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춘천도 많이 변했을 거야...젊은이는 춘천에서 언제 서울로 온 거야?"
" 작년에 서울로 왔어요. 어머니를 따라..."
" 자꾸만 젊은이라고 부르니 미안하구만. 이름을 불러도 되겠나?
" 진영이예요. 김진영. 그런데 아저씨는 춘천에 왜 가세요?"
" 음...일이 있어. 이십년에 걸친 나 만의 한이랄까? ㅎㅎㅎ"
과거를 들켜버린듯 나는 애써 차창으로 눈을 피한다.
인생은 유수와 같다했거늘 굳이 과거를 들먹여 사건을 일으켜야할 이유가 있을까.
하지만 짚고 넘어가야할 문제이기에 춘천행을 결심한 것이고,
새로운 사업을 반드시 실현해야만 나라는 존재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기에 기차를 탄 것이 아니던가.
진영은 이십년의 한이란 말이 부담스러웠는지,
괜한 질문을 했다고 생각을 했는지 몸을 반쯤 틀어 반쯤 남아있을 캔맥주를 입에 가져간다.
그리고는 구석진 곳의 젊은이들을 바라본다.
젊은 여자의 재롱을 묵묵히 받아주다간 이내 팔로 감싸안는 젊은 남자.
'저렇게도 사랑을 나눌 수 있는 것이구나' 한 표정으로 그들을 보고있는 진영.
나는 잠시 차창에 걸려 지워지지 않는 모습들에 시계를 맞춘다.
강물은 내려오고 나와 진영을 싫은 기차는 올라가고...
멍텅구리.
상호가 말해주듯 친근미가 있으면서도 괴짜스럽게 장사를 하는 곳이다.
음식을 만들기만하면 손님이 알아서 차려먹는 곳, 셀프의 원조다.
상까지 치워주고 닦아주는 곳이 멍텅구리다.
내가 아르바이트를 했던 곳이고 음식을 만들었던 곳이다.
메뉴야 스넥이 전부지만 젊은이들에겐 인기 절정의 장소였다.
메뉴판엔 멍주, 몽주, 만고강산주, 오징어볶음, 떡볶기....대부분 150원짜리의 명찰을 달고 경쟁을 하고있다.
멍주는 멍청해진다는 술로서 양주의 빈 병에 소주와 우유를 섞은 것이고,
몽주는 소주에 야쿠르트를 탄 것이니 마시면 몽롱해진다고 몽주라는 이름표를 붙였다.
손님은 춘추전국시대를 맞고있었다.
명동의 유일한 목조건물 2층, 서너평 남짓의 멍텅구리엔 학생들과 군인들,
춘천에서 깡패라고 일컷는 모든 집단의 젊은이들이 모여들었던 곳이 멍텅구리였다.
1978년 여름의 일이다.
기인이라며 3년에 한번 머리를 감고 일 년에 한 번 세수를 한다는 XX 형이 드나들기 시작했다.
막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했다고 춘천에서 이름이 올려졌던 인물이다.
그는 일년 내내 빛바랜 회색 바바리코트를 걸치고 다녔다.
하늘을 향해 코트자락을 휘이 저으면 안개가 생기고,
다시 한 번 휘이~ 저으면 안개가 걷힌다는 이야기와
누구든지 초상을 그려 붓을 던지면 다트가 된다는 이야기는 더욱 그를 유명하게 만들었다.
만삭의 밤송이가 벌어질 즈음의 어느 날이었다.
XX형이 찾아와 '글을 쓰는데 아우네 가게를 등장시켜도 되겠냐, 아우를 등장시켜도 되겠냐?'는 것이고,
나는 외상값은 안갚고 왠 뚱땅지같은 말을 하는 것인지 알다가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었다.
일주일 만에 다시 찾아와 책 한 권을 던지며 읽어보라던 XX형,
허락을 안받자니 초상권에 문제가 있었는지,
아니면 외상값 갚을 능력의 한계를 벗어난 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나는 멍텅구리가 책에 나온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것을 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나는 신비한 학생으로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요리야 별 것이 없다하더라도 칼을 놀리는 재주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빨랐다.
학교는 휴식을 취하기 위해 다닐 정도로 등한시했고, 멍텅구리는 나의 모든 것이 되어갔다.
당시엔 하루가 멀다고 찾아오는 손님이 적지 않았다.
그 중 나의 관심을 자극하던 여인이 있었는데, 그는 내게 항상 애처로운 상대로 보였다.
침울한 표정의 여인은 항상 동정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한 모습을 하고있었다.
그 날은 마침 수업이 오후에 있던 터라 아침부터 주방을 지키며 육수를 내고 있었다.
육수라야 들통에 물을 붓고 다시마와 멸치, 그리고 무우를 댕강 썰어넣으면 끝이다.
라면도 스프 대신 육수에 끓여 소금과 고춧가루로만 간을 맞추었기에 물만 부어가며 육수를 쓰면 된다.
느끼하지 않아 좋다고들 했다. 육수를 준비하고 야채마다 채를 썰어놓으니 준비가 얼추 끝이 났다.
이어서 김밥 재료를 준비하고 김밥만 말면 손님이 들이닥쳐도 무서울 것이 없다.
이 때 단무지를 가르는데 출입구의 여닫이가 끼익 소리를 낸다.
" 누나야? 벌써 시장을 봐......... 어? 효선씨 아니야?"
" 안녕하세요?"
" 웬일이예요 아침부터?"
" 술좀 주세요. 한 병만..."
" 예? "
효선은 항상 혼자서 왔다.
소주와 오징어볶음이 그의 단골메뉴였지만 주인누나가 장을 봐오기 전까지는 술을 줄 수가 없다.
효선이 술에 취해 실수를 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효선이가 오면 주인누나의 허락을 반드시 받아야만 했다.
효선은 불쌍한 아이다. 시내버스가 의암댐에서 굴러 떨어져 40여명이 사망했던 그 운수회사의 외동딸이다.
고등학생이던 효선은 그로 인해 충격을 받았고,
졸업도 포기한 채 타락의 늪이라도 걷겠다는듯 술을 즐기다가 멍텅구리를 찾은 것이 인연이 됐던 것이다.
멍텅구리가 그나마 위안이 되었는지 점차 찾는 횟수가 늘어났다.
아침부터 술을 찾는 이유가 뭘까.
*** 바빠야할 월욜인데 손님이 이렇게 없을 수가...영업에 열중해야하는데 인터넷만 보고있으니...참...***
첫댓글 이 또한 다음편이 기대됩니다.
비 오는날 집콕하면서 삶이야기방 글 읽는 재미가 쏠쏠하네요.
아마추어의 수담이 기대된다 하시니 쑥스럽네요.
당연히 고맙기도 하고요...^^
연재 소설을 읽는 느낌으로 재미있게 읽고 있는데,
멍텅구리 하면 귀여운 느낌이 듭니다,
멍텅구리의 5부를 기다릴께요,
우왕~~ 나 어떡해~~~ㅎㅎ
내 인생이 다 까발려지는 느낌이 든단 말이예요~~
여기서 중지하면 값이 떨어질테고...고민이 된단 말이예요~~~우왕~~
정말소설인걸요 ㅎㅎ근데 머리긴 기인이 이외수? ㅎㅎ
결국엔 외상값을 떼였다는 것이지요. 꿈꾸는 식물이라는 책 한 권에...외상값 68000원을...
20년 전에 만나 그 시절 외상값을 이야기하니 가난이 발목을 잡던 시절이라 그러구 살았다는 변명밖에...ㅎㅎ
삭제된 댓글 입니다.
ㅎㅎㅎ 몰라요님은 모르는 것보다 아는 것이 더 많으신데 닉이...좀...
알아요로 바꾸셔야 할까보아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