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0월 10일 연중 제27주간 화요일
조명연 신부
평소에 메모지와 펜을 들고 다닙니다. 문득 떠오르는 생각들을 잊어버리지 않고 기록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렇게 반짝 이는 생각들이 묵상 글 작성하는 데 큰 도움이 되며, 강의할 때도 좋은 소재가 되기 때문입니다.
추운 겨울이었습니다. 홀로 여행 중이었는데 너무 추워서 몸이라도 녹이려는 마음과 더불어 따뜻한 커피 한 잔이 생각 나서 근처의 카페 들어갔습니다. 커피를 마시던 중, 여러 가지 생각이 나면서 이를 글로 남겨야겠다 싶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평소에 항상 들고 다니던 메모지와 펜이 가방에 없는 것입니다.
어쩔 수 없이 카페 직원에게 펜을 빌렸고, 테이블에 놓은 냅킨에 글을 적기 시작했습니다. 냅킨 두 장에 빼곡하게 글을 적었습니다. 이런 생각을 했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아졌고, 이 내용을 다음 피정 강의 때 꼭 사용하리라 다짐했습니다. 그러나 이때 쓴 글은 그 어디에서도 쓰지 못했습니다. 글쎄 카페에 나올 때, 글을 적었던 냅킨을 테이블 위에 놓고 나온 것입니다. 이 사실을 저녁에 도착한 숙소에 가서야 알 수 있었습니다.
아쉬웠지만 지나간 일을 다시 되돌릴 수는 없지요. 그리고 이렇게 후회할 일은 삶 안에서 계속되었음을 깨닫습니다. 이 후회를 줄여야 행복의 길에 가까워질 것입니다. 따라서 되돌릴 수 있는 일이라면 과감하게 잊어버리고 지금에 충실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예수님으로부터 구원의 약속을 받은 사람들을 떠올려 봅니다. 그들은 모두 지금에 충실한 사람이었습니다. 과거의 죄에 매여서 절망 속에 사는 사람이 아니라, 회개하고 주님께 향하면서 지금 주님과 함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마르타와 마리아의 집에 가십니다. 귀한 손님이 오셨다고 마르타는 갖가지 시중드는 일로 분주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그저 주님의 발치에 앉아 말씀만 듣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이 모습에 마르타가 약간 화가 났나 봅니다. 자기만 일하고 동생 마리아는 편하게 말씀만 듣고 있으니 말이지요.
예수님께서는 마르타의 몫과 마리아의 몫에 차이가 있다고 하시지 않습니다. 마르타가 시중드는 것도 중요하고, 발치에 앉아 말씀을 듣는 것도 중요했습니다. 단지 이 안에서 어떤 판단이 있어서는 안 되었습니다. 이것도 해야 하고 저것도 해야 한다면서 분주하게만 지낸다면 주님과 함께하는 자리에서도 불평과 불만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자기 자리를 주님과 함께하는 데 집중했다면, 시중을 들면서도 크게 기쁠 수 있고 또 발치에서 말씀을 들으면서도 기쁨을 간직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얼마나 지금에 충실할까요? 혹시 어떤 판단으로 인해서 마르타처럼 불평과 불만으로 지금에 충실하지 못하면서 후회를 만들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오늘의 명언: 기도하고 있습니까? 그것은 신랑에게 말을 건네는 것입니다. 성경을 읽습니까? 그것은 당신께 말씀을 건네시는 그분을 경청하는 것입니다(성 예로니모).
사진설명: 마르타와 마리아
[인천 가톨릭대 성 김대건 안드레아 성당/조명연 마태오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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