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민간 체재인 중학교와 고등학교의 파티명제도 바뀌어야 한다,
엊그제 광희 중학교와 용산고등학년의 송년 파티에 연달아 참석하였다, 둘다 내 모교다. 고등학교가 없는 광희 중학은 아파트 군이 에워 싼 응봉동(엣날 행당동)에 자리잡고 있었고 그 이름도 빛나라 현재는 서울 시내 어디에 내어놓아도 둘째가라면 서러운 학교로 변모하였고 용산 고등은 강남으로 이사를 안간체 유일하게 엣날 그 자리인 후암동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50여년전을 생각해 보면 두 학교 모두, 시골(충남 아산)에서 올라 온 숭악한 시골 촌놈을 길들인 학교들이다. 특히나 광희 중학은 성동공교 자리에 compound를 같이쓰고 있어, 이 학교의 중학교로 오해를 받았고, 남자들만 득시글 거려, 더욱 그러한 오해를 올렸었다. 그러나 지금은 공립학교로 남여 공학을 이루면서 행당동으로 독립된 학교부지를 택하면서 아파트 군에 쌓여 있어 아파트 군 자식들의 향학열에 불타는 어머니들의 남다른 관심으로 소위 일류학교로 변신하였다.
고등학교 송년회는 우리 같은 학년(15회)의 파티였고 중학교 송년 파티는 그럴수 밖에 없는 중학교 졸업생을 총괄하는, 후배들이 주축을 이룬, 총 동창회의 송년 파티였다. 가수가 음악을 담당한 고등학교 송년회와 그 학교 출신들로 구성된 밴드반으로 구성되어 "징글 벨"을 울려대던 송년회등 2가지 행사 모두가 재미있었다. 최소한 나한테는 그렇다는 이야기였다.
광희 중학의 송년파티에는 요즈음들어 내어놓으라는 얼굴들로 얼룩젔고 고등학교 송년회에선 매년 보지만 그와같은 얼굴들이 주축을 이루었다. 내가 중학을 졸업하던 61년엔 이 학교이상의 원서 써주는 것을 싫어하던 중학교 담임 선생의 자제된 욕심과 내종 6촌이던 용중의 국어선생이던 강 OO (여) 선생의 재직때문에 이 학교를 강력 추천하던 우리집 당숙의 말을 엄연한 진실로 받아 들이던 아버님의 한계가 있는 욕심이 맞아 떨어져, 더 좋은 학교로 진학하려던 나를 붙들어 세우고 용산고등으로 가게 만들었다. 그게 내가 고등학교를 택한 전부였다.
두 행사는 두 학교의 9시 쯤 교가제창으로 끝이 났다. 물론 시작은 국가 수준이 조금만 더 나아지면 못할 국수주의 냄새가 물신 풍기는 국민의례순서로 막을 올렸다. 두 학교 모두 다 누가 하라고 한 것도 이닌데 "영광스런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태어 난 것"을 자랑으로 여기며, 교가 제창으로 "이 학교 학생으로 몸 담았던 것"을 다행으로 생각한다는 애향심과 애교심을 불러 일으키는 내용이 주축을 이루었다.
우리나라가 유럽의 중심에 있더면 나가 태어난 40연대에는 모를 까, 2010대에는 더 이상 국수주의 냄새가 난다고 세계에서 몇째 안가는 선진국으로 되였으니, 우리나라도 지금은 한껏 이 분위기를 enjoy 하여야 한다. 조그만 있으면 이도 못하게 될 것을! 생각해 보라. 다 문화를 부르짓고 선진국 대열에 올라설 나라에 오는 후진국 사람이 있를 까? 이런 행사에 참석하여 국수주의 냄새가 물신 코를 찌르는 행사에 참석할 후진국 사람들이란 없을 것이다.
이제 곧 먹는 문제는 더 이상 이민하게 만드는 주요 인자가 되지 못하고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인 문제들이 국가를 선택하게 하는 주요 인자가 되리라고 본다. 우리는 그러한 국제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니 우리도 이러한 국제적인 추세에 발 맞추어 나가야 한다. 그렇치 못하면 우리 자신이 도태된다. 이것이 걱정이다. 세상에는 우리 보다 신진화된 국가들이 많다. 지금까지는 잘 왔다, 배고품을 해결하자고 선진조국을 만들어야 한다는 우리 선배님들 때문이었다. 이제 곧 우리들 책임하에 이 세상을 살기 좋게 만드러야 한다는 문제가 닥쳐온다. 이 때를 우리는 대비하여야 한다. 그런데 기성 정치인이나 나라 곳간을 책임진 사람들이 자기들 끼리 빗이 많다고 싸움만 하고 흔들리고 있다. "이 때 우리는 어떻게 하여야 한다? 우리 후배들은 우리를 보고 욕할 것이 뻔하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