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리고 떠나 얻은 마음의 평화
- 베이커리 북 카페‘피스 오브 마인드' 김종헌·이형숙 부부
<안내글>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 자리를 지키기에 정신없게 마련이다. 더구나 상승 가도를 달릴 때에는 그 일을 포기하지 못하고, 정상에 오른 뒤에도 조금이라도 더 그 위치를 유지하기 위해서 애쓴다. 아마도 이렇게 떠날 줄 모른 채 발버둥 치는 사람들이 안타까워, 이형기 시인은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라고 노래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사실, 그 적절한 ‘가야 할 때’가 언제인지는 모호하기만 하다. 그래서 자신의 노력으로 얻은 지위에 연연하지 않고 과감히 물러나는 사람을 보면, 참 강하다는 생각이 든다. 여기 30년 동안 몸담았던 회사의 억대 연봉 자리를 버리고 떠나, 빵 굽는 아내와 함께 북 카페를 만든 사람이 있다. 사직서에는 ‘일신상의 이유 때문’이 아니라 ‘북 카페를 차리기 위해서’라고 적었다는, 진정 내실 있는 사람 김종헌 씨와 아내 이형숙 씨를 만나 보자.
글_김정아 기자·사진_이석원 기자
25년의 꿈을 이루다
베이커리 북 카페 ‘피스 오브 마인드(Peace of Mind)’를 찾아 남춘천행 기차에 오른 날은 우연찮게도 ‘올겨울 들어 가장 춥다.’던 12월 말이었다. 그러나 매서운 칼바람에도, 고층 건물이 드물어 서울의 3배는 더 되어 보이는 춘천의 드넓은 하늘은 잠시나마 가슴이 트이는 듯한 상쾌함을 가져다주었다.
석사동 석사천변에 자리 잡은 북 카페를 찾기는 어렵지 않았다. 꽁꽁 언 구둣발을 녹일 요량으로 서둘러 입구에 들어서니, ‘득만권서 행만리로(得萬券書行萬里路)’라고 쓰인 단정한 예서체의 글씨가 눈에 띄었다. 현관은 곧 그 집의 얼굴이라는 말이 있듯, 입구에서부터 카페 내부의 분위기가 어느 정도 짐작되었다. 오렌지 빛 조명이 은은한 카페 안으로 들어서니, 강단진 체구의 김종헌 씨가 강한 눈빛으로 인사를 건넸다. 예순의 나이가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눈빛이 살아 있는 예사롭지 않은 분이었다.
카페 주인이자 북 마스터인 그는 ‘비비안’이라는 상표로 유명한 섬유 회사 (주)남영 L&F의 최고 경영자(CEO)였다. 일반 사원으로 시작해서 CEO의 자리까지 올랐으니, 일에 대한 그의 능력과 열정은 짐작하고도 남는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억대 연봉에 운전기사와 비서까지 두고 일을 하던 그는, 늦기 전에 25년 넘게 간직해 온 꿈인 북 카페를 차리기 위해 과감히 사표를 던졌다. 1980년 대 초반에 유럽 지사장으로 근무하면서 중세 시대 성주(城主)의 서재를 리모델링한 레스토랑과 카페를 보고, 기회가 되면 이런 공간을 직접 만들어 보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래서 유럽과 뉴욕 등지에서 근무할 때 주변의 북 카페를 수시로 드나들면서 필요한 것들을 꼼꼼히 챙겼다. 김종헌 사장의 이런 오랜 준비 덕분인지 ‘피스 오브 마인드’는 북 카페로서 손색이 없었다.
입구에 들어서며 슬쩍 보아 넘긴, ‘득만권서 행만리로’라는 글씨도 그저 가져다 걸어 놓은 것이 아니었다. 김종헌 씨가 글을 짓고, 한국 서예가 협회 회장인 송천(松泉) 정하건 선생이 쓰셨다고 한다. 우리 서예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서도 고민 중이라는 김종헌 씨는 이 작품처럼 가운데에 한문을 적고 이해를 돕기 위해 위아래에 우리말로 뜻을 풀이한 구성이 어떠냐며, 자신의 아이디어에 대한 감상을 물었다. 기자는 뜻풀이를 시키시는 줄 알고 바짝 긴장했다가, 그제야 몸을 풀고 작품을 찬찬히 살펴볼 수 있었다.
카페 안은 주인의 애정이 듬뿍 담긴 책이며 그림, 소품들로 가득했다. 중학교 때 원효(617~686)의 ‘대승기신론소기 회본’ 6권 2책을 구입한 것을 시작으로 오늘날까지 모아 온 목판본과 금속 활자본 고서 등 약 1만 권의 장서와 3,000여 장의 음반이 선을 보이고 있었다. 더불어 중국과 우리나라 근·현대 서예가들의 작품 100여 점도 아낌없이 전시되어 있다. 솔직히 작품들이 너무 많아 어디에 먼저 눈길을 주어야 할지 알 수가 없을 정도였다.
심지어는 손님용 테이블까지도 사설 박물관을 방불케 했다. 테이블을 특별 제작해서 유리판 아래에 공간을 만들고, 그 안에 크기가 작고 오래된 책, 안경, 도장 등 이제껏 모아 온 물건들을 가득가득 담아 놓았다. 김종헌 씨는 그야말로 열정적으로 카페의 이쪽저쪽을 누비시며 한 시간 가까이 전시된 책이며 서예 작품, 음반과 그림에 대한 설명을 해 주셨다.
기자가 연이은 감탄사를 내뱉다 못해, ‘도대체 이 많은 것들을 언제 다 모으셨냐.’고 묻자, ‘그저 버리지 않았을 뿐’이라는 겸손한 대답이 돌아왔다. 그러나 굳이 말하지 않아도 그 대답 이상의 숨은 안목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수집하는 데 그치지 않고 부지런히 그 의미를 찾아 공부해 온 열정적인 삶의 모습 또한 느낄 수가 있었다.
제가 ‘슈퍼 맘’으로 보여요?
카페를 가로지르며 설명하시는 김종헌 사장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한마디 한마디를 받아 적던 기자는 살짝 지쳐, 그저 듣고 보기로 마음먹었다. 이런 모양새를 눈치 채셨는지, 아내 이형숙 씨가 앉아서 이야기하자며 따뜻한 허브 차와 빵을 내왔다.
그녀는 카페를 방문하는 손님들을 위해 어머니의 마음으로 우리 풍토에 맞는 재료로 음식을 챙기고 있었다. 1980년대 초 독일 뒤셀도르프 지사장이 된 남편을 따라 독일에 머물 때 유명한 빵집인 ‘헤라클레스’에서 도제식(徒弟式, 직업에 필요한 지시·기능을 습득하기 위해 스승의 밑에서 직접 일을 하며 배우는 방식) 수업을 받으며 기술을 익힌 것이 계기가 되었단다. 그녀는 마흔네 살에 아들과 함께 수능을 준비해 대학 전통 조리과에 입학한 뒤 미국과 일본에 유학까지 다녀오며 동서양 요리와 제과·제빵을 두루 공부했다. 지금은 대학에 강의도 나가면서 카페 안에 마련해 놓은 ‘이형숙 빵+떡 연구소’에서 월요일마다 일반인들을 상대로 강좌를 열고 있다.
사실, 수출 역군으로 30년을 회사 일에만 매달려 온 남편을 내조하는 것만 해도 큰일이었다. 1년 동안 네 식구가 둘러 앉아 식사한 적이 30일이 채 되지 않았다고 하니, 집안 대소사는 온전히 아내의 몫이었던 셈이다. 가정생활에 있어서는 ‘남편 없이’ 사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지만, 자신의 세대가 책임질 희생과 봉사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이며 즐겁게 살았다고 했다. 집안일과 아이들의 교육을 홀로 챙기면서 자신의 관심사를 끊임없이 공부해 왔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한번은 아이들이 ‘엄마는 슈퍼 맘(super mom)이야.’라고 하더라고요. 아이들이 보기에 엄마는 항상 공부하고 살림하느라 바쁜데도 아프지도 않고, 화도 안 내니까 대단하다고 생각한 모양이에요. 하지만 사실 그렇지는 못해요. 다만 저는 남의 탓을 해 본 적이 없어요. 사람의 심리라는 것이 자기 책임은 피하게 마련이죠. 그렇지만 어떻게 늘 억울하다고, 내 탓이 아니라고 하면서 살겠어요. 아무도 내 삶을 대신 살아 주지는 않는 건데 말이죠. 자기 인생은 스스로 다독이면서 만들어 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가정도 자신의 삶도 놓치지 않고 살아온 데에는 긍정적이고 넉넉한 그녀의 성격이 큰 역할을 한 듯했다. 공부만 하는 것에도 쉽게 지치는 학생들이 많은데, 어떻게 가정 살림을 꾸리면서 늦은 나이에도 공부를 계속할 마음을 잃지 않았는지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나이 들어 공부하다 보니, ‘필요’해서 공부하게 되고, 목표가 확실하니까 공부하는 일이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더라고요. 사실 공부가 쉽지는 않죠. 하지만 짧은 시간 노력하면 그 대가로 오랫동안 많은 것을 누릴 수 있어요. 이 사실을 알게 되면, 그 시간을 잘 참고 즐길 수 있게 되죠.
가정을 챙기면서 자신의 생활도 놓지 않는 것 역시 쉬운 일은 아니죠. 그렇다고 해서 결혼하지 않고 혼자 자유롭게 살려는 태도는 옳지 않다고 생각해요. 저는 그런 사람들이 이기적이지 않나 싶어요. 자기 한 몸 편하면 그만이라는 생각은 잘못이에요. 세상에 태어나서 내 몫의 인생을 사는 것에는 남을 도우면 사는 것이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해요. 결혼을 하면, 여하간 내 가족은 부양하는 거잖아요? 그 안에서 얼마나 많은 걸 배우고 돕게 되는데요.”
김종헌·이형숙 부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대한민국에서 부모로 산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인지 새삼 생각해 볼 수 있었다. 국가 경제에 이바지하느라 밤낮없이 일했던 아버지들의 모습, 남편의 도움 없이 안정된 가정을 꾸리기 위해 자신의 삶을 희생해 온 어머니들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가 너무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오늘날의 혜택들은 어른들이 치른 큰 희생의 대가는 아닌지 숙연한 마음이 들었다.
무엇이든‘따로’는 아니다
김종헌 씨는 지난 2004년, 결혼 30주년 기념으로 아내와 함께 번갈아 쓴 글을 모아 카페 이름을 딴 ‘피스 오브 마인드’라는 제목의 책을 냈다. 그리고 이듬해에는 사회생활의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ꡔ남자 나이 마흔에는 결심을 해야 한다ꡕ라는 책도 썼다. 지금은 그동안 고서를 공부해 온 실력을 바탕으로 ꡔ추사 김정희를 넘어서ꡕ라는 책을 쓰고 있다. 연달아 책을 출판하는 것은 전문 작가로서도 쉽지 않은 일이다. 밤낮없이 회사 일에만 매달렸다는 분이 언제 그렇게 글 쓰는 연습을 하셨냐고 질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글 쓰는 것을 따로 연습하고 그런 것은 없어요. 요즘 학생들이 어려워한다는 논술 역시 우리 때는 따로 배운 적이 없고요. 그렇다고 해서 글쓰기 연습을 전혀 하지 않았다는 말을 아니죠. 초등학교 때 선생님이 일기나 위문 편지 쓰라고 하면 열심히 쓰고, 숙제 하라고 하면 또 열심히 숙제 하면서 자연스럽게 글쓰기를 배웠던 거죠. 대학 가서는 리포트 열심히 쓰고, 회사 다니면서는 열심히 보고서 쓰는 가운데 실력이 늘었던 거고요. 글 Tm는 방법을 따로 배운다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어요. 생활 속의 모든 일이 다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거 아니겠어요?”
김종헌 씨는 현재 아내와 협력하여 북 카페를 운영하게 된 것도 알고 보면, 학창 시절부터 준비된 일이라고 말했다. 그 당시에는 중·고등학교 입학시험이 어려웠던 만큼 대학 진학은 지금보다 부담이 적었단다. 그래서 오히려 지금의 학생들보다 더 다양한 동아리 활동을 하며 인문학적 소양을 키울 수 있었다.
“동아리 활동 같은 것도 제대로 못하면서 대학 입시에 쩔쩔매는 요즘 아이들을 보면 답답해요. 우리 때는 과외나 학원이 없는 대신, 농촌 계몽 운동을 비롯해서 문예반, 연극반, 영자 신문반 등 친구들과 관심사를 충분히 나눌 수 있었어요. 내가 중·고등학교 때 서예를 배우고, 불교 동아리에 가입해서 고서를 수집하고 해석해 보았던 체험들이 이어져 오늘날의 제가 있게 된 거고요.
요즘 토요일 오전마다 실무에 필요한 영어와 일어를 동시에 가르쳐 주는 무료 강의를 진행하고 있는데, 그것 역시 중·고등학교 때 탄탄하게 공부해 둔 덕분이에요. 그러니 학생 때는 ‘이게 다 뒷날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더욱 열심히 공부해야 해요. 그 배움의 자세는 삶의 자세와 다를 바 없거든요. 그리고 중요한 것이 또 있는데, 언제든 반복 학습을 해야 한다는 겁니다. 지식은 휘발성이 있어요. 날아가는 만큼 쌓고 또 쌓아야 하죠. 수없이 반복하면 물방울도 돌을 뚫을 수 있듯이 공부도 반드시 그 결실을 얻을 수 있습니다.”
평생 고서를 수집하며 공부해 오셨고, 사회 경험도 풍부하시니, 인생을 사는 지혜에 대해서 한 말씀 해 주십사 부탁을 드렸다.
“반 박자만 앞서 가세요. 학교 공부도 그렇고 삶도 마찬가지예요. 조금만 먼저 예습해 가면 공부를 끌고 나갈 수 있어요. 반 박자 늦으면 공부든 인생이든 끌려 다니게 마련이지요. 그리고 무엇보다 책을 많이 읽으세요. 제게는 린 위탕〔林語堂, 1895~1976, 중국의 소설가·문명 비평가〕의 수필집인 ꡔ생활의 발견ꡕ이 큰 의미가 되어 주었는데, 이것저것 자신에게 맞는 책을 찾아 읽으면 된다고 생각해요.”
김종헌 씨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사회적·정치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고 했다. 그런데 부귀영화를 누리는 사람들이 의외로 개인적으로는 마음의 평화와 가정의 화목을 잃어버린 채 살아가는 경우가 많단다. 가족끼리 재산 싸움을 하는 사람도 보았고, 돈 때문에 싫은 일을 억지로 하는 사람도 보았다. 그래서 마음의 평화는 돈과 명예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아내와 함께 자존심을 지키며 마음의 평화를 얻기 위해 북 카페를 차렸다.
자연과 더불어 이웃에게 마음의 양식과 몸의 건강식을 함께 나누며 사는 김종헌·이형숙 부부의 모습을 보면서, ‘여유’가 무엇인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자연을 느끼며 조금 더 느리게, 좋아하는 것을 즐기면서 사랑하는 사람과 인생을 마무리하는 것. ‘참된 여유’란 이런 것이 아닐까 싶다. 한창 공부에 지친 우리도 오늘만큼은 여유를 가져 보는 것이 어떨까. 책의 향기, 차의 향기에 취해 보고 하늘도 마음껏 우러러보자. 그리고 단 하루를 살더라도 마음의 평화를 잃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