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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져 가는 동네 빵집 지키는 김상동, 조분희 부부 |
![]() 제빵인생 36년, 안막동의 제빵달인 가게 문을 열고 들어서자 갓 구운 빵 냄새가 먼저 후각을 자극한다. 나도 모르게 코를 흠흠 거리려는 걸 참는 사이로 뉴델리제과 주인장 김상동(54)사장님과 아내 되는 조분희(51) 씨가 어서 오라며 반겨 웃는다. 그런데 사장님! 심하게 작으신 그 체구와 함께 온 얼굴로 환하게 웃는 모습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그 옆에서 두 손 마주 잡고 조용히 미소 짓는 사모님! 그리고 무엇보다 가게 안에 가득한 고소하고 달콤한 빵 냄새가 마음을 포근하게 한다. 아버지 일찍 여읜 열세 살 소년가장 상동 씨는 태화동 어개골에서 태어났다. 안동에서 나고 자란 안동토박이인 셈이다. 작고하신 상동씨 부친은 청송 진보출신인데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을 기반으로 안동에 와서 장사를 해서 일가를 이룬, 이름만 대면 알만한 입지전적인 인물이라고 했다. 아버지는 새우젓 깡통에 돈을 가득 담고 퇴근을 하곤 했다. 태화동에 어른들 말로 고래 등 같은 집을 두 채나 소유한 소문난 부자로 떵떵거리며 살다 가셨다. 덕분에 상동 씨도 국민학교 졸업할 때까지는 어려움을 모르고 남부럽지 않은 생활을 했다. 그렇지만 부친의 작고 후 상동 씨네 상황은 백팔십도 달라졌다. 상동 씨는 하루아침에 소년가장이 되어 돈을 벌러 나가야 했다. “맨 처음에는 나무 만드는 목공소에서 조수 일을 했어요. 그리고 태화동 삼거리쯤에 있었던 방앗간에서 일을 하다가 운안동 산비탈에 있던 나무딸기 농장에서 나무딸기 따는 일도 했어요. 나이가 어려서 돈을 많이 받지 못하니까 이 일 저 일 가리지 않고 했지요. 그러다가 철공소에서 낫 호미 같은 농기구 만드는 일을 배우다가 이러다가는 안 되겠다 싶어 일거리가 많다는 대구로 갔어요. 대구에서 만두가게 일을 하면서 3년을 지냈어요. 대구 칠성시장 인근에 있는 도너츠 만드는 곳에서 일을 했는데, 도너츠 공장이 잘 될 때는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배달을 다녔어요. 주문받은 도너츠를 자전거 뒤에 싣고 대구 수성구 범어동으로 동구 만촌동, 효목동으로, 대구MBC 일대, 경산까지 그 일대는 눈 감고도 훤할 정도로 안 가본 데 없이 배달을 다녔지요. 주로 찐빵이나 도너츠가 추운 겨울에 잘 팔리다 보니 그 추운 겨울에 얇은 잠바 하나 입고 추위에 떨면서 배달을 다녔지요. 그런데 여름에는 도너츠가 덜 팔리니까 여름에 더워서 만두가게가 한가해지고 일이 없으면 안동에 와서 방앗간 일도 하고 철공소 일도 하고 이것저것 품팔이를 했어요. 그리고 겨울이 되면 다시 대구로 가고. 먹고 살아야 했으니까 닥치는 대로 일을 했지요.” 상동 씨가 열서너 살 이른 나이에 생업 전선에 뛰어든 데에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젊은 나이에 청상으로 어린 사형제를 데리고 눈물을 참으며 살려고 애쓰시는 어머니의 존재가 컸다. 어머니는 젊은 나이에 나이 차가 많이 나는 육십 넘은 아버지의 재취로 와서 상동 씨 사형제를 낳았다. 태화동에 있는 두 채의 집 중 큰 집에 큰 어머니에게서 낳은 형님들이 살았고 좀 더 작은 집에 상동 씨네가 살았다. 상동 씨 나이 열두 살 때 아버지가 작고하셨다. 아버지가 살아 계셨을 때는 상동 씨네도 어려움을 모르고 살았지만 아버지가 노환으로 돌아가시자 상동 씨네 다섯 식구는 그야말로 끈 떨어진 갓 신세가 되고 말았다. 집 안에 돈을 벌어올 가장이 없으니 당장 먹고 살 일이 급했다. 그래도 장남이라고 상동 씨는 고생하시는 어머니와 동생들을 보면서 중학교 진학의 꿈을 접어야 했다. 초등학교도 마지막에는 학비가 밀려 내지 못할 처지였으니 중학교는 보내준대도 다닐 형편이 못되었던 셈이다. 가난한 처지의 장남이 되고 보니 절로 일찍 철이 들 수밖에 없었던 셈이다. |
![]() 생긴 게 빵처럼 생겼으니 맘모스에서 일해볼래? “처음에는 더 이상 다른 일자리를 찾아 헤매지 않아도 되고 배고프지 않고 하는 것이 좋아서 정신없이 일을 배우느라 시간이 어떻게 가는 줄 몰랐지요. 그런데 스무 살쯤 돼서 가만 생각해 보니까 제가 이 일을 진짜 좋아하고 있더라고요. 그때 제빵사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키가 작아서 군대를 면제받았는데 그때는 그것도 다행이라 생각했어요. 덕분에 남들보다 일찍 빵 만드는 기술을 더 배울 수 있겠다 싶었죠. 이 일을 평생 해도 좋을 거 같더라고요. 빵을 실컷 먹을 수 있는 것도 좋았지만 빵 굽는 냄새며 빵을 만드는 선배 제빵사들의 기술이 볼 때마다 놀라웠고 내 자신이 빵을 만드는 일을 배운다는 게 좋아서 시간 가는 줄 몰랐어요. 일 끝나고도 남아서 밤늦도록 연습했죠.” 그전에도 일밖에 모른다고 소문난 상동 씨였지만 제빵사의 꿈을 가지고부터 상동 씨는 더 열심히 부지런히 제빵 일을 배워나갔다. 한 눈 팔지 않고 빵 만드는 일에 매달렸다. 시다 생활을 끝내고 불 조절을 하는 가마장, 반죽을 담당하는 반죽장, 거품을 내는 아와장, 그리고 부공장장을 거쳐 공장장이 되기까지 17년이 걸렸다. 한 계단 한 계단 쉬지 않고 꾀부리지 않고 빵 만드는 장인의 길을 걸어왔다. 대입 찹쌀떡 사려는 줄이 조흥은행까지 섰었죠 대부분의 제빵사들이 어느 정도 실력이 쌓이면 독립해 나가서 자기 가게를 차리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리고 자기 가게를 차리지 않더라도 안동 맘모스에서 실력을 인정받았다 하면 대형제과점이나 새로 문을 여는 제과점 사장님들이 서로 데려가기도 하고 그랬다고 한다. 먹고 살기 바빠 제과점을 차릴 형편은 못됐지만 상동 씨에게도 그런 제안들은 많았다. 상동 씨 제빵 기술을 보고 서울 대형 제과점에 자리를 소개해 주겠다는 사람도 있었고 자기 가게에서 주방장으로 일해주면 지금보다 좋은 대우를 해주겠다는 이도 있었다. 그러나 상동 씨는 어머니와 동생들을 두고 안동을 떠난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온 식구가 옮기기에는 형편이 되지 않았고 어머니와 동생들 뒷바라지까지 하며 다섯 식구 가장으로 생활하다 보니 내 제과점을 차린다는 것도 쉽지 않았다. 대신 상동 씨는 맘모스 제과점 안에서 제빵 기술을 자신만의 것으로 만들며 실력을 쌓아가며 빵 만드는 즐거움으로 살아갔다. “맘모스에서 일할 때 빵 만드는 사람들이 보조까지 열 일고여덟 명씩 있었어요. 장사가 잘 되니까 아침부터 밤까지 일을 했죠. 대입 시험 전이면 잠 안 오는 약인 타이링을 몇 알씩 먹어가면서 삼사일씩 밤을 새워가며 찹쌀떡을 만들었어요. 찹쌀떡을 사려는 사람들이 조흥은행 앞까지 길게 줄을 서 있고 했어요. 밸런타인데이나 크리스마스 같을 때는 초콜릿이나 케이크 만드느라 정신없었고요.” 그 시절, 빵 만드는 시간 말고 남는 자투리 시간에는 책을 읽었다. 당시만 해도 학교로 직장으로 전집류를 팔러 다니는 출판사 영업직 직원들이 심심치 않게 있었는데, 가정 형편 때문에 학교를 더 하지 못했던 게 못내 억울했던 상동 씨는 배움에 대한 목마름을 그렇게 채웠다. 비록 학교는 많이 다니지 못했지만 남들한테 무시당하지 않고 스스로도 당당하기 위해서 매달 이삼만 원의 책 할부 값을 꼭꼭 내가며 밤 열두시까지 책을 읽다가 아침 여섯 시에 일어나는 생활을 계속했고, 누가 뭐래도 부지런히 책을 읽었고 대학생들의 강의 노트를 얻어 틈틈이 혼자 공부를 했다. 나중에 맘모스에서 짐을 싸 나올 때 가장 많은 부피를 차지한 것도 다름 아닌 젊은 날 그렇게 열심히 사서 읽었던 책이었다고 한다. |
![]() 비 오는데도 택시를 안타요, 이 여자다 싶었죠 “저는 이사람 이모님이 소개해 주실 때부터 사람만 괜찮으면 결혼을 하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어머니가 몸이 아프기도 하셔서 며느리가 해주는 밥을 드시면 좋겠다 싶기도 했고 저도 직장에서도 자리를 잡았고 총각으로 생활하는 것보다 가정을 꾸릴 때가 되었다 싶었거든요. 그런데 사람이 욕심도 없고 순하고 얌전한 게 알뜰할 거 같더라고요. 그래서 두 번째 만나고 나서 나는 결혼할 마음이 있는데 어떠냐고 그랬지요.” “첫인상은 좀 깐깐해서 성깔 있어 보여서 걱정도 살짝 됐어요. 대구에서 처음 만나고 그 다음에 두 번째로 만나서 그날 안동댐 홍보관에 갔는데 대구까지 가는 기차 시간이 많이 남아서 굳이 택시 타느니 기다렸다가 천천히 버스 타고 가자고 한 건데 그걸 보고 없는 집에 시집와도 알뜰하게 잘살겠다고 그걸 잘 본 모양이더라고요. 두 번 만나고 결혼 하자고 하는데 키는 작지만 사람이 성실해 보였어요. 무엇보다 식구 밥 굶기지는 않겠다 싶었어요. 그래서 좋다 했지요. 사실 신혼 시절에는 신랑이 키가 작은 게 남들 앞에 신경이 쓰일 때도 있었는데 살면서 점점 키가 작은 줄 모르겠더라고요. 애들 아빠로 남편으로 든든했지요.” 그 사이 어느새 두 딸 옥라와 나현이는 스물여덟, 스물여섯의 예쁜 아가씨가 되어 군포와 대전에서 사회복지사와 간호사로 열심히 근무 중이다. 제빵 조리실에 두 딸들의 사진을 붙여놓고 하루에도 몇 번씩 들여다보는 상동 씨와 분희 씨는 자타공인 딸 바보들이시다. 어릴 때는 일하랴 많은 식구 챙기랴 아픈 시어머니 병수발 하랴 정신없어서 그리고 나중에는 가게가 바빠서 늘 마음뿐 제대로 못 챙겨준 게 미안한 딸들이다. 그런데 열심히 사는 두 분 부모님을 보며 알아서 서로 챙겨주며 야무지고 똑똑하게 자라 당당하게 사회생활을 하는 딸들이 자랑스럽기만 한 부부다. |
![]() 나 하나 보고 시집온 사람, 하루에 열 번 웃겨주자 “칠순 잔치를 앞두고 어머니가 돌아가셨어요. 14년 전에 칠순 준비를 하던 와중에 돌아가셨는데 어머니 가시고 나서 돌아보니까 집사람이 보이대요. 못난 남편이죠. 그동안 어머니 모시는 게 먼저라 집사람한테 늘 양보해라 하고 희생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살았는데, 그제서야 후회가 되더라고요. 대신 앞으로 남은 생애 동안은 내 마누라한테 잘해야겠다 싶었죠.” |
![]() 그날 만든 빵은 그날 소비, 나머지는 아동센터 기증 빵을 많이 만들 때나 더운 여름에는 아침저녁 하루 두 번 반죽을 하기도 하지만 요즘 같은 겨울철 특히나 방학 때는 아침에 한꺼번에 반죽을 해서 빵을 굽는다. 여고 앞 빵집은 수능 끝나고 3월까지가 비수기인 셈이다. 그렇지만 늘 찾는 단골손님들이나 이제 제법 입소문이 나서 시내에서 일부러 찾아오는 분들이 있어 요즘도 늘 일정량 이상은 만든다. 그리고 처음에는 그저 남는 빵을 버리기가 아까워 시작한 지역아동센터에 빵을 보내는 후원 때문에라도 그날 팔고 남을 만큼, 최소한 모자라지 않게 빵을 만든다. 뉴델리 베이커리 김상동 사장님이 36년 노하우로 직접 만드는 빵이라는 자부심과 더불어 지키는 또 하나의 원칙이 그날 만든 빵은 그날 판다는 것이다. 하루가 지난 빵은 따로 담아 저소득 가정이나 한 부모 가정 아동들을 돌보는 밝은세상 안동지역센터 안기센터를 시작으로 지역센터 세 곳과 농아인 협회와 시각장애인협회 등에 빵을 보내주고 있다. “빵 나누기는 육칠년 전에 우연히 잘 아는 선생님에게 지역아동센터 이야기를 듣고 그 선생님 소개로 남는 빵을 그냥 버리기 아까워서 안기아동센터에 보내게 됐는데, 빵을 보내주는 후원을 시작하면서 나누는 기쁨을 알게 되었다고 할까요. 내가 만든 빵을 학생들이 맛있게 먹어주는 게 고맙고 한편으로는 내가 가진 빵 만드는 제빵 기술로 이렇게 나도 좋은 일을 할 수 있구나 싶은 게 한편으로 남모르는 기쁨이 생기더라고요. 집사람도 처음에는 아까워했는데 이제는 저보다 더 잘 챙겨요. |
![]() 뚝심 하나로 대형 프랜차이즈 틈새시장에 안착 참고로 안동 맘모스제과점은 2011년 미슐렝 가이드 한국판에 대전의 성심당과 함께 한국을 대표하는 수제빵집 두 곳 중 한 곳으로 소개될 만치 그 역사와 빵 맛을 자랑하는데, 미슐렝 가이드 덕분인지 요즘은 안동을 찾는 블로거들이 한번은 꼭 방문하는 탐방코스가 되고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안동에 맘모스 제과점만 있는 줄 아는 데 그게 아니라는 김상동 사장님의 말씀, |
![]() 무서운 사부 덕에 도넛 튀기다 많이도 울었죠 그런데 제과점을 시작하고 처음에는 빵 만드는 일손이 달려 분희 씨가 빵 만드는 상동 씨 옆에서 도넛 튀기는 일을 배워 했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문득 분희 여사 눈자위가 젖어드는 게 심상치가 않다. 신나게 이야기를 하다가 분희 여사 눈치를 보며 그때는 내가 좀 심하다 싶게 매섭게 가르쳤다고 상동 씨가 미리 자수를 하자, “나도 도덧을 튀길 때도 그렇고 빵 만드는 걸 배울 때도 그랬고 정말 고생을 하면서 사수들한테 매섭게 배운데다가 그때만 해도 내가 최고라는 생각에 내 부인인데 조수 부리듯이 일을 가르쳤어요. 지금 생각하면 내가 백 번 잘못했지요.” 처음 제과점 문을 열고 장사가 잘 될 때는 아침 여섯 시면 부부가 가게에 나와서 밤 열두시까지 일을 했다. 요즘은 비수기라 열시 반쯤 문을 닫는다고 한다. 다음 날 장사 준비까지 다 해 놓고 집에 들어가서 씻고 휴식을 취하는 그 한 시간여 동안은 서로 아무 간섭을 하지 않고 쉰다. 하루의 고단했던 몸을 뉘고 아무 생각 없이 쉬는 잠들기 전의 그 시간을 상동씨는 꿀맛 같은 한 시간이라고 했다. 상동 씨는 아내도 자신만큼 힘든 줄을 알기에 집안을 대충 덜 치우고 어질러 놓는 일이 있어도 잔소리를 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게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잠자리에 들어 서너 시간 자고 새벽 다섯 시 반이면 일어나 아침을 시작했다. 한 달에 한 번 쉬는 날을 빼고는 죽으나 사나 제과점에 매달렸다. 누가 시키는 것도 아닌데 남들 일주일에 한 번 쉴 때 부부는 한 달에 한 번 쉬는 생활을 이날 이때껏 해 오고 있으니 정말 얼마나 열심히 살아왔는지 알 것 같다. |
![]() 뭐니뭐니해도 맛있다고 할 때가 제일 기분 좋죠 “일반 손님들은 직접 만든 빵하고 프랜차이즈 제과점처럼 한 공장에서 똑같이 만들어져서 전국에 배달되는 빵하고의 그 차이점을 잘 몰라요. 손님들은 예쁘고 다양한 제품들이 많으니까 그게 좋은 줄 알고 거기에 길들여져서 그날그날 금방 구운 빵맛을 잘 몰라요. 그런데 저희 가게에 오는 단골손님들은 잘 알죠. 금방 나온 빵 맛을 알면 또 찾게 되거든요. 저희 가게 같은 경우는 여고(길원여고) 앞에 위치해 있다 보니까 학생들이 먹어보고 안동시내 다니면서 입소문을 많이 내줘요. 앉아서 저절로 홍보가 되는 거죠. 작년에는 학교에서 1학년 가사 실습 시간을 통해서 가사 선생님의 요청으로 미니케이크 만들기 강습을 했는데 그전에는 그냥 빵집아저씨로만 알다가 학생들이 제가 케이크 만드는 걸 보고 직접 빵을 만든다는 걸 알고 그담부터는 선생님이라고 하고 사장님이라고 하면서 자기도 나중에 제빵사 되고 싶다고 해요. 소문도 짱짱하게 내주고요. 여학교 앞에 자리한 덕을 톡톡히 보고 있어요.” 저녁 시간이면 야자를 위해 남아있는 여고생들이 야참 겸 간식거리를 공수하기 위해 삼삼오오 빵집 문을 들어선다. 아침 등굣길 아침 대신 빵으로 요기를 해결하기 위해 들르는 단골 여학생들도 있다. 여학생들이 재잘거리며 이 빵 저 빵 맛보고 품평을 해주고 블로그에 후기를 올렸다고 자랑하는 일도 뉴델리 베이커리에서는 이제 낯선 풍경이 아니다. 블로그니 스마트폰이니 SNS니 하는 것들이 일상이 된 학생들 덕분에 새로운 단골이 된 사람도 있다. “전 지금도 빵 만드는 게 즐겁고 재미있어요. 매일 매일 만드는 빵도 있지만 빵 종류가 많다 보니까 하루에 몇 가지씩 기본적으로 만들고 그리고 종류별로 어떤 날은 쿠키를 만들고 어떤 날은 케익을 만들고 어떤 날은 새로 유행하는 빵을 연구해서 만들고 하는 일들이 저는 좋아요. 동생이랑 나누어서 하니까 지금은 여유가 조금 생겨서 제 시간도 챙겨서 하루 한 시간씩 배드민턴을 치기도 하지만 저는 빵 만들고 있을 때가 제일 마음이 편안해요. 요즘은 팔고 남은 빵을 나누어주는 시간도 좋고요. 무엇보다 제가 만든 빵을 사람들이 맛있다고 해 줄 때 가장 기쁘지요.” <출처-향토문화의 사랑방 안동 144호> |
첫댓글 연합회에서 가슴 따뜻한 내용을 소개해 주셨네요....
보기에 너무 좋고, 의미있는 것 같습니다.
빵집에 한번 방문해 봐야겠네요^^*
연합회 정차장님 노고에 감사드리며....
저희가 자주이용합니다ㅡㅡ브랜드빵집보다 케익이크고 안동시내전역 바로 배달해주세요
맛있어요ㅡ
차장님 책 한권 내셔도 되시겠어요^^![~](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8.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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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피자 한판 시켜 먹어요 차장님![~](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8.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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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님 피자 솜씨도 일품이지요
요기요기 강추에요~! 저도 일부러 빵사러 여기까지 가는데 정말 맛있어요 자주들려보세요 ^^
빵사장님 최고!
빵 맛 안동 최고입니다..
빵사장님 고생도 많이 하셨네요.. 고생 끝에 행복이 오네요..하이팅~~~ ^_^
뉴~~빵 # 우리 절친 ♥사랑합니다.
감동입니다. 감사합니다.
요즘 보기드믄 장인정신 세대의 귀감입니다..쫙 짝...
정차장 좋은사연 소개해서 땡큐 ^^
나도 적십자 제빵봉사회에서 빵 만들어 봉사하고있는데 넘 재미있고 보람있어 빵은 돈버는 욕심보다 만드는 취미가 있어야 맛있는 빵을 구울수 있는것 같아요 상동씨는 재미도 있어하고 봉사도하고 그러니 손님을 위한 건강한 빵을 만들수있은것같아요 달인 다워요 상동씨 파이팅! 맛난빵 먹으러 갈께요 핫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