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벨 리
지금 남해 미조리는 빌딍도 있고, 수협 공판장 앞에 멸치나 도미를 잡아온 배가 정박하고, 버스 타고온 관광객 북적거리는 곳이다. 그러나 66년 그때는 돌담에 쌓인 오막살이 몇 채 있던 한적한 곳이다. 거기 초등학교 일학년이던 금순이는 돌담에 피어있던 애처럽고 작은 제비꽃 같았다. 아빠가 없어서 그랬을까. 금순이는 학교 다녀오면 나만 졸졸 따라다녔다. 말동무 없는 어촌이라 그랬을까. 동무들 달고와서 도시 아저씨가 자기집에 있는 걸 자랑하곤 했다.
이 꼬마 숙녀 금순이와 내가 자주 가던 바다는 등대 우측의 해풍에 잘 자란 풀밭이 있던 아담한 만(灣)이다. 거긴 바위가 많아 물결이 호수처럼 잔잔했고, 흰구름 아래 비취빛 파도는 끝없이 밀려왔다. 둘은 인기척 느끼고 도망치는 게를 잡기도 하고, 모래 속에서 보석처럼 아름다운 조개를 잡기도 했다. 외로운 곳에 피는 꽃이라 그랬을까. 금순이는 이 세상 어느 소녀보다 이뻤다. 하느님은 그에게 가난과 건강, 둘을 동시에 준 것이다. 금순이의 햇볕에 구리빛으로 탄 통통한 팔목은 이 세상 어느 소녀보다 사랑스러웠다.
둘은 수영복이 없었다. 금순이는 까만 광목 홑치마만 벗으면 빤스가 수영복이다. 금순이는 시원하게 나가는 크롤 헤엄이고 나는 두팔로 헤우는 개구리 헤엄이다. 섬 아이는 걷기 전에 수영부터 배운다. 금순이는 푸른 파도 속에서 같이 놀던 인어였다. 둘은 입술 파래지도록 놀고, 물놀이 끝나면 발 통통 굴러 귀에 들어간 물을 빼고, 각자 바위 뒤로 가서 빤스 벗어 물을 짜 입고 집에 갔다. 나는 금순이네 담에 피어있던 보라빛 바이올렛 꽃을 하나 책갈피에 끼운 적 있다. 금순이는 그때 책갈피에 끼운 애처러운 작은 제비꽃 이었던가. 40년 후 미조에 가서 횟집 주인에게 물어보니 금순이 소식을 아예 모른다. 금순이는 에드가 알란포우의 '아나벨 리'처럼, 바닷가 왕국으로 가버린 모양이다. '날 잊지 말아라. 내 품을 떠난 그대여. 밤마다 네 얼굴 내 맘에 사라지지않네. 나 항상 너를 고대하노라. 날 잊지 말하라.' 이때처럼 스테파노의 노래가 사무치게 들린 적 없다.
노인과 바다
헤밍웨이는 '노인과 바다'에서 불굴의 의지를 가진 노인을 그렸지만, 1966년 나는 남해 미조리에서 그와 또다른 유형의 노인을 만났다. 당시 나는 문학을 동경하던 친한 친구가 자살하자, 다니던 대학을 중퇴하고 군에 입대했다. 당시 젊은이들이 흔히 그러듯 실존주의를 무슨 대단한 사상인양 생각했던 나는 사하라 주둔 프랑스 외인부대 같은 살벌한 곳에 가보고 싶었던 참이다. 마침 항만사령부 자동차대대 운전병이 되자, 카믜의 소설 '이방인' 주인공처럼 행동했다. 자살용 실탄을 차에 싣고 다녔고, 끝내 사고 치지 못하고 제대하자, 글 쓴다고 성경과 원고지 챙겨가지고는 남해 섬 맨 끝 동네인 미조리로 갔던 것이다.
거기서 그 노인을 만났다. 그의 낡아빠진 뗀마는 깊은 바다로 나갈 수 없어서, 그는 주로 얕은 갯가로 다니면서 투망식 그물로 뭔가를 잡고 있었다. 생각에 잠겨서 혼자 바닷가를 할 일 없이 쏘다니던 나는 노인 옆에 가보았다. 그런데 노인이 배에서 메고 내려온 끝에 납 뭉치 주렁주렁 달린 그물을 땅에 펼쳐놓고 그물코를 하나씩 옆으로 제치자, 놀랍게도 거기서 온갖 것이 다 나온다. 게, 펄쩍펄쩍 뛰는 전어와 숭어, 해삼이 나온다. 뚝배기 보다 장맛이다. 낡은 그물 안에서 그런 것들이 나오자, 나는 부럽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다.
'매일 이리 잡힙니까?'
담배를 한 대 권하면서 말을 붙이자, 노인은 필터 달린 파고다 담배는 아까운지 호주머니에 넣고, 풍년초를 꺼내 신문지에 말아 입에 물더니,
'어디서 오셨수?'
물었다. 내가 진주서 왔다고 하자.
'진주 문산은 넘어지면 코 닿을 데지.'
고향이 문산이라면서, 진주 문산 삼십리 길을 이리 말하는 데 혼자 타관을 떠돈 외로움이 묻어있었다. 가뭄 때 논바닥처럼 쩍쩍 갈라진 얼굴의 주름, 검은 목덜미 덮은 빤짝이는 백발이 애잔해 보였다.
지금 남해는 연육교를 통하여 금방 가지만 당시는 먼 섬이다. 이렇게 타관에서 고향 사람끼리 친해진 바람에 그날 나는 게와 전어 등 해산물이 든 짐을 들고 노인 집에 따라갔다. 거기 가서 생각지도 못한 해변 파티의 주인이 되었다.
'그 파란 국물이 간에 좋은 거요, 술을 아무리 먹어도 그걸 먹으면 숙취(宿醉)가 없어.'
노인이 권한 뿔소라는 껍질에 고인 국물이 시원했고, 연탄불에 구운 살은 씹히는 맛이 쫄깃했다. 돌처럼 딱딱한 해삼은 달콤한 초장과 잘 어울렸다. 내가 막걸리를 사오자, 노인이 반색을 했다.
'문어는 너무 삶으면 맛이 없어.'
돌문어를 살짝 데쳐 도마에 놓고 손에 입김 호호 불어 썰어 나에게 권한다. 노인은 자기는 이런 걸 맨날 먹는다며 권하기만 했는데, 나는 그렇게 모락모락 김 나는 뜨겁고 맛있는 문어는 처음 먹어보았다. 해물은 싱싱한 것이 생명인데 금방 바다에서 건진 노인의 문어는 극상품 이다. 집은 하늘만 겨우 가린 움막이지만, 음식은 세상 어느 곳 보다 훌륭한 것이었다.
이렇게 노인과 친교를 맺고, 그후 나는 늘상 노인의 귀빈이 되었다. 이태리 고급 식당 같았다. 그 식당은 좋은 재료 입수하면 단골만 부른다. 노인은 물 좋은 걸 잡으면 날 초대했고, 나는 그때마다 노인 집 귀빈이 되었다. 그리고 그 요리 홀로 음미했으니, 아마 나는 이 세상 어느 호사가 보다 호강한 사람일 것이다.
노인의 요리는 메뉴판이 없지만 매번 바뀌었다. 그날 그날 바다가 내어주는 순서대로 였다. 장어는 예리한 칼로 뼈만 남기고 살을 뜬 후, 물엿과 생강즙을 넣은 노인의 비법 양념장 발라 구운 장어라야 제대로 된 것이다. 그건 얼마를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 지글지글 굽는 소리부터 듣기 좋다. 숯불에 껍질부터 빨갛게 익은 게는 등딱지 안에 붙은 누렇고 흰 장(醬)이 일품이다. 임어당은 '게는 원래 바다와 육지 오가는 수서생물로, 수륙(水陸)의 진미(珍味)를 한 몸에 지닌 것인데, 그 중에서 가장 맛있는 것을 황고백방(黃膏白肪)이라' 했다. '가을 국화 옆에서 삶은 게 먹는 걸 인생의 제일 큰 즐거움'이라고 표현한 사람도 임어당이다.
나는 노인의 요리 솜씨를 하얀 모자 쓴 도시 일식집 주방장과 비교해보곤 했다. 노인은 바다에서 나온 재료는 무엇이던지 그야말로 멋떨어지게 요리했다. 시커멓고 쭈굴쭈굴한 노인의 손은 바닷가에서 수십년 살아온 고목의 가지였다. 노인의 손은 바다의 일부였다. 노인의 손맛은 배워서 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오묘한 바다의 신비를 터득한 바다의 일부였다. 노인이 손을 거치면 그 재료가 무엇이던지 바다의 미각이 살아났다. 그가 만든 요리에선 바다 냄새가 나고, 뻘맛이 났다.
요리 뿐만 아니라, 노인은 바다 일이라면 모르는 게 없었다. 몇 월 무슨 고기가 알배기고 기름지고 맛 있는지, 장어나 게는 어떻게 잡는지, 잡는 포인트는 어딘지, 손바닥 들여다 보듯 훤했다.
장어 잡으려면 해그름 등대 옆 석축으로 가면 된다. 먼저 바위에 붙은 석화를 돌로 깨어 바늘에 꿴다. 봉돌 무게를 감지하며 물밑에 놓았다 당겼다 하면 툭하고 어신이 온다. 장어는 물 속을 휘젓고 버티는 힘이 강하여 일단 바위 틈에 들어가면 줄이 끊어진다. 끌어올린 장어는 몸이 미끌미끌하여 호박잎을 두어장 손바닥에 깔고 잡는다.
게 잡는 법은 이렇다. 게걸음이란 말이 있지만, 게는 느릴 것 같아도 옆으로 내뺄 때 번개처럼 빠르다. 손으로 잡으면 집게에 물린다. 가만이 닥아가서 불시에 낫으로 등짝 찍어 잡는다. 문어는 사람처럼 머리통을 이리저리 흔들며 뻘밭 돌아다니다가 인기척이 나면 재빨리 굴로 숨는다. 이때 굴에 손을 집어넣으면 절대 않된다. 흡판으로 사람 손 잡고 버티는 힘이 강해서, 밀물이 밀려오면 사람이 오히려 낭패 당한다. 잠시 기다리다가 놈이 머리를 밖으로 내밀어 두리번 거릴 때 낫으로 확 잡아챈다.
소라나 전복은 미역 등 해초를 먹고 산다. 해초 많은 곳에 산다. 해초는 바위에 뿌리 내린다. 바위 많은 곳에 산다. 조개는 프랑크톤이나 작은 벌레를 빨아먹으며 모래밭에 산다. 한번은 노인과 송남이란 곳에 가서 물 속에 있는 수십 가마도 넘는 가리비조개밭을 본 적도 있다.
그러나 노인은 뭐던지 간에 항시 한번에 다 잡는 법이 없었다. 그날 필요한 양만 잡아왔다. 바다는 노인에게 소라나 전복 보관해주는 창고요 큰 냉장고 였다. 나는 교인들이 식탁에 앉아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어쩌고 하면서 손으로 가슴에 성호를 긋고 식사하는 걸 본 적 있다. 그러나 노인은 그런 건 할 줄 몰랐다. 노인에게 바다는 물고기와 조개와 일용할 양식을 주시는 주님 같은 존재다. 그러나 노인은 한번도 주님 같은 소리 하지 않았다. 나는 노인을 보면서 우리가 일용할 양식을 얻는 가장 신성한 직업은 농부나 어부임을 깨달았다.
헤밍웨이는 '노인과 바다'에서 인간의 굴복하지 않는 의지를 그렸다. 그러나 1966년 미조에서 나는 또다른 유형의 노인을 만났다. 노인은 침묵했지만 온 몸으로 감사의 뜻을 비치고 있었다. 바다는 그의 신(神)이었다. 노인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고민하던 한 젊은 청년의 간절한 물음에 대한 답일 수도 있었다.
첫댓글 선배님 아나벨리는 순정영화의 한 장면이옵고 노인과 바다 역시 아름다운 영화의 한 장면입니다. 너무나 아름다운 영화 두 편을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