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거유회록정청도계권장중(在居有懷錄呈靑桃溪卷藏中)」행시
재 — 在世의 큰 뜻 품고 세월 따라 걸어오니
거 — 去日의 자취마다 가을비처럼 아득하고
유 — 有懷한 마음은 기러기 울음 따라 멀리 흐르며
회 — 回首해 돌아보니 다하지 못한 뜻만 남았네
록 — 錄해 둔 한 줄 시에 지난날의 마음 담고
정 — 情든 산천 바라보며 저무는 해를 맞는다
청 — 靑山은 말없이 구름 속에 잠겨 있고
도 — 道를 향한 한평생도 물결처럼 흘러가네
계 — 溪水는 맑게 흘러 묵은 시름 씻어주고
권 — 卷을 펼쳐 지난날의 발자취 다시 읽으며
장 — 長江 저 기러기처럼 세월은 끝없이 가고
중 — 重重한 회한 내려놓고 물과 구름에 누우리라.
【漢詩散策】
齋居有懷錄呈靑城道契權章仲(재거유회록정청성도계권장중)/西厓 柳成龍(서애 유성룡)
서재에 머물며 회포가 일어, 청성산의 도반인 권장중(권호문)에게 적어 보내다
細雨孤村暮(세우고촌모)
寒江落木秋(한강락목추)
壁重嵐翠積(벽중람취적)
天遠雁聲流(천원안성류)
學道無全力(학도무전력)
臨岐有晩愁(임기유만수)
都將經濟業(도장경제업)
歸臥水雲陬(귀와수운추)
이슬비에 외로운 마을 저물고
차가운 강물에 나뭇잎 떨어지는 가을.
벽에는 파란 이끼 쌓이고
하늘 멀리 흐르는 기러기 소리.
배움 길에 다하지 못한 힘
갈림길에선 때늦은 후회를.
한갓 큰 뜻 품고서
산 좋고 물 좋은 이곳 산기슭으로 왔네
출처: 韓國漢詩眞寶 五言律詩
※ 이 시는 서애 유성룡(柳成龍)이 만년에 자신의 학문과 삶을 돌아보며 느낀 회한과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을 담은 작품으로 볼 수 있습니다. 특히 가을 저녁의 쓸쓸한 풍경과 자신의 내면을 겹쳐 놓은 점이 매우 인상적입니다.
1. 시의 전체적인 뜻
細雨孤村暮(세우고촌모)
가랑비 내리는 외로운 마을에 해가 저물고,
寒江落木秋(한강락목추)
차가운 강에는 낙엽이 떨어지는 가을이 깊어 간다.
壁重嵐翠積(벽중람취적)
산 안개 어린 푸른빛이 벽처럼 겹겹이 쌓이고,
天遠雁聲流(천원안성류)
먼 하늘에서는 기러기 울음소리가 아득히 흘러온다.
앞의 네 구는 단순한 가을 풍경 같지만, 사실은 시인의 마음을 비추는 거울입니다.
‘孤村·暮·寒江·落木·秋·遠天·雁聲’이라는 말들이 모두 쓸쓸함과 세월의 흐름을 느끼게 합니다.
2. 후반부에 드러나는 인생의 회고
學道無全力(학도무전력)
도를 배우고 학문을 닦았으나 온 힘을 다하지 못했고,
臨岐有晩愁(임기유만수)
인생의 갈림길에 이르러 늦은 근심이 생긴다.
여기서 **‘晩愁’**가 이 시의 핵심적인 정서입니다.
젊은 날에는 앞으로 얼마든지 시간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인생의 저녁에 이르면
‘내가 과연 뜻한 바를 다 이루었는가?’
‘좀 더 힘써 살았어야 하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이 찾아옵니다.
그것은 실패했다는 자책이라기 보다 한평생을 살아온 사람이 자신의 삶을 조용히 돌아보며 느끼는 아쉬움에 가깝습니다.
3. 마지막 두 구의 깊은 뜻
都將經濟業(도장경제업)
세상을 다스리고 백성을 구제하려던 큰 뜻과 일을 모두 내려놓고,
歸臥水雲陬(귀와수운추)
물과 구름 어우러진 한적한 곳으로 돌아가 누워 지내려 한다.
여기서 經濟業은 오늘날의 경제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경륜하고 백성을 구제하는 경세제민(經世濟民)의 뜻입니다.
서애 유성룡은 평생 나라를 위해 큰일을 감당했던 인물입니다. 그러기에 마지막 구절의 ‘歸臥’는 단순히 편안히 쉬겠다는 뜻만은 아닙니다.
세상에 대한 큰 책임과 뜻을 내려놓고 자연 속에서 자신의 본래 자리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4. 이 시의 가장 아름다운 점
이 작품은 풍경 → 회고 → 체념과 귀의의 흐름으로 읽으면 더욱 깊어집니다.
처음에는
가랑비, 저무는 마을, 찬 강, 떨어지는 낙엽, 기러기 소리
라는 쓸쓸한 가을 풍경을 보여줍니다.
그러다가 시인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나는 학문과 뜻을 다 이루지 못했다.”
라는 인생의 회한을 드러냅니다.
마지막에는
“이제는 물과 구름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 쉬리라.”
하며 자연에 자신을 맡깁니다.
그래서 이 시는 단순한 가을의 서정시가 아니라, 한 선비가 인생의 황혼에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며 읊은 자성(自省)의 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 감상
특히 **“天遠雁聲流”**가 오래 마음에 남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은 먼 하늘뿐인데, 그곳에서 들려오는 기러기 소리는 끝없이 흘러갑니다. 마치 흘러가는 세월과도 같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의 **“歸臥水雲陬”**는 참으로 담담합니다.
큰 뜻을 품고 세상에 나아갔던 사람이 결국에는 물과 구름이 머무는 한적한 곳에서 자신의 삶을 내려놓는 모습입니다.
우리의 인생도 이와 닮았는지 모릅니다.
젊을 때는 무엇인가를 이루기 위해 앞만 보고 달리지만, 세월이 흐른 뒤에는 얼마나 이루었느냐보다 누구와 함께 걸었으며, 어떤 마음으로 살아왔느냐가 더 소중하게 다가옵니다.
그래서 이 시의 ‘晩愁’는 슬픔으로만 읽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것은 지나온 삶을 돌아보는 성찰이며, 마지막에는 자연과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담담한 달관(達觀)**으로 이어집니다.
“학도무전력(學道無全力)”의 아쉬움에서 “귀와수운추(歸臥水雲陬)”의 평온으로.
바로 그 마음의 변화가 이 시가 주는 가장 깊은 여운이라고 생각합니다.
첫댓글
齋
재촉을 하듯 빨리가다
居
머무는 마음에
有
그리움 있어
懷
옛 추억 품에 안고 달래다
錄
기록해 둔 예쁜 이야기
呈
정성스레 펼쳐 보면
靑
푸른 산과 맑은 마음
桃
복사꽃 피던 봄 날
溪
계곡 물 흘러 가는 풍경
卷
한 권의 책 속에 담아
藏
고이 간직하고 싶은 추억
中
마음 안에 머물리라
휴 ~~ 너무 어려워요
짜 맞추느라 머리에
쥐 났어요 ㅎ
편한 밤 되세요
ㅎㅎㅎㅎㅎ
이해가 됩니다.
사실 이 글을 행시로 옮기기엔 쉽지 않죠.
이튼님이 대단한 실력을
갖추심을 짐작합니다.
감사합니다
齋실의 고요한 창가에 홀로 앉아
居친 세월 돌아보니 벗의 정이 그립구나
有유한 달빛은 옛정을 비추고
懷포는 깊어져 밤이 더욱 길어지네
綠음 짙은 대숲에 바람이 지나가고
呈겨운 옛 시 한 수 마음에 떠오르니
靑산은 예나 다름없이 푸르건만
城밖의 벗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道의로 맺은 인연 세월에도 변치 않고
약속한 우정은 천 리 밖에서도 이어지니
權주 한 잔 나누던 그날이 새삼 그립고
章차 다시 만나 정담을 나누고 싶구나
仲한 벗이여, 오늘도 그대 생각하며
고요한 밤 마음속에 그 이름을 새기노라
齋 살아가는 동안 좋은 인연 만나
居 한곳에 머물 듯 마음을 나누고
有 벗의 깊은 정 오래도록 간직하네
懷 회포 속 그리운 마음 시가 되어 흐르고
錄 적어 둔 옛 글마다 추억이 새록새록
呈 하여 올리는 마음 정성도 함께 담네
靑 푸른 산 맑은 물 마음까지 씻어주고
城 성 쌓듯 마음도 정성도 함께 담네
道 길 따라 세월 따라
契 계속 가다가
權 권중배를 만나
章 장장 열흘 밤을 세우다
仲 중배와 그만 정이 깊었다네
@이튼이
길기도 긴 행시글
답글을 쓰려 하니
머리가 아프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