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미유 끌로델-- 자신의 작품 <중년>속으로 사라져 간 女人
그새 세월이 이렇게 흘러버릴 줄이야......1993년이니까 10년이 훌쩍 넘어 버렸다. 그 해 서울 동아갤러리에서 까미유 끌로델 서거 50주기 기념으로 `까미유 끌로델과 로뎅 전`이 있었다. 당시만 하여도 미술 방면엔 극히 조야하고 한정적인 관심과 지식이 전부였던 나는 그 유명한 조각 <생각하는 사람>을 만들었다는 한 거장의 이름에만 정신이 팔려 갔던 것이었는데, 입구에 전시된 <어린 소녀 샤틀렌느>라는 나어린 소녀의 대리석 두상 조각에서부터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다.
호기심에 가득 차서 꿈꾸는 듯한 두 눈으로 어린아이의 매혹적인 순수함을 숲 속의 상쾌한 공기처럼 내뿜던 아이 - 샤틀렌느. 까미유 끌로델은 내게 그렇게 왔다.
1864년 페렝 타르데누아 출생. 1943년 몽드베르그 정신병원에서 고독한 삶을 마친 타고난 천재 여류 조각가.
나고 죽고 하는 동안의 그 신산스런 한살이, 生과 死의 아득한 심연의 깊이를 모두 생략해버리고 인간의 삶을 단 한줄로 요약하는 이 무미건조함은 얼마나 허망하고 잔인한 것인가.
영화 속의 까미유는 아름답다. 모든 아름다운 것들은 그 눈부신 찬연함으로 인하여 슬픔이 더하듯 그녀 역시 가슴에 얼얼한 푸른 자욱을 남기고 비속한 세상을 뒤로 하고 사라져 간다.
영화 `까미유 끌로델`. 그녀의 지난했던 삶과 그 삶을 사무치는 아픔으로 그려낸 이 영화에서 나는 여인과 사랑의 숙명을 읽을 수 있을 뿐이었다. 그녀의 전 생애를 관통하며 질긴 생명력으로 끝끝내 놓아주지 않던 한 남자와의 파국적인 잔영으로. 그것도 세상의 참 흔하디 흔한 로맨스의 하나인 유부남과 사랑하다 파멸한 처녀의 가슴아픈 순정으로.
이제는 서서히 자기 삶의 마무리를 위해 준비하며 이성(異性)에 대한 감정이 인간적인 보편적 애정으로 승화해가는 나이가 되었다며 이제 오십줄에 들어서신 지인 한 분이 해 준 얘기를 한 토막 들려드릴까?
남자는 사랑을 할 때도 뒤로 물러설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둔다 했다. 허나 여자는 사랑에 빠져 있을 때 사랑은 그녀에게 전부이며 일생이며 제동장치가 망가진 질주하는 기차와 같다고 했다. 이것이 여자의 본성이며 만일 이렇지 아니하고 사랑할 때도 냉정히 이성(理性)을 앞세운다면 그이는 여자가 아니라 했다.
한 번의 사랑으로 송두리째 인생을 저당잡힌 너무도 여리고 어린 나이의 까미유. 그녀는 예술가이기 전에 한 사람의 자연인으로서의 여자였다.
그녀를 처음 지도했던 알프레드 부셰가 소개해 준 폴 듀보아에게서 `그런데 까미유 양, 로댕씨로부터 가르침을 받은 적이 있습니까?` 하는 질문을 받았던 까미유 끌로델. 아직 로댕의 이름조차 몰랐을 그녀에게 이 거장은 이미 그녀의 인생에서 숙명처럼 묶이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24세나 연상이었던 로댕과 만나 제자로, 모델로, 작업조수로, 애인으로, 연적으로, 나중에는 경쟁자로 얽히게 된 두 남녀. 이보다 더 파란 많은 연인이 또 있을까 싶다.
로댕과 동거했던 로즈 뵈레와의 결별을 요구하다 일 년후 결혼하겠다는 약속을 어긴 로댕을 떠나고 로댕의 아이가 유산되고 난 후 남동생 폴과 나누는 대화.
폴: 신념 없이는 예술을 할 수 없어. 神은 존재해. 날 절망에서 구해줬지. 난 그 분이 필요해.
까미유: ...... 난 혼자서 일어날거야.
그리고 텅 빈 아틀리에에서 까미유는 석고가루가 눈처럼 흩어져 날리는 가운데 미친듯이 작업을 한다. 이별의 아픔을 육체적 노동으로 누그려뜨리려 함인지 영혼을 벼리며 온 몸으로 작업을 하는 그녀를 보면서 가슴이 저며온다. 화면이 바뀌고 로댕의 흉상을 주무르다 진흙 속에 얼굴을 박고 오열하는 그녀.
로댕과 결별하기 전 사랑이 무르익을 때 제작한 그녀의 작품들, 일테면 인도 문학의 소재를 끌어와 로댕과의 행복한 연인을 과시한 <샤쿤탈라> 그밖에 <왈츠>, <로댕의 흉상>, <어린 샤틀렌느>, <지강티>, <비상하는 神>, <파도> 등은 그녀의 남겨진 작품들 중 대표작으로 꼽힌다. 그러나 결별 후 부르봉으로 작업실을 옮긴 후에 혼자 칩거하며 사랑의 애증을 피울음으로 삼키면서 오직 만들고, 또 만들고 하는 작업만을 하던 때는 수를 셀 수 없이 다작이었이며, 로댕의 영항에서 벗어난 그녀만의 독보적인 예술세계를 쌓았다고 한다.
<화롯가에서의 꿈>, <깊은 생각>, <페르세우스와 고르곤>, <운명>, <인어>, <애원>, <소외된 사람들>, <플룻을 부는 여인>, <부상당한 니오비드> 등이 이 시기의 작품들이다.
내 삶을 이룬 꿈은 악몽이었다.--- 까미유가 위젠느 블로에게.
로댕과 완전히 결별하기 전인 1895년 까미유는 자신과 로즈 뵈레 사이를 오가던 로댕과의 삼각관계를 <중년-자료실>이라는 작품으로 형상화한다.
무릎을 꿇고 애원하는 젊은 여인은 까미유 자신이고, 나이 든 여자(로즈 뵈레)를 향해 매몰차게 돌아서는 남자는 로댕이다.
영화에서 이 작품을 본 로댕이 폭언을 한다.
`` 넌 삼류 조각가야. 네 생각은 나한테서 나온거야. 난 인생을 조각해. 죽음이 아냐. 넌 어두움을 조각하고 있어. 고통을 찾고, 고통에 신음하고, 자신을 희생자로 표현하고......``
로댕이 떠난 후 까미유는 자신의 작품을 바라보며 홀로 독백을 한다.
`` 이 조각이 당신이라고요? 틀렸어요, 로댕. 당신은 조각가이지 조각이 아니에요. 난 죽을 날을 기다리는 노파요, 청춘을 뒤로 한 소녀에요. 당신은 아니죠. 당신은 내 강인함을 뺏어가고 대신 공허함을 안겨줬어요. 그게 나의 세 가지 모습이죠. 유일한 삼위일체......``
그녀의 이 독백은 30년간의 정신병원 격리 생활동안의 그녀의 모습을 예견한 것이다. 모든 예술적 작업을 그만두고 하루하루 석화되어가던 피페한 그녀의 육체와 정신을...
이 작품 <중년>은 대중의 까미유에 대한 첫 주문작이었고, 당시 큰 명성을 누리고 있던 로댕의 영향력으로 청동으로 제작되는 것을 정부가 막게 되었는데, 이에 대한 반발로 그녀는 본래의 석고상을 자신의 작업실에 보관하면서 비밀리에 두 번씩이나 청동작품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녀에게 남다른 작품이었음을 알 수 있는 일화이다.
흔히 사랑과 예술창작과의 상관성에 대해 말하곤 한다.
사랑할 대상을 찾았거나 사랑에 몰입해 있을 때 예술가들은 그 어느 때보다 다작하며 그의 예술인생에 있어서 가장 빛나는 작품을 생산해 낸다고.
로댕도 예외는 아니었다. 세심한 로댕이 특별히 신경을 쓰곤 했다는 손과 발의 섬세한 디테일을 까미유에게 맡겨 제작한 <지옥의 문>이나 <발자크 상> <키스> 등이 까미유와 함께 한 동안 만들어진 걸작들이다.
어떤 이에게 진실한 사랑은 단 한번뿐이나, 또 다른 이에게는 평생을 통해 몇 번이고 일어날 수 있다. 너무도 열정적인 기질을 타고난 탓에 꼭 한 번의 사랑에 자신을 깡그리 소진해 버리고 만 여인, 그녀는 죽음을 상관않고 뛰어든 불나비였고, 가장 푸른 불꽃이었으며 죽기 전 단 한번의 아름다운 울음을 운다는 가시나무새였다.
` 난 인생을 조각해. 죽음이 아냐. 넌 어두움을 조각하고 있어.`
가정을 가진 한 남자가 불꽃같은 로맨스에 빠졌다가 다시 돌아왔을 때, 그의 내면이 예전같지는 않겠지만, 그의 말대로 죽음을 조각할만큼 `송두리째 어둠`은 아닌 것이 여기서도 분명해지는 것 같다.
그러나 처음에 말했듯이 여자에게 사랑은 삶의 전부이며 우주이다. 그 우주를 잃어버렸을 때 그녀는 결코 예전의 그녀가 될 수 없으며, 결별을 받아들이지 못한 섬세한 女心에 고집스런 예술혼이 응축되었을 때에야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30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그녀를 가둔 병명은 `해석증`이라는 중증 편집증이었는데, 이것은 끊임없이 손을 씻어대는 편집증과는 다른 성질의 것으로서, 편집증의 경우에는 환자가 다소나마 그것이 편집증임을 의식하고 있지만 해석증의 경우에는 그렇지가 않다고 한다. 이 때 병자는 일상에서 경험하는 모든 것에 스스로의 기본관념에 의거한 해석의 망을 드리우고서 스스로 점차 그 망에 옭매이게 되어 종내에는 망상에서 옴쭉달싹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당시로서 이 병은 치료방법이 없었다고 한다. 까미유의 경우에 그 기본관념이란 바로 로댕이었으며, 그녀에 대한 로댕의 박해였다. 그녀가 남긴글을 읽어본다.
` 그 모든 것은 악마적인 로댕의 머리에서 나온 것들입니다. 그에게는 오직 한 가지 생각밖에는 없습니다. 그가 죽은 후 내가 예술가로서 비약하여 그 이상의 존재가 되지나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
깊은 사랑과 각기 다른 천재적 예술혼이 교묘히 엇갈리어 한 여인을 영원히 빛을 볼 수 없는 어둠 속에 감금해버렸다. 1906년 그녀의 유일한 이해자이며 후원자이던 동생 폴이 결혼과 동시에 중극으로 떠나버리자 처음 발병하면서 그녀의 예술은 쇠락의 길을 걸으며 소진해 가고, 그녀의 몸과 마음도 극도로 쇠약해져간다. 정부에선 비로소 그녀의 예술적 성취를 인정하여 주문이 들어오기 시작했지만 종종 그러하듯이 이미 때는 너무 늦어버린 것이다. 1913년 그녀의 나이 48세가 되던 해, 정신병의 악화로 까미유를 정신병원에 격리시키면서 폴 클로델이 읊조리던 영화 속 대사가 마음을 후벼온다.
` 하늘이 그녀에게 준 재능은 그녀의 불행에만 쓰여졌다.`
하늘이라......신념없이는 예술을 할 수 없다는 폴의 말에 끝끝내 神에게 의지하지 않고 혼자서 일어나겠다고 한 까미유가 하늘은 괘씸했던 것일까.
그녀의 운명의 얄궂은 장난은 또 한 가지의 기이한 숫자 놀음에 맞아떨어지고 있다. 1864년 그녀가 태어나던 바로 그 해부터 로댕은 로즈 뵈레와 처음 만나 동거생활에 들어가게 된다. 그러므로 로댕과 로즈와의 질긴 끈은 까미유의 나이만큼이나 묵어 상처받기 쉬운 여린 성정의 그녀로서는 결코 끊을수 없는 로프줄같은 것이었다고 말한다면 나의 지나친 해석일까.
난 죽을 날을 기다리는 노파요, 청춘을 뒤로 한 소녀에요.
당신은 내 강인함을 뺏어가고 대신 공허함을 안겨줬어요.
그녀의 작품 <중년>에서 애원하는 젊은 여인으로 형상화되었던 그녀는 결국 그 모습 그대로 중년의 로댕을 사랑했던 꽃다운 여인, 자기를 버리고 늙은 여인에게 끌려가는 남자를 원망하는, 사랑의 줄다리기에서 패배한 여인으로 그렇게 굳어져 소리없이 잊혀진 채 사라져갔다. 얼마나 애증이 깊었으면 평생을 광기와 고뇌로 몸부림치며 잦아들어갔던 것일까.
예술은 영원하며 천재는 언젠가는 빛을 보기 마련이라고들 한다. 그래서일까. 한 가지 다행한 일은 그녀가 1900년 위젠느 블로를 알게 된 것과 시인이며 극작가이자 외교관인 예술가 폴 클로델을 동생으로 두었다는 사실인데, 이들 두 사람이 아니었다면 영원히 베일에 덮이어 종내 빛을 보지 못했을 그녀의 이름과, 비록 광기로 인하여 상당량의 작품들이 사라지긴 했어도 그녀의 작품들이 늦게나마 정당한 대우를 받게 된 점은 어느모로 보나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오, 까미유! 출구 없는 사랑의 불꽃으로 자신을 사르고만 예술의 화신!
굴러가는 바퀴 위에 한 발을 얹고 두 눈을 가리운 채 짚시처럼 케스터네츠를 치면서, 남자없이 열정적으로 왈츠를 추는 여인을 형상화한 그녀의 작품 <운명>처럼 그렇게 살다 간 비운의 예술가.
야음을 틈타 흙을 훔치던 아름다운 소녀의 모습과, 정신병원 호송차의 유리창을 통해 들리지 않는 절규을 하며 텅 빈 눈빛으로 관객을 향해 하소연하던 푸른 눈동자가 자꾸 오버랩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