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한라 아이스하키단.
박정임
한국 하키의 자존심 안양한라 탄생하다.
2007년, 안양실내 빙상장은 뜨거운 열기로 가득하다.
한국아이스하키의 자존심인 안양한라의 홈 링크장에서 선수들이 내 뿜는 열기 때문이다.
안양한라아이스하키단의 첫 출발은 동계스포츠의 꽃인 아이스하키의 불모지 한국에서 1994년, 2월 22일 탄생했다.
그동안 명칭을 세 번이나 바꾼 비운을 맞이했지만 2005년 7월, 3번째 명칭으로 ‘안양한라아이스하키단’ 시대가 막을 올렸기 때문이다.
(연고지: 안양시, 후원기업: 한라그룹, 구단주: 정몽원, 단장: 김세일, 감독: 초대:변선욱, 현재: 오타가 베보다)
한라그룹이 아이스하키팀을 창단하기로 한 것은 우리나라 스포츠분야 중 동계 스포츠분야는 비인기와 불모지라는 판단에서 기업의 투자는 물론 균형 있는 발전과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의 역할을 성실히 수행하고자하는 기업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팀명변경은 1994년 ‘만도위니아’로 창단한 후, 1997년 소속회사 변경으로 팀명을 한라위니아로 변경하였고, 2004년 아시아리그에 출전하기 위해 안양과 연고조인을 하면서 안양한라위니아로 명칭을 바꾼 후, 2005년 ‘위니아’를 빼고 안양한라로 바꿔 이번이 3번째 팀 명칭 변경이다.
그만큼 안양한라아이스하키단은 비록 14년이라는 짧고도 긴 역사에서 팀명만큼 많은 변화를 겪었다고 볼 수 있다.
그동안 지금의 안양한라가 걸어온 길은 불모지나 다름없는 한국 실업아이스하키의 상징이자 자존심이다.
현재는 국내 실업팀이 안양한라와 뒤 늦게 출발한 강원랜드(2004년 창단) 2개팀만 존재하지만 90년대 중반 5개의 실업팀이 존재했었으나 모두 해체되었다.
그만큼 팀의 탄생과 생존의 치열함이 있었기에 오늘의 안양한라의 역사가 자랑스럽고 독보적이며 한국하키의 상징이 된 것이다.
1980년대는 한국아이스하키의 명맥은 명문대학에 진학을 위한 입시스포츠쯤으로 여겼을 뿐
국내에 실업팀이 없는 상태에서 이들 선수들 대계는 졸업과 동시에 선수를 그만 두었다.
그러나 1990년대 지속적인 경기호황과 더불어 한국성인아이스하키협회와 몇 개의 실업팀이 생겼는데, 만도위니아는 빠지고 그 중에 석탑건설(쌍방울계열사), 그리고 대학 5개팀이 참가, 총 6개팀이 시범으로 한국리그(KHL)를 창설하였다.
만도위니아는 1992년, 아이스하키팀을 발의하면서 출발했으나 2년여의 담금질 후 1994년 12월, 초대 변정수단장이 취임하면서 ‘만도위니아 아이스하키단’으로 창단식을 거행, 95년 1월부터 정식훈련, 4월 캐나다 벨빌, 8월 체코슬라니 전지훈련으로 경기력을 쌓은 후, 1995년 10월 시즌 전대회인 KBS배 전승우승으로 첫발을 내 딛는다.
이후, 1995년 말, 제 1회 한국아이스하키리그(코리아리그)가 거행되었고 만도위니아를 포함 석탑건설과 대학5개팀포함 7개팀이 참가 풀 리그를 벌여 리그1,2위를 겨루게 되었다.
이때 만도위니아는 12경기중 11승을 거두면서 화려하게 리그1위로 결승진출 했다.
이 과정에서 정규시즌MVP인 심의식선수가 매경기 1골 이상의 득점력과 베스트6위에 선정된 수비수 김창범, 신현대 선수의 활약이 눈부셨다.
그렇지만 결승전에서 유일한 실업팀인 석탑건설에 우승컵을 놓친 후 팀을 재정비하여 96년 5월 캐나다 밴쿠버 전지훈련으로 조직력과 기량 향샹에 힘을 썼고, 7월 리틀위니아 아이스하키단을 창단하여 한국하키의 뿌리인 유소년클럽하키에 애정을 갖고 투자한다.
그해 8월, 일본 닛코에서 후루카와 전공(닛코 고배아이스벅스의 전신)팀과의 합동훈련으로 본격적인 하키교류를 시작했다. 훗날, 이 교류를 시작으로 1999년 일본제지 크레인스와 새로운 교류를 통한 신뢰구축을 발판심아 2003년 아시아리그를 창설하였다.
96년 7월,리틀위니아아이스하키단 창단, 해외 전지훈련, 한일 하키 교류를 통한 적극적인 활동으로 이름을 널리 알린 만도위니아는 곧바로 10월 제 51회 종합아이스하키 선수권대회에서 MVP를 차지한 김창범 선수의 활약으로 5승 1무 무패행진으로 대학세를 따돌리며 우승을 차지했다. 이에 기세등등해진 만도위니아아이스하키단은 제 2회 코리아리그(KHL)에 출전하여 리그 1위로 결승에 직행하여 한국 최강임을 확인한다.
그러나 플래이오프에서는 선수들의 집단식중독으로 컨디션이 떨어져 대학 강호인 연세대학에 1승3패의 의외의 일격을 당해 2년 연속 준우승이라는 아쉬움 속에서도 심의식 선수는 2년연속 MVP와 최다포인트, 득점왕, 베스트6 등. 한 시즌에 무려 4가지 부분에서 상을 받는 4관왕의 영광을 누렸다.
제 2의 출발, 한라위니아 아시아에 도전하다
1997년 1월 전주에서 열린 동계 유니버시아드대회는 하키 붐을 조성했다.
아이스하키는 피겨스케이팅과 함께 경기마다 만원사례를 기록할 정도로 인기였지만
만도위니아는는 모기업의 사정으로 ‘한라위니아’로 개명하면서 제 2의 출발을 하였다.
그때까지 한국 아이스하키계의 대명사로 여겨지는 이름값에 걸맞게 만도시절보다 좋은 성적을 기록하면서 대회마다 우승을 휩쓰는 영광을 누렸다.
유니버시아드대회를 계기로 한라와 같은 실업팀이 활성화되자 아이스하키종목의 주가가 올라가게 되었고 그 시점에 맞춰 팀 창단 붐이 일었다.(5개 실업팀: 현대오일뱅커스와 동원드림스외)
잇따른 호재 속에 97년 8월, 국제대회를 통한 기량향상과 아이스하키의 저변 확대를 위한 한라위니아 주최 ‘전주국제 4개국 친선대회’를 개최했다.
한국의 한라위니아를 비롯, 일본 후루카와전공팀, 체코의 클라루피팀, 캐다나의 캐러리대학팀이 출전, 승부를 겨뤄 한국은 3위의 성과를 나타냈다.
같은 해인 97년 말 힘든 상황속에서 많은 가능성을 토대로 하여 제 3회 코리아리그(KHL)에 도전, 힘겹게 우승을 거머쥐었다(당시 실업팀 4개포함, 대학팀 5개, 총 9개 팀이 출전)
이때에 당시 최고의 활약을 펼친 심의식 선수는 한국아이스하키의 정규시즌 단 16경기에서 23골을 13도움33포인트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세워 정규리그, 플레이오프포함 MVP, 최다포인트, 최다득점, BEST6까지 선정되며 타이틀을 독식했다.
또한 김세일감독은 한국리그에서 우승을 공헌하여 한국 첫 지도자상을 받는 영광을 누렸다.
이후, 꾸준한 성적기량의 향상 속에서 99년에는 제5회 코리아리그에서 사상 2번째 우승을 이끌어낸다. 이때에 한국리그 최초로 통산 100포인트를 넘기며 하키역사에 새로운 기록을 남겼다. 99-00년 시즌의 5월 종별대회, 및 유한철배, 10월 종합선수권에 이어 2000년 1월 코리아리그 등 한 시즌에 펼치는 4개 대회의 공식 타이틀을 다 휩쓸면서 국내대회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2003년 한일 통합리그와 병행하여 출전했던 제 9회 코리아리그 정규시즌에서 플레이오프를 통틀어 단 1경기만 제외하고 모두 승리를 거둬, 국내리그 우승 총 5회라는 대 기록을 수립하면서 유종의 미를 장식하게 되었다.
한국 아이스하키의 매운맛, 아시아에 뿜다.
2003년, 한라위니아는 아시아무대에 도전하기 위해 한,일 통합리그를 가졌다.
시범리그로 열렸던 한, 일 통합리그는 아시아리그의 모태로 동북아시아권 하키팀이 홈&원정 방식의 리그를 펼쳤다.
축구에서는 ‘베세토리그’라 불리는 한, 중, 일 통합리그 논의가 가장 먼저 시작되긴 했지만 실제 이러한 방식으로 정규리그가 진행된 경우는 아이스하키가 한국스포츠역사상 최초이다.
한,일 통합리그는 한국의 안양한라위니아를 포함, 일본 4개팀인 고쿠도, 크레인스, 오지제지, 아이스벅스 등 총 5개팀이며 3라운드 방식의 경기로 진행되었다.
당시 전문가들의 예상은 일본팀에 비해 열세였던 한라위니아가 대부분 경기에서 대패할줄 알았으나 경기를 하면서 노하우가 쌓여 한 수 위인 일본 고쿠도, 크레인스, 오지제지를 각 각 1번씩 이기는 대 파란을 펼쳤다.
특히 꾸준한 교류를 해 왔던 닛코아이스벅스(후루카와 전공의 전신)에게는 3승1패의 우세를 보이는 등 일본팀을 상대로 총전적 6승10패로 선전하였다.
결국 4위 오지제지와 승점에서 동률을 이뤘으나 한라위니아가 다승을 했기에 5개 팀 중에서 3위에 오르게 되었다.
한라위니아는 제 1회 아시아리그(중국, 일본, 러시아, 한국) 4개국, 8개팀의 경기를 앞두고 04~05년 시즌에는 안양을 연고로 홈 링크에서 경기를 치루게 되었다.
아시아리그에 한국대표로 출전한 안양한라위니아는 정규시즌 18승(연장1승)5무 19패(연장1패)(17-1-5-1-18)승점 59으로 5위를 기록하며 아쉽게 플레이오프진출에 실패했다.
그러나 실패를 두려워않고 기량을 보강하여 2005~2006년 시즌정규리그에서 명장 오타가 베보다 감독을 영입해 그의 조련 속에 아시아리그 정규시즌에 일본의 강호 도쿠도와 오지를 제치고 당당히 2위인 준우승의 성과를 거두었다.
아시아리그에 처음 출발할 시기만 해도 한국아이스하키는 망망대해를 건너듯 조심스러웠다.
그러나 과감한 도전과 기량을 바탕으로 아시아의 변방이었던 한라가 이제는 아시아에서 명실상부한 성적을 거두고, 이제는 동유럽의 강호 팀인 체코에서의 전지훈련과 친선리그 9경기를 치룬 경험을 바탕으로 아시아리그 최 명문클럽을 노린다.
이제 안양한라는 아시아를 넘어 세계를 향한 꿈을 꾼다.
팀 커리어
코리아리그우승 5회:(97/98, 99/00, 01/02, 02/03, 2003)
종합선수권대회 우승 5회:(96, 97, 99, 2000, 2005)
2005-2006 아시아리그 정규시즌: 준우승
**안양시의 요청에 의해 안양의 스포츠사를 조사하였다.
그 중에 안양한라 아이스하키단과 KT&프로농구단, 그리고 꾀돌이 이영표를 인터뷰 및 조사를 직접했다.
모두 안양의 대표적인 체육사의 자랑이다.
그 중 최근 아이아리그 개막전을 치룬 대표적인 안양한라를 먼저 소개함.
**안양 市 史 원본 원고를 부분적으로 줄임.
***현재 국내 프로 아이스하키단이 5개 존재한다.
그 중 강원랜드아이스하키팀이 안양한라의 뒤를 이어 아시아리그에 출전해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