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이곳 석모도에 있는 보문사는 남해 보리암,양양 낙산사와 함께 삼대 관음성지로 널리 알려진
곳인지라 절 뒷편 산봉우리 이름도 낙가산이라 불리워 지고 있는데 낙가산은 보타낙가산의 줄임말이고
보타낙가는 인도의 산스크리트어를 소리나는 대로 음역한 말이며 이곳 보타낙가산에 자비의 부처님이신
관세음보살께서 상주하신다고 하여 중국의 산이름을 보타낙가산이라 명몀하였고 우리나라에서도 이를
모방하여 강원도의 오대산처럼 낙가산이란 산명을 쓰게 되는데 산스크리트어로 아바로키트슈바하인
관세음보살이란 말은 말 그대로 세상 모든 사람들의 말이나 소원을 들어 주신다는 뜻이다.
전득이고개에서 스타트를 끊어 해명산을 경유하고 한참을 달리다 보니 어느 이름 모를 산봉우리에 우리
느림보 모델학교 학생들이 사진 촬영하느라 분주하다. 난 사진 찍을 줄도 모르고
정작 피사체가 되어 사진에 찍혀 봐야 봐 줄 년도 없으려니와 허연 백대가리에 잔주름 투성이 얼굴이
보기도 싫어 사람들을 피해 암봉 밑 어느 한적한 곳에 혼자서 비 맞은 초상집 개 처럼 쮸구리고 앉아 있는데
갑자기 펑하는 소리와 함께 자욱안 안개 속에서 하얀 백의를 입으신 해수 관음보살님이 나투시더니
노오란 밤이 석류알처럼 빼곡히 백힌 약밥 한 뭉터기를 내 손에 쥐어 주시곤 약밥만 묵으면 멋하다고
하시면서 그 분의 얼굴만큼이나 예뿐 도시락을 열고는 샛노란 조밥이 청어알 처럼 소복하게 들어 앉은
가재미 식혜를 반찬 삼아 드시라면 건네 주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푹 꺼진 당신의 뱃가죽과 초라한 차림의 등산복 그리고 얼굴 여기 저기에 낭자하게 피어 올른 마른 버짐을
보아 하니 집꾸석에서 삼시세끼를 제대로 챙겨 먹지 못하는 인간이 틀림 없어 보이는데 오늘 아침은 묵었냐고
물어 보시길래 오늘은 송년산행이라 강 대장님께서 살믄 돼지고기를 원 없이 주신다기에 어제 저녁부터
굶었더니 지금은 헛 것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혹시 마귀 할멈이 아니고 관세음보살이 맞긴 맞냐고 여쭈어
보았다. 이 시대의 나 같은 남정네들의 신세를 가장 적확히 묘사한 말이 있다.
조선시대 여항문인으로 이름 난 정 래교의 문밖을 나서니 갈 곳이 없구나 이다.
여항문인이란 조선시대에서 신분 차별을 받던 서자나 서얼들이 벼슬도 하기 힘들고 하여 자기네들 끼리
모여서 글을 쓰던 요즘 말로 하는 동호인 모임인데 나 정도 나이의 여인네들은 아침 몇 숟깔 뜨곤 얼굴에
화장품 찍어 발르기 무섭게 문밖을 나서면 하루 쥔종일 갈 곳이 수도 없이 많지만 나 같은 여항문인들은
오라는 곳도 갈 곳도 없는데 참으로 고맙게도 화요일 딱 하루 느림보 산악회엘 가면 사람 취급을 받는
호사를 누리게 된다.
이북 사람들이 6.25 동란을 전후하여 월남하면서 가져 온 대표적인 음식문화가 냉면,소고기로 만드는 육전,
보쌈김치,신선로와 비슷하게 음식을 조리하는 어복쟁반 그리고 가재미 식혜인데 경남 진주에 가면 진주 냉면
이라는 유명한 냉면집에선 수육을 고명으로 올리는 여타 냉면들과는 달리 육전을 고명으로 올리고 어복쟁반
에도 이 육전이 반드시 들어 간다. 이 계절에
남녁땅 동해안에서 잡히는 물가자미는 미주구리하고 하여 구들 구들하게 말려서 연탄불에 직화로 구워 먹으면
그 맛이 천하 일미다. 우리가 고급회로 흔히 먹는
광어와 도다리 또한 가자미과에 속하는 생선인데 영애님 처럼 점디 젊은 여성이 이룬 가자미 식혜 같은 비방의
이북 음식을 만드는 방뻡을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참으로 의아한 노릇이다.
산행을 할 적엔 얼굴에 화장 요란하게 하고 다니는 여성대원은 따라 다녀 봐야 아무런 영양가가 없고 큰 등산
베낭에 영애님처럼 맛난 음식 잔뜩 싸 갖고 오는 분이 최고이고 함께 평생을 해로할 마누라 감 또한 마찬가지로
얼굴이나 몸매는 다소 못마땅한 꾸석이 있드래도 손맛이 뛰어 나서 음식솜씨 좋은 여성 만나는 것이 천당문을
두드리는 것이라고 한다. 우리 느림보 산악회의 경자 언니를 꼬옥 꼬집어서 얘기하는 것은 절때로 아니다.
물론 경자 언니의 전 굽는 솜씨가 빼여난 건 사실이지만... 흐 흐.
허벅다리도 요즘은 산행을 욜씌미하여 산미인 대장님 다리 보다 헐 가늘어 졌다고 하니 좋은 음식 솜씨에
각선미 꺼증 갖추면 에쉴리 여사님 정도는 깜냥도 아닐 듯 싶다.
낙가산에서 마애관세음보살님을 모시고 있는 눈썹 바위로 접근을 시도해 보았지만 보문사를 다 내려 오도록
철조망 밖에 보이질 않는다. 강 대장님 말씀에 의하면 일주문을 경유해서 다시 말하면 정식으로 입장권을
끊고 사찰에 출입하도록 하기 위해 그리 하였다고 하는데 그깐 입장권이 얼마나 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과연 그 돈 애낄려고 높은 산을 올랐다가 하산하면서 옆구리 길로 들어 가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냐는 것이다.
보문사엔 눈썹 바위 마애 관음보살님과 함께 나한님을 모시고 있는 석굴법당이 유명하다.
나한은 아라한의 줄임말인데 도가 일정한 경지에 오른 성인을 뜻하는데 젊었던 시절 하는 일이 매냥
꼬이기만 하는 지라 이곳 보문사에 들러 기돗빨 잘 받는다고 소문난 석굴법당을 참배하고 나오던 난
커다란 바위에 새겨 진 어떤 글귀를 읽곤 잠시 얼음처럼 꼼짝을 못 했던 적이 있다.
불교가 뭔지 전혀 몰랐고 관심도 없었던 시절 얼결에 동국대엘 입학하니 교양학부 과정에서 불교학개론과
불교입문이란 과목을 가르치는데 머리를 삭발한 스님이 아닌 유발 교수가 한 분 강의실로 들어 오시는데
난쟁이 좃찌래기 만한 키에 와이셔츠 대신 체크 무늬 모직 남방에 촌스럽기 그지 없는 넥타이를 매고 계셨다.
양복 입을 적에 저룬 복장이나 양복 색깔에 관계없이 흰 양말을 신는 경우는 최악 그 자체인지라 알기를
우습게 알았는데 이 교수님은 외모와는 달리 먼 후일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천태학이나 법화경에 관해선
최고의 권위자라고 하는 이 종익 교수님 이시다. 그때 쬼 제대로 배울 껄 하는 후회와 큰 한숨을 쉬며 내려
왔던 보문사는 시간도 없고 하여 결국은 다녀 오지 못하고 주차장으로 나오니 링컨 대장님께서 반가이
맞아 주시면서 뻐스를 향해 큰소리로 외치신다. 돌삐께서 오셨으니 전원 집합이 완료되었다는 것이다.
어휴 제가 절멋던 시절 지난 금어도 산행기에서 살짝 운을 뗏지만 혹시 이 글을 읽는 절문 분들은 밤중에
예폔네 뒤에 붙는 후배위 절때로 하지 마세요. 그게 습관이 되면 저 처럼 산행할 적 마다 후미는 맡아 놓고
하게 됩니다.
느림보 리무진으로 이동을 하여 석포리에 있는 어느 음식점에 당도하니 산행도 포기하고 강 대장님과 함께
음식준비를 하셨던 타잔님,꼬마인형님,산미인 대장님이 떡 벌어 지게 상을 차려 놓고 기둘리고 계신다.
주연이 한창 무르 익을 즈음엔 강 대장님표 특식 이라며 멧돼지 고기도 상에 올려 주신다.
오늘 하루 증말 좋은 날이다. 돌아 오는 길에
강화도에서 서울로 오는 길은 휴게실도 변변한 곳이 없다며 용변을 미리 해결하라고 강 대장님이 메트를
주시는데 으으음 이 얘기를 정말 해야 되는지 모르겠는데 제가 느림보에 입문을 하던 2010년 초겨울 어느
날 이였었습니다. 부끄럽지만 이 얘기만은 진짜 실화 입니다.
산행 초짜인지라 죽을 바 살 바 모르고 산엘 올랐으니 하산을 할 즈음이면 거의 파김치가 될 정도인데 뒷풀이에
얼큰한 돼지고기 찌개를 주시길래 좌우간 식초가 되도록 마셨던 가 봅니다. 버스에
올라 앉기 무섭게 잠이 들었는데 중간 휴계소에서 남들이 용변을 보러 부산하게 버스를 내렸어도 난 잠에
취해 있었지 멉니껴. 가운데 토막이 무지근한 듯한 느낌이 강해 눈을 뜨고 보니 실내등을 끈 느림보 리무진은
하염없이 달리고 있는데 오줌통은 거의 터질 지경이다. 고속도로상이라 뻐스를 세울 수도 없고 어휴 참으로
난처한 상황이다.
남자는 군대를 갔다 와야 임시변통을 하는 능력이 배양된다고 한다. 급한 김에
등산 파커를 내려서 덮고는 지퍼를 열면서 빈 물병을 다리 사이로 슬며시 밀어 넣는데 약이 바짝 오른 대물이
워낙이 팽창하여 물병 속으로 대가리를 밀어 넣느라 한참을 싱갱이를 하곤 어둠 속에서도 오줌 소리가 나지
않게 하기 위해 물병 벽면을 조준하여 휴우 하는 한숨과 함께 배설을 시작하기 바쁘게 끄트머리에 뜨뜻한
기운이 감지된다. 벌써 물병의 용량이 한도를 넘은 것이다.
황급히 괄약근을 조이곤 베낭 속에서 다른 예비 물병을 하나 더 꺼내서 능숙한 솜씨로 재장진을 시도하여
갠신히 갠신히 위기를 넘기곤 오리역에서 하차를 하여 집으로 오면서 탄천 위 다리 위에서 요강 단지 비우듯이
오줌물을 아래로 내 쏟았다. 양산 통도사에 주석하셨던
경봉 스님께서 큰 일을 보는 화장실을 해우소라 하셨고 남자들만 볼 일을 보는 소변기 화장실은 휴급소라
하셨다는데 오줌 무서운 줄을 그때서야 처음으로 알았습니다.
탄천변의 오줌싸개 돌삐 드립니다.
첫댓글 좋은 말로 비탐방로~~
거시기한 말로 개구멍치기~~ ㅋㅎ
저희는 출입금지 안내판이 걸려있는 동아줄을 넘어 눈썹바위 관음보살님께 절실한 마음으로 삼배드리고 위풍당당하게 입장료 안내고 통과했답니다 ㅎ
비밀입니다!!!
음...
유구무언..
돌삐님 새해에도 재미난 글 부탁드립니다.
수위를 살짝 낮추고..
너무 솔직하지 않으셔도 됩니다.ㅎ
느림보 주간지는 독자층이 두터울뿐 아니라 이해심이 도타웁고 언론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으니
걱정 마시고 재미를 곁들인 유익한 정보 많이 올려주세요
돌삐님글 무척 좋아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