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월 25일(수)
* 시작 기도
주님...
내 안에 주님을 예배하는 것을 멸시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나를 멸하소서.
하지만 나의 마음과 행동이 주님의 뜻에 반하는 것이 나를 둘러 진치고 있음을 아나이다.
나는 죽기에만 합당한 엘리의 아들들과 같은 자이오니 날 불쌍히 여기사 주의 긍휼을 베풀어 주소서.
새로운 이 하루도 주의 은혜가 아니면 나는 살 수 없습니다.
오직 주님의 십자가의 보혈로 나를 덮어 주소서.
그 보혈의 능력으로 이 하루도 살게 하소서.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삼상 2:12-21
제목 : 어린 사무엘과 엘리의 아들들이 둘로 확연하게 갈리다.
12 엘리의 아들들은 행실이 나빠 여호와를 알지 못하더라.
13 그 제사장들이 백성에게 행하는 관습은 이러하니 곧 어떤 사람이 제사를 드리고 그 고기를 삶을 때에 제사장의 사환이 손에 세 살 갈고리를 가지고 와서
14 그것으로 냄비에나 솥에나 큰 솥에나 가마에 찔러 넣어 갈고리에 걸려 나오는 것은 제사장이 자기 것으로 가지되 실로에서 그 곳에 온 모든 이스라엘 사람에게 이같이 할 뿐 아니라
15 기름을 태우기 전에도 제사장의 사환이 와서 제사 드리는 사람에게 이르기를 제사장에게 구워 드릴 고기를 내라. 그가 네게 삶은 고기를 원하지 아니하고 날 것을 원하신다 하다가
16 그 사람이 이르기를 반드시 먼저 기름을 태운 후에 네 마음에 원하는 대로 가지라 하면 그가 말하기를 아니라 지금 내게 내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억지로 빼앗으리라 하였으니
17 이 소년들의 죄가 여호와 앞에 심히 큼은 그들이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함이었더라.
18 사무엘은 어렸을 때에 세마포 에봇을 입고 여호와 앞에서 섬겼더라.
19 그의 어머니가 매년 드리는 제사를 드리러 그의 남편과 함께 올라갈 때마다 작은 겉옷을 지어다가 그에게 주었더니
20 엘리가 엘가나와 그의 아내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 여인으로 말미암아 네게 다른 후사를 주사 이가 여호와께 간구하여 얻어 바친 아들을 대신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니 그들이 자기 집으로 돌아가매
21 여호와께서 한나를 돌보시가 그로 하여금 임신하여 세 아들과 두 딸을 낳게 하셨고 아이 사무엘은 여호와 앞에서 자라니라.
* 나의 묵상
제사장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는 자들이었다.
그들의 행실은 여호와를 아는 자라 할 수 없을 정도로 악하였다.
어떤 사람이 제사를 드리고 그 고기를 삶을 때에 제사장의 사환이 손에 갈고리를 쥐고 고기를 삶는 솥에 넣어서 휘휘 젓다가 갈고리에 걸려 나오는 것을 제사장에게 갖다 주어 먹게 하였는데 이런 일은 실로에 제사하러 오는 대부분의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행하였다.
그뿐 아니라 기름을 태우기 전에 제사장의 사환이 와서 제사장이 삶은 고기를 원하지 않으니 생고기를 달라고 억지를 부려 생고기를 빼앗다시피 하여 제사장에게 갖다 주기도 하였다.
심지어 제사를 드리는 제주가 사정을 하면서 제발 고기의 기름을 먼저 태운 후에 마음대로 고기를 가져가라고 해도 사환들은 제사장이 날 것을 좋아한다는 미명하에 생고기를 빼앗아갔던 것이다.
이들의 죄가 여호와 앞에서 심히 컸는데 그것은 그들이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하였기 때문이다.
한편 사무엘은 어려서부터 세마포 에봇을 입고 여호와를 섬겼다.
그의 어머니 한나는 매년제를 드리러 남편과 함께 실로에 올 때마다 작은 겉옷을 지어서 사무엘에게 입혔다.
그 때 제사장 엘리가 엘가나와 한나를 축복하였다.
주 여호와께서 이 여인 한나로 하여금, 기도하여 얻은 아들 사무엘을 하나님께 드린 것 대신 다른 후사 주시기를 위하여 기도하였다.
그리고 그들이 집으로 돌아가서 동침하였더니 하나님께서 그들을 돌보셨고 그들이 사무엘 외에 3남2녀를 더 낳았다.
한편 큰 아들 사무엘은 여호와 앞에서 자랐다.
창세 이후로 만물 안에 있는 자들은 항상 두 부류로 나뉘었다.
은혜를 필요로 하는 자들과 은혜를 필요로 하지 않는 자들이다.
은혜로 살아가는 그룹과 은혜를 무시하는 그룹이 바로 그것이다.
가인은 그의 이름의 뜻과 같이 성공 획득 곧 있음의 대명사로 살기 원하였다.
하나님은 그의 제사는 받지 않으신 반면 동생 아벨의 제사는 받으셨다.
그로 인하여 가인은 자기가 드린 제사와 자기의 행위를 인정받지 못한 것에 대하여 격한 분노를 일으켰고 그 제사와 행위를 얻기 위하여 동생을 죽여야만 했다.
그래서 최초의 살인자가 된 것이다.
이처럼 있음의 대명사인 가인의 그룹과 없음의 대명사인 아벨의 그룹이 완전히 구별되었다.
가인의 후손은 있음의 자손답게 세상의 각종 문명과 문화를 이끄는 조상들이 되었다(창 4:16-24).
그들은 결국 세상의 네피림이 되어 거인과 용사 그리고 유명한 자가 되고자 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홍수로 몰살당하고 말았다.
또한 그렇게 노아의 가족과 노아를 제외한 온 세상으로 나뉜다.
세상에서 가장 연약한 자로 노아가 세움을 받는다.
그 노아는 온 세상으로부터 손가락질과 조롱 그리고 멸시를 당한다.
그 이유는 120년이라는 하나님의 심판의 유예기간에 노아는 방주를 짓는데 세상 사람들의 관점으로 볼 때는 배를 만들려면 바닷가에서 만들어야 하는데 산꼭대기에서 배를 지으니 당연히 우스갯거리밖에 되지 않았던 것이다.
노아가 선지자가 되어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지만 그 누구도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을 뿐 아니라 그를 조롱하며 업신여길 뿐이었다(벧후 2:5).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조롱과 업신여김을 받은 노아와 그의 가족만 방주에 속하여 구원하셨고 나머지 네피림이 되고자 하는 용사나 유명한 자들은 모두 홍수로 멸하셨던 것이다.
또한 노아의 아들들 중에 셈과 함으로 구분지을 수 있다.
함은 아버지 노아가 포도주에 취하여 벌거벗고 자는 모습을 보고 이를 형 셋과 동생 야벳에게 흉을 보았다.
그러나 셈과 야벳은 이를 듣고 뒷걸음쳐서 아버지에게로 들어가 그의 벗은 몸을 겉옷으로 덮었다.
이로 인하여 아버지 노아는 함을 저주하고 셈과 야벳은 축복하였다.
그런데 하나님의 백성들은 세상에서는 항상 약자로 드러난다.
저주를 받은 함은 가나안을 비롯한 애굽의 조상이 되었고 셈은 이스라엘의 조상이 되었다.
먼 훗날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시고 이스라엘이 애굽의 종으로 팔릴 것을 말씀하신다.
그리고 때가 되어 셈의 자손 이스라엘이 함의 자손 애굽의 종이 되었다.
하지만 430년 후에 하나님께서는 함의 자손인 애굽의 모든 장자를 죽이시고 이스라엘을 해방시키신다.
또한 이스라엘이 홍해를 건널 때 그들을 쫓아온 애굽 군대를 홍해에 몰살시키셨다.
이렇게 하나님의 백성은 은혜로 구원을 받지만, 은혜에서 제외된 자들은 멸망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이다.
이렇게 오늘 본문 역시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와 그 은혜를 멸시하는 자로 구분된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는 주 여호와 앞에서 자라는 사무엘이며 은혜에서 제외된 자는 여호와 하나님의 제사를 멸시하는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이다.
이들 두 아들의 행위가 하나님의 제사를 멸시하는 모습으로 드러나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구원에서 제외된 자들로서 그런 악행을 저지르는 자로 묘사된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 땅에서 악행을 저지르는 자들이 모두 구원에서 제외된 자들은 아니라는 것이다.
단지 하나님께서 오늘 본문을 통하여 하나님의 백성들과 그렇지 않은 자들을 구별하기 위하여 그렇게 묘사하신 것이지 사람의 행위로 구원과 유기를 구분하지 않으신다.
만약 그렇다면 아무런 행위를 하지 않은 두 사람 곧 에서와 야곱이 리브가의 뱃속에 있을 때에 이미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과 그렇지 못한 자로 구분하셨다는 것을 무엇으로 설명하겠는가?
(창 25:23)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더라.
(롬 9:11-13)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할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리브가에게 이르시되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나니 기록된 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
이처럼 선택과 유기는 창세전에 이미 하나님의 뜻대로 예정하신다.
그런 이유로 오늘 우리는 단지 날 선택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 앞에서 살아가는 믿음의 사람으로 설 뿐이다.
거기에 나의 행위나 의를 기여할 아무것도 없다.
그것으로 나를 드러내고 주장하려는 것이 곧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아담의 군상임을 증명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나는 이 세상에 영원한 생명을 거저 받은 자로서 존재할 뿐이다.
나는 선악과를 먹은 자요 내가 하나님이 되려는 자기주장의지로 점철된 자이기에 죽기에만 합당한 자이다.
이 세상에는 의인이 없되 단 하나도 없다(롬 3:10).
그리고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여 죄인이 되었고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되었다(롬 3:23).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 곧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함을 얻은 자 된 것이다(롬 3:24).
내가 바로 이런 은혜를 받은 자이다.
하여 내가 무엇으로 나를 드러내고 주장할 수 있단 말인가?
나의 털끝만한 의나 행위도 결코 날 구원하신 하나님의 행동하심에 기여할 수 없다.
내가 그런 마음으로 조금이라도 행한다면 그 순간 나의 모든 행동은 기각될 뿐이다.
나는 오로지 주님의 은혜로 지금 이 자리에 있음을 고백한다.
날 구원하여 주신 주님의 은혜 앞에 서서 오늘도 영으로 주를 만나며 어린 사무엘처럼 자라날 뿐이다.
날 구원하신 주님께 찬양과 영광을 올린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죽기에만 합당한 나, 죄의 태풍에 날려가 버릴 벌레 같은 나를 주님은 기억하시고 생명으로 건져주셨나이다.
내가 무엇으로 주님을 찬양할 수 있으리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음은 내 입이 부정하기 때문이며 내 마음이 검디검은 부정한 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죄에 걸려 넘어진 자가 다시금 우리 예수를 힘입어 일어나 담대히 아버지께로 나아감은 나의 힘이 아니라 오직 예수를 힘입기 때문이오니 나를 받아주소서.
예수만 보시고 그 예수로 인하여 구원을 완성하시는 하나님 아버지를 찬양합니다.
내가 예수의 보혈의 옷을 덧입고 나아가는 것은 그 안에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나를 당신의 옷으로 덮어주소서.
룻이 보아스에게 한 고백처럼 당신의 옷자락으로 나를 덮으소서.
그리하여 주님의 품안에서 호흡하며 눈을 뜨게 하시고 귀를 열어 듣게 하소서.
나는 죽고 오직 예수로 부요한 자 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