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강아지와 인연이 깊다. 13년 동안 둘리와 둘리의 새끼 나리, 그리고 나리가 출산한 새끼 까지 사랑으로 키웠다. 석달배기 둘리를 처음 만났던 날이 생각난다. 나에게 둘리를 안겨 준 친구는 “키우는데 문제가 있거나 사랑을 줄 자신이 없으면 버리지 말고 언제든지 돌려 달라”고 신신당부했다. 친구의 마음을 둘리를 키우면서 이해하게 되었다. 강아지 한 마리를 가족으로 맞이하기 위해서는 아이 한명 키우는 만큼의 관심과 사랑이 필요하다. 강아지는 장난감이 아니다. 호기심만으로 키울 수가 없다. 해마다 수만 마리의 개들이 주인들에게 버림받는다. 유기견들이 때로는 들개 무리를 이루어 생태계를 교란하는 예기치 않은 일도 생긴다. 가족의 합의는 물론이고 도덕적 의무감과 책임 의식 없이 반려동물을 집 안에 들이는 것은 재앙에 가깝다. 유기견을 주제로 사회적 경각심을 호소하고 싶은 마음이 없지 않지만, 그 대신 우리 가족과 13년을 함께 한 둘리와의 인연을 소개하고 싶다.
나는 13년 동안 둘리와 둘리의 새끼 나리, 그리고 나리가 출산한 새끼까지 3대를 키웠다. 개는 영리하고 신묘한 동물이다. 둘리는 내 눈빛과 숨소리만으로도 내 마음을 읽는 능력이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둘리의 교감 능력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집 안의 서열을 파악하고 심지어 남녀노소의 차이를 감지하고 다르게 대하는 신비한 능력도 가지고 있다. 둘리를 키우면서 중대결심을 했다. 둘리가 새끼를 얻을 수 있도록 방법을 찾기로 했다. 그 일을 맡을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둘리에게 짝을 지어주기로 한 날이 다가왔다. 나는 평소보다 일찍 퇴근해 예약된 시간에 귀요미 몰티즈 둘리와 함께 동물병원으로 향했다, 강아지 진료와 예방접종 때문에 수의사 선생님과는 비교적 소통이 잘 되고 있었던 터라 씩씩한 신랑 강아지를 부탁해 놓았지만 걱정이 태산이었다. 후회와 망설임이 왜 없었을까? 할배의 고집스런 욕심 때문에 말 못하는 둘리만 힘들게 한 것 같았다. 만약 임신에 실패하면 2차 합방을 해야 할지도 문제였다. 그렇다고 상황을 외면할 수는 없었다. 이 모든 행사 진행을 나 아니면 할 사람이 없지 않은가? 이런 일을 아이들에게 시킬 수도 없고 아내는 더더욱 손사래를 칠 것이다, 병원에 도착하니 낯선 냄새에 눈치 빠른 둘리가 부들부들 떨며 낑낑 거린다, 선생님과 차 한 잔을 나누고 나니 신랑 강아지가 도착했다, 이놈은 견주의 수입원이라 하는 일이라곤 잘 먹고 잘 쉬며 신랑 노릇만 하면 되는 그야말로 상팔자다, 출장 나오기 전에 생고기 식사를 할 정도로 견주의 대우를 잘 받고 있으며 우수한 족보를 자랑 하는 종견이라는 것이다, 들어오자마자 예민한 코로 둘리가 풍기는 암내를 맡고 케이지 안에서 우당탕탕 반응을 보이자 견주가 둘리의 엉덩이를 살피며 고개를 끄덕인다, “잘 되겠네요. 두번 안 와도 될 겁니다” 종견과 둘리는 견주의 감독 하에 수의사 방에서 신방을 치르게 되었다, 어린 시절 숫하게 보아 왔던 강아지 사랑 놀음을 어른이 되어 그것도 내가 키우는 강아지의 합방을 옆에서 지켜보게 되니 기분이 묘했다. 10여분쯤 지나자 종견주인은 케이지 안의 종견과 둘리를 데리고 나오며 잘 되었으니 걱정 말라고 한다, 만약 임신에 실패하면 다른 종견으로 교체를 할 것이며 두 번의 합방으로 임신이 되지 않으면 암컷의 생식능력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판단해야 된다고 한다, 강아지들은 거의 100% 임신이 되는 동물이며 최소 세 마리 이상의 새끼를 낳으니 잘 키우라고 하며 다른 병원으로 떠났다, 그 사람은 여러 동물병원 으로 부터 예약을 받아 여러 마리의 종류가 다른 종견을 싣고 다니며 순회 합방 행사로 돈을 버는 흔치 않은 직업을 가지고 있는 종견 사육사라고 한다. 애견 인구가폭발적으로 늘어나 제법 수입이 괜찮다고 수의사 선생이 귀띔을 해 준다,
둘리는 임신에 성공했다. 강아지의 임신 기간은 60일-65일간이다. 약 2개월 정도의 임신 기간동안 사람이 하는 입덧도 하고 극도의 예민함을 보인다. 평소와 달리 주인에게 이빨을 드러내며 반항할 때도 있다. 입맛이 없으면 사료 외에 강아지가 평소에 좋아 하는 간식과 고기류를 충분히 먹이고 적당한 운동을 시켜야만 튼실한 새끼 강아지를 볼 수가 있다. 점점 배가 불러와 뒤뚱거리던 어느 날 밤 하우스에 들어 가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던 둘리가 순식간에 새끼를 출산하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한 마리가 나오면 양수와 핏자국으로 덮인 새끼의 온몸을 수없이 핥아서 깨끗이 하며, 본능적으로 탯줄을 이빨로 잘라 먹어 치운다. 피 냄새를 맡고 몰려오는 포식자로 부터 새끼를 보호하기 위한 포유류의 방어 본능이 집안에서 자라는 강아지에게도 예외가 없다. 잠시 후 두 번째 새끼가 나오자 똑같은 방법으로 처리 하고 세 번째가 나오자 탯줄을 처리 후 바로 새끼 강아지에게 젖을 물리기 시작한다. 세 번째 새끼가 마지막 인줄 둘리가 알고 있는 것이 참으로 신기하다.
사람도 갓난아기의 커가는 과정이 신기하고 즐거움을 주듯이 강아지도 마찬가지다. 다만 사람과 달리 동물 본성에 따른 행동은 놀랍기도 하거니와 어떤 점은 사람이 배워야 할 것도 있다. 튼튼한 강아지를 얻기 위해 고기를 듬뿍 넣고 미역국을 끓여 사료와 함께 주면 매번 그릇 밑바닥이 보일 만큼 식욕이 왕성하다. 눈도 뜨지 못한 새끼들은 둘리 젖꼭지를 물고 두발을 힘차게 뻗었다 펴기를 반복 하며 배불리 젖을 빨고 나면 아무렇게나 잠이 든다. 어미는 새끼가 밟힐까 봐 새끼들의 목덜미를 물어서 한쪽으로 정리를 한 다음에 차례대로 새끼들 배설구를 혀로 자극 한다. 신기하게도 밖으로 나오는 배설물을 받아내어 모두 먹어 치우기 때문에 개집에는 한 방울의 똥오줌도 남아 있지가 않다. 포유류의 본능이 집에서 키우는 반려동물에게도 남아 있어 새끼를 보호 한다는 사실을 눈으로 확인 하게 되며 여러 가지를 생각 하게 된다. 사람도 그 범주에 있으니 당연히 그러할 것으로 믿고 있겠지만 적어도 개한테는 새끼를 내다 버리거나 학대하는 일은 없다.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새끼들은 잠자는 시간 이외에는 어미젖을 물고 있어 둘리의 젖은 상처투성이가 되어 버렸다. 조금씩 자라나는 날카로운 이빨이 젖을 헤집어 피가 보일 정도였다. 많은 젖을 빨기 위해 두발을 힘차게 내미는 발에는 가시 같은 발톱이 자라고 있어 어미는 더욱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 결국 둘리가 낳은 세 마리를 모두 키우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첫째 새끼인 나리 외의 두 마리는 입양 의사가 있는 이웃 및 친지에게 분양을 했다.
엄마인 둘리와 같이 자란 나리는 가족들의 사랑을 듬뿍 받아 성견이 되었다. 나리를 시집보내는 문제를 놓고 여러 차례 가족회의를 했다. 찬반이 갈려 좀처럼 결론을 내지 못하다가, 둘리와 같은 길을 걷기로 하였다. 암컷 강아지가 생리를 시작하면 거의 2주 동안은 집안에 비상이 걸린다. 처음 며칠 동안은 물휴지를 들고 따라 다니다시피 하며 바닥에 흘려 놓은 분비물을 치워야 한다. 신체 구조 상 강아지에게 기저귀를 채울 수 없기 때문 이다. 초반에 시집을 보낼 것인가를 결정해야 2주 안에 합방 일정을 잡을 수 있고 이 시기가 지나가면 6~8개월 후를 기약해야 한다. 예민해진 나리가 괴성을 내고 으르릉 거리며 사료 먹기도 거부하자 나리의 임신을 우려했던 반대파(?)의 마음을 돌려놓았다. 거기에다 암내를 맡고 발광하는 앞집 윗집 강아지들의 처절한 지원이 동정심을 유발하게 했을지도 모른다.
나리가 출산한 후에 나는 엄마 강아지인 둘리의 본능적 행동에 크게 충격을 받은 적이 있어 우리 사회에서 흔히 쓰는 “개와 관련된 욕”에 대한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나리가 새끼를 낳고난 뒤 일주일쯤 지났을 때였다. 왕성한 새끼들의 엄마젖 식탐에 고통을 참지 못한 어미가 산후 조리원(?) 박스를 뛰쳐나왔다. 출산 박스 바깥에서 끙끙거리며 손주 상태를 지키던 둘리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박스 안쪽으로 뛰어 들어 갔다. 새끼들의 발톱에 젖 가장자리가 심하게 헐어 그 고통을 참지 못해 우리를 뛰쳐나온 딸 강아지를 보고 본능적으로 뛰어 들어간 것이다. 아마도 친정엄마의 심정 이었을 것이리라. 둘리를 보고 달려드는 손주 강아지를 제압 하면서 미쳐 치우지 못한 배설물을 먹어 치우고 한 마리씩 엉덩이를 자극시켜 흘러나오는 오줌도 처리 한다. 짐승의 본능이라지만 경이로운 장면 이었다.이 광경을 보고 있던 아내와 나는 둘리의 모성애에 감탄을 하며 강아지 얘기만 나오면 이 상황을 얘기 하게 되었다. 그 후로 나는 지인들에게 “개”를 넣은 쌍소리는 가려서하기를 부탁한다. 꼭 하고 싶다면 “개 같은 x“이 아니라 ”개 보다 못한 x”외는 쓰지 말 것을 당부한다.
그토록 사랑이 깊었기에 둘리와의 가슴 아픈 이별 또한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13년을 가족과 같이 지냈던 둘리와 이별을 할 시간이 다가왔다. 자궁 관련 질병으로 수술을 받고 난 뒤 경과가 좋지 않아 둘리는 링거 줄을 달고 몇 달이나 통원 치료를 하였다. 복수가 차서 사료도 잘 먹지 못하고 관절염으로 걸음걸이도 불편했지만, 퇴근하는 내 발자국 소리가 나면 몇 번이나 넘어 지면서 현관으로 달려왔다. 오줌을 지리면서 온몸으로 표시 하는 환영 세리머니도 점점 움직임이 둔하고 숨 차는 소리가 내 마음을 우울하게 만든다. 떠나기 전날 새벽, 침대 모서리 긁는 소리에 눈을 떠 보니 둘리가 나를 쳐다보고 있다. 손을 내어 주니 힘없이 핥고만 있다. 눈물이 계속 흘렀다. 슬픔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말 못하는 짐승이지만, 둘리는 내 마음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둘리 3대와 가족이 되어 이심전심으로 지내온 13년의 시간을 그렇게 마감하였다. 이 글을 쓰면서 둘리는 여전히 우리 가족임을 알게 되었다. 잊을 수 없고, 잊히지 않는 둘리를 추억한다.
첫댓글 미국인들은 자기가족을 소개하면 키우는 개를 빼놓지 않은다.
1991년 업무차 미 하와이를 갔더니
개들 묘지가 깨끗하게 단장된것을
본후 우리의 보신탕 문화를 다시
생각해 본적이 있다.
나도 개를 무척 좋아해서 전방
소대장ㆍ대대장 시절 개를
키운적이 있고 지금도 아파트
가 아닌 가정집에서 산다면
꼬오옥 진도견을 키우고싶다
우암의 개에대한 자상한 사랑과
무려 13년간 소중한 인연을 실
감있게 잘 읽어네요.
수고하셨고 감사드립니다♡
뭔가 정리가 안된 느낌에 카페 접속을 미루다가 ㅡ 우암의 글에 빠졌네요. 진솔하고 새로운 면모를 봅니다.
둘리와의 각별한 삶, 그 시간과 애환이 짐작이 갑니다. 가족과 다르지 않지요.쌓인 정은 훌쩍 분가해 나간 자식보다도 많이 쌓였을 테구요.ㅎㅎ
1달 반 전쯤 나도 이웃으로부터 1개월이 조금 지난 진돗개 강아지 한마리를 입양했습니다. 이름을 먼저 기르고 있던 고양이 "바다"의 이름과 맞춰서 "산"이라고 짓고 지낸지 이제 1개월여, 저지래 개구장이 녀석과 많이 친해졌어요. 산책도 함께 하고 같이 놀아도 주고... 성가신 때도 없지 않지만 즐겁습니다. 앞으로 좋은 친구로 지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