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다양한 이유로 영화관에 간다. 울고 싶어서, 좋아하는 사람과 아무말없이 손을 잡고 싶어서, 편애하는 배우의 클로즈업을 음미하기 위해서, 때로는 죄책감 없이 시간을 죽이려고 극장에 간다. 그런데 우연히도 지금 2013년 3월 셋째 주 개봉작을 뒤적이고 있는 당신의 목표가 예전에 본 적 없는 새로운 영화와 만나는 것이라면, 당신을 위한 영화는 오멸 감독의 <지슬>이다. 소재만 보고 “극장에서까지 정치적 고발을 보고 싶진 않아서” <지슬>을 제쳐 둔다면 후회할 지도 모른다.
<지슬>은 제주 4.3 사건 당시 죽고 죽인 주민들과 군인들의 이야기다. 1948년 11월 미군정 하 남한 정부는 제주 해안선 5km 바깥의 모든 주민을 폭도로 간주하고 사살하라는 소개령(疏開令)을 내렸다. 이미 일제강점기와 징용을 경험한 주민들은, 이 사태는 또 무슨 변괴인지 얼마나 오래 갈지 모른 채 피신처를 찾거나 위험을 무릅쓰고 집을 지켰다. 영화의 끝 자막은 무차별 토벌을 피해 동굴에 숨어살다 끝내 정방폭포에서 사살된 주민 120명의 이야기가 <지슬>의 내용과 근접한 실화라고 들려준다. 내가 정방폭포를 처음 본 건, 부모님의 신혼여행 사진에서였다. 관광지와 무덤 사이. 참으로 컴컴하고 아득한 간극이다. 우선 오멸 감독의 영화는 중심과 변방을 나누는 시점을 전환한다. 그는 <지슬>까지 오직 제주를 배경으로, 제주 사람들의 몸과 말을 통해 제주 땅과 물에 깃든 이야기들을 영화(장편 4편)로 만들어 왔으며 앞으로도 그럴 계획이다. 표준말 자막이 딸린 오멸의 영화에서, 제주어는 사투리가 아니다. 감독은 해외 관객에게 내놓는 제목도 감자의 제주말인 ‘지슬’(Jiseul)로 표기하길 고집했다. 우연찮게 배급 방식도 맥을 같이했다. 보통 영화는 서울부터 상영을 시작하는데 <지슬>은 3월1일 제주에서 개봉해 1만 5천 관객을 동원한 다음 21일 전국으로 상영관을 확장했다.
다른 풍토에서 다른 식물이 자라는 것과 같은 이치일까? 형식적으로도 <지슬>은 낯선 영화다. 구름의 바다를 건너 연기 자욱한 초가집 안으로 카메라가 미끄러져 들어가는 <지슬>의 첫 장면부터 우리는 다른 계(界)로 진입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저기 장롱에 걸쳐진 시신은 실재일까 상징일까? 저 말수적은 군인은 혹시 인간 틈에 잠입한 신이 아닐까? 안쪽을 가늠할 수 없는 동굴과 움푹한 구덩이 같은 독특한 지형에 인물을 몰아넣고 찍은 장면들은, 우리가 익히 아는 세련된 구도와는 다른 아름다움으로 마음을 찌른다. 죽음을 지척에 두고 어둠 속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주민들의 모습은 반 고흐가 그린 감자 먹는 농부들처럼 소박한가하면 최후의 만찬에 모인 사도들처럼 성스럽다. 이 아름다움은 영화 속 사람들의 정서와 직결된다. <지슬>의 사람들은 화면 구도가 보여주는 대로, 더 내려갈 데 없는 낮은 곳에 억눌려 있지만 너그럽고 여유롭다. 유치한 꼬투리로 말다툼을 하다가도, 일제 강점기 시절 이웃에 입힌 깊은 상처를 사죄하고 대뜸 용서해 버리는 ‘두서없는’ 대화의 설득력을 뭐라 표현해야 좋을지 난감하다. 동굴의 모닥불이 타들어가는 시간이 장면의 길이를 결정하고, 극한 상황에서도 바람을 쐬러 동굴 밖으로 나오는 느닷없는 호흡이 어째서 그토록 자연스러운지도.
비극을 다루고 있지만 오멸 감독은 단칼에 희로애락을 나누는 법이 없다. 이런 장면이 있다. 동굴에 피신한 주민 중 두 남자가 정찰을 나갔다가 한 남자만 이웃의 죽음을 목격한다. 차마 본 바를 말하지 못하는 남자는 슬픔에 겨워 달리기 시작하는데, 나머지 한 남자는 엉뚱하게도 뜀박질을 겨루는 줄 알고 이를 악물고 추월한다. 카메라가 뒤로 빠지면 두 사내가 달리는 능선에 밤이 내리고 언덕 풍경 위에 서러운 시신의 이미지가 겹쳐진다. <지슬>의 독창적 면모 뒤에는 영화에 접근하는 오멸 감독의 남다른 태도가 도사리고 있다. 예컨대 그는 “개봉을 못한다고 영화감독이 아닌 것이 아니고 개봉 안 한 영화라 해서 영화가 아닌 건 아니잖아요?”라고 반문하는 감독이다. 실제로 오멸은 전작 <이어도>를 “4.3 당시 제주에 카메라를 든 영화감독이 있었다면”이라고 가정해서 만들었고 영화가 완성된 후에는 개봉을 시도하지 않았다. 그 감독에게 영화를 빌렸다가 돌려주었을 뿐이라는 생각에서였다.
<화려한 휴가>도 <26년>도 무도한 역사의 광풍에 희생된 이름들을 기리고자 출발했지만, 예술적 위령제로서 성공한 영화는 <지슬> 뿐인 듯하다. 어떤 의미에서 <지슬>은 내가 본 가장 무섭고 슬픈 ‘유령 영화’다. 다만 이 영화 속 ‘혼백’은 우리를 위협하는 미지의 존재가 아니라 만질 수 없어 더욱 애틋한 상대다. 세상에는 간혹 여기도 저기도 속하지 않는 자기만의 차원을 만드는 영화가 있는데, <지슬>도 그렇다. 감히 생시에 ‘계’(界)를 넘나든 대가로 <지슬>을 본 관객은 잠을 이룰 수 없을 지도 모른다. 그 불면을 메우기 위해 오멸 감독에게 대화를 청했다.
<지슬>의 오멸 감독. <지슬>은 <어이그, 저 귓것><뽕똘><이어도>에 이은 네 번째 장편영화다. |
Q.성함이 본명인가요?
A.본명은 오경헌입니다. 오멸은 작품할 때 필명처럼 쓰는 이름이고 다섯 오에 멸할 멸자를 씁니다. 개인적인 의미가 있는데, 공연한 의의를 부여하는 게 싫어서 자세히 밝히고 싶진 않습니다.
Q.충무로에서는 시대극을 만든다고 하면 의상이나 세트로 인해 기본적으로 큰 예산이 드는 기획이라고 여깁니다. 아무렇지 않게 시대극 제작을 감행할 있게 한 요인은 역시 제주도의 자연일까요?
A.글쎄요. 저는 충무로를 몰라서 예산에 관해 개념이 없어요. 의상은 제주에서 활동하는 문화패들에게 빌렸고요. 전문 기술 스탭들의 보수와 장비 비용이 최대 부담이었고, 나머지는 대책이 없었습니다. 되면 되는 대로, 안 되면 안 되는 대로 하려고 했습니다. 제주도의 자연이라고 해도 요즘은 올레꾼들 안 가는 곳이 없잖아요? 현대적 풍경들을 잘 피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집요하게 헌팅을 다니진 않았어요. 주요 공간인 큰넓궤 동굴은 영화 찍기 전 한번 들렀던 장소였는데 이미지가 남아있어서 택했어요. 그림을 하던 시절에도(오멸 감독은 한국화를 전공했다) 사진을 찍어와 계속 보면서 작업하는 편이 아니었어요. 저절로 잊혀지지 않은 한 이미지를 쫓아가는 식이었죠.
<지슬>의 동굴 촬영현장 |
Q.영화 속 4개의 장 소제목이 제사 절차를 따라 ‘신위(神位)’,‘신묘(神廟)’, ‘음복(飮福)’ ‘소지(燒紙)’라고 붙여져 있습니다. 처음부터 위령의 의미를 담아 영화를 만드신 건가요? 연출부가 구해온 그릇이 우연히도 제기였고, 인명이 희생되는 장면을 찍을 때 예의를 갖추려고 준비한 막걸리와 지방(紙榜)이 자연히 영화 속으로 들어가 제사의 틀을 갖췄다는 이야기도 들었거든요.
A.앞 작품인 <이어도>의 마지막 장면을 찍는 날 제작진끼리 제를 지냈어요. 그 태도가 남아 이번에는 구체적으로 영화를 통해 제사를 지내고 싶다는 뜻이 기본적으로 있었지요. 하지만 아예 ‘제사 영화’를 찍으리라 목표한 건 아니어서, 4개의 소제목들은 편집 단계에서 넣었습니다.
Q.<지슬>을 보면서 아름답다는 감탄과 무섭다는 감정이 우열을 가릴 수 없었습니다. 유령영화를 본 느낌이랄까요. 겁에 질려 몸에는 힘이 들어가는데 눈은 이미지에 계속 홀리는 식이었죠.
A.유령 영화요? (웃음) 조금은 동감해요. 촬영하면서 주민 역을 맡은 배우들에게 4.3에서 돌아가신 분들이 후손의 몸으로 돌아온 것으로 여긴다는 말씀을 드렸어요. 어찌 보면 이미 한번 죽은 분들이니 삶과 죽음에 보다 의연할 테고 굳이 슬플 필요가 없다고요.
Q.‘유령 영화’같다는 인상을 받은 데에는 급박한 상황에에서도 비교적 평온한 주민들의 모습도 작용한 것 같습니다. 그것이 육지 사람으로서 제가 모르는 제주만의 고유한 정서인지, 아니면 감독님이 설정한 영화의 톤인지 궁금했습니다.
A.물론 실제로는 그렇게 담담할 수 없었죠. 그러나 영화에서 그 고통을 똑같이 재연하기 싫었습니다. 영화를 만드는 사람은 극중 세계를 실제만큼 믿고 앵글 안의 사람들을 인물로 믿어야 하는데 그 존재들이 동일한 공포감을 다시 체험하게 하는 일은 잔인하다고 생각했습니다.
Q.그 중에서도 토벌대원 정길의 존재가 두드러집니다. 가끔 다른 군인의 눈에는 이 인물이 보이지 않는 게 아닐까 싶은 장면마저 있었습니다. 유독 여성 배우가 연기했다는 점도 그렇고요. 혹시 감독의 분신인가요?
A.영화를 찍는 동안에는 출연진과 스탭 중 누구도 정길이 어떤 역할인지 몰랐습니다. 연기한 배우 본인도요.(웃음) 정길을 통해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시선을 갖고 싶었습니다. 저는 신에 대해서도 보통 생각하는 높이보다 인간에 가까운 위치로 생각하는 편인데요. 정길을 통해 인간의 비극에 관여하지 못하는 신의 갈등을 보여주고 싶기도 했습니다. 인간을 마음대로 조정하는 존재가 아닌 또 다른 나약한 존재로서. 제주의 신들은 원래 해학이 많고 인간과 수직적이라기보다 수평적인 관계라는 느낌이죠.
Q.<지슬>에 나오는 토벌대의 잔혹 행위들은 수집된 일화에서 비롯됐나요? 변소에 숨은 주민을 사살하도록 지극히 무감동하게 지시하는 장면이라든가.
A.4.3 당시 ‘통시’(변소를 가리키는 제주어) 안에 몸을 숨겼다는 이야기를 무척 많이 들었습니다. 영화에서 노모가 끌어안고 있던 감자의 일화도, 불태워진 가옥에 남은 감자를 가져와 울며 먹었다는 이야기를 읽고 쓴 것입니다.
Q.토벌대를 이끄는 김상사는 <지옥의 묵시록>의 커츠 대령(말론 브랜도)처럼, 나쁜 사람이라기보다 미친 사람에 가까워 보이는데요.
A.죽은 자와 죽인 자는 있는데 왜 죽였는지는 설명해주는 사람이 없는 것이 현실이죠. 김 상사가 약에 취해 있는 모습이 보이는데 그것은 일제의 잔재입니다. 그는 일제 강점기에 있었던 전쟁을 경험한 남자로서 전장에서 남은 아편에 중독됐고 4.3이 있기 전부터 살인에 취해있는 인물이라고 가정했습니다.
Q.<지슬>은 주민들을 보여주는 축과 토벌 군인들을 보여주는 축으로 나뉩니다. 군인들을 찍은 장면에 비해 주민들의 장면은 컷의 수가 적고 가까이서 찍은 쇼트도 드물고 다같이 한 화면에 담은 경우가 많았습니다. 대화 장면도 마찬가지라서 누가 누구에게 말하고 있는지 관객에게 전달하는 데에 연연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어요.
A.주민은 여럿이나 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반면 군인들은 조직이라 한 사람처럼 일사불란하게 보여야 하지만 많은 자아가 모여 있는 것처럼 그리고 싶었고요. 동굴 속의 주민들을 보여줄 때에는 각자의 한숨이 한데 섞이고 몇 날 몇 일이 흘렀는지도 모르게 표현하려고 했습니다.
Q.한 사람처럼 그렸다는 말씀에서 <웰컴 투 동막골>을 보고 제기됐던 불만이 갑자기 생각나는데요. 주민들을 너무 순박하게 그리는 데에 따르는 위험, 이를테면 세상사람 같지 않게 보일 가능성은 걱정하지 않으셨나요?
A.어느 정도는 제주도 사람들의 실제 성격이 들어있습니다. 제주 사람들이 얼마나 신과 가까이 사냐면 ‘신 구간’이라고 해서 1월말 2월초에 이사가 몰려요. 신들이 쉬는 시간이라 이사가 허락된다는 거죠. 영등 할망이 바다에서 먹을 것을 먹기를 기다려 어업을 잠시 쉬는 ‘영등철’도 있습니다.
Q.토벌군이 직접 마을 사람의 집에 들이닥쳐 짓밟는 한 장면을 한 번의 롱 테이크로 찍었습니다. 핸드 헬드로 고속촬영(슬로우 모션)한데다가 음악도 비장한 관현악을 쓰셨습니다. 혹시 감정을 강요하는 게 아닐까 경계심이 들진 않으셨습니까?
A.영화를 통틀어 한 장면쯤은 그 날의 처절함을 묘사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4.3이라는 시기를 축약해서 간접 체험할 수 있는 단독 신이라고 할 수 있어요. 구조로 쳐도 이 장면은 2장 ‘신위’와 3장 ‘음복’ 사이에서 어느 쪽에도 포함되지 않는 독자적 숏입니다. 원래 시나리오에도 없었고요. 실제로 영화에 사용된 음악이 작곡되기 전에 촬영 중 엄청나게 들은 음악이 비탈리의 <샤콘느>인데 그 곡의 느낌이 반영돼 있기도 합니다.
Q.중요한 식량으로 돼지와 감자가 등장합니다. 미리 섭외한 돼지 복순이의 스케줄이 맞지 않아 감자의 비중이 커졌다고 들었어요.(웃음) 혹시 돼지와 감자를 통해 전하고 싶었던 의미에 차별성이 있었나요?
A.돼지가 주로 나왔으면 영화가 좀 더 무거워지고 제목은 <꿀꿀꿀>이 됐을 거예요. “꿀꿀꿀”은 돼지가 우는 소리인데 인간은 웃는 소리처럼 받아들이잖아요? 땅 밑에 울음이 묻힌 제주를 오직 관광의 섬으로 바라보는 것처럼. 돼지는 12지신의 마지막 동물인데 죽을 때 소위 ‘멱 따는 소리’가 나머지 열 한 동물의 울음을 합친 소리라고 해요. 모든 동물의 슬픔을 간직한 존재인 거죠. 영화에는 그리지 않았지만 실제로 4.3 당시에 먹이 줄 주인을 잃은 돼지들이 제대로 매장되지 못한 시신을 먹고, 그 돼지를 다시 군인들이 잡아먹은 일도 있었다고 합니다. 말하자면 간접적인 윤회 같은 과정인데, 영화에서는 죽은 어머니가 품었던 감자를 주민들이 나눠먹는 일화가 유사한 맥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Q.격식 없는 <뽕똘>을 본 다음 회화적인 이미지가 즐비한 <지슬>을 본 관객이라면 두 영화의 감독이 동일인물이라는 사실에 놀랄 듯 합니다.
A.카메라 앵글은 형식이잖아요? 형식은 나한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때 그 때 대상에서 발견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내가 갖고 있는 기존의 것에 신경쓰지 않아요. 특별히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앵글도 그래서 없어요. 다만 편집이 빠른 영화에는 피로를 느껴요. 음미하면서 보고 싶은데 먼저 달려가니까.
Q.그래도 제주에서 살아오시면서 습관이 있지 않을까요? 언제나 시선의 끝에는 바다가 있다는 사실에 익숙해 있다거나…. 반쯤 실내, 반쯤 야외로 볼 수 있는 공간도 영화 속에 자주 등장하던데요.
A.특정한 풍경보다는 호흡의 문제예요. 한 호흡에는 들숨만 있는 게 아니라 날숨도 있잖아요. 내가 지금 한참 들이쉬고만 있구나 느껴지면, 한번 뱉어줘야 하는 거죠.
Q.만약 제주 섬이 인간 배우라면 어떤 배우일까요?
A.여신. 어머니의 모습을 포함한 여신이죠. 굉장히 생활력이 강하고 매우 변덕스러울 거예요. 날씨 때문만이 아니라 다채롭다는 의미에서.
Q.미국이나 일본 같은 넓은 나라 영화에는 지역마다 문화 차이가 간혹 보이지만 한국 영화에서 지역성을 확실히 느끼는 경우는 드물었어요. 그런데 오멸 감독님의 영화들을 보면 혹시 제주가 육지와 ‘같은 나라’가 아니라고 느끼신 적이 없을까 궁금합니다.
A.그런 생각, 자주 합니다. 제주 방언이라고들 하는 말을, 제주 사람들은 제주어라고 부르죠. 유사성이 있는 사투리라고는 해도 외지인이 잘 못 알아듣잖아요. 선댄스 영화제(월드 시네마 극영화 경쟁부문 심사위원 대상) 이후 “한국 독립 영화의 쾌거”라는 기사를 보고 좀 의아했어요. 냉정히 말해 한국독립영화가 제주에 미친 영향이 없었거든요. 인프라도 현장이 돌아가는 방식도 제주와 서울의 그것은 천지차이입니다. 많은 한국영화가 제주의 풍경을 찍어갔지만 제주의 삶과 문화에는 관심이 없었죠. 갑자기 하나로 묶이니 당황스런 면이 없지 않습니다.
사진제공 자파리 필름, 영화사 진진
<지슬 : 끝나지 않은 세월2>
출연: 박순동(무동) 최은미(무동 아내) 문석범(원식이 삼촌) 김동호(순덕 아버지) 양정원(용필) 강희(순덕) 이경준(경준) 성민철(만철) 홍상표(상표) 주정애(정길) 외 감독, 각본: 오멸 촬영: 양정훈 조명: 추정엽 편집: 이도현 음악: 전송이, 서지선 총 제작지휘 : 김경률 상영시간:108분 등급 15세 관람가 개봉: 3월1일(제주) 3월21일(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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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영화공간 주안 (주안역 8번 출구 인천사랑병원 위쪽 메인프라자 7층)
-시간: 4월 6일(토) 오후 6시 30분
평통사에 신청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