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년 노태우씨가 6공의 대통령으로 당선이 되었으나 다음해 총선에서
여당인 민정당은 DJ의 평민당, YS의 통민당,JP의 공화당등 야당에 대패하였다.
여소야대로 국정운영에 위기를 느낀 노통은 DJ만 쏙 빼고 이른바 3당합당을 하여
거대여당인 민자당을 출범시킨 일은 모두들 기억하실 것이다.
이후 YS가 다음 대통령이 되고 나서다.처음에는 JP를 중용하는 척 하더니 돌연
태도를 바꾸자, 결국 JP가 민자당을 탈당하면서 "토사구팽"이란 고사성어를 인용하였다.
이 발언으로 JP는 충청도민의 애향심을 자극할 수 있었고, 다음 총선에서는 충청도민의 단결을
이끌어 내며 의석수 약 50석에 달하는 자민련이란 정당으로 재기 하였다.
하여튼 그런 사건으로 토사구팽이란 말이 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게 된 것으로 안다.
지난주 양구 수입천으로 천렵 야영을 갔을 때 이야기다.
박식하기로 소문난 석주길님이 무슨 말끝에 농담삼아 토사구팽을 당했다 면서
그 유래는 한나라의 창업공신인 한신이 유방에게 처형당하며 한 말이라고 설명하였다.
그때 주제 넘게도 나는 한신이 인용을 하였지만 원래는 진시황의 천하통일 위업에
공을 세운 실력자이던 이사가 처형당하면서 남긴 말이라고 반론을 제기하였고
그렇게 대충 넘어갔다. 그리고 초복날인 어제(목) 윤더덕 집에서 삼계탕번개가 있었다.
술잔이 몇차례 돌고 산인님의 장기인 고전 외우기가 벌어지자 말이 나온김에
잘되었다 싶었던지 석주길님이 토사구팽 얘기를 다시 꺼낸다.
오리지날은 춘추전국시대에 월나라의 재상 범려가 월왕 구천(오왕 부차와 복수에
복수로 화답하는 피비린내 나는 스토리에서 와신상담,오월동주등의 문자를 낳은 장본인이다)
을 떠나면서 남긴 말인데(그는 미리 피했으니 화를 면하였다) 후일 한신이 그 말을 사용하여
유명해졌다는 것이다.
듣고 보니 맞는 말인데 나는 왜 이사가 한 말로 기억했을까 궁금하여 인터넷에 조회를 해 보았다.
아,이런 스토리 때문에 착각을 했구나 싶다, 여기서 이사와 관련된 사건을 잠시 들어 보자.
"이사는 우승상 곽거질(霍去疾)과 장군 풍겁(馮劫)과 함께 아방궁의 축조를 멈추도록 2세 황제에
고했지만 거절 당하고 곽거질과 풍겁은 자해 했다. 그리고도 재삼 2세 황제에 간하였지만,
오히려 황제의 분노를 사 조고에게 중상 모략되고, 조고에게 집요한 고문을 받았다.
고문에 견디지 못하고 조고가 날조 하여 올린 죄(초나라 항량의 군사에게 이사의 장남으로
삼천군 태수의 이유가 초나라 군과 내통 하고 있었다고 하는 죄)를 인정해 버려,
저작거리에서 요참형을 당하였다. 그 때에 이사는 차남(이름은 미상)에게 대해서
"나는 이전에 너와 고향 상채로 붉은 사냥개를 데려 오고, 토끼 사냥을 잘 하고 있었지만,
또 하고 싶은 꿈은 …" 말했다고 한다. 이윽고 이사의 일족은 모두 살해당하였다..
그러니까 사냥개가 나오고 토끼사냥이 나오니 토사구팽을 영락없이 이사의 이야기로 기억한 것이다.
그리하여 석주길님 덕분에 중국 고사를 다시 읽어 보고 틀린 기억도 바로 잡는 기회가 생겼으니
이자리를 빌어 고맙다는 말을 전해야 겠다.
첫댓글 이런 역사적인 이유가 있었네요.잘 읽고갑니다.
지금 이 사회의 모든 조직에서 많이 계속 일어나고 있는 일입니다....잔머리와 연결된 단어라 그리 좋은 단어는 아닌듯


진나라를 멸망시키고 한나라를 세운 유방을 말씀하시는지...? 그당시 항우는 당할자가 없었지만.... 유방의 권모술수에 항우가 당한것 같습니다
글쎄요~~!!항우는 바보처럼 적을 많이 만들었지요.그러니 항우가 싫어서 유방에게 인재가 몰릴 수 밖에요.여러가지 이유가 많지만,밤새 이야기 하여도,각자 아는 것과 또 보는 것이 달라서요,게다가 표현하는 것도 많이 다르니~~이겼으면 다 이유가 있었노라고 할 밖에~~
배신의 역사...
토사구팽..덕분에 다시 읽습니다..
의리가 약에 쓸래도 없는 정치인이 오래전이나 지금이나 많나봅니다.^*^
아.. 어떤 드라마에서 약간 모자란 여주인공이 '토사구팽'을 '토사구땡'이라고해서 또 유명해진 적이 있었더랬슴다.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