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자 / 채길우
한산한 거리, 수레를 놓고 하루 종일 한 자리에 머물던 복숭아 노점 위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노인은 한참을 그림자로 고여 있다가 젖는 몸을 일으켜 과일을 덮은 채 우비도 없이 느리게 바퀴 굴러 떠났다
이사 간 자리에 남겨진 비어있는 노인의 앞니만큼 짓무른 새하얀 빛 자국
― 《현대시》, 2023년 12월호 ------------------
* 채길우 시인 1982년 울산 출생. 2013년 《실천문학》 등단. 시집 『매듭법』 『측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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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자(額子)’는 ‘그림이나 사진, 글씨 따위를 끼워 두는 틀’을 말한다. 또는 ‘현판에 쓴 큰 글자’를 말하기도 한다. 여기서의 액자는 아무래도 전자의 경우를 말하고 있는 듯하다. 이 액자는 같은 문제라도 사용자에게 어떤 방식으로 질문하느냐에 따라 사용자의 판단과 선택이 달라지기도 한다. 이러한 현상을 ‘액자효과(額子效果) framing effect’라 한다.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미국의 경제학자이자 심리학자인 카너먼(Kahneman,D.)이 처음 사용한 말이다. 이 시작품에서 바로 이러한 효과를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화자는 ‘한산한 거리’에서 ‘수레를 놓고/ 하루 종일 한 자리’에 머물러 ‘복숭아’를 팔고 있는 한 노인을 만난다. 노인은 이른바 노점상이다. 노점상에 주는 느낌은 바로 최소한의 삶을 누리고 있는 가난함을 엿보이게 한다. 그러한 ‘노점 위로 노점 위로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이러한 삶의 한 모습이 마치 액자 속에 갇혀 있는 한 삶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노인은 한참을’ 액자 속의 그림처럼 ‘그림자로 고여 있다가’ 비에 쫓겨 ‘젖는 몸을 일으켜 과일을 덮은 채’로 액자 속을 벗어나서 ‘우비도 없이 느리게 바퀴 굴러 떠’나고 만다. 노점상은 길가나 길바닥에 물건을 벌여 놓고 파는 소규모의 장사를 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때때로 우리는 단속원들과 숨바꼭질하면서 장사를 하는 노점상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노점상으로부터 최소한의 삶을 겨우 유지하면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소외된 소시민들의 엿보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삶조차 쉽게 허락되지 않는다. ‘젖는 몸을 일으켜 과일을 덮은 채/ 우비도 없이 느리게 바퀴 굴러 떠’날 수밖에 없다. 액자 속 삶이 와해 되고 만다.
노점상이 떠나고만 ‘이사 간 자리에 남겨진/ 비어있는 노인의 앞니만큼/ 짓무른 새하얀 빛 자국’만이 새로운 그림의 하나로 남겨 있어 화자는 노인의 ‘짓무른’ ‘삶’의 ‘새하얀 빛 자국’을 그려주고 있을 뿐이다.
- 구재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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