼마만큼 사느냐로부터 life style, 즉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초점이 더 마쳐지게 된다.1)
사회구조도 다원적이고 보편적인 열린사회구조를 지향하고, 개인은 자주적이고 주관적이며 ‘무엇이든지 가능하다’라는 의미의 임의성이 강한 조합주의적 사고방식에 기초한 행동양식을 보이게 된다.
1. 정보사회의 일상생활
정보사회는 엄청난 양의 정보에 의해 유지되는 사회이다. 상품으로서의 정보는 우리에게 익숙한 상품의 생산과는 다르다. ‘육체노동의 생산성’에서 ‘지식노동의 생산성’으로 전환은 상품생산의 영역이 무형의 상징적 상품을 점점 더 포괄하게 된다. 이에 따라 대량생산, 대량소비로 상징되는 산업사회의 규모의 경제가 통용되지 않고, 정보 그 자체가 무형의 생산물이기 때문에 가공성이 용이하다. 그리고 다품종소량생산이 유리하듯 상품생산의 유연성이 매우 높다. 이 같은 특징의 지식정보사회는 산업사회와는 다른 또는 산업사회의 조직질서에서는 중요하지 않던 것들이 부각되어 진다. 간략하게 나열해 보면 경쟁력의 근간이 되는 창의력과 상상력, 표준화되고 획일화된 산업사회적 인간상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다양성에 대한 욕구, 참여민주주의와 정보민주주의를 가능케 하는 다원화와 분권화, 정보취득의 신속성을 가져오는 시공간의 응축, 직접적 대면적 상호작용에서 간접적 추상적 상호작용으로의 전환인 3차적 인간관계와 공동체 그리고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말이 실감되는 조직의 탄력성 등이다.2)
산업사회의 원천적 징표인 시꺼먼 굴뚝으로 상징되는 제조업, 신분상승을 가시화 하는 화이트칼라들의 사무실, 일반대중의 의식과 행동에 가장 큰 영향을 행사하는 대중매체 등의 세 가지 분야의 변화의 내용을 살펴보면 앞으로의 성숙된 정보사회가 지금까지의 전통적 산업사회와 얼마나 다른지가 잘 나타난다. 먼저 제조업의 변화는 대량생산을 위한 표준치수의 비중이 줄어들어 개별적 주문생산이 활발해 진다. 이는 소비자가 생산에 참여함으로써 자연스레 생산의 통제 가능성이 열리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서류 없는 사무실로의 변화는 쌍방향통신능력의 제고, 에너지 및 부동산 비용의 절감압박 그리고 무엇보다도 환경정화비용의 상승압박으로 가내전자근무와 재택근무가 활성화되면서 기존의 사무실개념은 혁명적인 변화를 맞게 된다. 컴퓨터 통신을 비롯하여 통신의 다양한 가능성은 모든 것이 네트워크체제하에 편입되어 맞물려 돌아가게 하여 익명의 다수를 일방적으로 상대한 종전의 대중매체는 탈대중화 할 수밖에 없다.3)
변화는 항상 갈등을 야기 시키게 마련이다. 제2물결 산업사회와 제3물결 정보사회가 맞부딪치고 있는 현재의 시점에서는 이 갈등으로 말미암아 사회는 물론 개인은 혼란스러움에 빠져 심지어는 다가오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마저 갖게 된다. 그러나 이 갈등 내지는 두려움의 원인은 명료하다. 산업사회의 숨겨진 구조의 원리 또는 규범들이 밝혀지고 이것들의 변화하는 모습을 이해하면 된다. 산업사회를 떠받치고 있는 여섯 가지의 규범이 표준화, 전문화, 동시화, 집중화, 극대화, 중앙집권화임은 이미 너무 잘 알려져 있다. 우리의 관심은 이 여섯 가지의 규범에 의해 지탱되어온 사회가 분화되고, 개인의 생활세계와 의식이 변하는 모습이다.
다원적 유연사회라는 사회개방체제의 모습으로 정보사회의 내용을 묘사하는 의견이 대체로 받아 들여 지고 있다. ‘다원적’은 사회의 각 영역이 완고한 경계를 갖고 하나의 유기체인 양 일사불란하게 조직되던 제도의 변화를 명시한다. 정보화의 파급효과는 국가간의 국경개념을 무색케 하는 월드와이드웹WWW사회를 가능케 하였듯이 한 사회의 각 영역간의 폐쇄성을 이완시켰다. 사회가 발전할수록 사회분화는 더 심화되지만 이 분화에 의한 다양한 실체들이 서로 긴밀한 영향하에 엮여 있게 된다. ‘유연사회’는 옳고 그름, 선과 악 등의 판단을 하게되는 배열적 사고가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 나름 데로의 가치를 부여하는 조합적 사고로 전환되어 열린사회의 경향을 낳는다. 이 사회에서는 표준화되고 획일화된 생활세계에 의한 틀 속에 갇힌 듯한 생활을 하는 개인보다는 열린 마음으로 다양한 생활양식을 보이는 개성화 된 퍼스낼리티가 용납되어 개성의 편차에 의한 경쟁력을 더 갖게 되는 사회분위기가 일상생활을 지배하게 되는 것이다. 사회의 구석구석까지 보급되는 전산화에 의한 각 사회 실체들의 온라인화는 합리성을 높혀 줄뿐 아니라 사회네트워크체제의 유연성을 가져와 결국 가치체계의 다원화가 자연스레 자리잡게 된다.4)
산업사회의 일상생활에서 일어날 수 있는 변화로는 우선 인터넷, 사이버스페이스 등에 의한 기존의 시간․공간의 차원을 넘어선 커뮤니케이션 수단의 변화로 꾸준한 인간관계가 단편적이고 인스턴트적인 관계로 바뀌고, 전자오락에 의한 생사결정의 용이성에 기인한 인간 존엄성에 대한 가치하락이 우려된다. 합리적 질서와 인간이성에 의한 사회유지는 인간중심의 사회 성격을 잃지 않으려는 부단한 노력인 계몽사상이래 꾸준히 있어 왔지만 이러한 노력의 귀결이 밝지 만은 않게 되었다. 정보사회 비관론에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더라도 정보사회도 위험사회의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지 않겠느냐는 우려를 갖고 대책을 강구해 보는 것이 시급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정보화의 긍정적․부정적 결과들에 대한 연구자들의 의견은 정보사회의 완숙한 실체가 아직 나타나지 않은 상태를 반영하듯 매우 다양하다. 그럼에도 낙관론과 비관론으로 대별되는 정보사회의 긍정적, 부정적 모습의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기술한 표5)를 인용해 보는데, 이는 우리에게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대처해야 되는가의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다.
주제영역 | 긍정적 결과 | 부정적 결과 |
산업경제적 측면 | 생산성 향상 합리화 노동의 질적 향상 소비자 중심의 경제 새로운 직업의 창출 창의성 자율성의 중시 친환경적 기술 | 불확실성의 증대 불안정성의 심화 대량실업 소비주의의 확산 수많은 직업의 소멸 스트레스의 심화 새로운 유형의 환경파괴 |
정치권력적 측면 | 참여의 확대 자유의 확대 수직적 위계질서의 파괴 전자민주주의의 확산 |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한 통제 프라이버시 침해 정보권력의 강화 지적 엘리트의 영향력 강화 |
사회문화적 측면 | 개인의 자유발전 사회적 협력의 증대 의사소통적인 사회 정보의 자유로운 접근 지적 수준의 상승 정보의 보편적 이용 | 코드화된 인간 개인의 고립화 생활의 탈인간화 정보의 홍수 문화의 향락화 세대/계층간의 불평등 심화 |
2. 비전vision의 성찰
정보혁명을 통한 급격한 사회변화가 이미 일어나고 있고 앞으로는 그 변화의 양과 질이 우리의 상상력을 뛰어 넘을 수 있다는 데 더 이상의 이견은 없다. 정치․경제 분야 뿐 아니라 사회․문화 분야에서의 변혁은 일상생활의 엄청난 변화를 당연히 가져온다. 지금까지의 모든 사회변화는 항상 동전의 양면성을 갖고 있었음을 상기할 때 정보사회의 내용에도 긍정적이고 동시에 부정적인 면이 공존하리라는 것을 예견하는 것도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정보사회로의 변화는 좋든 싫든 그것에 대한 감정을 가질 수밖에 없는 우리이고 개인의 차원에서 거부할 수 없는 문명의 흐름이지만 그래도 어떠한 내용을 지닌 정보사회를 만들어 가는 지의 여부는 우리들의 노력여하에 따라 많이 달라 질 수 있다.
지금까지 실생활에서 체험하는 정보화는 개개인에게 많은 생활의 편리함을 주고 있고 앞으로는 더 줄 수 있다는 신뢰감을 쉽게 가질 수 있게 한다. 인터넷, 멀티미디어, 정보고속도로, 가상현실 등은 제한 없는 정보의 창출과 활용에 있어 그 어느 때 보다 더 합리적이고 더 실용적이고 더 효율적이다라는 생각을 여과 없이 갖게 한다. 그럼에도 다른 한편 정보화 또는 정보사회에 대한 경외감에 기인된 불안감과 소외감을 완전히 불식시킬 만큼의 자신감도 갖지 못하고 있음이 사실이다. 보고 느끼고 참여하지 못하는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으로 치부해 버릴 수 없는 이유는 산업사회가 인류에게 제시한 청사진의 실체를 몇 백년 동안 충분히 체험하여 급기야는 위험사회라는 화두가 전혀 낯설지 않게 들리는 구체적인 불안이다. 이러한 상황이기에 국가경쟁력을 갖추는 중요한 산업적 기반뿐 아니라 삶을 윤택하게 하는 사회적 자원이 바로 정보화라는 커다란 명제가 자칫 특정한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명제여서는 안되고, 특히 인간이 주인공이 되지 못하는 그 어떤 사회에서도 이 명제는 한갓 공염불에 불과함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정보사회의 비전을 되새겨 보아야 되는 의미가 바로 여기에 있다.
산업사회를 겪으면서 결코 사라지지 않았던 유토피아에 대한 동경이 정보사회 단계에 와서는 새로운 기술, 즉 정보화에 의한 완벽한 사회, 유토피아에 대한 기대로 한껏 부풀어 있다. 유토피아에 대한 상상은 차분하고 이성적인 인식과는 거리가 멀다. 정보처리기술과 매체의 증폭에 의한 더 많이, 정보고속도로에 의한 더 빨리 그리고 상상을 초월하는 신속성, 극소전자기술에 의한 정확성을 자랑한다는 컴퓨터 통제에 의한 더 안전하게라는 기치아래 진행되는 정보사회로의 발전은 막연한 희망을 갖게 하고 또 역시 막연한 약속을 남발하게 된다.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면 의례 자기최면, 자기도취에 빠져 버려 진지한 도전에 대한 대응을 회피하는 인간의 버릇이 전자정보시대가 제시하는 환상적인 가상현실을 맞이하여 되살아나고 있다.6) 그저 소비자로 전락한 개인과 그의 인식과 경험은 제시되는 변화의 내용을 추적해 보고자 하는 의욕을 갖기에는 도피적이다. 정보화는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수단임에도 정보화에 관련된 변화의 실재를 정확히 파악 내지는 묘사하기조차 복잡한 나머지 정보화 그 자체가 그만 목적이 되어 버려 정보화를 위해 삶이 있는 것 같은 착각 속에 빠져 버렸다. 인류문명의 발달 과정을 합리화 과정으로 볼 때, 현재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복잡한, 즉 예측할 수 없고 통제할 수 없으며 또 계산적 합리성도 보이지 않는 정보사회는 합리화 과정의 발전된 단계로 볼 수 없다는 회의를 갖게 된다. 정보사회는 산업사회의 발전된 모습이 아니라는 귀결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심각함이 생기는 것이다. 정보사회가 인간을 위한 발전된 사회모습으로 되려면, 무엇보다도 인간이 현재의 변화를 제대로 파악하고 그에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하여야 하는데 이에 관련된 교육이 그래서 중요하다. 그러나 정보화의 수단들을 그저 사용하는 능력 배양의 지금과 같은 교육에 그쳐서는 안 된다. 정보화의 단순기능인들로 전락한 인간으로 구성되어서는 올바른 정보사회의 실현은 요원하다. 정보화가 두렵다고 해서 정보화의 속도를 늦추자는 식의 대응은 더욱 안 된다. “새로운 것들에 대한 잘못된 집착을 버리고 아울러 전통의 풍부함을 간직하게 하면서 우리들에게 쏟아지는 새로운 것들을 진정 새롭게 생각하고, 대처하며 살아갈 수”7) 있는 용기와 지혜가 우리들에게 절실하다.
III. 위험사회8)
산업혁명과 프랑스 정치대혁명을 겪은 후의 문명의 발전은 인간의 능력에 대한 자신감으로 가능하였다. 빈곤을 극복하고 미신을 타파하여 물질적 정신적 구속으로부터 인간 해방을 실현시킨 인간은 완벽한 사회에 대한 희망을 가졌으나, 20세기중반부터, 특히 ‘68운동이후에 합리성 또는 이성이 지배한다는 인류문명, 정확히 서구의 산업사회적 문명에 강력한 회의가 제기되었다. 그 후 자본주의적 산업사회에 대한 지식인들의 불안감 표출은 물질적 풍요로움에 대한 대중의 만족감으로 희석되었다. 그러다가 핵무기와 핵의 생활이용에 의한 가공할 위험부담, 생태계 파괴, 유전공학적 과잉능력 등이 인류에게 위협요소가 되고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었다. 얼마든지 개인적, 사회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과거의 위험과는 달리 모든 사람들에게 똑같이 배분되고, 사고책임의 원인과 피해보상에 대한 책임추궁도 때때로 불명확한 새로운 위험가능성에 대한 두려움이 고조되었다. 개인적차원에서는 이러한 위험에 대해 특별한 대비책을 마련할 수 없다는 무기력함이 팽배한 현대사회를 ’위험사회’로 진단하고 이에 대한 처방도 사회학 이론으로 제시되었다.9)
1. 위험사회의 일상생활
절대적 빈곤을 이겨내기 위한 과정인 근대화는 현대에 와서 물질적 풍요로움을 비롯한 안락한 개인적 삶을 제공하게 되었지만 그 것을 가능케 한 기술공학적 지식에 우리가 종속되는 결과도 야기하였다. 양질의 삶을 가능케 하는 지속적 경제성장을 국가정책의 제일 중요한 목표로 삼을 수밖에 없는 현대사회는 ‘돌진적 근대화’10)에 의한 높은 생산성을 이루기 위해 새롭게 계속 개발되어 발전되는 테크놀로지가 안고 있는 부작용에 대해서는 무감각한 반응을 보여 왔다. 이 무감각은 보통사람으로서는 내용을 알 수 없는 고도의 첨단기술공학적 지식에 대한 무기력에서 비롯된다. 어차피 그 내용을 알래야 알 수 없고, 안다고 해도 인간의 왜소함만 느끼게 되는 상황에서 그저 믿고 따르면 인류에게 무궁한 발전을 가져다준다는 테크닉에 안주하는 생활방식이 자리잡게 마련이다. 가끔씩 터지는 환경공해적 사고의 엄청난 파급효과 앞에서 그때그때 공포에 떨고 시간이 지나면서 잊어버리기만 하면, 고도성장의 결실인 삶의 풍요로움을 포기하지 않아도 된다는 자위적 생활을 누구도 비난할 수 없게 되었다.
과거의 대부분의 위험은 노동현장의 안전사고, 빈민주거지역 등의 예에서 보듯 특정계급의 사람들에게만 제한되어 있음이 명백한 반면, 새로운 위험은 평준화 효과를 가져온다. 산성비, 방사능오염 등의 이른바 ‘사회적 부메랑’ 효과란 잠재적 부작용으로 대수롭지 않게 여기던 요소들이 생산에 치명적 영향을 끼치게 되어 근대화의 주역들도 이제는 가시화 된 부작용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음을 말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원인자가 직접적 생명위험을 받지는 않지만 재산피해 또는 정당성의 손실 등의 간접적 방법으로 결국 피해자가 되는 것이다.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비료 및 농작용 화학용품의 양만큼 비례하여 생산량도 꾸준히 늘어나지 않아 생기는 피해는 좋은 예이다. 이전처럼 특정집단, 특정지역의 가난하고 힘없는 자에만 위험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부의 축적여부로 나뉘어 지던 계급사회와는 다른 사회모습이 나타난다
부언하면 자연에 의한 과거의 재앙과는 성격이 전혀 다른 재난은 어떠한 사람, 집단도 모면 할 수 없이 공평하게 배분되어 - “결핍은 위계서열적이고, 스모그는 민주적이다”11) -, 사회적 부메랑 효과를 지니고, 위험의 득과 실에 의한 새로운 갈등구조가 출현하게 된다. 위험의 결과가 그때그때 즉시 알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원인규명도 명확하게 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인 현대 위험의 속성은 무엇을 위험으로 간주하여야 하는가의 문제에 매달리게 되고 이는 다시 위험을 축소, 제거는커녕 위험의 가능성을 오히려 높이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그러한 가운데 지구전체의 위험상황을 공동적으로 인지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오기는 하지만 그 위험을 극복하려는 화합을 가져오기보다는 오히려 위험덕분에 유리하게 된 자와 위험 때문에 불리하게 된 자로 나뉘어 지는 새로운 사회적 분화에 따른 새로운 갈등을 야기 시킨다. 위험의 가해자와 피해자의 구분 지움이 무의미해 지고 모두가 새로운 위험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 라는 두려움에서 비롯된 연대감이 조성되어야 하나의 사회유형으로 위험사회를 논할 수 있게 된다. 물론 있는 자들이 없는 자들에 비해 위험을 한시적으로 어느 정도 피해갈 수 있을 지 몰라도 - 비싼 생수, 무공해 식료품 등의 소비 - 결국은 위험의 피해자일 수밖에 없다.
합리성으로 대표되는 근대산업사회의 내용이 총체적 위기를 갖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원인과 결과의 인과적 설명이나 미래의 결과에 대한 예측이 거의 불가능한 경우가 많아 계산적 합리성이 이제는 통용되지 않는 상태로까지 왔다는 것이다. Input과 Output의 정확한 계산이 가능한 패러다임에 근거한 행정적, 기술적 결정이라는 정당성을 지닌 그 동안의 규범은 그 타당성을 잃어 가고 있다는 말이다. 결정에 따른 미지의 예측할 수 없는, 의도되지 않은 결과를 제어할 수 없는 데 따른 비용부담을 감당해 주는 보험체계, 특히 사적 보험의 부재는 개인으로 하여금 위험에 대한 두려움을 더 심각하게 받아들이게 한다. 자연적 재난과 같은 우연적 위험이 아니라 한 나라의 사회문화적으로 구성되는 위험의 원인과 그 결과에 대한 계산적 합리성의 기능 결여와 이에 대한 안전보장 체계의 부재는 우리들의 일상적 삶의 안전을 크게 위협하고 있다.
2. 실재Wirklichkeit의 성찰
생산력 제고에만 총력을 기울이던 근대화과정에서 파생된 위험으로 인해 스스로가 그 위험의 대상이 되었다는 자가당착의 심각함을 더 이상 감출 수 없게 된 오늘날 위험에 대한 인식고조는 어떻게 하면 근대화과정을 축으로 하는 진보를 방해하지 않으면서 위험의 위협들을 사전에 막을 수 있고, 제거하고, 때로는 위험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 놓아 효과적으로 통제, 관리할 수 있는가의 물음을 제기하게 한다. 이에 대한 대답을 찾기 위한 첫걸음은 근대화과정 그 자체를 재조명하는 성찰이다. 테크닉과 경제가 발전할 수록 위험도 그 만큼 커진다는 엄연한 사실을 감추지 말고 당당하게 대처하여야 위험으로부터 안전을 보장할 수 있다. 과거의 위험이 개인적 위험이라 얼마든지 피할 수 있고, 위험을 예방할 수 있는 기술수준의 미비함에 책임을 돌릴 수 있음에 반해, 현대의 위험은 문명이 낳은 것이다. 우연한 재난에 의한 위험이 아니라 현대의 사회제도와 과학기술이 가져온 근대화의 부작용이다. 그것은 개인별로 인지하여 피할 수 없고, 전문가 아니면 알 수도 없는 화학 또는 물리학의 전문용어 내지는 수식을 빌어 표현되며 - 대표적 예: 생필품에서 발견된 유독물질, 방사능의 위험도 표시 등 - 더 심각한 것은 한번 위험이 터지면 그 피해가 국지적 또는 개인적이지 않고 인간, 동물, 식물 등 모든 類가 피해를 입게 되는 위험의 지구촌화의 성격을 갖는다. 이 사실은 생산성만을 앞세워 끊임없는 발전으로만 치달아 온 산업화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이제는 더 이상 미루어서는 안됨을 웅변하고 있다.
어쩔 수 없이 빠져버린 위험으로부터 벗어나 보려는 개인적 노력이 별 의미가 없다는 무력감은 자칫 냉소적이고 회의적이며 또는 특정한 도그마에 심취해 버리기 쉬운 경향을 갖게 하며, 쉽게 감지되는 부와 감지하기 어려운 위험이 한 사회에 같이 존재할 경우, 부가 위험보다 더 우선적으로 추구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더욱이 눈에 보이는 가난과의 싸움에서 항상 부가 우선되어온 발전과정에 - 지속적 경제 성장과 직업의 보장 - 익숙한 우리들 모두에게 위험에 더 많은 관심을 쏟는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닐 게다. 그러나 겉으로 드러나는 부의 맹종은 위험이 안으로 거침없이 커져 나가는 것을 조장하는 결과를 불러온다. 부유한 산업사회에 일찌감치 도달한 서구나라들이 심각한 생태계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는 사실은 지금껏 앞으로 내닫기만 한 공업화과정에서, 바꾸어 말하면 부와 위험의 경쟁에서 궁극적으로 위험이 승리하였다는 아이러니이다.
느낄 수 없는 것들을 하나의 위험으로 정의하기 위해서는 학문이 동원되어야 하고, 자연과학과 인문과학의 공동 작업이 필요하다. 정확히 예측할 수 없는 위험을 예측하여야 되는 자연과학적 철저함과 각종 위험 속에서도 살아야 되는 인간에게 삶의 의미와 방법을 제공하여야 되는 인문과학적 포용은 학문적 합리성만을 내세울 수 없게 한다. 근대화 주도세력과 근대화 수혜자들 사이에는 치열한 경쟁과 갈등을 일으키는 상충된 요구, 이해관계, 관점들이 섞여 있어 냉정한 학문적 척도만을 적용하여 원인과 결과, 원인제공자와 피해자로 구분하여 위험에 대한 규명작업을 하기가 어렵다. 정치적, 윤리적 측면도 감안되어야 한다. 이를 감안하지 않는 위험의 정의작업은 공허한 학문적 작업이 되어 버리거나 또는 눈먼 사회적 작업에 그치기 쉽다. 바꾸어 말하면, 무엇을, 어떻게 위험으로 정의하느냐의 문제는 특정분야 만이 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사회의 총체적 지혜를 필요로 하며, 다양하게 정의될 수밖에 없는 위험에 대한 적절한 대처는 여론과 시민참여를 전제로 하는 능숙한 정치능력을 필요로 한다.
무엇이, 왜 해롭고 나를 해칠 수 있는 위험일지의 판단은 나의 개인적 경험과 개인적 지식만으로 내려지지 않는다. 판단은 결국 위험을 구분하고, 측정하고 또 그에 대한 논란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이른바 낯선 지식생산자들에게 맡겨지게 마련이다. 그러나 끊임없이 위험에 대한 질문을 던지지만 속 시원한 대답을 얻지 못하는 상황에서 위험에 대한 전문지식적 접근만 가지고는 오히려 더 심각한 위험상황을 가져올 수 있다 - 일상생활테두리에서 항상 접촉되고 또 생필품에 포함된 포름말데히드(무색의 기체로 방부 소독제)나 DDT의 실상을 학문적 관점으로만 발표되었을 때 생길 수 있는 경악을 생각해 보라. 이 때문에 바로 위험사회에 대한 지식을 다루는 사회학적 논의가 매우 중요한 것이다.12) 단순히 위험을 제거하자는 의도에서 뿐 아니라 제거과정에서 얼마든지 새로운 경제적 잠재력을 찾을 수 있다는 데서 위험에 대한 논의는 활발해 질 수 있다. 환경오염 또는 생태계유지를 위한 이른바 그린상품의 출현으로 상징되는 자본주의적 대처는 위험에 대한 인식고조가 반드시 첨단기술에 대한 저항을 가져 오지만은 않음을 시사한다. 더 이상 숨기려야 숨길 수 없고 또 미미한 부작용으로만 치부할 수 없게 된 현대사회가 안고 있는 위험에 대한 사회학적 논의는 위험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갖는데 결정적 역할을 할 수 있다. 그 동안 학문의 이름으로 전문적 용어를 써가며 위험을 우리들에게 알려주었지만 결과적으로 오히려 더 위험에 대한 무관심 내지는 무감각을 초래한 학문영역이 자기반성의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
전문가만이 이해할 수 있는 전문용어로 기술된 위험의 양산은 위험에 대한 인식을 올바르게 높이기보다는 오히려 위험 그 자체의 제거에 급급한 나머지 성급하고 과격한 요구를 주저하지 않는 군중을 만들기 쉽다. 위험 앞에 무기력할 수밖에 없는 답답함에서 비롯된 두려움을 어떻게 우리가 다스려 나가는가의 문제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개인적 그리고 정치적 능력을 가질 필요성을 높게 한다. 위험에 대비하고 겪어 낼 능력이 새롭게 요구되는 것이다. 근대화에 의한 위험이 사회적으로 인식되고 인정되면 새로운 정치적 동력이 생긴다. 산림이 죽어 가는 환경위험과 그에 따른 생태계위험은 기업들로 하여금 물질적 풍요로움과 일자리를 제공하는 유익한 주체라는 명분만으로 더 이상 안락한 기업활동을 할 수 없게 만들고, 새로운 환경윤리에 적응할 수 있는 경제적 기술적 방안을 강구하게 한다. 인간과 각종 類에게 해로운 위험은 다시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부수 현상을 야기하기 때문에 환경오염에 대한 관심이 커짐에 따라 새로운 정치적 움직임이 필요하게 된다. 폭넓은 부수 현상은 단순히 학문적 접근과 그 결과의 알림에 만족치 않는 대다수의 관심자들로 하여금 정치적 조치를 요구하게 한다. 경제적 이용가치 때문에 꼭 필요하다고 홍보돼 온 핵에너지는 정치적인 차원에서 중요하게 다루어 져야 되는 것이 좋은 예이다. 말하자면 지금껏 정치적 차원과는 무관하게 진행될 수 있었던 분야들이 이제는 정치적 논리를 적용 받게 되며, 이것은 환경위험을 해결해야 된다는 정치에 대한 기대와 요구로 인해 힘의 재분배 현상이 나타난 당연한 결과이다. 물론 재정립되는 권력관계로 인해 현대가 안고 있는 각종 위험들이 당연한 것으로 바뀌어 인식되어지게 만들어질 우려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위험을 막기 위해 어쩔 수 없는 듯 주장되고 정당화되는 전체주의적 정책은 문명의 부작용을 막기 위해 정치적 부작용을 감내하게 만드는 꼴이 되어 버리기 쉽다. 민주주의에 새로운 형태의 도전이 가해지는 것이다.
IV. 개체화Individualisierung 테제
위험사회에 대한 논의가 학문적 수준에 못지 않게 실질적으로 정책을 결정하는 관련분야에서도 활발하게 진행되었던 이유중의 하나가 개체화13)테제이다. 개체화 자체에 대한 개념 정립이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사회현상과 그 변화에 대한 분석의 주요한 수단으로 개체화의 개념이 사용되어 그로 인한 이해의 난맥상과 해석의 다양성을 보여 왔다. 어쨌든 개체화는 근대화과정의 중요한 내용을 담지 하고 있고, 사회곳곳에서 체현 되는 개체화는 사회제도의 변화를 잘 설명할 수 있다. 분명한 것은 개체화가 강화된다고 해서 사회제도가 무의미해 진다는 식의 인과적 설명은 타당하지 않다는 것이다.14)
산업사회까지 개개인 생활의 준거기준을 나타내는 것으로 계급, 계층 또는 신분 등의 집단의 개념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이와는 다른 기준이 개개인 생활의 준거기준이 되었으며 이의 설명을 위해 개체화의 개념이 도입되었다. 자기가 속해 있다고 여겨지는 집단에서 제시되고 통용되는 패러다임에 맞추어 생활을 함으로써 환경에 적응하며 물질적․정신적으로 별 걱정 없이 살아가는 개인이 아닌, 주변생활세계를 나름 데로 각자 다르게 받아들이는 모습을 부각시키려는 개념이 개체화와 자기귀속이다. 현대적 삶의 모든 분야에서 쉽게 찾아지는 이 양상은 과거의 개인의 안정적이고 정상적인 생활이력에 비견하여 ‘철조망이력’15) Drahtseilbiographien이라는 풍자적 묘사를 낳았다.
19세기까지의 시민사회 발전과정에서 볼 수 있었던 개체화를 시민적 개체화라고 한다면 20세기 말기의 개체화는 노동시장적 개체화이다. 사회계급적 상황이 집단적 성격에서 개인적 성격으로 바뀌고 있음을 지적하는 개념으로 개체화가 사용되고 있다. 꾸준히 전개된 노동운동 덕분에 달성된 임금근로자들의 나아진 생활여건은 점점 더 노동자 집단의 구성원으로서보다는 특정집단에 얽매이지 않는 개인들을 낳은 결과를 가져왔음을 부각시키고, 앞으로 형성되는 사회모습을 대변하게 되는 것이 개체화의 개념이다.
개체화는 사실 우리에게 생소한 것이 아니다. 개인중심의 또는 개체적 생활스타일을 르네상스시대에서 찾아낸 부흐하르트, 중세의 궁정생활에서 찾은 엘리아스, 개신교의 금욕적 윤리에서 본 베버, 신분적 구속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농부들에서 찾은 마르크스 등 고전적 이론가들에서 뿐 아니라 긴밀한 가족결속의 이완과 도시유입인원의 팽창에 의한 사회이동 현상에서도 얼마든지 개체화의 양상이 나타났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개체화를 객관적 생활의 모습으로만 파악하려는 주로 역사사회학적 또는 사회사적 범주로 이해하려고 하여, 문화사회학적인 주관적 물음, 즉 어떤 변화가 이로 인해 개인생애 전체에 일어났는가의 물음은 도외시되어 왔다. 전통적 가족역할이 유명무실해지고, 각종 상업미디어에 의해 더 영향을 받아 개인이 표준화되어 가는 만큼 더 사회제도에 얽매이게 되는 개인은 다시 종속된 개인의 모습이다. 전통적 구속에서 벗어나게 된 근대적 개인이 결국 다시 근대화된 사회에 종속될 수밖에 없는 과정을 말해 주는 것이다. 개인생애의 변화는 아래와 같다.16)
첫째, 개별적 또는 사회복지적인 물질 안정은 개체중심화 과정을 부추 키었다. 사회보장제도가 잘된 나라일수록 가족봉양의 부담과 타고난 계급적 조건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개인들이 독자적 영역을 가꾸어 나가기가 수월하였다. 물론 때에 따라서는 개인의 운명이 집단적 현상, 이를테면 대량실업현상과 같은 상황에서 집단적 운명에 얽매이게 되는 경우가 있기도 하지만, 가족, 이웃, 직업 그리고 지역적 문화 등을 얼마든지 넘나드는 개인의 출현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둘째, 수입이나 노동조건에 따른 사회적 불평등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나 계급적 성격을 점점 벗어나고 있는 경향이 매우 강해지고 있다. 위에서 언급된 개인의 물질적 안정이 사회복지차원에서 제공됨에 따라 생기는 탈 계급적 개체화현상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셋째, 이는 지속적으로 대량실업자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확인된다. 높은 일정한 실업자수를 들여다보면, 동일한 사람이 지속적으로 실업자 또는 전혀 일자리를 가져보지 못한 것이 아니라, 실업의 무대에 번갈아 들락날락 거리는 것과 같은 양상을 띄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회적 위기, 예를 들어 높은 실업률이 개인적 위기, 예를 들어 남성의 자의반 타의반의 조기정년 선택, 여성의 가사전념으로 즉각 전환 되여 받아 들여 진다.
넷째, 가족의 변화된 모습에서도 같은 모습이 쉽게 찾아진다. 수월해진 이혼 가능성과 가족내의 여성 고유역할 변화는 상관관계가 있다. 가족내의 역할분담 조정요구, 커리어를 쌓으려는 기본적 욕구를 갖는 것이 여성에게도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는 분위기에 따라 가족구성원끼리 일정기간 타협해 가며 살아가는 가족을 유지하는 관계가 형성된다.
다섯째, 사회적 차원에서 보면, 산업사회 - 정확히 반쪽 짜리 현대의 사회 -의 기본골격인 개인의 자유와 평등의 왜곡으로 버티어 왔다고 볼 수 있는 - 특히 여성불평등의 경우 - 지금까지의 사회모습이 가족윤리, 성불평등 감수, 결혼, 성 등에서부터 변화의 모습을 보인다.
여섯째, 남녀구별 없이 한 개인으로서 가족 내에서 또는 밖에서 존재가치를 실현시키려는 개체화추세는 이제 막을 수 없다. 그러나 이 경향이 반드시 여성해방 또는 개인중심의 세계관이 자리 잡기 시작했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삶의 조건이 제도화되고 표준화되는 결과를 낳게 된다. 홀로 서기를 감당해야 되는 개인은 노동시장에 의지하게 되고, 이는 다시 교육, 소비, 사회적 법규정과 복지, 교통계획, 의학적, 심리학적 그리고 교육적 자문과 지도 등이 없이는 살 수 없게 된다. 즉 전통적 기존 생활조건에서 벗어날 수 있어 홀가분해진 개인은 자기 삶을 스스로 영위하여야 되니 각종 사회의 제도적 장치에 다시 얽매이게 된다.
일곱째, 이로써 결국 개체화과정은 일종의 모순된 사회화과정으로 이해될 수 있다. 겉으로 쉽게 나타나지 않는 이 모순된 모습은 그러나 신사회문화적 공동성을 이끌어 낸다. 모순이 인지됨에 따라 새롭게 자구책을 찾으려는 움직임이 점점 더 하나의 동질적인, 특히 강력한 저항움직임으로 뭉쳐질 수 있는데, 환경운동, 평화운동 그리고 여성해방운동으로 대표되는 신사회운동이 바로 이런 배경을 가지고 있다. 즉 위험사회에 내재되어 있는 모순들을 인식하기 시작하고 그것에 부딪치는 면과 아울러 이런 사회에서 나름대로 사회적 정체성을 찾으려는 노력의 정치적 표출이 바로 우리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신사회시민운동이다.
위험사회의 상황에서는 사회와의 결속을 잃게 되어 앞날에 대한 두려움이 개인들의 정신적, 물질적 일상생활에 큰 영향을 끼쳐 그 동안 누려왔던 제도적 장치에 의한 개인 삶의 안정은 흔들리게 되고 이는 생태계문제의 심각성과 더불어 도덕적 해이와 개인적 내지는 집단적 히스테리와 노이로제의 원인이 되고 자칫 정치권의 역량에 모든 것을 맡겨버리는 현상까지도 낳게 된다. 일상생활에서의 자유신장은 이제 ‘모험적 자유’17)의 성격으로 바뀌어 정해진 모범적 생활패턴이 무의미해진 상황에서 개인 각자의 삶의 설계를 스스로 하게 되는 것은 그 만큼의 개인적 위험도 감수하여야 된다. 사회복지제도 등에 의해 다수의 사람들이 안정된 생활을 영위할 수 있었던 체계가 흔들리게 되고 노동시장에 곧바로 적응할 수 있는 교육의 기능에도 의문이 제기 되고 있다. 사회통합과 질서의 이름으로 꽉 짜여진 채 결속되어 있는 개인과 사회의 관계가 이제 유연해 지고, 연성화 되고, 타당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면 무엇으로 사회통합과 결속 그리고 사회적 합의 등이 더 이상 가능하겠는가. 기존의 가치, 규범, 가족과 사회보장 등의 제도적 장치에 충실히 따르는 것이 더 이상 개인에게 안정된 삶을 보장하는 것이 아닌 위험사회에서 무엇으로 사회화를 이끌 것인 가의 문제가 숙제로 남게 된다. 개인의 해방지향적 삶, 행복한 삶의 구성은 주체사이의 상호성과 삶의 과정의 합리성의 틀에서 가능한데,18) 기존의 일상생활의 장이 깨져 버린 위험사회에서 무엇으로 상호적 관계와 합리적 삶의 내용을 정당화 할 수 있는 가의 문제가 대두된다.
V. 맺는 말
정보사회는 월드와이드웹WWW 사회라고 해도 부담이 되지 않는 컴퓨터네트워크에 의존 되여 있는 사회이다. 그 사회에서 개인은 과거 그 어느 때보다 연결망에 엮여 있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개체로서 최대의 자유를 누릴 수 있기도 하다. 자신의 생애를 자신의 손에 의해 직접 설계할 수 있다는 매력은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남에게 돌릴 수 없다는 부담감에 의해 감소될 수도 있다. 여기서 사회구성원인 우리 개개인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게 된다: 도대체 우리는 지금 어떤 사회에서 사는가? 도대체 우리는 앞으로 어떤 사회에서 살게 되는가?
이에 대한 대답을 찾으려는 사회학적 시도를 뒷받침 해 줄 새로운 또는 기존의 것을 적어도 한번쯤은 성찰되어진 개념과 이론이 아쉬운 차에 위험이 산재한 선진산업사회가 성숙한 산업사회로 가기 위해서는 성찰적 근대화가 필요하다는 사회이론이 위험사회론으로 제시되었다. 그의 핵심 테제가 개체화 테제였다. 사회결속의 형태를 결정 짓던 기존의 주요한 사회제도들 이를테면 핵가족, 성의 역할, 계급, 사회도덕적 환경 등은 그 기능과 역할의 한계를 드러낸다. 대신 개인이 스스로 생애를 설계하여야 된다는 것이 개체화 과정의 핵심내용임은 주지되었다. 과거의 사회연결망은 더 이상 개인이 과거처럼 의지하고 안주할 수 있는 곳이 아니고, 핵 발전 사고와 같은 문명이 낳은 위험에 대한 그 어떤 사적인 보험장치도 없는 위험한 상태를 겪고 있는 현대사회를 직시한 위험사회의 핵심이 개체화이며, 이는 또 다른 문명의 혁명을 가져온다는 정보사회에도 적용해 볼 수 있는 가능성을 보였다.
우리에게 제공되는 정보사회의 비전은 그저 풍성하기만 하다. 그 풍성함은 지금껏 체험한 정보사회의 초기단계의 경험만으로도 타당성이 있어 보인다. 그러나 인간에게 진정 유익한 성숙한 정보사회의 모습을 그리 쉽게 단정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위험사회론을 통해 배워야 한다. 근대화는 지식정보사회에서 단절되는 것이 아니라 계속 진행되는 인간의 노력의 여정이며, 그러기 때문에 과거와 미래의 그 여정을 진솔하게 성찰하는 노력이 ‘준비된 지식정보사회’를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함을 새삼 강조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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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ur Reflexion der Informationsgesellschaft und Risikogesellschaft
Kim, Young-Ho
In diesem Beitrag geht es im wesentlichen um die Reflexion der modernen Gesellschaft. Die moderne Gesellschaft konfrontiert uns mit dem ehrgeizigen Projekt fortschreitender Zivilisation der Menschheit. In solchem Projekt steht selbstverständlich ein neues Leitbild der Informationsgesellschaft im Zentrum. Atemberaubend rasche Veränderungen kennzeichnen dieses Leitbild von heute auf dem Weg ins nächste Jahrtausend. Allerdings muß man sich über Vorteile und Tücken der Informationsgesellschaft überlegen. Zur Reflexion der sogenannten World Wide Web Gesellschaft sind die Denkansätze der Risikogesellschaft von Ulrich Beck nützlich.
Die seit der Publikation im Jahre 1986 viel diskutierte Theorie der Risikogesellschaft ist in drei Thesen zusammenzufassen; die These der versicherungslosen Gesellschaft, die der Demoralisierung und der Politisierung der Gesellschaft, und vor allem die der Individualisierung. Für die Analyse der Wirklichkeit der fortgeschrittenen Industriegesellschaft und zur Reflexion der Vision der Informationsgesellschaft gestatten uns meines Erachtens die oben genannten drei Thesen die systematischen theoretischen Bezugsrahmen zu konzeptualsieren.
☞ 출처: 사회과학연구 (http://www.paicha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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