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반영하는 것
장성숙/ 극동상담심리연구원, 현실역동상담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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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여백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글이든 그림이든 빡빡하면 왠지 부담스러워 꺼려진다. 비단 이런 것은 글이나 그림에서만이 아니라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더욱 그러하지 않을까 한다. 아니 오히려 인간관계에서 여백의 중요성은 더욱 두드러진다고 본다.
엊그제 몇몇 사람이 누군가를 방문하였는데, 우리를 맞이한 분들은 그곳에서 벌리는 활동이라든가 또는 거기에서 자신이 무엇을 느끼며 어떻게 감명받았는지를 우리에게 토로하기에 여념 없었다.
처음에는 귀를 기울이었지만, 이야기가 길어짐에 따라 집중하는 게 피곤해졌다. 그래서 적당히 끊어볼 요량으로 나도 입을 열어보았지만, 상대는 내 말에 응수하는 듯하다가 다시 자기 이야기로 끌고 갔다. 그런데 한 사람만이 아니라 그곳의 다른 분들도 그렇게 하였다.
얼마 후 일어섰는데 밖에 나와서는 자신도 모르게 심호흡했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계속 듣지 않아도 된다는 게 얼마나 편하던지. 돌아오는 차 안에서 우리 일행은 각자 한두 마디 말하다 멈추면 잠시 정적이 돌고, 그러다가 궁금한 것이 있으면 묻기도 하는 등 그야말로 자유롭게 대화를 이어갔다. 좀전의 그런 지루했던 경험 때문인지 문득 그다지 말을 많이 하지 않는 우리 일행의 조합에 대해 좋다고 느껴졌다.
남자들의 수다도 만만치 않다고는 하지만 비교적 여성들이 말을 많이 하는 편이다. 타고난 성향상 그런 것인지 아니면 그렇게 해야 불이득을 면하는 상황 때문인지 정확히는 알 수는 없으나 아무튼 여자들이 말을 많이 한다. 그리고 이런 면에서는 많이 배웠든 적게 배웠든 별 차이가 없는 것 같다.
오래된 일이긴 한데, 어떤 여성은 최고의 지성을 자랑하는 사람이었는데 늘 자기 이야기에 여념 없었다. 그분보다 나이가 적었던 나는 아무런 말도 못 하고 잠자코 들었지만, 비슷한 연배의 남자분은 그래도 그 여성과 친하다고 여겼는지 말이 너무 많다고 귀띔해주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런 지적에 잠시 무안해했을 뿐 여전히 자기 습성대로 했다.
직업이 심리상담사인 나는 온종일 내담자들이 하는 말에 파묻혀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많은 여성을 만나면서 나는 그들의 하소연이 합당한지 아닌지와는 별개로 그들이 지닌 태도로 인해 불이익을 받겠다고 여긴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도무지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세세하게 말하는 사람에게 누가 질리지 않겠는가. 심지어 어떤 부인은 상담자인 내게 의견을 구하러 왔다고 하면서도 자신의 말에 취한 나머지 도통 내게 말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 대략적인 윤곽만 들려주어도 상대방이 이해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몰라서인지 아니면 그렇게 해야 직성이 풀리기 때문인지 아무튼 딱했다.
지성과는 별개로 이렇게 시시콜콜 말하는 경향, 대체 이것의 뿌리는 무엇이며, 무엇을 반영하는 것일까? 의외로 많은 사람이 이런 식의 태도로 이득을 보기는커녕 도리어 손해를 자초하니 한번 진지하게 짚어볼 문제다.
여성들이 이토록 세밀하게 이야기하는가에 대해서는 다양한 견해가 있을 수 있는데, 나는 그런 게 이해받거나 사랑받고 싶어 하는 욕구와 관련 있다고 본다. 다른 종(種)과는 달리 사람은 장수하는 존재로서 성장 속도가 아주 느린 편에 속한다. 다시 말해 양육자에게 의존해 지내는 기간이 길다는 것이다. 이런 기간에 충분히 인정받지 못하면 생존에 위협을 느끼기 때문에 사람에게 양육자는 아주 중요한 대상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보호자와 피보호자 관계에서 대상이 자기를 소홀히 대하지 않도록, 즉 주목하도록 말을 많이 하는 것 아닐까 한다. 말을 잘하면 주위에서 똑똑하다며 제법이라고 칭찬하는 식의 강화를 주고, 그러면 이런 게 습성처럼 자리 잡는다고 본다.
이러한 가정을 확인해보고자 말이 많은 내담자에게 언제부터 무엇 때문에 그렇게 말을 세세하게 되었느냐고 물으면 대개는 모른다고 대꾸한다. 하긴 자기가 말을 질리게끔 한다는 사실조차 잘 모르는데, 그렇게 된 이유나 시점을 알 리 만무다. 그리하여 함께 더듬더듬 찾아보면, 그렇게 하지 않으면 관심을 받지 못하니까 자신도 모르게 그러한 방식을 취하였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아무튼 말은 단지 의사소통의 수단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기에 관한 중요한 지표 중의 하나다. 입을 다물고 있을 때는 그 사람에 대한 가늠이 어렵지만, 일단 말을 하면 그 사람의 됨됨이가 속속 다 드러난다. 깊이가 얼마나 되고, 무엇에 치우쳐 있는지, 어떤 결핍을 내보이는지 등이 다 보인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외형을 다듬고 치장할 뿐만 아니라 내면을 다 노출하는 말을 어떻게 구사하고 있는지 늘 점검하며 살아야 한다. 그렇지 않고 자기가 어떻게 느끼고 무엇을 생각하고 또 어떠한 것을 경험했는지를 지나치게 상세히 말했다가는 자칫 자아도취적이라든가 미숙하기 이를 데 없는 자애적 성격 소유자로 취급받을 수 있다.
그리하여 나는 말 많은 사람들에게 다른 것은 차치하더라도 처해있는 자리에서 1/n의 시간을 넘지 않도록 말하라고 당부한다. 그 이상 길게 말하면 그만큼 상대방에게 경청을 강요하는 식이 되어 실례는 물론 감점을 받는다고 일러주곤 한다.
첫댓글 수업시간도 아니고 오래 듣고 앉아 있기 힘들지요.
아무리 좋아도 긴 설교 정말 지루하지요..
오래 앉아 있기도 힘들어요,,, 허리도 아프고 다리도 쑤시고...
말많은 사람 ,,딱 질색...
하품 나오네요.
하루종일 남의 말을 듣는 게 저의 직업인데도 점점 말 많은 사람이 부담스러워집니다.
그래서 저도 가급적 말을 많이 하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칠면조 요리를 추수감사절에 잘 드셨지요?
부디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침묵이 금'이라는 속담도 생긴 모양입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말 많은 사람을 만나기가 두려워지더군요. 요즘은 쓸 말 외에는 하고 싶지가 않네요.
뭐가 잘 못된 걸까요?
억압하므로 병이 난다고 여기기 때문에 가능한 한 표현을 많이 하라고 상담에서는 격려합니다.
그런데 이것과 말 많은 게 겹치거나 연결될까봐 걱정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