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가서도 두사람의 관계에는 변화가 거의 없었다.
달라진게 있다면 잘나가는 다리모델로 유명해진 혜리에게 더욱 많은 남자들이 접근하고, 그런 혜리를 쥐락펴락하던 유성이
살짝 불안감을 느끼기 시작했다는 정도일까. 분명 자신이 우위에 있는 관계인데, 그렇게 믿고있는데 자꾸 초조했다.
그러던 어느날, 헤어진 뒤에도 미련이 남은듯 보이던 진주와 강선우가 억지로 사귀다시피 했던 안예린이라는 아이가
친구끼리의 모임을 계기로 친해졌다. 예린은 헤어지고싶지만 비디오를 찍혀 협박당한다 고백했고 선우에게 미련이 있던
진주는 비디오를 찾아주면 떠날 예린을 알기에 집에 몰래 잠입해 DVD를 훔쳐냈다. 혜리에게 DVD를 건네준 진주는 선우네
집에 핸드폰을 흘린것을 깨닫고 다시 들어가려다가 선우가 키우던 광견 달마시안에 물려 혜리가 보는 앞에서 죽었다.
그리고 그날을 계기로, 혜리와 유성은 틀어지기 시작했다.
"호주로 간다는거야? 거기아니면 어디로 간다는건데. 나도 가겟어."
"......유성아."
"시끄러워. 입다물고 손 내밀어."
그녀에게서 나올 말이 두려워서 듣기 싫은 유성은 수갑을 들어 억지로 채우려 했다. '플레이'가 시작되면 자신을 주인님이라
부를 그녀가 절대 반발하지 못할것임을 알기에.
"안할래."
석고상처럼 굳은 유성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놀란눈으로 혜리를 바라봤다. 처음으로 그녀에게서 나온 거절의 말.
"나 전에 호주에서 남자친구 죽었던거, 이야기해줫지?"
".....응."
"그때도 내 눈앞에서 총을맞고 죽는걸 난 보고만 있었어. 이번에 진주가 죽어버릴때에도."
"니가 잘못한게 아니잖아."
"유성아. 난 두려워. 내가 아끼고 사랑하면 다 내곁을 떠나가고 말아. 그것도 아주 안좋은 방법으로. 이게 벌써 두번째야. 난
이제 겨우 스물인데, 이게 벌써 두번째라구. 내가 옆에 없었더라면... 그러면 이런일이 안생기지 않았을까?"
"헛소리 하지마. 니 전 남친도 진주도 지들이 벌인일로 죽은거야."
"내가 말리지 않아서야. 내가... 다 나때문이야."
구슬같은 눈물을 후득후득 떨구며 우는 혜리. 작은 얼굴이 눈물자욱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벌벌 떨리는 그녀의 어깨를 안아주려 하지만 밀어내는 가늘고 긴 손. 거부가 익숙치 않은 유성은 어쩔줄 몰라했다.
"떠날래. 날 아는사람이 아무도 없는곳에서 새롭게 시작할거야. 평생 외롭게 살겟어, 사람들이 다치지 않도록."
"헛소리 하지마. 나랑 같이....!!"
"유성아."
혜리가 슬픈 웃음을 지어보였다.
"너랑 나 사이에 미래가 있을것같애? 우린 그냥, 성적 취향이 잘 맞던 파트너였을뿐이야. 난 널 사랑했어. 하지만 니가 나와
같은 감정이었을거라곤 생각 안해. 난 널 사랑했기에 다른남자와 데이트는 해도 몸을 주지 않았지만 넌 아니었어. 상처받길
즐기는 나를위해서였다 말하겟지. 근데 다른여자애와 데이트하는것 만으로도 충분히 난 아팟어. 그래도 바람기 있는 너에게
단 하나의 여자로 남기 위해서라면 태연한척 넘길 수 있었지. 사랑했어. 정말로."
그녀가 이런 생각을 가지고 4년여를 버텨왔을 줄이야. 유성은 마음이 저려왔다.
"미래? 아마도 넌 너희 부모님이 납득할 수준의 여자와 결혼하고 나와 불륜을 맺겟지. 다들 그렇게 하니까. 내가 생각없이
사는것같아도 그렇지는 않아. 바보같아 보이지, 대학도 안가고 모델이나 하는 내 모습이? 하지만 대학에 가게되면 더욱
경계가 확실하게 그어지는걸. 3류대학교 학생인 나와 1류대학교 학생인 너. 그래서 더욱 가기 싫었어."
반박할 새도 없이 빠른 말투로 이야기를 이어가는 혜리. 유성은 고개를 저으며 그녀를 안으려 다가섰다.
"하지마. 그만. 이제 그만하자, 상처받길 즐기는 나지만 이젠 고통스러워지기 시작했어. 내가 힘들어할때면 전화로
때로는 달려와서 안아주던 진주도 이젠 없어. 물론 다 내 잘못이니까 뭐라고 할수도 없지만. 그리고 내가 니 곁에 있으면 너도
언젠가 불행해질거야. 난 그런 여자니까. 이제 그만 놔줘...."
"안 돼."
"니가 안된다고 해도 난 떠나야해. 넌 너의 세상으로 돌아가. 넌 내가 아니어도 되잖아. 제발."
끝까지 반항하며 유성을 밀어내는 혜리. 호텔 방문을 열고 그녀가 떠나버리자 홀로 남겨진 유성은 허탈히 창밖을 바라보았다.
제기랄. 김혜리, 니 멋대로 이렇게 행동하는게 어딧어. 나랑 한마디 상의도 없이.
문득 유성은 4년가까이 사귀면서 단 한번도 기념일을 챙기거나 단둘이 여행을 간적 없는 자신을 깨달았다.
그녀와 무엇을 상의하긴 커녕 그 흔한 생일선물도 꽃 한송이도 챙겨준적 없던 자신을.
해외촬영을 갈때마다 자신을 위해 뭔가를 사다주던 혜리를 떠올리는 유성의 눈가가 떨려왔다.
"김혜리. 문열어."
벨을 두번이나 눌렀지만 대답이 없다.
생전 처음으로 다른여자가 아닌 그녀를 위해 꽃다발을 사고 선물을 준비해왔다. 대충 고르던 다른 여자들에게 줄때와는 달리
그녀의 취향을 떠올려가면서 세심하게. 혜리가 좋아하는 노란색과 핑크색이 묘한 조화를 이루는 꽃다발과 향수를 수집하는
그녀를 위한 어렵게 구한 신상 향수까지. 유성은 혜리가 문을 열지 않자 비밀번호인 자신의 생일을 눌렀다.
띠리리- 전자음과 함께 열린 문으로 차가운 바람이 흘러나온다. 1월의 차가운 바람이 얼굴을 스치며 지나가자 유성은 팔 위로
오도도 돋는 닭살을 느꼈다. 사람이 살고있다면 나올 수 없는 냉기. 아닐거야. 아닐거야...
집안은 텅 비어있었다. 침대와 살림살이는 그대로였지만 혜리의 옷방은 낡은듯한 옷가지 몇개를 제외하곤 비워져있었고
그녀의 캐리어가방들과 즐겨읽던 책이며 화장품도 사라진 상태였다.
"아이고, 여기 이렇게 함부로 들어옴 어떻게해요~"
"집주인이세요?"
"무슨일인데 아침부터 이렇게 찾아온거유?"
"여기 살던 친구 어디로 갔나요?"
"연락 못받았어요? 오늘 아침 비행기라던데. 나머지 살림살이는 내가 처분해주기로 했구."
".....아줌마. 이 집 제가 계약함 안될까요?"
"어머, 총각 집 찾고있었어?"
"가구랑 모두 다. 제가 가지고있고 싶어요."
"안그래도 좀 귀찮았는데 잘됏네! ...좋아하던 친군가보지? 하긴 그아가씨 예쁘긴 정말 예뻣지. 다리도 쭉~빠진게."
"계약서 가지고 돌아와주세요. 저도 돈 뽑아서 돌아올께요."
친구인 태윤에게 모자란 돈을 빌려 보증금과 두달치 월세를 미리 내놓은 뒤 혜리가 쓰던 침대에 누운 유성.
"어디로 간거야... 나쁜년. 정말 나쁜년."
마지막 만났을때 그에게 그동안의 설움을 토해내며 펑펑 울던 모습이 눈 안에 박혀있다.
사랑했지만 너무 늦게 깨달은것 같아. 넌 항상 거기에 내가 원하는 그모습 그대로 있을줄 알았어.
사랑해 혜리야. 어디로 간거야? 얼른, 얼른 돌아와. 니 주인은 나잖아....
"요즘은 좀 잠잠하더라, 너? 혜리땜에 마음이 상한거냐?"
"닥쳐 권재규."
"근데 걔 팔자도 정말 드세. 호주에선 눈앞에서 남자친구가 죽어, 한국에선 나진주가..."
"닥치라고!!!!"
평소에 싱글싱글 웃고다니던 유성에게 장난을 잘치던 재규는 화를 내는 그의 모습에 움찔하며 말을 끊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나간건 알겟는데 거기서 국내선을 타고 움직이면 어디로 간건지 알아낼 방법이 없어."
".....너 정말 걔 기다릴거냐?"
"4년이야."
"뭐가?"
"그래야지 공평하니까. 4년간 나도 기다리겟어. 딱 그애가 기다린 만큼만. 그리고 잊을거야."
"........."
니 눈을 보아하니 10년도 기다릴 수 있을것같네 뭐, 하고 농을 붙이려다가 싸움이 귀찮아 입을 다무는 재규였다.
하지만 그들이 재회하게 된 것은 정확히 6년 뒤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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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리와 유성커플. 변태적이면서도 뭔가 색다르죠. 머리 빈 여자같은 혜리지만, 사실은 누구보다 상황파악이 빠르답니다.
속물근성없고 밝은 성격에 예쁜 외모지만 어릴적 받은 마음의 상처로 어딘지 모르게 삐뚤어져있죠.
더티마인드는 3편이 마지막편이 될것같네요. 기다려주세요!
첫댓글 밍크님 추석잘보내세요~~`오늘도 재밌게 읽고가요~
고마워여^^
뭔가 집금끝부터 다시 읽어야겟다는...이것저것 보니까 뒤죽박죽 잘 기억이 안나요ㅜㅜ
그래도 요즘은 자주 오시는 밍크님..ㅋㅋ
즐건 한가위 보내세용~
감사합니다 ^^
이런 내용이 있었네요ㅎㅎ 다음편도 기다릴게요
네, 계속 지켜봐주세요~
기둘리구잇갯씀돵~!!
감사!!!!!
넵!! 3편 잘 기다리고있을게영~~
밍크님 추석잘보내시구 계신가영?? 넘 마니 먹어서..에효...다욧트는 물건너가고있네여...ㅠ.ㅠ.
저두 추석이후 1.5인치늘은 허리;;
유성이가 잘못했네요...ㅠㅠㅠ 아무리 혜리를 위한다고 해도 너무 지나쳤던 것 같아요!!!! 그런데 개에 물려 죽는 건 옛날에도 한 번 나왔죠?? ㅋㅋㅋ
그 이야기가 이 이야기입니다. 나진주가 예린을 위해 디브이디를 훔치려다가 선우네 개에 물려죽죠. 이것은 그 사건의 목격자인 혜리의 이야기랍니다.
철없던 아이에서 어른으로 성장하는거겠죠... 유성과 혜리의 6년 뒤 이야기 궁금합니다~~
네 맞아요~어른이 되어가는 두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