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중에 일어난 대소동
(사도행전 16:27~34)
신상필벌(信賞必罰)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공로가 있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상을 주고, 죄가 있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벌을 준다는 뜻으로 상과 벌을 공정하고 엄격하게 주는 일을 이르는 말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은 그 말과 정반대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바울 일행은 제2차 선교여행 때 마게도냐 첫 성인 빌립보에 들어갔습니다. 그들은 그곳에서 복음을 전하기 전에 먼저 기도부터 해야 했습니다. 그들은 강가에서 기도하기로 했습니다. 숙소에서 기도처까지 가는 길에 시장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귀신 들린 여종을 통해서 점을 쳐주고 돈을 버는 사람이 있었는데 바울 일행이 그곳을 지나가자 여종이 따라오면서 소리를 지르며 큰소리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 여러 날을 그렇게 하니 바울이 심히 마음이 괴로웠습니다. 어느 날 여종이 또 그렇게 하자 바울이 돌이켜 귀신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 하니 귀신이 즉시 나와 점치는 여종은 정신이 온전해졌습니다. 고침을 받은 여종은 이제 점을 칠 수 없어 주인은 수익이 끊어지고 말았습니다. 이때 주인은 바울과 실라를 붙잡아 장터 관리인에게 끌고 갔고, 관리인이 다시 상관들에게 끌고 가서 “이 사람들은 유대인들인데 로마 사람인 우리가 받지도 못하고, 행하지도 못할 이상한 풍속을 전합니다.”하고 일제히 고발하니 상관들이 “옷을 찢고 매로 치라.”하니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도록 채찍질을 했습니다. 그리고 두 발이 차꼬에 채워 감옥에 던졌습니다. 온몸이 쓰리고 아팠지만, 이들은 원망과 불평 대신 늦은 시간까지 열심히 찬송하고 기도했습니다.
한밤중이었습니다. 갑자기 지진이 일어나 땅이 심하게 흔들리고 옥문이 활짝 열렸습니다.(행16:26) 죄수들에게 매였던 차꼬가 모두 풀리고 말았습니다. 간수가 자다가 깜짝 놀라 일어나 와보니 옥문이 활짝 열려 있었습니다. 그 당시 간수는 주로 로마제국의 퇴역 장교들이었는데 만일 죄수가 도망하면 간수가 탈옥한 죄수의 형량만큼 벌을 받아야 했습니다. 옥문이 활짝 열린 모습을 본 간수는 “이제 내 인생은 여기서 끝났구나.” 생각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기로 하고 칼을 뽑아 들었습니다. 바로 이때 감옥에 그대로 남아서 이 모습을 지켜보던 바울이 크게 소리쳤습니다. “당신 몸을 상하게 하지 마시오. 우리가 다 여기 있어요.”(행16:28) 간수가 그 소리를 듣고 깜짝 놀라 떨리는 손으로 등불을 찾아 들고 들어가 감옥 안으로 들어가서 확인해 보았더니 도망가고 없는 줄 알았던 죄수들이 그대로 남아있었습니다. 간수가 무서워 떨며 바울과 실라 앞에 엎드렸습니다. 그는 지진으로 인한 하나님의 임재와 얼마든지 도망할 수 있었으나 도망하지도 않고 최악의 환경 속에서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바울과 실라를 보고 그들의 담대함과 영적인 권위에 눌려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습니다.
간수는 바울과 실라를 밖으로 데리고 나갔습니다. 부르는 호칭부터 달라졌습니다. ‘선생들’이라고 불렀습니다. 간수와 죄수와의 관계가 아니라 자신이 우러러보는 존경의 대상,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렇게 묻습니다.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까?”(행16:30) 평범한 것 같으나 위대한 질문, 이 세상 모든 사람이 한 번쯤은 던져야 할 질문입니다.
이 질문에 대하여 바울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행16:31) 너무 간단하고 명쾌한 대답입니다. 불교를 비롯한 종교들은 대부분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고행해야 한다, 착하게 살아야 한다, 공을 세워야 한다고 말합니다. 즉 자력 구원을 말합니다. 간수의 질문도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것을 알려 주세요,”라는 질문입니다. 그런데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주 예수를 믿어라. 그러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입니다. 질문에 대한 대답이 맞지 않은 것 같습니다. 동문서답인 것 같습니다. 간수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즉 어떤 행위를 해야 하는지를 물었는데 바울은 믿어야 한다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좋은 대학에 들어가려면 어떻게 공부해야 합니까?”하고 물으면 “이렇게 공부해야 합니다.”하고 대답해야지, 믿으면 된다고 대답하면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은 집을 살 수 있냐고 물으면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어 저축해야 하고 재테크를 잘하면 된다고 말하면 맞는 말이지만, 믿으면 된다고 말하면 맞지 않는 말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왜 믿어야 한다고 대답했을까요? 그것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미 모든 것을 다 해놓으셨기에 우리가 구원을 받기 위해서 무엇을 할 필요가 없고 믿기만 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3장 11절에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 하였고, 로마서 3장 23절에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하였으며, 로마서 6장 23에 “죄의 값은 사망이라”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18장 8~9절 말씀에 “만일 네 손이나 네 발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장애인이나 다리 저는 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과 두 발을 가지고 영원한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한 눈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하고 말씀합니다. 죄지은 곳을 잘라낸다면, 우리 몸의 한 부분도 온전해질 수 없습니다. 결단코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바로 이때 우리 주님이 우리에게 다가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의 손을 보아라. 네가 손으로 지은 죄를 대신하여 나의 손에 못이 박혔고, 그 못 박힌 손에서 흘러내린 보혈이 너의 손으로 지은 죄를 모두 씻어주었단다. 나의 발을 보아라. 네가 바른길을 걷지 못한 죄를 대신하여 나의 발에 못이 박혔단다. 못 박힌 발에서 흘러내린 보혈의 피가 너의 발로 지은 죄를 모두 씻어주었단다. 나의 머리를 보아라. 네가 온갖 더럽고 추한 생각을 한 너의 머리를 대신하여 가시관을 썼단다. 가시로 찔린 머리에서 흘러내린 보혈이 네가 머리로 지은 죄를 모두 씻어주었단다. 나의 가슴을 보아라. 네가 마음으로 지은 죄를 대신하여 나의 가슴이 창으로 찔렸단다. 창으로 찔려 내 가슴에서 흘러내리는 보혈이 너의 가슴으로 지은 죄를 모두 씻어주었단다. 너의 지은 죄로 말미암아 받아야 할 저주, 형벌, 심판을 내가 십자가에서 모두 대신 받았단다. 그러니 너는 이제 믿기만 하면 된단다. 믿는 자는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된다.” 이사야 53장 5~6절에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요한복음 5장 24절 말씀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하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이미 영생을 얻었습니다. 심판받지 않습니다. 아무리 지은 죄가 커도 모든 죄를 다 용서받습니다. 현재, 과거, 미래의 죄까지 다 용서받습니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이미 옮겨졌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우리는 누구를 만나든지 “주 예수를 믿어라. 그리하면 너와 네집이 구원을 받으리라.”하고 담대하게 외치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