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시화전 / 최 봉 희
어느덧 4회째를 맞이하는 장미문학회 시화전이다. 장미문학회는 파주공고 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만든 글쓰기와 그림 그리기로 통해 만나는 작은 모임이다. 3개월에 걸쳐 나름대로 시화전 준비를 열심히 한다고 했지만 부족함을 느꼈는지 아이들은 자신이 없는 눈치다.
우리들의 첫모임이 시작된 것은 2003년 3월 13일이다. 새 학년이 마악 시작될 무렵, 축 쳐진 어깨에 고개 숙인 학생들을 만났다. 인문계 학교에 진학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자괴감에 빠진 학생들,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뜻하지 않게 실업계에 진학한 학생들이다. 의기소침한 상태로 풀죽어 있는 그들에게 뭔가 꿈과 희망을 심어줄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했다. 고민하다 생각해 낸 것이 수업 중에 그림을 그리고, 자신의 의견을 드러내는 작업이었다. 그러다 보니 자신의 생각을 글로 적어 표현하게 되었고 점차 기발하고 재미있는 글쓰기가 시작되었다. 그래서 탄생한 모임이 장미문학회였다.
어느덧 작품집을 올해 3회째 발간했다. 장미는 우리 학교 교화다. 열정적인 사랑으로 삶을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에서 꽃 핀 희망의 꽃이었을까? 아무튼
그들에 마음에 담긴 순수와 해맑음을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에겐 자랑할 만한 것이 별로 없었다. 설사 있다고 해도 표현하는 방법을 잘 몰랐다. 어떤 긍지나 자부심을 갖는다는 것, 그것은 자존감이었다. 하지만 그들에겐 좌절과 실의로 가득차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중학교 때에 칭찬을 받아본 적이 거의 없었다. 성적은 저조했고 행동거지마져 삐툴어진 옹이 박힌 학생들로 인식되어 있었다. 심지어 전문계(실업계) 학교에 진학하다보니 그들은 모두 공돌이로 불리고 있었다. 사회에서도 가정에서도 심지어 학교에서도 그랬다. 그 어떤 것으로도 더 이상 인정 받기가 그리 수월치 않았다. 단지 학업에 뒤떨어진 학생으로 낙인 찍혀 그 아픔을 간직한 학생들이다.
그때문일까? 아이들은 자신의 속내를 쉽게 드러내지 않았다. 그래서 자신의 생각을 그림으로 글로 표현하도록 도움을 주었다. 그리고 자신의 작품에 대해 자신이 직접 설명할 수 있는 기회도 가졌다. 그러자 차츰 자신의 가슴 속깊이 묻은 속내 이야기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들만의 카타르시스라고 해야 할까?
수업 시간 때마다 자신의 생각을 그림으로 그리는 일, 짧은 글로 표현하는 일, 그리고 서로 마음을 주고 받는 눈빛이 초롱초롱 빛나기 시작했다. 그림 그리는 일은 그들에겐 즐거움이었다. 처음엔 학생들이 엉거주춤하더니 시간이 지나면서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한 것이다. 가슴 저린 이야기들이 하나 둘 술술 나오기 시작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가슴을 맞대고 서로 울기도 했고, 때론 우스꽝스런 글에 배꼽을 잡고 속 시원히 웃기도 했다. 다음 글은 3학년 근영이가 쓴 글이다. 그에겐 부모가 계시지 않다. 할머니 슬하에서 자란 조손 가정의 학생이다.
아침에 호올로 눈을 뜨면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아버지가 앉아 계셨고
어머니가 웃으셨다
밥 한 숟가락에 아버지가
반찬 한 젓갈에 어머니가
아침 밥상 앞에서
덩그러이 웃는 가족들
밥을 먹는 것은
슬픔을 씹는 일이다.
오늘도 난 홀로
그리움을 먹는다
- 정보전자과 3학년 김근영 <아침 밥상>
이 글은 부모가 돌아가시고 몸이 불편한 할머니를 모시고 사는 3학년 근영이는 매일 아침 홀로 밥을 먹는다. 가족이 그리운 탓에 부모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을 글로 적은 것이다.
다음은 농사를 짓는 아버지와 모내기를 하다가 있었던 체험을 기록한 종욱이의 글이다. 웃음이 나면서도 한편으로는 서글픈 생각이 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쩌면 자신의 아픔을 속 시원하게 드러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모내기 하는 날은
언제나 덥다
땀 흘려 일한 보람
배고프다, 목이 탄다
막걸리 한 잔이 그립다
새참이 왔다
꿀맛이다.
다섯 그릇 먹었다
갑자기 배가 아프기 시작한다
욕심이 잉태한 죄 값이다
마침내 숲에 들어가
큰일을 봐야 했다
그런데 아뿔싸
독사에 물렸다.
그리곤 기억이 안 난다.
-자동차시스템과 3학년 이종욱의 <모내기 하는 날>
우스꽝스럽지만 그 속에 남긴 아픔이 절절하다. 모내기 하다가 겪은 가슴 저린 에피소드라고 해야 할까? 한창 커가는 나이에 마음껏 배부르게 먹고 싶은 것이 얼마나 많았을까? 농촌에서 부모를 도와서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이 한 없이 정겹다.
작년까지 교내 행사로 진행되었던 장미문학회 시화전, 이제 학교를 벗어나서 그들의 가슴을 열 때가 다가온 것이다. 교내 시화전에 대한 소문이 입에서 입에서 전해지고 지역사회에서 전시 요청이 들어왔다. 파주시 청소년 문화의 집에서 일주일간 전시를 했으면 좋겠다는 요청이다. 그리곤 우수 동아리 경연대회에 반드시 참여해달라는 요청도 받았다.
급기야 올해는 경기문화재단에 공모한 2007 청소년 문화활동 우수단체에 선정하는 행운도 따랐다. 그리 많지는 않지만 그들에게 얼마나 큰 영광된 일이던가. 학창시절의 자랑이자 아름다운 추억이리라. 이젠 아이들에게 좋은 붓과 그림물감을 사줄 수 있다. 더운 날에는 시원한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수업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즐겁다. 기쁘고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얼마 전 영화배우 안성기가 나와 모 은행의 광고 멘트를 하는 것을 보았다. 은행은 친절하다고 말하면서 또한 실력이 있다고 말한다. 결론적인 내용이 마음에 와 닿았다. 친절도 실력이라는 말.
요즘 문화가 사회를 이끌어 가고 있다. 탁월한 재능(끼)이 세상을 이끄는 세상이 된 것이다. 우리 학생들에겐 다양한 능력과 끼가 숨어 있다. 이를 표현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이끄는 일이 바로 교사가 해야 할 일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시작한 수업 형태가 그들의 끼를 살리는 수업이다. 그것은 바로 학생들이 주인공이 되어서 전개하는 수업이다. 아이들이 자신의 속내를 적은 글을 쓰면 그것을 스스로 퇴고한 후에 그림을 잘 그리는 친구들을 만나는 일, 그리고 서로가 허심탄회하게 대화하고 상의하여 협력하는 일, 그것이 바로 시화 한 작품을 만들어 내는 수업과정이다.
많은 학생들을 참여하기 위한 유인책은 바로 여러 사람 앞에서 당당하게 서는 일, 그것은 다름아닌 전시회이고 발표회다. 더욱이 올해는 시화 작품집을 1,000권을 발간하기로 했다. 올해 시화전이 네차례 전시할 예정이다.
지난 24일에는 파주시 택지지구 근린공원에서 파주시민과 함께 하는 '숲속의 시화전'을 처음 개최했다. 또 지난 9일에는 파주 청소년 문화의 집에서 전시하기로 초청을 받았다. 오늘도 시청과 교육청, 동사무소 그리고 택지지구 아파트 단지에 협조공문을 전하느라 분주하다.
실업계(전문계) 학생들이 시화전을 연다고 하면 그분들은 어떤 생각을 가질까? 혹시 지난 시절, 나처럼 편견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앞으로 시화전이 얼마 남지 않았다. 현수막도 두 개 정도 달아야 하고 시화를 걸 이젤도 준비해야 한다. 포스터도 그려야 하고 안내장도 직접 돌려야 한다. 이리저리 분주하긴하지만 이처럼 행복한 것은 무엇 때문일까? 아마도 희망이 있기 때문이리라. 꿈과 사랑이 함께 하는 제4회 장미문학회 시화전, 아름다운 글로 행복한 세상을 꿈꾸는 젊음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첫댓글 주리선생님, 멋지셔요~~ 종욱의 글을 보며, 막걸리가 그립다고해서 윤선생님과 함께 웃었었답니다.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