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리는 사람과 격려해 주는 사람
디모데후서 1:15-18
바울이 ‘로마 옥에 갇히고 사슬에 매인 것’이 하나님의 섭리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자가 바울에게 가이사 앞에서 서야 한다고 말했습니다(행27:24 ‘바울이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바울이 사슬에 매인 죄수의 신분으로 로마 황제 가이사 앞에 서서 재판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바울이 ‘사슬에 매인 것’은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은 이러한 하나님의 섭리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아시아에 있는 모든 사람이’ 바울이 매인 것을 부끄럽게 여기고 바울을 버렸습니다(15).
바울을 ‘버렸다’는 말은 바울의 가르침을 따랐던 사람들이 바울의 매인 것을 보고 바울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고 거짓 교사들이 가르치는 것을 따랐다는 말입니다.
그중에 부겔로와 허모게네도 바울의 매인 것을 부끄럽게 여기고 바울을 버렸습니다.
그러나 오네시보로는 바울이 매인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부겔로와 허모게네와 오네시보로 세 사람은 에베소 교회에서 봉사하며 바울의 가르침을 받고 따랐던 사람들입니다(18).
그러나 바울이 잡혀 로마 옥에 갇힘으로 부겔로와 허모게네는 바울을 부끄럽게 여기고 바울을 버렸지만 오네시보로는 부끄럽게 여기지 아니하고 바울을 격려했습니다.
바울의 매인 것을 바울이 사슬에 매인 죄수처럼 생각하고 부끄럽게 여긴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의 매인 것을 부끄럽게 여길 것이 아닙니다. 바울이 아시아에서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전함으로 해서 유대인들인들이 바울을 옥에 가둔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이 사슬에 매인 죄수가 됨으로써 백부장에게 맡겨져 로마까지 무사히 갈 수 있었으며 로마 황제 가이사 앞에서 재판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죄수가 된 바울은 자신을 재판하는 가이사 앞에서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전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바울이 매인 죄수가 아니었다면 로마 황제 가이사 앞에 서서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말할 수도 없습니다.
바울의 매임이 하나님의 섭리라는 것을 알지 못한 사람들은 바울의 매임을 부끄러워하며 바울을 버렸습니다. 그중에 부겔로와 허모게네는 사슬에 매인 바울을 부끄러워하고 버렸습니다.
그러나 바울의 매임이 하나님의 섭리였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바울의 매임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오네시보로는 바울의 매임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부지런히 로마까지 찾아와서 바울을 만나고 격려해 주었습니다.
바울은 아시아에 있는 모든 사람이 나의 매인 것을 부끄럽게 여기고 나를 버렸으나 오네시보로는 자주 찾아와서 격려해 주었다고 말했습니다.
바울이 에베소 교회에서 가르칠 때 부겔로와 허모게네 그리고 오네시보로는 함께 많이 봉사하며 바울의 가르침을 받고 섬겼습니다(18).
그러나 바울이 옥에 갇히고 사슬에 매였을 때 부겔로와 허모게네는 바울의 매인 것을 부끄럽게 여기고 바울을 버렸습니다. 그러나 오네시보로는 바울의 매인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아니하고 부지런히 찾아와서 바울을 격려해 주었습니다.
사람들은 평온할 때는 잘 지냅니다. 그러다가 어떤 어려움을 당했을 때 버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격려해 주는 사람도 있습니다.
‘아시아에 있는 모든 사람은’ 바울의 가르침을 받은 에베소교회를 중심 한 교회들의 교인들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사슬에 매였을 때 그들 모두는 바울을 부끄럽게 여기고 바울을 버렸습니다.
사무엘은 사울 왕에게 ‘왕이 여호와를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다’(삼상15:2)라고 말했습니다. 사울 왕이 여호와를 버림으로 여호와께서도 사울을 버렸습니다.
사울 왕이 여호와를 버림으로서 여호와께서도 사울을 버렸던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바울 사도를 버리는 것은 곧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는 것이며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는 것은 하나님을 버리는 것입니다.
부겔로와 허모게네는 바울을 버림으로 바울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버린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따르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를 버리는 것이며 나아가서 하나님을 버리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버리는 것은 구속사적으로 영원한 저주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바울을 버림으로 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아 영원히 지옥 불 속에서 고통을 받게 된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자가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지 않아야 합니다. 그 말씀을 버리지 않고 그 말씀을 따라 살아야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됩니다.
오네시보로는 사슬에 매인 바울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였습니다. 바울은 오네시보로가 행한 세 가지를 말했습니다(16,17).
첫째는 오네시보로는 옥에 갇힌 바울을 격려하였습니다. ‘격려(激勵)’란 상대방에게 용기나 의욕이 솟아나도록 기운을 북돋워 주는 것을 뜻합니다.
힘든 상황에서 고난 당한 사람을 응원하거나, 다시 무언가를 해낼 수 있도록 마음을 채워주는 말과 행동을 격려라고 합니다.
오네시보로는 옥에 갇힌 바울을 자주 찾아가서 마음을 기쁘게 해주었고 바울은 그로 인해 힘을 얻고 고난을 견디고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둘째, 오네시보로는 사슬에 매인 바울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을 버린 부겔로와 허모게네를 비롯한 많은 사람은 바울의 매인 것을 부끄럽게 여겼음에도 불구하고 오네시보로는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셋째는 오네시보로는 로마까지 자주 찾아가서 바울을 만났습니다.
오네시보로는 에베소에서 지중해를 건너 로마까지 간다는 것은 쉽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이 이 말을 한 것은 에베소에서 로마까지는 배를 타고 지중해를 건너야 하는 환경적인 어려움과 위험한 것을 암시합니다.
오네시보로가 자신이 죽을 수 있는 위험에도 불구하고 더욱 부지런히 찾아와서 만나 격려해 준 것을 말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마에 있을 때 나를 부지런히 찾아와 만났다’(17)라고 바울은 말했습니다.
이러한 오네시보로의 격려가 사슬에 매인 바울에게는 큰 기쁨이 아닐 수 없었다는 것을 말한 것입니다.
이처럼 오네시보로의 방문이 바울에게는 시원한 생수와 같이 그의 마음을 새롭게 해주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오네시보로가 에베소에서 많이 봉사한 것도 바울은 잘 알고 있었습니다(18下).
바울은 오네시보로의 집에 긍휼을 베풀어 주실 것을 하나님께 축원했습니다(16,18). 바울은 축원을 두 번 했습니다.
첫 번째 “원하건대 주께서 오네시보로의 집에 긍휼을 베푸시옵소서”(16上)라고 축원입니다.
‘오네시보로의 집’이라고 한 것은 오네시보로 개인이 아닌 그의 가족들에게 영원한 하나님의 긍휼을 축원한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도 이러한 오네시보로와 그의 가족들과 형제애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을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베푸신 위로와 축복으로 여기며 하나님께 감사하는 축원이었습니다.
두 번째 축원은 “원하건대 주께서 그로 하여금 그 날에 주의 긍휼을 입게 하여 주옵소서”(18上)라고 ‘그날’은 종말론적인 최후의 심판 날의 축원입니다.
최후의 심판의 날에 주의 긍휼을 입게 해 달라는 축원은 하나님 나라의 영생을 함축한 축복입니다.
주님의 재림을 고대하는 모든 성도에게 그날에 완전한 주의 구원의 은총을 입기 위해 기도해 주는 것은 무한한 은혜요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지금 사슬에 매인 바울을 자주 찾아가서 격려한 오네시보로와 그의 가족은 낙원에서 아브라함의 품에 안겨 위로받고 있다는 것을 믿습니다.
그러나 사슬에 매인 바울을 부끄럽게 여기며 버렸던 부겔로와 허모게네는 음부에서 불꽃 가운데서 이를 갈며 고통당하고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 부겔로와 허모게네와 같은 영생을 얻지 못하는 자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오네시보로처럼 고난 당하는 자를 부끄럽게 여기지 말고 격려해 주는 자가 됩시다.
주님 오시는 그날에 주의 긍휼하심을 입고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서 영생합시다.
첫댓글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지금 내가 사는 곳이 낙원이어야 하고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곳이 낙원입니다.
이상향은 그냥 이상향일 뿐입니다. 실체가 없는 것이지요.
내가 살고 있는 이곳을 낙원으로 느끼지 못하고 즐기지 못한다면
더 좋은 세상을 만나도 그와 같을 것입니다.
지금 이곳을 낙원으로 만들고 행복하게 사는 요령을 배워야 할 것 같습니다.
행복한 하루들 보내세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무리에게서 스스로 갈라지는 자는 자기 소욕을 따르는 자라 온갖 참 지혜를 배척하느니라(잠 18:1).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