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별곡 31]『세컨하우스로 출근합니다』와 그 저자
<구파鷗波 백정기 의사> 관련 글을 쓴 게 5월 5일이니, 컴퓨터책상에 앉은 게 열흘이 넘었다. 요근래 한번도 없었던 게으름이었다. 3박5일 휴양의 도시 베트남 다낭에 다녀왔고, 모내기 준비 등으로 바빴던 까닭이다. 얼마 전, 고향후배가 멋진 책을 한 권 선물했다. 자기가 친히 아는 지인선배 출판기념회에 갔는데, 내가 읽으면 맞춤일 것같다며 한 권 더 챙겨온 것이다. 기특하고 고마운 일이다. 여행 전날, 새벽 2시에 일어나 3시간 반을 꼬박 읽었다. 이렇게 내리 통독한 책도 별로 없었다. 읽는 내내, 틀림없이 나와 동년배인 저자가 못내 궁금했다. 다음날 저자를 수소문했더니, 세상에나, 언젠가 서울친구가 꼭 만나게 해주면 좋겠다고 했던 그 친구였다. 세상은 이렇게 좁다. 절대로 죄 짓고 살면 안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즉각 전화를 하여 60대 후반의 사내들이 뜬금없이 수다를 한참 떨었다. ‘만날 사람은 언젠가 어디서든 만나게 된다’는 진리를 새삼 깨닫게 하는 순간이었다. 허나, 아내가 봤으면 ‘주책 좀 그만 떨라’고 지청구를 했을 것이다.
너스레는 그만 떨고 책에 대해서 말하자. 『세컨하우스로 출근합니다』(한준호 지음, 푸른향기 2023년 4월 17일 발행, 299쪽, 17500원)는 저자가 중고교 교사를 정년퇴직한 후 세컨하우스를 장만하여 동업자인 아내와 알콩달콩 사는 사계절의 일상을 그린 수필집이다. ‘세컨하우스’가 어떤 개념의 집인지는 모두 아시리라. 이건 완전 농담이지만, 예전에 흔히 말하는 ‘세컨드’와 함께 사는 집인 줄 알았다. 월말부부로 귀향하여 사는 ‘나의 집’은 세컨하우스일까? 길 수도 아닐 수도 있겠지만, 저자의 세컨하우스와는 질적으로 다른 것같다. 그들은 텃밭을 깔끔하게 가꾸고, 마당에 꽃밭을 알록달록 꾸미며, 진짜로 ‘사는 것같이’ 말하자면, 그림같이 살고 있는 듯했다.
읽는 내내, 슬며시 약이 오를 정도였다. ‘뭐냐? 이 친구는 무슨 복이 이래 많아?’ 어디 그뿐인가? 재주는 완전 오지랖수준이었다. 등산에, 수영에, 자전거에, 요리사에, 사진 촬영에 ‘도’가 튼 듯했고(전혀 자화자찬의 느낌을 받지 않았다), 잉꼬 교사부부로 방학때마다 코로나 직전까지 여행을 즐겼다던가? 취미와 특기가 세계 자유여행이라니, 내 원참? 60여개국을 배낭여행으로 섭렵했다는데 기가 질렸다. 부모도 잘 만났고, 형제도, 아내도, 자식도 다 잘 만난 듯했다. 무엇보다 으뜸은 처복妻福이었다. 역시 세상은 ‘천하태평天下泰平’이 아니고 ‘처하태평妻下泰平’이 맞는 말같다. 아니, 텃밭 가꾸기가 자기 삶의 로망이라며 시골로 가자고 조르는 아내, 정원 돌보기에 신이 난 아내를 둔 남정네는 얼마나 행복할 것인가? 아파트생활만큼은 결단코 청산하지 않겠다는‘시티 우맨(city woman)’들이 대부분인 세상이 아니던가. ‘사철 발 벗은 아내’ 어쩌고하는 가장 좋아하는 노랫말(시구詩句)이 생각나 피식 웃기도 했다. 보고만 있어도 예쁠 것같다.
세컨하우스의 삶은 사회활동을 접은 후 대부분 희망하는 완벽한 전원생활과도 약간 다른 개념인 것같다. 귀농 귀촌의 삶도 아닌, 도시 근교에 텃밭과 마당 꽃밭을 가꾸며, 도시의 집과 언제든 왔다리갔다리, 양다리 걸치는 생활이랄 수 있겠다. 이를 두고 2도(都)5촌(村), 3도4촌이라 한다던가. 게다가 저자는 100여리 떨어진 고향마을에서 벼농사와 양봉養蜂까지 한다는 것이 아닌가. 책 읽고, 미려美麗한 글을 쓰며, 아내의 심부름까지 군소리없이 착착 해대며, 이 모든 것을 사진으로 남겨 정리하는, 양수겸장도 아니고 '1타6피'의 효과적인 노후의 삶을 플랜대로 착착 해나가는, 나와 동년배인 저자의 일상에 배까지 아팠다. 식물도감을 놓고 썼는지는 모르지만, 어디 토종꽃 야생화뿐만 아니라 50여개의 서양꽃 이름과 생리까지 줄줄줄 읊어대는데 ‘놀랄 노’자가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60대 후반의 ‘익어가는 우리의 삶’을 한층 기름지게(윤택하게) 하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로망’이 아니었던가. 그 로망을 날마다 옆지기와 함께 실천하고 있는 ‘세컨하우스 부부’의 건강과 행운을 빈다. 그리고 열심히 일하였으므로 이제 그러한 건강하고 아름다운 삶을 시작하고자 하는 분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우리의 ‘인생 2막’은 마치 그러해야 한다는 듯, 이 책은 훌륭한 참고서가 될 듯하다. 아, 나도 이런 아담한 책 한 권 '지은이 최영록'이라는 이름으로 내게 되면 얼마나 좋을까?
*후기: 그나저나 조만간 지은이를 만나게 될 것같다. 어린왕자와 여우의 만남처럼 기대가 된다. 만나면 대뜸 “한형은 대체 전생에 무슨 업을 쌓았길레, 이렇게 복이 많으냐?”고 물어볼 작정이다. 격의없이 호형호제하며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친구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지 않겠는가? the more, the better. 아내는 늘 “이제 인간관계들을 정리할 나이인데, 당신은 왜 그렇게 새로운 사람을 계속 사귀느냐?”고 하지만, 우리가 죽는 날까지, 무엇이든 언제나 배워야 하는 ‘학생學生’이어야 하듯이, 사는 날까지 같이 얘기할 수 있는 친구가 많아야 한다는 게 나의 지론인 것을 어찌 하랴. 흐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