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메의 산
정선 마바리산(고부산) (976m)
'바리때' 깊숙히 솟은 산
'마바리산'은 말이 바리바리 짐을 싣고 넘나들던 마바리재가 있는 산이다. 백두대간상의 천상화원으로 유명한 금대봉(1418.1m)을 조산으로 북서쪽으로 곁가지를 친 강원도 정선군 남면과 사북읍 경계에 깊숙이 자리하여 국토지리정보원에서 발행하는 지형도에도 이름이 없는 산이다.
산행들머리로 정한 사북읍 직전리 발전마을은 지형이 공양 그릇 바리때처럼 생겨 붙여진 지명이다. 옛날에는 화전민 동네였으나 지금은 고랭지채소와 더덕 같은 특용작묵을 주로 재배하고 있다.
본격적인 산행은 마바리산, 덕산(960.8m), 노목산(1148.3m), 물레봉(1062.4m) 등이 병풍을 에둘러 가마솥 같은 지형을 관통하는 7번 지국도변 '사북←발전→수출동' 버스정류장에서부터 시작한다. 마을 입구에는 발전노인회관, 큰배래치골, 말고개재, 달빛마을펜션 이정표들이 세워져 있고, 서쪽 큰배래치골 왼쪽 위로 마바리산 정상이 가깝게 올려다 뵌다.
여기서 곧장 오르면 정상까지 1시간 정도 거리여서 우리는 작은배래치골(지형도에는 작은배래치골 이름이 '먼저골'로 되어있다)을 들머리 삼아 시계 반대돌이로 산행키로 한다. 길가에는 술패랭이꽃이 알록달록 사열하고 분지가 온통 더덕밭이다. 사질토양이라 더덕이 굵을 것 같다.
7번 지국도를 따라 수출동(북쪽) 방향으로 10분쯤 걷자 허허벌판 전봇대 꼭대기에 달린 '작은배래치골' 화살표 이정표가 보인다. 지시 방향을 따라 도로를 버리고 마을길로 들어서니 반원을 그리며 내려가는 콘크리트 마을길에는 줄딸기와 개망초꽃이 한창이다. 개울 다리에는 껑충한 소나무가 기우뚱 서있다.
농가 한 채 앞을 지난다. 작은배래치골을 따라 10분쯤 올라가자 현대식 자그마한 농막이 있는 사거리다. 여기서 어느 쪽으로 갈까 망설이다가 왼쪽 배추밭 사면으로, 잘 뚫린 농로로 들어선다.
지금까지 걸어온 작은배래치골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건너편으로는 물레봉이 솟아있다.
비탈진 경운기 길을 따라 산허리를 끼고 돌아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서서히 경사도를 올린다. 이어서 경운기 길을 버리고 작은배래치골 입구로 뻗은 지맥으로 올라붙는다. 배추밭이다.
배추가 발에 밟히지 않도록 조심하며 좁은 밭둑을 따라 올라가자 숲의 경계가 나온다. 숲을 헤쳐가니 나뭇가지들이 얼굴을 할퀴고 배낭도 낚아챈다. 이것들을 뚫고 지능선에 닿으니 숨통이 트인다.
오른쪽으로 희미한 지능선 길을 따라간다. 나무들이 하늘을 가렸다. 굴참나무, 신갈나무들이 소나무와 어우러졌고 발아래는 멸가치, 우산나물, 단풍취, 터리풀, 털중나리, 양치식물들이 밭을 이뤘다. 오래된 산짐승 올무도 눈에 띈다. 돌로 쌓은 엄폐호도 지난다.
작은배래치골로 들어 산행한지 1시간30분만에 주능선 분기점에 당도한다. 이곳까지 올라오는데 몇 마리 뱀과 마주쳤는데 똬리를 틀고 있는 까치살모사 한 마리가 여기 삼거리에도 마중을 나왔다. 이 마을에는 옛날부터 뱀과 관련된 이야기가 많이 전해져왔다고 한다.
옛날 이 산기슭에는 마음씨 착한 떠꺼머리 노총각이 살았었는데 남보다 일찍 일어나 부지런히 일을 해도 입에 풀칠하기가 어려워 남의 집 머슴으로 가 새경을 받았다. 어느날 정선아라리를 흥얼거리며 쇠꼴을 한창 베고 있는데 쉿쉿하는 섬뜩한 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 황급히 돌아보니 꼬리가 잘린 큰 뱀이 쳐다보고 있었다. 뱀을 불쌍히 여긴 떠꺼머리 총각이 머리에 두른 베수건을 풀어 땅바닥에 깔고 앉을 것을 권하니 한동안 수건에 앉아 휴식을 취해 기력을 찾은 뱀이 슬그머니 숲속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그런 일이 있는 후부터는 총각이 하는 일마다 잘 풀렸다고 한다.
갑자기 고도를 낮추어 왼쪽 주능선을 따른다. 구렁이 같은 등칡이 나무들을 휘감아 등천하는 듯 하늘이 가려 어두컴컴하고 으스스한 길이다. 겨우살이를 채취하느라 신갈나무를 통째로 베어 눕힌 현장도 가끔씩 보인다.
오른쪽으로는 억새로 이름난 민둥산이 건너편에 있겠고 왼쪽은 발전마을 큰배래치골일텐데 양쪽 모두 나무들이 가려 방향만 감지할 뿐 전혀 보이지 않는다. 남남서쪽 방향으로 잘 나가던 능선이 남남동으로 키를 돌리며 고도를 낮추자 산 이름을 낳게 한 마바리재다.
정상을 향해 다시 오름짓을 한다. 제법 가파른데 오르는 길이 아까보다 훨씬 좋다. 벙어리뻐꾸기 울음소리가 처량하게 울린다.
"뱀이다! 몸에 좋은 뱀이다!"
뱀 소리만 들으면 신경이 날카로워진다. 사람이 해코지 하지 않으면 순한 동물인데 독이 있다니까 괜히 겁부터 먹고 과민반응을 하는 것이다.
10분쯤 오르자 무용지물이 된 헬기장 삼거리다. 왼쪽 길이 하산길이니 잘 보아두고 곧장 직진한다.
차분한 능선 숲길로 9분쯤 오르자 쇠물푸레나무, 신갈나무, 진달래, 철쭉나무들에 에워싸인 낡은 삼각점이 있는 정상이다. 숲을 헤치고 서쪽으로 조금 나서자 두위봉, 민둥산으로 조망이 트인다.
하산은 방금 전 지나온 헬기장으로 내려선 후 오른쪽 말고개로 이어지는 능선을 따른다. 미끈한 신갈나무들이 반기는 부드러운 길이다.
5분쯤 능선을 따르다가 말고개로 가지 않고 능선을 버리고 왼쪽 큰배래치골을 향해 내려서니 넓은 배추밭이 나온다. 함지박 같은 지형 속에 터를 잡은 발전마을의 고즈넉한 모습에 건너편 물레봉의 모습이 더 높게 보인다.
"쪽박 바꿔주우, 쪽박 바꿔주우" 한 많은 며느리가 혼이 되어 우는 새에 맞장구를 치는 뻐꾸기의 울음소리가 여름의 문턱을 알리고 있다.
*산행길잡이
큰배래치골 입구-(10분)-작은배래치골 입구-(10분)-작은배래치골 농로 사거리-(1시간20분)-주능선 분기점-(20분)-마바리재-(30분)-정상-(30분)-큰배래치골 입구
직전리 발전마을 버스정류장이 세 곳이 있어 헷갈리기 쉬우니 작은배래치골 이정표를 확인하고 2~3채의 농가가 있는 작은배래치골로 들어선다.
약 10분간 콘크리트길을 오르면 현대식 작은 농막이 있는 사거리다. 여기서 왼쪽 농로를 따라가다 앞에 보이는 지릉으로 무조건 올라서면 지능선이다.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능선을 계속 따르면 주능선에 닿는다. 왼쪽 주능선을 택해 바윗길로 급히 내려서 몇 번 오르락 내리락 하면 산이름을 낳게 한 마바리재다.
마바리재를 지나 정상으로 가는 길에 조그마한 헬기장이 있다. 정상을 다녀온 후 헬기장으로 되돌아와 그곳에서 동쪽 능선으로 내려서면 발전마을이다. 마을밭에 재배하는 더덕에 욕심을 내지 않도록 조심한다.
*교통
고한,사북공영터미널(033-591-2860)에서 직전리 수출동까지 하루 3회(06:45, 13:45, 18:45) 왕복 운행하는 버스를 이용, 진전리 발전마을에서 내린다.
*잘 데와 먹을 데
잘 데로는 달빛마을펜션(033-592-5694), 도사곡휴양단지(592-1456), 스타호텔(592-2500)을 비롯 아로마사우나(591-6555) 등이 있다.
발전마을에는 먹을 데가 없으므로 사북읍에서 이용한다. 민둥산보리밥(592-3562), 대우회관(591-0773), 수원갈비(592-3022), 할매손칼국수(592-6611), 범바위민물집(592-7227) 등.
*볼거리
정암사 5대 적멸보궁의 하나로 정선군 고한읍 고한리에 있다. 신라 자장율사가 창건했다. 적멸보궁 뒤 산 중턱에 위치한 수마노탑(보물 410호)에는 진신사리와 유물을 봉안하였다고 전하는데 1972년 이 탑을 해체, 복원할 때 탑의 내부에서 사리와 관련 기록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높이는 9m에 달하고 당나라에서 가지고 온 마노석으로 정교하게 쌓았다. 경내에는 자장율사가 평소 사용하던 주장자를 꽂아신표로 남긴 나무 주목이 오늘날까지 자라고 있다.
글쓴이:김부래 기자