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 안의 자유, 사도 요한
1요한 1,1-4; 요한 20,2-8 / 성 요한 사도 복음사가 축일; 2023.12.27
오늘 교회가 기리는 요한은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아 제자가 되었다가 로마의 박해 속에서도 초대교회를 돌보았던 사도이면서 또한 뛰어난 지성으로 요한복음서를 저술한 복음사가이기도 했습니다. 바오로가 개척해 놓은 소아시아의 초대교회를 이어 받아 로마의 잔혹한 박해도 끄덕없이 견디어내는 든든한 초석 위에 세워놓고 나서, 요한은 이를 두고 '새 하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창조하시는 '새 땅'으로 자부하였습니다(묵시 21,1).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 요한은 형 야고보와 함께 ‘천둥의 아들’(마르 3,17)이라는 별명을 들었을 만큼 과격한 성품을 지녔던 사람이었습니다. 언젠가 예수님을 모시고 사마리아 지방을 거쳐 예루살렘으로 질러가려는데 그 지방 사람들이 반대한다는 소문을 듣자 화가 나서 하늘에서 불을 내려서라도 응징하려다가 야단을 맞았을 정도 였습니다(루카 9,54). 그런가 하면 예루살렘에서 겪을 수난과 부활을 예고하시는 예수님과 동료 제자들 앞에서 “스승님이 영광의 자리에 앉게 되시면 형과 함께 그 옆자리에 앉게 해달라.”(마르 10,37)고 청탁했다가 이를 불쾌하게 여긴 동료 제자들 사이에서 갈등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눈치는 없으면서 공명심은 어느 정도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이 청탁을 들으신 예수님께서는 베드로가 만류할 때처럼 막무가내로 내치지 않으시고 화도 내지 않으시면서, 고난의 잔을 마실 수 있겠느냐고 부드럽게 타이르셨는데, 그 의외의 답변 말씀에도 순순히 순명한 것을 보면 그 공명심에 이기심은 없어 보입니다. 그래서 이 형제는 예수님처럼 고난의 길을 끝까지 갔는데 형 야고보는 순교하여 목숨을 바쳤고 동생 요한은 죽기까지 선교하며 일생을 바쳤습니다. 영광이든 고난이든 스승을 뒤따르겠다는 마음에서는 순수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무튼 이들 형제는 베드로와 함께 예수님께서 수행하신 공생활의 주요 장면마다 동행할 정도로 신임을 두텁게 받았고(마르 9,2; 13,3; 14,33), 형 야고보가 당시 알려진 땅 끝인 스페인까지 가서 선교했는가 하면, 동생 요한은 사도 바오로가 개척해 놓은 뒤를 이어 에페소를 비롯한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를 맡아서 선교했습니다. 이 시절에 요한은 예수님의 유언(요한 19,27)을 받들어 성모 마리아를 돌아가실 때까지 자신의 어머니처럼 모셨습니다.
그리고 요한이 쓴 복음서는 그전에 나온 다른 세 복음서와는 많이 다릅니다. 복음서의 시작을 유년기 이야기가 아니라 천지 창조 때부터로 잡을 만큼 예수님의 정체성에 대한 관심이 남다르게 깊었을 뿐만 아니라, 복음서의 주제도 막연하게 들릴 수도 있는 ‘하느님 나라’라는 이름 대신 더 구체적이고 또렷한 ‘영원한 생명’이라는 이름으로 내세워서 예수님을 믿는 삶의 영성적 성숙과 품위를 추구하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의 상황만 해도 공관 복음서에는 나오지 않는 이야기입니다. 요한의 아버지 제베대오가 시몬 베드로와 동업자(루카 5,10)일 정도로 베드로는 요한에게 아버지뻘 되는 연상의 동료였습니다. 예수님의 시신이 도난당한 것 같다는 마리아 막달레나의 다급한 전갈을 듣자마자 베드로와 함께 무덤으로 갔는데, 젊은 요한이 먼저 다다랐으나 베드로를 기다려주었습니다. 뒤늦게 도착한 베드로가 무덤 안에 들어가서 확인해 보니, 예수님의 얼굴을 감쌌던 수건이 따로 한 곳에 개켜져 있는 것으로 보아 그 시신이 도난당한 것은 아님을 알 수 있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요한 복음사가는 이 빈 무덤 이야기를 전하면서도 후대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영성적 과제를 부여합니다. 마리아 막달레나는 복음선포의 현장을 지키는 선교사의 전형이고, 요한은 현장성을 지향하는 카리스마적 공동체를 상징하는 인물이며, 베드로는 제도 교회의 대표를 상징합니다. 복음적 가치의 파수꾼을 자처하는 현장 선교사들은 늘 깨어서 시대의 징표를 식별해야 합니다. 진보적인 카리스마적 공동체들은 현장의 움직임에 따라 시대의 징표에 응답하는 데에 민감해야 하지만 판단함에 있어서는 제도 교회를 기다려주어야 함을 암시했습니다. 교회 전체를 아우러야 하는 제도 교회는 보수적인 경향이 있어서 시대의 징표를 식별하는 일에 늦기는 하지만 카리스마적 공동체나 현장 선교사들이 미처 깨닫지 못한 전체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중요한 위치에 있습니다. 요한은 이 본문을 통해서 선교 현장과 카리스마적 공동체와 제도교회가 긴장과 갈등 속에서도 서로 공존하는 지혜를 일러주고 있다고 요한복음 주석가들은 말하고 있습니다.
이 본문뿐만 아니라 요한복음서의 전체적인 흐름에서 첫째, 세상 창조 때부터 계셨던 말씀이신 분이 이제 다시 새롭게 영원한 생명으로 세상을 창조하시려고 오셨다는 것, 둘째로 그런데도 대다수의 세상 사람들이 이를 알아보지 못하는 답답한 현실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행히도 극소수의 하느님 백성이 이를 알아보고 고백하는 증언을 전해줍니다. 그래서 요한복음서는 영원한 생명으로 세상을 새로이 창조하시는 교회의 창세기와도 같은 책입니다. 영원한 생명이 지금 여기서 시작될 수 있게 되었다는 기쁜 소식을 전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서는 무식한 어부 출신 요한이 예수님으로부터 제자로 부르심을 받고 사도로서 양성을 받아 고결한 신앙체험을 하고 나서 깊은 영성적 숙고를 더하여 이 기쁜 소식을 전하려고 쓴, 뛰어난 지성의 산물입니다. 요컨대 요한은 진리 안의 자유를 누린 인물입니다.
이 ‘진리 안의 자유’를 추구하면서 요한은, 바오로가 개척하고 티모테오가 물려받았다가 넘겨준 에페소를 비롯한 여섯 공동체를 사목하면서 초대 교회를 로마제국의 박해 속에서 지켜냈습니다. 그가 남겨 놓은 기록은 요한의 편지 세 통, 요한 묵시록 그리고 요한 복음서 등 모두 다섯 권의 요한계 문헌이며, 이 일곱 공동체를 중심으로 한 초대 교회가 위치한 곳은 ‘소아시아’라고 부르는 지금의 튀르키에 땅입니다. 아시아의 서쪽 끝으로서 유럽과 맞닿아 있습니다.
대아시아, 즉 아시아 대륙에서 복음화 제3천년기에 풍성한 수확을 기대하는 가톨릭 보편교회는 대희년을 앞둔 지난 1998년에 소집된 아시아 주교 시노드를 통해 이렇게 아시아 가톨릭 신앙인들에게 호소한 바 있습니다(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권고, ‘아시아 교회’). “아시아 대륙에서 그리스도 신앙이 자리잡기 위해서는 서양화된 그리스도를 아시아에 뿌리내리는 토착화가 필요합니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서양적인 이미지로 받아들이거나 외래적인 인물로 받아들이지 않도록 신앙 표현의 토착화된 형태들로 점진적으로 나아감으로써, 그리고 언제나 그리스도인들의 감수성을 존중하며 이루어져야 합니다. 토착화는 어떤 경우든지 반드시 백성의 신앙을 강화시키려는 목적을 가지고, 복음과 합치하고 보편 교회의 신앙과 일치하며 교회의 전통과 전적으로 조화를 이루는 가운데 이루어져야 합니다. 참된 토착화의 시금석은 백성들이 자신의 그리스도교 신앙에 더욱 투신하게 되는지 여부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기 문화의 시각으로 신앙을 더욱 명확하게 인식하기 때문입니다.”
교우 여러분!
문헌 ‘아시아 교회’는 요한 바오로 2세의 교황권고로서 반포되었는데, 대희년을 앞두고 여러 대륙별로 순차적으로 개최된 주교 시노드로서는 마지막 차례였고 당시 아시아의 교회들 가운데에서 가장 서임 서열이 앞섰던 김수환 추기경이 좌장으로서 개최했던 시노드이기도 했습니다. 아시아 대륙에서 그리스도 신앙이 자리잡기 위해서는 서양화된 그리스도를 아시아에 뿌리내리는 토착화가 필요하다고 호소했던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권고에 따라서 오늘 이후에는 문헌 ‘아시아 교회’에서 권고한 내용을 그날 그날의 독서 및 복음과 관련하여 전해 드리겠습니다. 이는 ‘진리 안의 자유’를 추구했던 사도 요한의 삶과 신앙을 따르는 길입니다. 왜냐하면 다른 대륙들과 달리 유럽 대륙에서 자리잡은 그리스도교보다 더 앞선 고등 종교와 문화를 보유했던 아시아 대륙인에게 복음을 전하고자 하면, 종교적 개종을 염두에 둔 대결적인 선교 자세는 포기되어야 하고 상호 존중하면서 진리를 추구하려는 자세가 바람직하다고 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