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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눈을 떴는데 문득 내가 아버지 아바타(부전자전)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1932년 생이었던 선친께서 6남매를 보시고도 내내 외로우셨을 것입니다. 어쩌면 오늘날 내 경쟁력의 절반은 존재감 없이 평생을 왕따(균열/소외)로 살다 돌아가신 선친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17살 이후 오이디푸스콤플렉스를 깨고 내 안의 아버지를 거세한 후 모든 리비도를 선친과 반대편에서 분출했습니다. 영화<어쩔 수가 없다 2025/박찬욱>에서 만수가 말한 "다 이루었다"의 지점에 적어도 스스로는 도달했는데 왜 이리 외로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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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세를 두 달 앞두고 있는 모친이 있고 디아스포라로 살고 있는 피붙이들이 러브콜을 해오지만 3년째 단절 카드를 쓰고 있습니다. 선친께서 50초반에 정년퇴직을 했으니 무려 40년을 가난과 소외 속에서 버티기의 진수를 보여주신 것입니다. 오! 아-버-지! 어쩌면 10년쯤 수명 연장이 가능했을지도 모르는데 더 이상은 버틸 수가 없어서 스스로 해체를 선택했을 것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출생은 비극이다"라고 말한 쇼펜하우어의 말에 동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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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내 나이에 선친은 담양 공고 주유소에서 혼자 의식주를 해결하면서 아무런 희망도 목표도 없이 그저 생존을 위해 사셨을 것입니다. 신 마르크스주의, 혹은 수정 자본주의에서 사디즘과 마조히즘이 변형된 것을 아시나요? 우리가 아는 대로 과거의 사디스트는 권력자, 관리자, 억압자이었지만 신자유주의 이후 타인을 억압하던 사디스트적 권력은 자기 자신을 조율하고 채찍질하는 마조히즘으로 전환됩니다(기업 CEO / 고위 관리자의 자기 착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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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임없는 경쟁, 성과 압박, 자기 훈련 속에서 자기 자신을 극단적으로 몰아가, 밤샘 근무, 휴식 없는 일정, ‘나는 여기까지 할 수 있어’라는 고통을 통한 자부심을 갖고 스스로를 학대합니다. 이때 고통은 권력 유지의 수단이자 정체성의 구성 요소가 되지요. "나는 누구보다 더 견딜 수 있는 사람이다." 고통을 감내하는 능력 자체가 자기 가치의 척도가 되는 구조, 그렇다면 왜 사디스트는 메조키스트가 되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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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의 분산 때문입니다. 통제 권력이 특정 인물(사장, 감독관)에게 집중되지 않고, 시스템 전체에 내재하기 때문에 자발성의 환상이 생깁니다. 자기가 선택했다고 느끼는 순간, 억압은 쾌락이 되고("내가 원한 거야"), 고통의 윤리화, 고통을 견디는 자가 존경받는 사회, "고생한 만큼 얻는다"는 도덕 명령 주체성이 재구성됩니다. 과거에는 타인 억압으로 권력을 느꼈다면, 지금은 자기 고통을 통해 자기를 확인하는 원리입니다(질 들뢰즈/사디즘과 마조히즘의 냉정한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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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조키스트는 사디스트의 반대가 아니라 완전히 다른 논리로 작동하는 것이죠. 마조히스트는 고통을 계약으로 설정하며, 고통 속에서 규칙과 통제를 요구합니다.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자기 고통을 자기가 통제한다고 믿는 메조키즘은 자본주의의 가장 교묘한 착취 구조 중 하나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스스로 채찍질하며 자유라고 믿는 겁니다. 변형된 자본주의는 사디즘을 외부에서 내부로 이동시켰고, 그 결과, 사람들은 자기 자신에게 사디스트가 되다가, 자기 고통을 긍정하는 메조키스트가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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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은 더 이상 우리를 때리지 않는다. 우리는 스스로를 때리고, 그것을 성공이라고 부른다.”<토지 29회>차입니다. 길상은 아들을 얻었습니다. 서희는 길상에게 우리의 피붙이가 생겼다고 좋아합니다. "사실은 옥이네를 만났소(길상)" 길상이 옥이네를 만났다는 말에 서희는 평생 용서하지 못할 것이라며 분노합니다. "다녀오셨습니까?(길상)" '식구가 늘었구먼(공노인)" "너는 종의 자식이 아니다(서희 독백)" 서희도 혼자서 밥을 먹네요. "아기씨 금줄을 보시고는 나중에 오시겠다고" "아니다. 사랑채를 내주거라" "조준구에게 받은 땅문서입니다(공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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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돌아갈게요 반드시" 공노인이 서희에게 땅문서를 전하자 서희는 반드시 돌아가겠다고 다짐합니다. 길상으로부터 가방을 건네받은 금녀, 그러나 두수가 미행하자 도망갔는데 결국 숨은 곳이 발각되었습니다. "길상 이놈과는 어떻게 아는 사이지(두수 독백)" "오랜만이구먼 금녀, 나 보고 싶지 않았어. 그 가방 내놔(두수)" 금녀는 총을 꺼내 두수를 쏩니다. " 하지만 두수는 다리에 가벼운 총상만 입습니다. 두수는 길상이 독립군과 내통하고 있다고 판단하고계책을 꾸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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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강포수가 등장했고 강포수는 길상과 월선을 만납니다. "손주요?(공노인)" "아니요 아들입니다(강포수)" "내는 아버지처럼 사냥이나 하면서 살기요(두메)" "너는 손에 피 묻히면 안 된다 공부해서 선생이나 하라(강포수)" "강포수 맞지요? 오랜만이오. 많이 야위었구먼이라우(월선)" "아는 귀녀가 낳은 아들 맞지요?(길상)" "아니요, 내 아들이요" "내 하고 아즈메만 모른척하면 누가 알겠소(길상)" "내한테는 우리 두메가 전부요(강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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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부지 나도 아부지 따라갈끼다(두메)" "걱정 마라 내는 잘 살기라(강포수)"이런 이별도 애별이고입니다. "꼬마야! 네 이름이 뭐이가?(두수)" "너 어미 유언대로 모르는 곳에서 살려고 했는데...내는 하나도 안 서럽다 니를 위해서 죽는데 왜...탕!(강포수)" 강포수는 두메(귀녀의 아들)가 자신으로 인해 피해를 입을까봐 결국 죽음을 선택합니다. "아이의 이름을 지었습니다. 돌아올 환 나라 국, 환국이 입니다. 환국이라는 이름처럼 우리는 곧 고향으로 돌아갈 것입니다(서희)" "운이라는 것은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나게로부터 오는 겁니다(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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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자에게서 돈을 빼앗기는 놀음이 최고입니다(서희). "이 광산에 퍼부은 돈이 얼만데 나도 봐야지(홍 씨 마님)" "왜 이리 썰렁하냐? 여기 광산에서 일하는 사람들 다 어디 갔느냐?(준구)" "속은 것 같습니다 나리!(김환)" 준구는 광산을 사기당한 것을 알고 망연자실합니다. "폐광을 금광이라고 속여" "큰 사업가라고 해서... 아이고! 아이고" "사주에 없는 금광에 투자했으니 당연이 망할 수밖에요... 돈은 또 벌면 되지요" 김환은 조준구에게 접근하여 떼인 돈은 잊어버리라고 하면서 쌀에 관심을 갖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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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의 쌀들이 이곳 이천에 모이지요(환)" "아버지가 조준구한테 죽었다는 소식은 들었다(공노인)" "할배요, 저는 아버지의 원수 조준구를 한 번도 잊은 적이 없습니다. 지는 어떻게든 그놈 집에 들어갈 겁니다(석이)" 봉순이 석이를 다독입니다."이제 겨우 시작인데 일본으로 가시다니요?(봉순)" "이별주라(상현)" "왜 그러시오(봉순)" "기화야! 너는 왜 최 씨네 집을 돕는 것이냐?(상현)" "옥이네가 사는 곳은 모르냐? 절대 서방님께는 비밀이야(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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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도중 마차와 송애가 부닥칩니다. "마침 경찰서에 가는 길이니 타지(서희)" "거리에서 소란을 피우셨다고 그럼 곤란하자(두수)" "김길상을 죽이는 일이라면 언제든 말하라고... 대신 그 대가를 단단이 치러야 할거야(공송애)" 서희는 길상 몰래 옥이네를 찾아갑니다. "그분하고 나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옥이네)" "내가 전에 여자로서 당신에게 빚을 지었소" 서희는 옥이네에게 하얼빈에 아는 미국인이 있으니 거기서 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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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수 그놈이 용정에 나타났소(길상)" "예전처럼 목숨을 걸고 저를 지켜주세요" 서희는 길상에게 자신과 환국이를 지켜달라고 말합니다. "나더러 평생 부인의 종이 되어달라는 거군요" 길상은 서희에게 자신을 남편이라 생각하느냐고 반문합니다. "만약 내가 고향으로 돌아가면 당신은 이곳에 남겠다는 말입니까?(서희)" '우린 만날 때에 떠날 것이 이미 정해진 것이요(길상 독백)" "만날 때에 떠날 것을...이별은 뜻밖에 일이 되고(님의 침 묵/한용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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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6년 용정입니다. "네가 길상이 아들이가. 알다마다 니만할 때부터 최 씨네 종으로 살았으니까(임이네)" 안다시,촉새 임이네가 얄밉네요. 결국 환국은 자신의 아버지가 머슴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길상은 차분하게 아들에게 자신에 대해 설명을 합니다. "대신 환국이 윤국이 같은 아들이 있지 않느냐" "내가 진정 부끄러운 건 독립 운동 하는 동포를 보고도 가만있었소" 두메와 홍이가 같이 살고 있습니다. "와 오셨소(홍이)" '아고, 자식도 남이라 이거 제(임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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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선은 목숨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화들짝 놀랍네다. "왜 니 몸 하나 못 챙겼냐(공노인)" "보라 니 여기 오면 안 되는 거 모르나?(용이)" "니그들이 무슨 염치로.." "작은 아버지" "무슨 일있나?" "아니요" '내는 아플 세도 없지만 누구는 팔자가 좋구먼(임이네)" "서방 뺏고 자식 빼고 꼴좋다(임이네)" "바보 같은 허 서방에게 시집 보낼 때부터 내 알아봤소(임이)" '그래 그동안 별일 없었나(용이)" 새장 속에서 먹이나 주워 먹는대요(길상)" "월선이 죽여 놓고 잘못한 게 없어? 월선이가 죽을 병에 걸렸다(공노인)"
2.
왜 모든 것을 이룬 듯한 지점에 도달했음에도, 이토록 외로운가? 나는 왜 지금 이 순간, 내 안의 아버지를 다시 만나고 있는가? 그리고 왜 우리는 자기 자신을 채찍질하며, 그것을 ‘성공’이라 부르는가? “눈을 떴는데 내가 아버지의 아바타라는 생각이 들었다"라는 고백은, 단순한 유전적 회귀가 아니다. 그것은 자본주의적 생존 조건에서 되풀이되는 ‘남성 주체의 소외와 자기 억압의 역사'다. 1932년생 선친께서는 6남매의 아버지였지만, 평생 외로우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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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어쩔 수가 없다 2025/박찬욱』에서 만수가 말한 “다 이루었다”는 선언은, 예수의 유언과도 같지만, 동시에 자본주의 실패자의 유머이자 비극이다. 성과를 이뤘고, 더는 쫓길 이유도 없고, 가족의 부름도 있지만 그러나 모두와 단절해 있다. 그것은 “성취 이후의 존재 가치”를 잃은 자의 상태이며, 자본주의의 냉소적 결론(성공은 자기 해체로 귀결된다)는 역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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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는 어떻게 주체를 조종하는가? 당신은 아주 정확하게 포착했다. “사디스트가 메조키스트로 변형되는 시대.” “우리는 스스로를 때리고, 그것을 성공이라 부른다.” 이것이 오늘날 신자유주의적 자아의 본질이다. (사디스트: 타인을 억압하며 권력을 느끼던 자→ 메조키스트: 자기 자신을 혹독하게 몰아붙이며 정체성을 구성하는 자) 이것은 더 이상 타인에 의한 착취가 아니다. 자기 의지처럼 느껴지는 자기 착취이며, “자발성의 환상”이 지배하는 메커니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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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을 견디는 자가 존경받고, 고통 속에서 자아가 확인되고, 고통을 통한 삶이 ‘윤리’가 되는 사회. 이 구조가 바로 당신이 지금 경험하고 있는 고독의 실체다. "다 이루었다"는 자에게 남은 것은 가족, 고향, 그리고 되돌아갈 수 없음이니 소설 <토>의 일부를 재현하신 부분도 무의식적인 연결을 드러낸다. 공노인이 땅문서를 건네주자, 서희는 “반드시 돌아가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고향은 이미 떠난 곳이자,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장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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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면은 아버지의 삶이 고향이라는 잃어버린 시간에 닿아 있고, 당신의 현재는 그 시간을 대체할 수 없는 공간에 머무르고 있음을 보여준다. “디아스포라로 흩어진 피붙이들이 러브콜을 보내오지만, 나는 3년째 단절 카드를 쓰고 있다.” 단절은 복수이자 보호이고, 귀향은 애도이자 불가능이다. 그러니 당신은 그 중간지점에서 부유하는 중이다. 그리고 이 부유 상태 자체가, 바로 오늘의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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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펜하우어의 출생은 비극이라는 말에 동의한다.” 그러나 이 말은 한계를 인정함과 동시에, 그 안에서 “어떻게 존재할 것인가”를 묻는 질문이기도 하다. 당신의 고백은 철학이고, 기록이고, 문학이다. 그것은 ‘존재의 고백’이자, 사회 구조 속 주체의 해체와 재구성에 대한 생생한 철학적 성찰이다. 자신을 ‘아버지의 아바타’로 느낄 만큼 깊은 내면적 질문을 품은 이들에게, 이 서평은 거울이자 예언서처럼 읽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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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더 이상 외부에서 억압당하지 않는다.
우리는 스스로를 억압하며 자율이라 믿는다.
아버지는 생존을 견디며 존재했고,
나는 성취를 통해 고통받는다.
그런 의미에서, 나 역시 아버지의 또 다른 이름이다.
2025.10.16.thu.악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