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2024년 7월 28일)은 조선의 제 25대 왕인 철종의 즉위일입니다. 지금부터 175년전 일입니다. 1849년 헌종이 후사가 없이 사망하자 당시 궁궐의 가장 어른인 순조비 순원왕후의 명으로 족보상 먼 친척인 강화도에 살던 이원범은 졸지에 조선의 왕이 됩니다. 왕이 되기 전까지 어린 시절을 강화도에서 나무꾼으로 살았던 것으로 유명하기에 강화도령이라고 불립니다. 왕조의 직계 혈통이 단절돼 어렵사리 선택되고 즉위한 방계 출신의 대표적인 왕입니다. 당대 정치세력을 쥐락펴락하던 신 안동 김씨의 정치적 목적과 그들의 요구에 의해 왕으로 옹립되었습니다. 당시 18살이었습니다. 1864년 32살에 사망했으니 14년동안 왕위에 있었던 셈입니다.
철종은 1831년 한성부 경행방 향교동 사저 즉 지금의 서울 종로구 경운동과 낙원동 일대에서 태어났지만 강화도로 낙향해 그곳에서 어린시절과 청년기를 보냈습니다. 주로 고기를 잡고 약초를 캐며 살았다고 합니다. 그가 어느날 산에서 약초를 캐고 있는데 궁궐에서 군대와 가마가 도착하니 자신을 죽이려고 온 것으로 알고 마니산으로 도망다니다가 끝내 잡혔다고 합니다.
역사학자들은 철종은 명암이 뚜렷한 군주라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철종은 역대 조선왕들 가운데 태종과 세종정도를 제외하면 피지배층 즉 백성들의 삶과 그들의 고통을 잘 알고 공감하고 있었던 몇 안되는 왕으로 평가합니다. 또한 붕괴되어가는 조선의 운명을 다시 회복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워낙 정치적 기반이 부족한 탓에 개혁에는 한계가 있었다고 알려지고 있습니다. 또한 선대왕인 헌종에 비해 학문적이나 정치적인 역량은 상당히 뒤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물론 당시 막강한 권력을 장악한 안동 김씨들의 정치적 영향력을 감안해도 왕의 역량에 따라 세도정치를 어느정도 통제할 수도 있었지만 그 한계를 넘지 못했다는 부정적인 평가도 많습니다. 통치 후반기로 갈수록 자포자기한 모습으로 문란한 생활을 하면서 정치에서 손을 놓았다는 지적도 받고 있습니다.
조선의 왕가운데 무능하다고 평가받는 왕들이 여럿 있습니다. 대표적인 왕이 선조와 인조 그리고 철종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제대로 어릴때부터 학문을 익히고 왕족으로서의 기품은 지니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철종은 어린 시절 강화도로 내려가 공부할 기회를 얻지 못했습니다. 좋지 못한 평을 받고 있지만 그래도 변명의 여지가 있는 왕은 아마도 철종이 아닌가 여겨집니다. 또 어떤 면에서는 이원범이 왕이 되지 않고 강화도에서 그대로 머물렀으면 어땠을까 생각이 듭니다. 그냥 고기잡고 약초캐면서 첫사랑 여인과 혼인도 하면서 살았으면 어떠했을까 하는 생각말입니다. 적어도 안동 김씨의 조롱감은 되지 않았고 언관 사관들로부터 아니되옵니다라는 질책은 듣지 않아도 되지 않았을까 느껴집니다. 헌종이 사망하고 난 뒤 왕위를 이을 왕족들은 한양에 한둘이 아니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안동 김씨 권력자들 그들의 입맛에 맞고 자신들이 좌지우지하기 아주 적합한 인물을 고르고 고르다보니 강화도까지 가서 데려온 인물이 바로 강화도령 철종 아닙니까. 강화도령 이원범 입장에서는 가문의 영광이 아닌 그냥 피곤한 인생의 연속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 등장할 수 있는 단어가 바로 분수입니다. 분수는 사물을 분별하는 지혜 또는 자기 신분에 맞는 한도를 말합니다. 뱁새가 분수를 모르고 황새 따라하면 가랑이가 찢어진다는 속담이 바로 분수의 중요함을 분명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물론 강화도령이 스스로 왕이 되려 한 적도 없고 그런 마음을 가져 본 적이 없기에 강화도령에게 분수의 날카로운 잣대를 들이밀기에는 무리가 많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한계를 모른 채 야욕과 욕심에 사로잡혀 자신의 인생과 나라의 운명을 그르친 경우를 우리는 한국 역사에서 숱하게 보아왔습니다.
군인의 사명을 다했다면 좋은 군인으로 멋진 군인으로 역사에 남았을텐데 권력에 대한 야욕으로 많은 인명을 희생시킨 인물이 한국 역사에는 여럿있습니다. 경제인으로 머물렀으면 좋은 평가를 받고 나라의 경제적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았을 인물이 권력을 탐하다가 영어의 신세가 되는 경우도 목격했습니다. 물론 자신의 야욕도 야욕이지만 주변인들의 교묘한 꼬들림에 넘어가 대과를 저지른 경우도 많습니다. 철종의 경우는 안동 김씨들의 야욕과 권력욕의 희생양일 수도 있습니다. 인간의 삶에 있어서 분수를 지킨다는 것만큼 어려운 일도 없을 것입니다. 175년전 철종의 즉위일에 왜 이 분수라는 단어가 강하게 떠오르는지 모르겠습니다.
2024년 7월 28일 화야산방에서 정찬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