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들면서부터였던가 국학교육(國學敎育)에 대한 관심이 폭발하면서 초중등학교 음악 교과서에도 큰 변화가 일어났으니, 그때까지 외국 음악 일색이었던 교과서에 우리나라 전통음악들이 대거 교과서에 실리게 되었다. 뭐 살아오면서 외국 민요만 주구장창 듣다 생전 듣도 보도 못한 음악들이 전통이란 미명하에 교과서를 점령하니 학교는 한동안 우왕좌왕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특히나 무슨 굿거리장단이니 휘몰이장단이니 하면서 얼른 들으면 잡음같은 리듬들이 버젓이 교실을 차지해 버렸으니 뭐 교사들이야 들어보기나 했나 배워보기나 했을까. 요즘같으면 MIDI 매체를 이용하여 아이들에게 반복하여 들려주면서 "알긋제잉?" 하면 그만이지만, 그 당시에는 오직 선생님이 시범동작으로 보여줘야만 교육이 되니까 선생님들의 고충은 이루 헤아릴 수 없었을 게 아니었겠나.
하튼 그런 혼란의 과정을 겪어오는 가운데 교육은 이루어지고 오늘날 단군 이래 가장 부강한 나라에 이르기까지 했으니, 뭐 고생은 사서도 한다지만 지나온 날들은 그리 다시 돌아보고 싶지 않은 건 나만의 감정이 아닐 터...
우리 시대엔 해방과 함께 미국의 교육제도가 한꺼번에 밀려들어왔는데 미국이 지원한 유학정책으로 미국 물을 먹은 사람들이 교육현장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 건 당연한 일. 당시 많은 교육학 전공자들이 테네시주 소재 피바디대학(Peabody College)에 가서 공부하고 왔기 때문에 거의 모든 교육기관에 이 학교에서 수학한 사람들이 있었을 정도였으니...해서리 음악교육에도 미국민요가 많이 소개가 되었으니, 따라서 우리들의 지난 날들을 돌아볼 때 배경음악은 자연스레 미국의 민요들이 차지하게 되지 않았나 싶지만...
오늘날 세계 최강의 국가로 부와 환락을 누리는 미국이라 하지만, 옛날 그곳에서 유행했던 미국민요들을 살펴보면 그런 분위기와는 판이하게 오히려 꽤나 고단하고 슬픈 이야기들을 담고 있으니...사실 유럽의 고향을 등지고 무일푼으로 건너온 사람들의 신세, 인간(?)과 노예의 갈등, 그리고 목숨을 걸고 황량한 벌판을 헤쳐 나가는 가족사 등을 배경으로 한 사회 분위기라면 암울하고 슬픈 이야기 외에 더 무슨 감정이 있었을까만...
나이가 들어가니까 옛 생각도 많이 나는 데다, 그럴 땔수록 옛날 흥얼거렸던 미국민요들이 불현듯 떠오른다. 그만큼 위에 말한 바, 우리들의 과거를 다루는 이야기들의 배경음악은 으레 미국민요라는 게 그런 뜻일 게다. 해서리 추석 연휴를 보내면서 고향 생각에, 흘러간 과거 생각에 미국민요 몇 곡을 골라 감상해 본다.
1. My old kentucky home(켄터키 옛집)- Jennifer Ivester
포스터(Stephen Foster) 작곡으로 흑인 노예가 죽기 전 과거를 회상하는 노래라고 하여, 노예해방운동의 선구자 더글라스(Frederick Douglas)는 '영혼의 노래(heart song)'라고 칭찬할 정도였다는데...
그런데 아이러니도 이런 아이러니가...노랫말을 들어보면 'darkies'가 나오잖아? 그 단어는 미국의 백인사회에서 흑인을 경멸해서 개와 다름없다는 의미로 칭한다는 것인데 그런 옴악을 영혼의 노래라고 칭송했다니, 그것도 열렬한 노예해방운동가가...
2. Red river valley(홍하의 골짜기)- Suzy Bogguss
전형적인 카우보이 음악으로, 불려진 지역에 따라 노래 제목이 각기 다르게 붙여졌다는데...원래 노래 제목으로 붙여진 곳은 중부 캐나다 Manitoba에 있는 지명이라고 한다.
노래의 유래로는 그곳에 사는 어느 여인이 군인 신분이었던 연인이 부대이동에 따라 다른 곳으로 옮겨가게 되자, 그곳을 잊지 말고 다시 돌아오길 바라는 마음을 담고 있다고 한다.
3. Silver threads among the gold(은발)- Louise Morrissey
미국민요 중 이 노래만큼 오늘날까지 대중가요로 편곡되어 많이 불린 것도 없을 것 같은데...노인들에게 있어서 부부가 함께 늙어가는 게 유일한 희망이자 행복이라는 의미의 'Growing old together'를 전형적으로 표현하는 곡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오랜 세월에 걸쳐 끊임없이 애창되어 온 이 노래를 작곡한 댕크스(Hart P. Danks)는 어느 시인에게서 노랫말을 불과 3달러에 사서 곡을 붙였다고 하는데, 이걸 보면 세상사 돈이 다가 아니라는 진리를 가르쳐 주는 건진 모르겠지만... 아무렴 살다 보면 뭐 물건 제값 받고 팔아먹기가 어디 쉬운 일인가.
4. Beautiful dreamer(꿈길에서)- Mandy Barnett
카우보이 음악이라면 으레 기타, 만돌린, 바이올린, 하모니카 등을 이용한 경쾌한 리듬의 음악이라 하겠다. 하지만 그런 벌판에서 벌이는 약육강식의 사나이들의 세계와는 달리, 눈부시게 번쩍이는 응접실에서 아름답게 차려 입은 귀부인들이 모여 앉아 폼나게 음악을 감상하는 '응접실 노래(parlor song)' 또한 그들의 전통이었다 하니...
이 노래가 그런 응접실에서 감상하는 곡의 전형이라 할 것이다. 여기서 가사에 나오는 꿈 꾸는 자가 누구인가가 궁금한데...사람들은 노래 속의 꿈 꾸는 사람이 세속적인 인물이며 아마도 고인(故人)일 것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 하면서, 일찍 죽은 작곡자 포스터의 누이이거나 다시 재결합할 수 없는 별거 중인 아내(Jeanie)일 거라는 추측을 하기도 한다더만...
5. When you and I were young, Maggie(매기의 추억)- Tom Roush
우리에게는 '매기의 추억'보다 '옛날의 금잔디~'라는 노래의 첫 구절 가사가 더 친숙하고 제목처럼 들리는 민요가 아닐까 하는데, 나만의 착각인진 모르겠다만...
캐나다 출신의 존슨(George W. Johnson)이 미국의 어느 고등학교 교사로 부임하여 한 학생(Margaret Clark)과 덜컥 사랑에 빠져 결혼까지 했는데, 아뿔싸 여인이 그만 이른 나이로 세상을 뜨고 말았네. 존슨이 이 애절한 사연을 시로 쓴 걸 보고 버터필드(James A. Butterfield)가 곡을 붙인 게 이거라는구만글쎄.
6. Oh, my darling CLementine(클레멘타인)- Mitch Miller Chorale
이 민요의 작곡자 이름은 알려져 있지 않지만 노랫말에 나오는 주인공은 분명 광부 'forty-niner'와 그의 딸 '클레멘타인'이리라...아무리 얼굴 새카만 광부라지만 그래도 사람인데 숫자를 떠억하니 갖다 붙여서는 그걸 이름이라니 말이 되는 소린가 말이지. 역사를 알아야 진리가 보이는 법이라...
1848년 캘리포니아주에 금광이 발견되자, 이른바 골드 러시(gold rush)라 하여 대략 30만 명의 사내들이 서부로 우르르 몰려갔는데, 그 절정기가 1849년이었다네. 해서리 '49'란 숫자는 금광 찾아 몰려든 사람들을 지칭하는 말이었다는데, 현재 센프란시스코에 연고를 둔 미식축구팀 이름도 '센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즈'라니 역사가 고래 심줄맹키로 질기긴 질기구만그랴.
7. Old black Joe(오울드 블랙 조)- Roger Wagner Chorale
이 곡 역시 앞의 '꿈속에서'맹키로 실내 응접실 사교 모임에서 즐겨 연주되었던 '응접실 노래' 중 하나였다네. 포스터는 스토우(H.E.B. Stowe)부인의 소설 '엉클 톰스 캐빈'에서 감화를 받아 이 노래를 작곡했다는 말도 있던데 사실 여부는 모르겠지만...
제목에 나오는 'Joe'라는 이름은 가상의 인물이지만 포스터는 자신의 의부(義父)의 집에서 집안일을 하던 흑인을 생각해서 지은 거라던데, 요즘엔 워낙 인종차별 냄새만 나도 사람들이 기겁을 하니까 제목을 'Poor old Joe'로 바꿔 부르는 경우도 더러 있다더만...
8. Home on the range(언덕 위의 집)- Sons of the pioneers
우리들에겐 꽤나 느리고 물러터진 민요라고 여겨질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미국 서부쪽에선 무척 사랑받고 애창되고 있는 곡이라는데...해서리 아예 어느 주(Kansas)에선 1947년 주가(state anthem)로 지정했다고도 하더만, 믿거나 말거나...
다른 민요들과는 달리 유난히 긴 가사 곳곳에는 노루, 사슴 뛰노는 초원을 그리며 고향을 생각하는 마음이 절절하게 묘사되고 있다. 고향 떠난 사람이 으레 그렇듯 옛날 그곳에서 살 땐 하루 빨리 떠나고 싶어했던 곳이, 훗날 가슴 속엔 아득한 그리움으로 남아 향수를 부채질 하니...해마다 이맘 추석이나 설날을 맞으면 더욱 그리운 게 고향이자 부모님이다.
배경에 올린 그림들은 19세기와 20세기 초에 활동했던 화가들, 즉 프리드리히(Casper D. Friedrich), 하샘(Childe Hassam), 나이트(Daniel R. Knight), 그리고 레밍턴(Frederick Remington)의 작품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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