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과장인 김성수씨(34)는 사내에서 손꼽히는 얼짱이다. 깔끔한 얼굴, 세 련된 외모를 갖춰 사내 여직원들의 인기를 한몸에 받고 있다. 두 아이의 아빠 라고는 믿겨지지 않을 정도다. 그의 지론은 ‘나를 가꾸는 데는 돈을 아끼지 않는다’는 것이다.
“30~40대 직장인들이 변하고 있어요. 예전에는 밤늦게까지 동료들과 술을 마 신다고 돈을 평펑 다 날렸죠. 그래봤자 카드 빚만 늘고 집에서 바가지만 긁히 잖아요. 이젠 저를 더 멋지게 만들고, 내적으로 성숙시키는데 돈과 열정을 쏟 고 있습니다.”
3040세대 남성들의 소비문화 패턴이 달라지고 있다. 최근까지도 여심(女心)을 잡아야 한다는 마케팅이 주를 이뤘다. ‘남자 옷이나 화장품 등도 여자가 결정 했다. 외모에 관심을 쏟는 남자는 얼마 안 된다’는 게 업계가 단정지웠던 고 정관념이다. 이 때문에 30~40대 남성은 가정에 돈을 벌어다주는 역할을 맡으면 서도 제대로 된 소비계층으로 인정받지 못해왔다.
그러나 ‘소비=여성 고객의 전유물’이라는 공식이 깨지고 있다. 외모를 중시 하게 되면서 오히려 남성들이 프리미엄급 제품을 더 선호하는 실정이다. 롯데 백화점에 따르면 DM(직접우편)을 받는 남성 우수고객은 매년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남성 명품족이 더 씀씀이가 커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듯, 최근 국내 가전-화장품-패션업계에서는 ‘메트로섹슈 얼(Metro sexual)’들의 지갑을 노려야 한다’는 특명이 떨어졌다. 메트로섹슈 얼이란 도시에 살면서 여성 못지 않은 소비를 즐기는 새로운 남성상을 말한다. 한마디로 명품을 즐기며 외모에 관심이 많은 30~40대 남자들이다. 뉴욕타임즈 는 메트로섹슈얼을 2004년을 이끌 10대 신조어 가운데 하나로 꼽기도 했다.
자동차 영업사원인 김대근씨(33)는 최근 걱정을 하나 덜었다. 훤칠한 키에 딱 잡힌 몸매를 자랑했던 김씨지만 피부만큼은 그를 한없이 주눅들게 만들었다. 그는 최근 면도습관을 바꾼 뒤 한결 피부가 좋아졌다고 한다. “고객들을 대할 때도 더 자신감이 생겨 영업실적이 향상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다기능 프리미엄 제품에 지갑 연다■
오찬석 가톨릭대 피부과 의사도 “얼굴에 칼을 대는 것인 만큼 깔끔한 피부를 만들려면 면도기 선택과 면도방식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그는 “면도시 면 도기가 피부에 밀착되지 않으면 피부에 자극을 많이 줘 손상될 수 있다”며 “ 밀착력 높은 면도기를 사용하는 게 피부보호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질레트코리아는 이런 트렌드를 읽어내는데 성공했다. 질레트코리아가 선보인 브라운 전기면도기 ‘액티베이터(Acti vator)’는 기존 면도기와는 달리 다양 한 기능을 갖춘 고가 프리미엄 제품이다. 그래도 판매량은 급격히 늘고 있다. 자동세정과 충전기능을 갖춘 이 면도기는 4가지 다른 형태의 구멍이 5방향으로 배치된 비정형 면도망이 다양한 각도로 난 수염을 손쉽게 깍아줘 면도가 어려 운 부위까지 말끔하게 면도해준다. 자동충전장치는 기본. 세척과 열 건조를 자 동으로 할 수 있어 위생적이기도 한다.
이상철 브라운 마케팅팀 차장은 “면도성능이 좋아 바쁜 아침 출근준비시간을 줄일 수 있다”며 “자동세정 프로그램이 피부보호와 시간절약을 도와줘 바쁜 비즈니스맨이나 외모를 중시하는 남성들에게 적합한 제품”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웰빙에 대한 욕구와 경제력을 함께 갖춘 3040세대 남성을 핵심고객으로 삼았다”고 덧붙였다.
화장품도 남성전용 명품시장이 형성된 지 오래다. 가수 비를 비롯해 탤런트 장 동건, 축구선수 안정환 등 빅스타를 내세워 치열하게 시장선점경쟁을 벌이고 있다. 제품도 스킨로션-밀크로션 같은 기초 화장품에서 벗어나 미백-주름개선 등 기능성 제품으로 세분화했다. 심지어 일부 업체는 남성전용 색조화장품도 선보였다.
‘꽃을 든 남자’의 소망화장품은 남성용 미백기능성 제품 ‘에소르 화이트’ 를 선보였다. 코리아나화장품도 메트로섹슈얼을 대상으로 ‘엔시아 클리어 머 드팩’ 등 전용화장품을 선보였다.
남규혁 코리아나화장품 대리는 “삶의 질을 추구하는 ‘웰빙’ 열풍과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외모에 신경쓰는 남성이 늘어나 남성전용 화장품도 잘 팔린다”고 밝혔다. 장기불황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남성용 화장품 시장은 2 002년보다 10% 정도 늘어난 3500억원대 시장을 형성했다. 이런 분위기를 읽고 외국 화장품 브랜드인 클라란스도 지난해부터 국내에 남성용 화장품을 선보였 다.
피부관리를 위해 스파를 찾는 남성도 많다. 강남의 고급 스파업체인 스킨&스파 에는 남성용 프로그램이 20여개에 이른다. 메리어트호텔 마르퀴즈 더말스파 이 용고객 30%가 남성이다.
■평범한 스타일 의상도 거부■
올해 남성캐주얼 시장에도 ‘웰빙’바람이 불었다. 패션과 함께 기능성을 갖춘 의류가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제일모직 남성정장 브랜드 로가디스그린라벨에 서는 올 봄여름을 겨냥해 대나무 섬유를 이용한 스웨터와 니트를 출시했다. 이 제품은 천연의 대나무가 주는 시원함을 그대로 느끼게 해주는 아이템이다.
패션업계는 최근 몇 년동안 젊은 층보다 중장년층에서 의류 소비가 늘고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 때문에 가격이 조금 비싸더라도 기능을 앞세운 제품 들을 속속 선보이고 있다.
‘메트로섹슈얼’을 겨냥한 속옷도 눈에 띈다. 휠라인티모, 젠토프, 캘빈클라 인, 좋은사람들 등 대부분의 속옷업체들이 앞 다퉈 신제품을 선보이고 있다. 휠라인티모는 남자용 속옷 판매율이 20%에 이른다. 역시 가격은 높은 편이나, 판매율은 증가세다.
남자 향수도 불티나게 팔린다. 향수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0% 이상 늘 었다. 향수 매출 절반은 남성용 차지다. 여름이 다가오면서 향수수요는 점점 늘어날 전망.
신세계백화점 측은 “최근 3040 남성들도 자기관리 차원에서 향수를 이용한다 ”고 말했다. 특히 대도시의 고소득계층이 밀집된 지역일수록 소비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고 전했다.
3040 남성들의 고질적인 고민이었던 탈모에도 더욱 관심을 쏟고 있다. 관련시 장도 급격히 커지는 추세다.
회사원 도정한씨(30)는 최근 10만원대를 호가하는 헤어브러시를 구입했다. 그 의 고민은 점점 적어져만 가는 머리숱이었다. 이 제품은 머리를 빗어주는 건 물론 브로시 뒷면으로 가볍게 두드려주면 두피마사지 기능까지 수행한다.
“가격은 좀 비싸지만 대머리가 되는 것 보다는 낫지 않겠어요? 요즘 여자들은 외모에 신경쓰지 않는 남자들을 싫어해요.” 도씨는 “지출에서 30%는 무조건 외모와 건강관리에 투자한다”고 밝혔다.
탈모가 진행되고 있다는 40대 김제국씨도 “머리카락만 그대로 유지시켜준다면 뭐든 하겠다”며 솔직히 얘기했다. 그는 스벤슨 등 헤어관리 프로그램은 물론 고가 샴푸도 주저없이 구매하고 있다.
▷잠깐 상식
·메트로섹슈얼(Metrosexual) : 도시에 살면서 여성 못지 않은 소비를 즐기는 새로운 남성상. 초호화 옷가게와 사교클럽, 피트니스와 고급미용실이 몰려있는 도시에 거주하면서 그에 걸맞은 라이프 스타일을 갖췄고, 여유를 즐길 줄 알며 화장과 패션 등 외모에 관심이 많은 남자를 뜻한다. 94년 영국 문화비평가 마 크 심슨이 일간지 ‘인디펜던트’를 통해 처음 소개했다. ‘옵저버’와 ‘맥클 린’ 등을 통해 세계에 알려졌다.
·웰빙족(Well-being族) : 웰빙의 사전적의미는 ‘복지-안녕-행복’. 요즘엔 몸과 마음을 유기적으로 결합해 인생을 풍요롭고 아름답게 영위하고자 하는 새 로운 라이프 스타일이나 문화 코드로 해석된다. 웰빙족은 고기 대신 생선과 유 기농 식품을 먹고, 화학조미료와 탄산음료를 꺼린다. 값비싼 레스토랑 식사 대 신 가정에서 만든 슬로푸드를 선호한다. 동시에 요가-피트니스-필라티즈-단학 등을 통해 몸과 마음의 건강을 추구한다. 아로마 테라피-라이트 테라피 등 심 신을 안정시키는 자연요법에도 관심이 많다. 하지만 꼭 주머니 사정이 넉넉한 사람만 웰빙 라이프를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자기 나름의 방법으로 몸 과 마음의 건강을 유지하고, 그것을 통해 행복감을 느끼면 웰빙족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