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포도나무 가족
요한복음 15:1-8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말씀을 듣는 우리 가운데 함께 하시길 빈다.
오늘은 부활절 여섯 번째 주일이다. 부활절은 다음 주일까지 일곱 주간 동안 계속된다. 그 다음은 성령강림절이다.
세계교회의 전통에 따라 부활절 인사를 나누자.
선창- “주님은 부활하셨습니다!”
후창- “주님은 ‘정말’ 부활하셨습니다!”
어린이 주일이다. 색동가족의 어린이들에게 축하한다.
자녀들은 얼마나 귀여운가? 단! 부모의 손에 잡혀 있을 때까지다. 자꾸 미꾸라지처럼 부모의 손에서 벗어나면 밉상이다. 그러면 아이 머리카락 하나도 부모가 간섭할 수 없다.
미용실에서 들은 이야기다. 우리 아이 머리 길이는 누가 결정하는가? 부모도, 미용사도 마음대로 할 수 없다. 아이가 원하는 만큼만 자를 수 있다. 만약 머리를 깎고 집에 온 아이에게 “예쁘게 잘 깎았네”하고 칭찬하지 말라고 한다. 칭찬을 들으면 아이가 다시 미장원에 온단다. 부모가 칭찬한 머리는 구식이고, 전통 스타일이고, 개성없이 깎았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머리를 다시 깎아달라고 한단다.
그런데 부모가 “머리를 어디서 그렇게 깎았냐?”고 핀잔을 주면, 아이는 내 머리 스타일이 뭔가 감각적이고 남다른가 보다 하고 만족한다는 것이다.
애들은 다 비슷비슷해 보이나, 다 다르다. 사실 남다른 모습이 장점이다. 강한 개성이 요즘 시대의 경쟁력이다.
헨리 데이빗 소로우는 <소로우의 일기>에서 이런 말을 하였다.
“사과나무와 떡갈나무가 같은 속도로 성숙해야 한다는 법은 없다. 민들레는 민들레답게, 제비꽃은 제비꽃처럼 피면 되는 법이다. 그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이 듣는 음악에 맞추어 걸어가도록 내버려 두라.”
사람은 누구나 고유하고, 특별하다. 에덴동산 출신이기 때문이다. 그는 하나님과 연결된 인생이다. 저마다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부르심에 귀 기울여야 한다.
1)
오늘 설교 제목은 ‘참포도나무 가족’이다. 포도나무는 다복한 가정을 표현할 때, 가정의 평화로움을 표현할 때 인용된다.
“네 집 안방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식탁에 둘러앉은 자식들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시 128:3).
포도나무는 번식력이 좋다. 또 포도송이는 풍성함을 상징한다. 오죽하면 예수님은 스스로 설명하기를 자신을 포도나무라고 하신다.
“나는 참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1).
구약성경을 보면 포도나무는 물론 포도송이나, 포도알 하나도 귀하게 표현하고 있다.
예루살렘 성전의 성소 정면에 황금 포도나무가 조각되어 있었다. 부자들은 그 포도나무에 한 포도송이 혹은 한 개의 포도알이라도 자기 이름으로 만들어 봉헌하고자 황금을 기부하는 일을 아까워하지 않았다고 한다.
시편의 기도자는 포도나무를 위해 호소하며, 하나님께 아뢰고 있다.
“만군의 하나님이여 구하옵나니 돌아오소서 하늘에서 굽어보시고 이 포도나무를 돌보소서 주의 오른손으로 심으신 줄기요 주를 위하여 힘 있게 하신 가지니이다”(시 80:14-15).
예수님이 ‘나는 참 포도나무’라고 말씀하신 이유가 있다. 예수님이야말로 포도나무가 본래 타고난 기쁨을 실현할 분이라는 것이다.
포도나무는 많은 열매를 자랑하고, 향기 나는 포도주를 생산한다. 예수님은 포도나무를 통해 우리 삶의 참된 회복을 말씀하신다. 포도나무를 통해 우리 가정의 진실한 공동체 회복을 약속하신다.
2)
농부가 포도나무에서 크고 좋은 포도송이를 얻으려면 무엇을 해야할까? 포도농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가지치기다. 포도나무는 워낙 번식력이 왕성하기 때문에 그만큼 철저히 가지치기를 해야 한다. 열매 맺는 가지를 살리고, 열매 맺지 못한 가지는 가차 없이 잘라낸다. 나무 전체의 힘을 집중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니 가지치기를 당하지 않기 위해 신실한 삶을 살도록 노력해야 한다.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4).
예수님이란 나무와 연결된 인생은 복되다. 모든 가지의 목표가 열매를 맺는 일이듯, 예수님과 연결된 인생은 열매를 보장받는다는 것이다.
세상에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있는 포도나무 가지는 없다. 또 포도나무에서 난 열매라고 해서 모두 진실한 것은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와 결합 된 삶이냐, 아니냐이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5).
예수님은 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를 통해서 새로운 신앙의 모습을 설명하신다. 예수님은 주님이 언제나 하나님 안에 거하셨듯이, 너희도 내 안에 있어서 친교를 계속하자고 권하신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삶, 날마다 그리스도와 교제하는 일, 그 가지에 연결되어서 수액과 영양을 공급받는 일, 이것은 풍성한 생명의 삶의 비결이다.
예수님에게 붙어있는 일, 무엇보다 풍성한 열매를 많이 맺게 되는 전제이다.
“...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5).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요, 그리스도의 제자 된 삶의 중요한 근거는 바로 바로 포도나무와 가지들처럼, 날마다 그리스도와 연결된 생활을 하는 것이다.
예수님과 연결된 생활은 무엇인가? 예수님과 교제하는 일은 그 가지가 나무에 붙어있는 생활을 하는 것이다. 늘 든든한 연결 속에서 친밀하신 하나님의 평안을 누리는 것이다.
우리는 일용할 기도, 일용할 경건을 실천한다. 아침에 드리는 몇 분의 기도가 하루 종일 내 생활의 방부제 역할을 한다. 하루 중에 읽는 말씀이 내 인생의 등불 구실을 한다.
평생 포도나무를 재배하는 정하영이란 농부가 있다. 내가 김포에서 목회할 때 청년이었는데, 얼마 전까지 김포시장을 지냈다. 지난 해 시장에서 낙선한 후 만나서 들은 이야기다.
처음 시장이 되어 출근하는데, 자꾸 포도나무 생각이 났다고 한다. 집 안에 일꾼은 자기와 아내 밖에 없으니 늙은 어머니가 포도나무 걱정이 되어 자꾸 포도원에 나가 일하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나 출근하기 전에 포도나무를 다 베어 버렸다. 외아들인 그는 일찍 아버지를 잃고, 홀어머니를 평생 모시고 살았다. 그만큼 효자였다.
그리고 김포시장에서 떨어진 후 다시 포도나무 묘목을 심었다. 삼년 후에 포도를 딴다고 하였다. 그 아내는 처녀적 소원과 달리 가난하고 일 많은 청년 농부를 만나 결혼하였다. 신랑은 인천에서 대학을 졸업한 후 바로 고향에 내려와 포도농사를 지었다. 부부는 김포농민들의 권익을 위해 늘 앞장서서 일하였다.
지금도 김포 사람들을 만나면 고향의 형제들 같다. 고맙게도 그들은 ‘하나님은 농부’이심을 느끼면서 살았다. 언젠가 그의 아내가 포도 농사를 짓는 이야기를 했는데, 늘 그 고생스러운 말이 실감 난다.
“좋은 포도를 얻기 위해 농부는 포도나무를 100번은 돌아야 해요.”
일 년 포도나무 농사를 제대로 짓기 위해 농부는 포도나무를 백번은 돌아야 한다는 말은, 예수님이란 포도나무에 연결된 삶의 진실함을 듣는 듯하다.
예수님의 제자 된 사람은 그 나무에 제대로 붙어있기 위해, 늘 자신이 예수님의 말씀과 잘 연결되어 있는지, 예수님의 은혜 안에 머물러 있는지 살펴야 한다.
예수님은 이렇게 약속하신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7).
예수님은 내게 붙어있는 일, 무엇보다 기도 응답의 우선 조건이라고 말씀하신다. 이를 ‘상호내주’(相互內住)라고 한다.
참 포도나무 가족은 언제나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주의 돌보심을 믿는 가정이다. 참 포도나무 가족은 늘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 연결되어 있는 가정이다. 그러면 가지마다 좋은 열매를 맺는다.
3)
예수님은 스스로 포도나무로 비유하시면서, 하나님은 농부라고 말씀하신다.
“나는 참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1).
예전에 문수산성교회에서 추수철이 되면 교회 정면 벽에 크게 걸개를 붙였다. ‘하나님은 농부이시다.’
그 당시는 문수산성교회가 강화도 가는 도로변에서 가장 크고, 눈에 띄는 유일한 건물이었다. 강화도를 오가는 사람들은 누구나 그 걸개를 볼 수 있었다. 교회 벽에 ‘하나님은 농부이시다’라는 걸개를 붙여둔 이유는 추수하는 농부들의 피땀과 수고에 대해 제값을 지불하라는 주장을 담은 것이다.
이 걸개를 보고 마음이 통해 일부러 차에서 내려 교회를 찾아온 사람도 있었다. 한마디로 은혜를 받았다는 것이다. 나는 일터에 나가는 농부들을 위로하는 문구로 붙여 둔 것인데, 놀러 다니는 사람도 은혜를 받았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내 아버지는 농부라”(1)는 고백은 얼마나 반가운가? 하나님은 농부가 가지에 붙어있어 열매를 맺는 것을 기뻐하듯이, 하나님은 기뻐하신다. 제자가 많은 열매를 맺는 것을 기뻐하신다.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8).
만약 내가 하나님 안에서 쟁기질과 파종, 땀 흘려 일하시는 손길 가운데 살아가는 존재임을 느낀다면 내 인생을 얼마나 진실하며 소중하게 느낄까? 하나님과 연결된 인생임을 고백하는 그는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부르심에 늘 귀를 기울일 것이다.
참포도나무 가족은 농부의 심정으로 하늘을 의지하고, 땅에 소망을 두고, 하나님께 감사한다. 그런 심정으로 부모는 자녀를 돌보고, 하나님을 의지할 것이다.
아이들은 누구나 어린 시절 자기 부모를 하나님처럼 여긴다. 나이가 들어서도 부모를 여의면 ‘하늘이 무너진다’고 한다. 그 말은 과장이 아니다.
그런데 머리가 조금 커지는 사춘기가 되면 부모에 대한 평가가 달라진다. 얼마 전까지 부모님이 모든 것을 다 아는 전지전능한 사람으로 생각하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 자기 부모가 아무 것이 별로 없는 바보 같다고 생각하게 된다.
하긴 자기보다 컴퓨터를 잘 알지 못하고, 연예인 이름도 제대로 알지 못한다. 스마트폰 작동법이든, 수학 문제든 자기보다 잘하는 것이 별로 없어 보인다. 그래서 사춘기에 든 아이는 부모를 무시한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나이가 들면 자기 부모는 모든 것을 다 아는 분으로 생각하게 된다. 어떻게 아이를 키웠어요? 어떻게 나 같은 아이를 사람 만드셨어요?
단 그렇게 자식이 부모를 하늘같이 여기게 하려면, 부모와 자식 간에 사랑으로 연결되어 있어야만 한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내 안에 거하라! 나와 연결된 삶을 살아라. 그리스도와 연합하라! 그것이 열매 맺는 삶이요, 응답받는 기도의 비결이다. 그것이 포도나무 가족의 원리이다.
이러한 포도나무 가족을 사모하라! 서로 믿음으로, 사랑으로 연결되어 있는 가족을 만들라. 농부이신 하나님이 여러분 가정의 포도나무 위에 복을 주신다. 여러분의 가족과 자녀를 하나님의 영광으로 기뻐하신다.
농부이신 하나님의 은혜로 여러분의 가정이 그런 참포도나무로 풍성한 에덴동산같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