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적 이런 얘기를 한번쯤 들어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너는 다리 밑에서 주워온 아이야”
저도 어릴적 그런 얘기를 많이 들으며 자랐습니다.
누나가 얘기를 꺼집어 내면, 옆에서 형님들이 맞장구를 칩니다.
“맞아, 너네 엄마는 그 다리밑에 콧물을 질질 흘리며 사는 거지야. 찾아가봐”
그런 얘기를 들으면 서무나 서운해서
“으앙, 아냐, 우리 엄마가 진짜 우리 엄마야”
울며서 고함을 치면 어느새 우리는 소리를 듣고 엄마가 달려와 품에 안으시며 위로해 주십니다.
“아이구, 우리 예쁜 강아지, 엄마가 너를 많이 사랑해 주시니까 형님 누나들이 시셈해서 그러는 거야”하시곤 하셨습니다.
저는 형님 둘, 누님 둘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어릴적 못먹고 살 때 하얀쌀밥을 아버지와 막내인 나만 먹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형님 누나들이 시샘해서 그런 재미(?)나지만 눈물(?)나는 이야기를 지어내서 골려먹곤 하셨습니다.
너무나 많이 그런소리를 들으니까 나중에는 정말로 우리 엄마가 다리밑에 있나? 형님 누나들이 “너는 주워온 얘니까 특별히 엄마가 너한테 잘해주는 거야” 그러면 정말 인가?해서 다리 밑에 가보기도 했습니다. 우리 마을 앞에는 냇가가 있고 그 냇가에는 동내로 들어오는 다리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다리 밑에 가보니 사람은 아무도 없고 휭하니 바람만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그 다리가 다리가 아니라 사람 다리를 말하는 것임을 알고 미소짓게 되었습니다. 아! 이렇게 사람이 태어나는구나! 생각해 보면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다리밑에서 주워온 아이입니다.
이 세상에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살아도 부모없이 태어난 자식은 아무도 없습니다. 심지어 강아지 한마리도 제 어미가 있고, 제 애비가 있습니다. 피어나는 꽃한송이도, 은행열매 하나도 사랑의 결과로 맺혀집니다.
사랑이 없이 태어난 생명체(生命體)는 아무도 없습니다.
제가 사는 영주에는 자랑할만한 곳이 많습니다. 소백산, 소수서원, 부석사등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인 소수서원이 있습니다. 원래는 백운동서원이라 불려진 것을 이후 풍기군수로 부임한 퇴계 이황의 요청으로, 1550년(명종 5년) 명종 임금이 '이미 무너진 유학을 다시 닦아 이어가게 하라'는 뜻의 '소수(紹修)'라는 친필 현판과 함께 서적, 토지, 노비를 하사했습니다. 이로써 국가가 공인한 사립 고등교육기관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https://www.yeongju.go.kr/open_content/sosuseowon/index.do
소수서원의 경치도 빼어납니다. 유유히 흐르는 개천과 풍류를 읊으며 쉴수 있는 정자, 주변의 소나무 숲들 정말이지 자신을 딲고 학문에 정진하기게 참 좋은 장소입니다. 그런데 이곳에서 또 하나 전해듣는 이야기로 “다리 밑에서 주워온 아이”의 역사적 유래를 듣게 됩니다.
서원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은 대부분 귀한 집 자재들입니다. 요즘말로 금수저로 태어난 아들들입니다. 공자왈 맹자왈 학문이나 하고 풍류를 즐기며 인생을 논합니다. 그런데 이들의 최고의 목표 중의 하나는 과거에 장원급제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전국에서 몰려온 수많은 인재들 중에 과거시험에 통과하는 일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과거에 떨어진 선비들이 어디서 마음을 달랬겠습니까?
바로 그것이 기생집이었고, 그 기생들이 낳은 아이들을 다리밑에 버렸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이를 낳지 못하는 어머니들이 이 다리밑에오면 아이를 얻는 횡재를 누릴 수 있어서 “다리 밑에 주워온 아이”라는 말이 전해졌다고 합니다.
소수서원 바로 앞을 흐르는 죽계천에는 '청다리(靑橋, 현재의 제월교)'라는 다리가 있습니다. 조선 시대에 이 청다리 건너편 주변은 서원을 찾은 고관대작, 선비, 유생들이 연회를 베풀거나 쉬어 가던 일종의 풍류 공간이었습니다. 자연스럽게 이들을 접대하기 위한 기생들이 모여 살던 집(기생방)이나 풍류를 즐기던 누각이 그 근처에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서원에서 공부하던 젊은 유생들이나 이곳을 찾은 선비들이 청다리 건너 기생들과 사랑에 빠져 아이를 낳는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본가에 엄격한 정부인이 있는 선비들은 처지가 곤란해지자, 기생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를 "청다리(소수서원 앞 다리) 밑에 버렸다고 한다.
이렇게 하여 버려진 아이는 누군가가 데려가지 않으면 죽을 운명에 처하게 되는데, 이 소문이 점차 퍼져나가자 이번에는 아이를 갖지 못하는 사람들이 전국에서 구름처럼 몰려들었다고 한다. 그 당시 선비라면 최고의 신분이고 똑똑한 사람이기 때문에 그 핏줄을 데려가 기르는 것은 아이를 낳지 못하는 집안에서는 최고의 영광이 아닐 수 없었다. 이렇게 하여 전국에서 몰려든 아이 없는 사람들은 운이 좋으면 도착한 다음날 새벽에 아이를 얻어서 고향으로 돌아가고, 운이 나쁘면 몇 달씩을 기다려서 아이를 얻어가기도 했다고 한다. 이렇게 하여 전국으로 입양된 아이가 어느 정도인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그런 소문이 전국적으로 퍼지고 지금도 그 말이 남아있을 정도인 것을 보면 상당수의 아이가 입양되었다고 보아 틀림이 없을 것이다.
이 '청다리 밑'이라는 말이 시간이 흐르며 전국으로 퍼져 일반적인 '다리 밑'으로 와전되었다는 것이 민속학계와 영주 지역의 유력한 구전 설화입니다.
소수서원을 처음 세운 풍기군수 주세붕이 죽계천 바위에 '경(敬)'이라는 글자를 크게 새겨 넣은 이유 중 하나도 이와 관련이 있습니다.
서원 바로 옆에서 기생들과 풍류를 즐기며 마음이 흐트러지기 쉬운 유생들에게, "다리를 건너기 전 이 글자를 보고 마음을 다잡고 오직 학문과 공경에만 집중하라"는 강력한 경고이자 정신적 브레이크 역할을 했던 것입니다.
바위에 경(敬)자와 백운(白雲洞)이 음각되어 있다.
경(敬)자 바위의 백운동(白雲洞)은 퇴계 이황의 글씨로 전해오고, 붉은색의 경(敬)자는 신재 주세붕이 직접 써서 새긴 것으로 신재집에 전해오며 유교의 근본사상인 경천애인(敬天愛人)의 머리글자라 한다.
敬(경)에 대하여
“삼가 묻나이다. 진리는 무엇에서 찾아야 하오리까?”
스승의 명상을 깨운 일이 죄스러워 제자는 송구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총애하는 제자가 당연한 가르침을 구하고도 머리를 조아리는 모습을 보자 퇴계는 제자를 일으켜 앉히고는 자애로운 목소리로 물음에 답해 주었다.
“敬”이다. “敬”에서 찾아야 한다. 학문이 아무리 깊어도 마음을 수양하지 못하면 아무런 소용이 없나니, “敬”은 곧, 수양의 실천 방법인 것이니라.“
퇴계의 학문은 이론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오직 마음을 바로하고, 현실 속에서 인격을 완성한 뒤에야 지식은 바른 틀을 갖출 수 있음을 젊은 제자에게 가르친 것입니다.
“敬은 어디에서 찾아야 하오리까?”
“경은 경천애인(敬天愛人)에 있느니라! 인생의 근본이 천(天)이다. 하늘이 인생을 이 땅에 나게 했고, 인생을 돌보고 계시며, 하늘의 바른 뜻 가운데 자신의 마음과 행동을 조금도 흐트리지 않는 것이 경(敬)이다. 그 경은 반드시 애인(愛人)으로 실천되어야 하느니라. 이웃을 사랑하고, 제 몸처럼 사랑해야 하느니라. 있다고 교만하지도 말고, 없다고 기죽지도 말고 하늘이 주신 생명, 하늘앞에서 답해야할 그날까지 하늘앞에서 바르고 정직하게 성실하게 살아야 하느니라”
우리의 존재는 부모님에게서 왔습니다. 그보다 세상에 더 명확한 진리, 참이 또 어디있겠습니까? 부모님은 또 그 윗대에서오시고, 그렇게 올라가면 그 모든 것의 최고의 꼭대기에 누구를 만나겠습니까? 바로 그분이 천(天), 온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부모님이 존재하신다는, 혹은 존재하셨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가 무엇입니까? 저의 부모님이 존재하셨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는 바로 나의 존재입니다.
반대로 누군가 존재하는데 그 사람의 부모님이 존재한 적이 없다고 하는 것만큼 확실한 거짓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부모님이 존재하지 않고는 존재할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우리 존재의 본질이죠. 모든 사람이 다 배꼽을 가지고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것은 모든 존재에는 원인이 있다는 원리인 것이죠. 이것은 과학에서도 똑같습니다. 원인이 없이 결과가 존재할 수 없는 것이죠. 이 인과율은 과학의 본질입니다.
자, 그렇게 인과율에 따라 원인과 결과를 짚어 올라가서, 가장 첫 번째 사람, 첫 번째 생명에 도달하게 됩니다. 그런데 진화론은 그 첫 번째 사람, 첫 번째 생명 이전에 원인이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그저 그 첫 번째 생명과 첫 번째 사람이 우연히 생겨났다고 이야기하는 것이죠. 이 땅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과 생명체의 모든 과정에는 원인과 결과, 즉 인과율이 적용되었으나, 그 마지막 최초의 생명에 대해서는 인과율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엉뚱한 결론에 다다르게 됩니다. 원인이 없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성경은 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3장 23절부터 보면, "예수께서 가르치심을 시작하실 때에 삼십 세쯤 되시니라 사람들이 아는 대로는 요셉의 아들이니 요셉의 위는 헬리요 그 위는 맛닷이요 그 위는 레위요 그 위는 멜기요 그 위는 얀나요 그 위는 요셉이요" 그렇게 계속 올라가서 누가복음 3장 38절에 이르러서는 "그 위는 에노스요 그 위는 셋이요 그 위는 아담이요 그 위는 하나님이시니라"고 합니다.
얼마나 분명하고 확실한 답변입니까? 하나님이 존재하신다는 가장 확실하고 가장 강력한 증거는 바로 여러분 자신입니다. 그 사실을 믿고 받아들일 때 우리 모두는 이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존재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는 것입니다. 바른 자기를 찾는 것입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 1:12)
https://youtu.be/_5F6S4WgHwo?list=RD_5F6S4WgHwo
https://youtu.be/9X8PC8u-p-I
https://youtu.be/GV0mF_KsHtI
https://youtu.be/1jKwUiHsGX4
첫댓글 아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